박진영 & 선예 - 대낮에 한 이별

(※ 주의 : 그리 진지하게 읽을 필요는 없는 글입니다;;)

 낮에 점심 먹으러 나가면서 열쇠를 안챙기고 방문을 걸어잠그는 바람에-_- 아주머니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206호 일당의 방에서 절치부심 재기를 노리고 (?) 있었다. 이 곡은 4학년 주제에 여전히 발빠르게 최신곡 업데이트가 이루어지는 (훗,) 206호 일당의 노트북을 가지고 놀다가 우연히 듣게 된 노래이다. 하지만 미리 말해두건대 나는 결코 이를 '대낮에 열쇠와 이별'했다느니 '206호가 따뜻해서 괜찮았어'라는 식으로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가져다 붙이고픈 생각이 없다. (??) 나의 개그가 단기적 예외가 전혀 없다곤 말 못하지만 그래도 장기적이고 평균적으로는 그보다 높은 퀄리티를 추구한다. (???)

 왕년에 완전히 잘나갔던 R.ef의 「이별공식」에서 <낮>이 이별을 하기에 악조건으로 취급되었던 ("햇빛 눈이 부신 날에 이별해봤니 / 비 오는 날보다 더 심해 / 작은 표정까지 숨길 수가 없잖아") 반면에 박진영의 이 곡에서는 오히려 그것이 긍정적으로 ("근데 햇살이 밝아서 / 햇살이 밝아서 괜찮았어"라는 등등)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에서 <불경기의 내면화>를 읽을 수 있다. (내가 말해놓고도 참-_- 어쨌든,) <비록 내가 연인과는 이별하지만 "햇살이 따뜻"한 걸 보니 다행히 추위에 얼어죽는 사태──즉 경제적인 생존 위협──와 전면적으로 맞닥뜨리기까지는 아직 여유가 있구나>라는 씁쓸한 안도감이랄까. 하지만 R.ef의 「이별공식」이 발표되었던 시절(1995)에는 경기가 좋아서 낮에 눈물 보이고 스타일 구기는 것보다는 차라리 비 좀 맞고 세탁비를 들일 정도의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헌데 "작은 표정까지 숨길 수가 없"는, 다시 말해 구질구질한 대낮보다 비오는 날을 선호한다는 입장은 서구적 댄디함에 대한 동경과 연관이 깊다. '항상 비가 오'는 전형화된 이별 장면 <이미지>의 원형은 산업 혁명 시기의 영국을 배경으로 한 고전 명화들에까지 그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에선, 꼭 무슨 이별할 때가 아니라도 연중으로 툭 하면 비가 오고 그래서 영화 속의 <신사> <숙녀>들은 평소에도 우산을 들고 다닌다. 즉 비와 우산 같은 소재들 자체가 '서구' '백인' '선진' '산업화' '도시화'의 상징인 것이다. 왜 "사랑을 하고 또 멀어지는 그런 느낌까지 틀에 박혀 있는 거"냐고 (주로 여중/여고생들을 대상으로) 의문을 던졌던 이 곡은 (도입부의 "열대우림 기후 속에 살고 있나"라는 대목──'덥고 짜증나며 미개척 상태의' 아프리카-인도-아시아 지역에 대한 19세기 유럽의 식민주의적 세계관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롭지 않은──을 제외한다면) 비의 이미지를 낭만적 댄디즘의 한 표현으로 간주한다.

 박진영은 이러한 <비의 댄디즘>을 가장 성공적으로 연예 마케팅에 활용했던 사람이다. 그 유명한 월드스타 <비>가 바로 JYP의 간판 작품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의 질문과 답이 동시에 주어진다. 지난날 충실한 R.ef주의(?)에 입각하여 <비>를 만들었던 바로 그 박진영이 왜 이번에는 거꾸로 反R.ef주의적인 「대낮에 한 이별」 같은 곡을 들고 나온 걸까? 비록 비의 독립이 둘 사이의 갈등 내지 관계의 소원으로부터 연유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오히려 바로 그점에서 비의 홀로서기만큼이나 JYP 역시 비로부터 다시 홀로서기가 필요했던 건 아닐까. 컴백앨범 타이틀곡 「니가 사는 그 집」을 보라. 비가 없어서, 할 수 없이 박진영이 대신 부른 듯한 인상을 주진 않는가? (물론 정말로 비가 불렀다면 가사가 좀더 낮은 연령층을 타겟으로 변형되었을 것이다. 가령 '하루만 니 방의 침대가──나였어야 해' 뭐 이런 식이라든가.) 

 자신이 낳은 최고의 제자이자 후배, 작품으로서 분신과도 같았던 비의 빈 자리와 마주하여 박진영은 크게 두 가지 방향의 대처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하나는 「니가 사는 그 집」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적극적인 비-되기를 통해 스스로 비의 빈 자리를 채우는 것이다. (물론 이는 박진영 개인의 심정적인 차원을 넘어서 남성 솔로 가수 시장에 대한 기업가적 접근이라는 점을 놓쳐선 안된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거꾸로 비의 빈 자리에 대한 부정이다. "태양을 피하고 싶어서 / 아무리 달려봐도 / 태양은 항상 내 위에 있"다던 JYP 사단의 노래는 어느새 "햇살이 따뜻해서 괜찮았"다며 180˚ 바뀌어 있다. 이점에서 우리 선예 씨♡가 듀엣으로 함께 했다는 사실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JYP엔 비가 없어도 '원더걸스가 있어서 괜찮'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다시 새로운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비와 원더걸스가 각각 JYP에게 서로 상충되고 모순적인 관계에 놓여있는 두 갈래의 길이라는 것이다. 이 둘이 명확하게 구분되어야 함을 누구보다 먼저 간파했던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원더-걸스 논고》 서문에서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우리는 비에 대하여 침묵해야 한다. 그러나 원더걸스에 대해서는 명료하게 말해질 수 있어야 한다. …… 나의 논리는 완전 무결하며, 공격 불가능이다. 나는 JYP가 놓여있는 본질적 문제를 최종적으로 해결했다." 그의 자신감 넘치는 주장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어보인다(!). 사실 나는 나의 견해와 의도를 숨기기를 경멸한다. 이쯤에서 나는 박진영이 남자가수보다는 여자가수를 만드는 쪽이 훨씬 좋다는 걸 공공연히 선포한다. 잃을 것은 비요, 얻을 것은 원더걸스다. 만국의 뭇 남성들이여, 단결하라!

 cf. 임창정, 「낮에」 : 2000년 발매된 임창정의 6집 앨범 수록곡으로, 이별을 선선히 인정하면서도 "너 왜 그 아름다운 낮에 떠났니 / 나 울지 못하게"라는 가사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별 후에 남겨진 자신의 고유 영역으로 복귀한 '낮'에 새겨진 이별의 외상에 반발하는 소심한 자유주의적 태도를 읽을 수 있다. 이는 IMF 위기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이해'하면서도 그것이 곧장 자기 삶의 영역에 정리해고의 형태로 직접 개입되는 것에는 반발했던 당시 노동자 계급의 이중적 상황을 반영한다.

 자본가 계급의 이데올로기 공세로부터 노동자들의 권익을 지켜내고, 또한 공세적인 역량을 확보하기 위한 기초로서 "자꾸 기업하기 힘들단 말을 너무 많이 해 / 이런 규제와 세금, 강성 노조는 첨이라며 말을 하는 게 이상해" (선예 part), "다른 남미 '파퓰리즘'-유럽 '복지병' 안좋은 얘기를 / 자꾸 내게 자세히 말해주는 게 너무 이상해 / 니 친구들 안좋은 얘길 왜 내게 계속 말해" (소희 part) 라는 냉철한 현실 인식을 환기하려는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문제 의식에서 역사에 기여하고자 하는 사명감을 바탕으로 Soviet of Marxists Entertainment와 함께 한국 굴지의 문화선동 주체로 활동해온 JYP는 이번에도 대북 온건 노선을 지지하는──"햇살이 따뜻해서 괜찮았어"──도발적인 후속곡으로 새롭게 출범하는 MB 정부를 향해 의미심장한 첫인사를 건냈다. 앞으로 이어질 씩씩한 투쟁의 귀추가 주목되는 그들이다.

 ...결국 여기까지 이 글을 읽을 읽어버리고 만 당신을 위하여 바치는 묵념.-_-

20080217 김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