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궁녀 ]


꽃봉오리가 피기 전부터, 저는
당신만을 기다렸습니다.

아침 이슬과 서늘한 밤공기는 저를 담금질 하였고,
뜨거운 햇살은 저를 다시 녹였습니다.
밤낮의 어지러운 교차 속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나날이 그리워했습니다.

아시나요? 꽃봉오리 속에서 피어낸 그것은
사랑이라 불린다는 것을.

제 사랑은 붉은 입술 사이에 담겨 있었습니다.
소중하여 쉬이 날아가 버릴까 쉽게 내뱉지 못하는
간절한 단어였습니다.
당신을 향한 연정은 달콤한 향기로, 수줍은 미소로, 그리 감춰져 있었습니다.
너무도 커져버린 사랑.
더 이상 품을 수 없었던 한 여름날,
당신에 대한 연정을 고백했습니다.

아름다웠습니다.
순결한 꽃잎 끝, 이슬의 싱그러움은 초승달마저 질투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바쳐 피운 사랑이기에,
어떤 꽃도 제 향기를 당하지 못할 것이라
그리 여겼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왔습니다.
단단한 껍질을 깨고 차가운 흙바닥을 비집고 나와도,
뜨거운 햇살과 시린 밤바람에 찢겨도
그 상처가 짓무를 때도
오직 원하던 것은 당신.

아아, 당신의 날개는 어찌나 가녀리던지요.
하지만 당신의 손길이 닿은 순간
저는 짧은 한숨
내쉴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의 향기보다 아름다운 것은 오직
그대
그대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대는 제 마음을 흔들어 놓고
떠났습니다.
짧은 만남 뒤에 오는 기나긴 외로움을,
공허함을,
참을 수 없는 서러움을.
저는 목구멍 너머로 온갖 것을 삼키며 기다렸습니다.

제 향기는 그대를 향한 것이기에.
오직 그대만을 위한 것이기에.
그대는 반드시 돌아오리라.

그리고 그대는 다시 왔습니다.

제 곁으로, 품으로,
그리하여 저를 다시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대는 저를
지옥 밑바닥으로 떨어뜨렸습니다.

아, 당신은 어찌…….

그대에게서는 다른 이의 향기가 배어 있었습니다.
다른 이를 품고
어찌 제게 사랑한다 말하는지요.

꽃은 그리하여 시들고,
그대 품에 남길 바랐던 향기는
어지러이 흩어지겠지요.

하지만 피울 수밖에 없습니다.
제 꽃은
오로지 당신을 위해 피었기 때문이지요.
이 향기는
오롯이 당신을 위한 사랑이기 때문이지요.

나비가 머물지 않는 밤이
유난히 차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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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 본 적 없지만- 네가 참 싫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17 19: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