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사이공, 한 시절의 베스트셀러와 고전의 기로에서

이번 5월 14일부터 세계 4대 뮤지컬 <미스사이공>이 서울 공연에 나섰다. 사실 세계 4대 뮤지컬을 규정지을 확실한 기준은 모호하기에 영국의 뮤지컬 제작자인 카메론 매킨토시의 4대 뮤지컬이라고 표현하는 편이 정확하겠지만, 매킨토시가 만들어낸 나머지 뮤지컬이 <캣츠>,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세계 4대 뮤지컬이라는 말이 그리 과장된 말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미스사이공은 이런 매킨토시의 BIG4 중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1985년 베트남에서 입양되는 아이와 슬픈 눈으로 바라보는 어머니의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아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의 모티브로 만들어졌다는 이 뮤지컬은 1989년 초연 당시 얼마 지나지 않은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삼았다는 것 외에도 아름다운 음악과 실제로 등장하는 헬리콥터 등의 스펙터클함을 무기로 화제를 모았고 뮤지컬계에서 숱한 기록을 갱신했다. <미스사이공>의 성공에 고무된 매킨토시는 헬리콥터를 3D영상으로 대체하는 등 투어에 최적화된 프로덕션을 새로 만들어냈는데 국내에 2006년에 초연되고 이번에 다시 막에 오른 미스사이공 역시 이 뉴 프로덕션이다.

그동안 오리지널 팀이 국내에서 미스사이공을 선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2006년의 라이센스 공연은 나름 성공을 거두었다. 세계 4대 뮤지컬의 마지막 작품의 초연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제하고서라도, 화려한 무대와 안무, 아름다운 음악, 슬픈 스토리는 상당한 흡인력으로 사람들을 객석으로 모았다. 그리고 이번 2010년에 다시 라이센스 판으로 무대에 오르기에 이른다.

논란의 중심, 서구적 시각의 주제의식

사실 웰메이드의 대형 뮤지컬 중 미스사이공만큼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작품도 없다. 음악적 아름다움과 무대의 완성도에 대한 찬사와는 별개로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주제 의식은 이 공연이 막에 오를 때마다 논란의 중심에 서서 많은 비평가와 관객들의 싸늘한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현대사에서 가장 크고 오랜 시간을 끌었던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그 전쟁의 주체 중 하나였던 미군을 선(善)이나 구원자로 규정하고, 베트남을 미군의 구원을 기다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가녀린 한 여인으로 상징해버렸기 때문이었다.(미군은 그 땅에서 전쟁을 하며 베트남 여인들을 노리개로 착취하는 동시에 사이공의 시민들에게는 꿈과 희망의 미국행 비자를 발급 받을 수 있는 기회이다)미군과 베트남 여인 사이에서 생긴 혼혈아 '부이도이'(삶의 먼지라는 뜻)들이 미국의 입양 재단에 의해 소개되는 장면은 짐짓 뭉클하지만 그 원인이 미군이라는 점을 생각하자면 그것은 사실 뭉클해야만 하는 장면은 아닌 것이다.

서구의 백인 남성에 의해 사랑에 눈뜨고 구원 받기를 수동적으로 바라다 결국은 죽어가는 오페라 <나비부인>과 비슷한 스토리의 <미스사이공>을 나름 정치적 가치관이라는 것을 확립한 요즘의 사람들이 가만히 둘리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제국주의에 입각한 오리엔탈리즘은 구시대의 타파되어야 할 대상으로 꾸준히 각인되어 왔으며 아시아권의 경제 신장과 페미니즘의 확대도 이런 '반동적'인 스토리를 좌시할 리 없다. 그러나 결국 기획사는 2010년에도 미스사이공을 무대에 올렸으며, 스토리와 주제의식에 대한 논란은 여전한 가운데 또한 일군(一群)의 사람들은 꾸역꾸역 공연장으로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미스사이공은 확실히 '잘 만든' 뮤지컬이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미스사이공은 확실히 잘 만든 뮤지컬이다. 알랭 부브리와 미쉘 쇤베르그의 아름다운 음악들은 실력있는 오케스트라와 배우들을 빌려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스토리와 밀착되어 극의 흐름을 전혀 끊어먹지 않고 모든 것을 긴박하게 맞물려 들어가게 하는 무대연출 역시 가히 최고의 작품의 반열에 올릴 만하다. 화면의 크기가 조금 아쉬웠지만 3D로 구현된 헬리콥터는 나름 훌륭했고, 긴박함이 넘치는 바리케이트 신도 압권이다. 2006년 초연 당시보다 훨씬 발전된 모습으로 매끄럽게 무대가 흘러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미국 브로드웨이 계의 '쇼' 중심의 뮤지컬들과는 달리 '스토리'가 더 중심이 뮤지컬들, 이를테면 <미스사이공>, <레미제라블>, <노트르담 드 파리> 등에서 사람들은 고도로 뮤지컬에 빠져드는 매니아층을 제외하고 태생적으로 스토리의 나열로 인해 약간 지루한 순간을 맞이하기 마련이다. <미스사이공>도 초중반부에 이러한 시간이 없지 않았지만, 또 나름 훌륭하게 극복하고 후반부의 집중력을 훨씬 높여주는 연결고리를 잘 수행했다고 생각한다. 쇼적인 요소 역시 곳곳에 적절하게 배치되어 자칫 무겁게만 흐를 수 있는 분위기를 잘 조율한다.

제4회 더뮤지컬어워즈에서 킴 역할을 맡은 히로인 김보경은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스타마케팅에 의존하지 않고 편견 없이 오디션 하겠다는 평범한 원칙으로 뽑힌 주, 조연 배우들은 연출진들의 요구를 훌륭하게 소화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일의 컨디션에 따라 약간은 차이가 나는 배우들의 컨디션을 고려한다면 미스사이공의 출연진들은 노래나 연기에서 나름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변역된 가사나 대사에 대해 논란이 있었고 약간 유치한 부분이나 수위가 꽤 높은 대사가 없잖아 있었지만 크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같은 주에 <미스사이공>과 <몬테크리스토>를 한꺼번에 보았더니 그 차이는 정말 사뭇 크게 느껴졌다. <몬테크리스토>의 메르세데스 역의 옥주현이 빼어난 가창력을 선보인 반면, 에드몬트 역의 신성록의 노래는 실망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어설픈 무대 효과와 연출로 '매우 잘 만든 졸업 작품'같은 느낌을 주었던 <몬테크리스토>는 사실 <미스사이공>의 무대와 비교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이야기를 일일이 다 할 수는 없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미스사이공>은 다른 유명 뮤지컬에 전혀 뒤질 것 없이 꽤나 잘 만든 뮤지컬이라는 것이다.

내적인 힘으로 결국 고전에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것인가

<미스사이공>의 모티브가 되었던 오페라 <나비부인>은 1904년에 초연되었다. 한참 서구열강의 제국주의적 시각이 팽배했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세계를 생각해 보자면 서구열강에게는 정복의 판타지로, 침략당한 쪽에서는 침략의 미화로 느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주제의식 때문에 <나비부인> 역시 진보적인 시각의 사람들로부터 수많은 공격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는 것이다. <미스사이공> 역시 <나비부인>이 가지고 있는 서구 중심의 주제의식과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미스사이공>은 극복해야할 약점을 하나 더 가지고 있다. 배경이 된 베트남전이라는 사건이 수십 년밖에 떨어지지 않은 '현대사'라는 것이 그것이다.

첫째로 현대사에 대한 감정이입은 실제로 그 사건을 겪은 수많은 당사자와 그 영향을 받은 주변인들 때문에 매우 위험한 일이다. 여론에 휩쓸려 일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고 거대한 역풍을 맡기도 하는 것이다.(10.26이나 광주항쟁을 본격적으로 다룬 <그때 그 사람>이나 <화려한 휴가>같은 영화가 그 일이 있은 몇 년 뒤에나 나왔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라)둘째로 그 사건을 주관적이며 직접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세대와 직간접적으로 겪지 않았기 때문에 머리로만 이해하는 세대가 공존하게 되면서 오는 혼란이다. 구세대는 주관에 따라 움직이고 흐름에 휩쓸리며, 새 세대는 냉정하게 사건을 바라보고 심지어 그것을 촌스럽게 여기기 때문이다. 정치에서의 세대 대립이 심각하지만 소통은 되지 않는 것처럼 그것은 감성에 있어서도 무의식적인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어필할 수 없는 시대의 이야기를 <미스사이공>은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뮤지컬은 '사랑'과 '모성애'로 주제를 포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수백 년 전의 이야기라면 그것이 얼토당토하지 않더라도 하나의 '판타지'로서 인정되기도 한다. 지금에 와서 '클래식'으로 추앙받는 다양한 문학, 미술, 음악, 연극 작품 중에는 그 당시에는 논란이 된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신화 등 오래된 이야기에 대한 거부감은 적은 반면에 그 당시와 어느 정도 가까운 시대의 민감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언제나 논란이 있어왔던 것이다. 그것이 논란에서 벗어나 위대한 작품으로 추앙받고 시대를 관통하는 '고전'의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그 오랜 논란의 시기를 심미적인 빼어남으로 견뎌내야만 한다. 지나간 시절의 사고를 그 시절의 것으로 인정하며, 그 지나간 시절의 이야기에서 보편적인 감정을 끄집어낼 수 있을 법한 시절이 왔을 때 그것은 한 철의 베스트셀러가 아닌 그야말로 '고전(古典)'으로 만개하는 것이다.

<미스사이공>은 어쩌면 기로에 있다. 수많은 비난을 감내하고 결국 오페라에서는 어느 정도 고전(古典)의 지위를 획득하여 작품의 아름다움과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정서로 사랑받기 이른 <나비부인>의 전철을 밟고자 꾸준히 버틸 것인지, 시대의 감성을 크게 바라보지 못한 이유로 작품 자체의 가치마저 폄하된 체 나락에 떨어질 것인지를 스스로의 힘으로 증명해야할 시기가 어느 정도 온 것 같다. 솔직히 말해 <미스사이공>은 다른 카메론 매킨토시의 BIG4에 비해 그 무게감이 한국 관객들에게는 조금 덜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스토리에 탄탄한 연출력을 바탕으로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새 뮤지컬들과, 기존의 입지를 압도적으로 누리고 있는 뮤지컬 사이에서 예상보다는 고전(苦戰)하고 있는 <미스사이공>의 향후 행보를 지켜보는 일은 분명 흥미로운 일이다. 스스로가 가진 힘이 분명 만만치 않은 작품이기에 결코 쉽게 승부가 나진 않을 터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