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 아냐? 아냐? 이런. 그럼 정체가 뭐지? 으… 이건 예정에 없던 거잖아. ”

남자는 기괴한 목소리를 내며 그의 두꺼운 코트속에 얼굴을 파묻더니 머리를 감싸쥐고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휘미는 같은 윔인을 만났다는 사실에 기쁘기도 하고 이상한 기분이 들어 그의 귀에다가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 윔인이 왜 여기에 있죠? ”

남자는 머플러를 입에 달라붙인 채 그대로 일어나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안절부절 못하더니 의자에서 일어나 짐을 후딱 챙긴 뒤 휘미를 끌고 걷기 시작했다. 휘미는 그가 시키는 대로 걸어가 주었고 남자가 다시 말을 꺼냈다.

“ 당신, 정말 윔인이, 음, 윔인이오? ”

휘미는 그가 별로 위험해 보이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두꺼운 코트에 커다란 머플러와 모자를 하고 있었지만 체구는 생각보다 왜소했고 살의를 띄고 있는것 같지도 않았다. 휘미는 사실대로 대답했다.

“ 윔의 용병이었어요. 스니게치 회전에서 잡힌 뒤로 지하감옥에 있다가, 노역소로 끌려갔는데 그곳을 탈출하고 이곳으로 잠입했습니다. ”

“ 뭐? 맙소사! 정말 특종감인데? 사실이오? 에이씨. 모르겠다. ”

휘미는 남자의 쇳소리 같은 목소리가 점점 고음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의 속눈썹이 유난히 길다는 것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나 휘미는 놀란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 사실입니다. 여긴 사핀군과는 상관없는 곳이어서 안전하다고 하더군요. 근데 당신은 여기서 뭐하고 있는 겁니까? 여자 혼자서? ”

“ … ”

그는 아무말 없이 머플러를 살짝 밑으로 끄슬러 내렸다. 가는 턱선, 얇은 목젖, 휘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여자는 과장되게 기침을 하더니 머플러의 먼지를 털어내기 위해 손부채질을 정신없이 하고는 말했다.

“ 조용히 따라와요. ”

여자는 원래의 목소리로 말하더니 빠른 걸음걸이로 앞장섰다. 그녀는 얼마 가지 않아 노점상들이 즐비한 시장골목 틈새로 들어가더니 한 낡은 2층 찻집 후문으로 들어갔다. 찻집 안에는 수염을 얼굴전체에 기른 작은 키의 중년 남자 하나가 수건으로 잔을 닦고 있었다.

“ 아듄. 저에요. ”

아듄이라 불린 남자는 잔을 한번 들어보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고 휘미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테이블 구석에 앉은 여자는 휘미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 이스누. 천공활자 소속 기자에요. ”

휘미는 그녀의 말에 놀라 손을 한참동안 잡고 있다가 말했다.

“ 저… 휘미입니다. ”

이스누는 친절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뒤 재빨리 표정을 바꿔 진지하게 물었다.

“ 뭐하는 분이시죠? ”

휘미는 아직 완전히 그녀에 대한 의심을 떨칠 수가 없어 말을 돌렸다.

“ 천공활자라면 월기마다 신문을 내는 위머의 회사였죠? ”

“ 정확히 말하면 정부에서 지원하는 준 국영 기관이죠. ”

휘미는 그가 다른 말을 함에도 성실하게 대답해주자 잠시 흔들렸지만 여전히 의심을 풀지 않은 채 말했다.

“ 왜 이곳에 있고 어떻게 사핀 국경을 넘었는지도 말해줄래요? ”

이스누는 말투와 표정은 그대로 친절하게 유지하면서도 내용은 쌀쌀맞게 대답했다.

“ 그러기 전에 휘미씨도 뭐하던 분인지 말해주시는 것이 순서에 맞겠네요. ”

휘미는 잠시 고민하다가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내었다. 그와 함께 고생하면서도 여지껏 색 하나 바래지 않고 있는 다이지의 상징물을 보여주는것이 어떨까? 그는 왼쪽 손목에 달라붙다시피 있던 가는 물건을 그녀에게 내보였다. 은색의 네모난 조각들이 엇물리며 촘촘히 이어진 모양의 다이지 팔찌였다. 고개를 빼어 팔찌를 바라보던 그녀의 얼굴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졌다. 군대에서는 아는 자가 없어 쓸모가 없었던 물건이었지만 이스누는 금방 알아 차린 것이었다. 그녀가 팔찌를 알아보자 휘미도 의심이 완전히 풀려버렸다.

“ 제 이름은 릿시레에요. 이스누는 여기서 쓰는 가명이죠. 특파원격으로 이곳에 들어왔구요. 보시다시피 오윰에 대해서 취재를 하고있는 중이에요. 그리고 우리 이제 윔어로 대화해요. 사핀어에는 정이 없어요. ”

릿시레는 자신의 노트를 들어 휘미에게 펼쳐보았다. 휘미는 눈이 휘둥그레져 말했다.

“ 아니, 도대체 어디로 해서 들어왔어요? 저처럼 눈보라 사막을 건너오진 않았을테고. ”

“ 어머, 눈보라 사막이라고요? 세상에. ”

릿시레는 신나는 듯 종이에다가 마구 펜을 놀리며 그의 말을 옮겨 적었다. 휘미는 자세를 고쳐잡은 뒤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릿시레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녀는 기자 신분이어서인지 매우 완벽한 청자여서 휘미는 그녀에게 이야기 하는 것이 굉장히 즐거웠다. 그는 풀에 대한 이야기와 사미잇, 나스치에 대해서는 숨긴 채 나머지 일들은 되도록이면 자세히 이야기했다. 긴 이야기인 탓에 중간에 아듄이 차를 가져왔고 휘미는 차를 몇 번 더 따라 마신 뒤에야 이야기를 마칠 수 있었다.

“ 그래서 지금 동료를 잃고 헤매다가 얼떨결에 당신을 만난거에요. ”

릿시레는 고개를 여러번 끄덕였다. 휘미는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어둑어둑한 촛불의 불빛이 그녀의 얼굴에 음영을 만들고 있었다. 휘미는 그녀가 짧은 머리에 커다란 남자 옷을 입고 있었음에도 굉장히 미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여태껏 뭇 여성들을 보면 그래왔듯 쥬디하랑 그녀를 비교해보기 시작했다. 쥬디하는 그가 생각하기에 가장 완벽한 여성의 기준이었으니까. 휘미는 잠시 생각해 본 뒤 둘을 비교하는 것은 힘들다고 생각했다. 첫째로 릿시레는 만난지 불과 1시간밖에 지나지 않았고 둘째로는 쥬디하는 매일 목욕하고 단장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항상 최고의 조건에서 만났던 반면 릿시레는 무법 도시인 오윰의 어두컴컴한 지하 찻집에서 남장을 하고 만났기 때문이었다. 릿시레는 웃으며 짧은 머리를 쓸어올린 뒤 말했다.

“ 윔으로 돌아가는것은 어렵지 않아요. 미몰라 아나실에서 탐험선을 얻어 타고가면 되거든요. ”

휘미는 자리에서 일어날 뻔했다. 그는 물었다.

“ 그게 가능해요? ”

“ 네. 탐험선들은 누구도 건들지 못하니까. 뱃사람들에게 검문 따위를 하려다가는 전쟁이 일어날꺼에요. 게다가 휘미는 남자니까 더 쉽죠. ”

휘미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 고마워요 정말. ”

릿시레는 고개를 저었다.

“ 고맙긴요. 그럼 기사 마무리 짓는것만 좀 도와주실래요? 덕분에 오윰에서 지금까지 얻은 기사보다 더 많은 것을 얻겠어요. ”

메지는 마치 지하감옥에 있을 때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눈가리개는 다시금 세상을 아무것도 없는 암흑으로 만들었다.
그는 억센 손에 뒷덜미를 잡힌 채 도살당하러 가는 짐승처럼 끌려가다시피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었다. 차가운 철문을 지나면서 머리가 부딪히고 땅바닥에 내팽개쳐져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을 때는 그가 어딘가 가둬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메지는 입술을 깨물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는 투기장에서 바보같이 군것이 너무도 후회가 되었다.

“ 나를 평생 어디 부려먹거나, 아니면 제거하거나. ”

메지는 두가지 다 절망적이라고 생각했다.

“ 애초부터 여기를 오는게 아니었어. ”

지금은 뭐를 생각해도 다 괴로울 뿐이었다. 그는 손을 더듬어 벽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 메지잖아! 보라고. 내말이 맞지? 역시 여기있었어. ”

메지가 눈을 떴을 때 그는 안대가 벗겨져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기삭이 메지의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자 그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 진정해. 메지. ”

디로단이 팔짱을 끼고 멀리서 그를 보고 있었다. 메지는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다.

“ 어떻게 된거에요? 누가 이러는거죠? ”

“ 걱정하지마. 내가 다… ”

“ 빌어먹을 오윰 건달놈들이야 ”

머리카락을 쥐어뜯고있던 발리율이 기삭과 거의 동시에 말했다. 메지는 그제서야 이곳이 감옥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방이 돌벽으로 막혀 있었고 쇠창살 밖으로는 철문이 있었으며 천장 위에 손바닥이 들어갈 정도의 좁은 환기구만이 있었다. 기삭은 돌벽을 걷어차고는 발을 찌었는지 메지 옆에 주저앉아 씩씩대며 말했다.

“ 그 쿰 ․  에나힌 인가 뭔가 하는 것들이 우릴 가둔 거야. 너를 끌고가길래 우리가 쫒아가서 알아듣게 잘 이야기를 했지. 저 발리율 녀석만 믿고! 근데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를 여기로 데려와서는 뜬금없이 너랑 같은 일행이냐고만 묻더니 여기에 집어 쳐 넣고 가버렸어. ”

“ 뭔가 오해가 있어서 그러는 걸꺼다. 저들이 그럴 리가 없어. ”

“ 오해? 너좀 닥치지 못해?! ”

기삭이 얼굴이 벌겋게 되어 발리율에게 삿대질을 했다. 둘은 언제 친했냐는 듯 처음 만났을때 보다도 더 사이가 갈라져 있었다. 발리율도 뭔가 대꾸를 하려다가 고개를 떨어뜨리고는 욕지거리만 해대었다. 메지가 물었다.

“ 휘미는요? ”

“ 몰라. 휘미도 없어졌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없어진거지. 휘미는 멀쩡히 거기 있을 거야. ”

 “ 큰일 났군. 휘미는 누구 갑자기 없어지는 거 죽도록 싫어할텐데. ”

메지는 웃으면서 말했지만 감옥 안 분위기는 싸늘하기만 했다. 메지는 다시 축 늘어지려고 하다가 생각을 바꾸었다. 그는 휘미가 잘 하듯이 박수를 두 번 친 뒤 다소 큰 목소리로 말했다.

“ 지금 상황을 정리해볼 필요가 있어요. 일단 제가 동전을 잘 맞춘것과 상관이 있는것은 분명해요. 그리고 여러분이 일행인 이상 공범이라고 생각한걸 수도 있겠죠. ”

발리율은 고개를 저었다.

“ 아냐, 그럴 리가 없어. 쿰에나힌들은 투기장 치안에만 신경쓸 뿐이야. 사기는 딜러들이 잡는다. 그리고 처음 보는 사람이 전문가들이 섞는 도박판을 어떤수로 사기를 치겠어? 그리고 저친구들이 절대 나를 잡아 넣을 리가 없단 말이야. 나한테 얼마나 신세를 진 놈들인데! ”

기삭이 말했다.

“ 쿰에나힌이 정부랑 손을 잡고 우리 신변을 넘길 가능성은 생각 안해봤어? ”

발리율은 가슴을 치며 말했다.

“ 바보같은… 저들은 무정부주의 단체야. 그럴 리가 없어. ”

순간 디로단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기삭도 마찬가지였다. 메지는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으나 금방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발리율은 침을 삼키더니 말했다.

“ 그래. 미안해! 미안하다고. 사실 저들이 뭐하는 자들인지는 알고 있었어.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무 변함이 없다고. 세상에, 무정부주의 단체가 정부랑 결탁할 리가 없잖아? ”

디로단이 말했다.

“ 발리율, 또 말 안한거 있으면 얘기해봐. ”

“ 없어. ”

기삭이 이를 갈며 말했다.

“ 안되겠다. 디로단, 정말인지 한번 고문을 시켜보죠. ”

발리율은 얼굴이 시뻘개져 감옥 벽에다가 머리를 미친듯이 박으며 고함을 질렀다. 디로단이 그를 제지했다.

“ 알았어. 그만. 여하튼 확실한 것은 저들이 우리를 그냥 이렇게 두지는 않을 거라는 거지. 앞으로 우릴 죽이던지 살리던지 조치가 있을꺼 아냐. ”

“ 만약 죽인다면 어떡하죠? ”

메지가 말했다. 기삭은 이를 악물고 디로단을 쳐다보았다. 디로단은 고개를 저었다.

“ 메지가 한번 더 활약 할 수밖에. ”

“ 뭐, 여긴 도무지 제 지식으로도… 아하. ”

메지는 품속을 뒤져 약병을 꺼냈다. 저번에 사미잇을 만났을 때 휘미가 다급한 나머지 많은 양을 흘려버려서 약은 반정도 밖에 안남아 있었다. 메지는 디로단을 바라보며 말했다.

“ 디로단이 먹는게 어때요? ”

“ 난 먹는 순간 해독해 버릴지도 몰라. ”

디로단이 말했다. 메지는 금방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기삭과 발리율은 무슨 영문인지 모른다는 표정이었다. 발리율은 이상한 눈빛으로 디로단을 바라보았지만 입을 열 상황이 아닌 것을 알고 단념했다. 디로단은 메지에게만 보이게끔 몸을 돌려 조용히 입술에 자신의 손가락을 가져대었다.

“ 기삭? 기삭은 어때? ”

기삭은 턱을 긁었고 발리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 저 녀석을 먹이면 날 제일 먼저 죽일지도 몰라. ”

“ 그건 지금 당장도 충분히 할수 있지! ”

기삭이 또 소리쳤다. 디로단이 말했다.

“ 만약 먹을 일이 있으면 메지가 먹는게 나을거 같아. 기삭은 먹지 않아도 매우 강하니까. ”

디로단의 칭찬에 기삭은 씨익 웃으며 화를 풀었다. 메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깥 주머니에 병을 잘 집어넣었다. 일행은 제각기 퍼질러 앉아 시간을 때우기 시작했다. 감옥 안은 매우 추워서 일행은 당장 재채기를 해 대었다. 발리율이 코웃음을 쳤다. 사핀인들은 추위를 잘 버텼다. 그들의 살갗은 다른 인종들보다 훨씬 두꺼웠고 몸에는 털이 많기 때문이다. 사핀군이 안티크로니움을 통째로 넘어올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그들이 지독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 온다 ”

지루한 시간이 흐르던 중 어느순간 디로단이 고개를 들었다. 일행은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를 하였다. 그의 말대로 멀리서부터 발자국 소리들이 들리더니 여섯명의 쿰 ․  에나딘이 내려왔다. 일행은 횃불 빛에 눈이 부셔 손으로 눈을 가리며 말했다.

“ 누구냐. ”

기삭이 소리쳤으나 그들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잠시 뒤 그들은 감옥을 둥그렇게 감쌌고 맨 뒤에 있던 자가 싸늘한 음성으로 물었다.

“ 한명은 어딨나 ”

그러자 발리율이 그들 앞으로 일어나서 말했다.

“ 허허 다들 왜 그러시나. 뭐 오해살 일이라도 있었나 본데 나랑 천천히 얘기하고… ”

“ 누가 사핀인이냐! ”

그자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기삭은 곧바로 대꾸를 하려했으나 디로단이 제지했다. 그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 발리율을 빼고 우리는 전부 윔인이오. 그리고 누굴 더 말하는 거요? ”

그자는 잠시 옆의 쿰 ․  에나딘 에게 뭐라고 묻더니 말했다.

“ 성문에서 한명이 더 있다고 말해줬다. ”

일행은 성문을 지키던 거지의 모습을 떠올렸다. 발리율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해대었다. 기삭은 억지로 화를 누르며 말했다.

“ 그래서 원하는게 뭐냐고! ”

“ …곧 알게 될거다. ”

그는 그 말과 함께 등을 돌렸다. 아울러 5명의 쿰 ․  에나딘 들도 계단을 올라 나가버렸다. 일행은 그들을 붙잡았으나 아무도 듣지 않았다. 발리율은 철창에 미끄러져 주저앉으며 말했다.

“ 뭔가 아주 이상해. 저들은 절대 아무 이유없이 강제력을 행사하지는 않아. 내생각엔 당신들이 저들에게 뭔가 빚이 있는 모양인데? ”

디로단은 고개를 저었다.

“ 그럴 리가 없어. 난 여기서 저들을 처음 봤다. ”

디로단은 말을 마침과 동시에 기삭을 돌아봤다. 기삭은 두 손을 들었다.

“ 나? 물론 나도 저런 놈들은 여지껏 본 적이 없어. 용병에 있었으니 원한을 품을 사람은 있겠지만 개인적인 잘못은 한 적도 없고. ”

기삭은 구석에 웅커려있는 메지를 보았다. 메지는 생각에 빠져서 일행의 시선을 못느꼈다. 발리율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 메지. 말해봐. ”

메지는 고개를 들고 일행을 불안하게 바라보았다. 그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몸이 떨리는 것은 감출 수 없었다.

“ 메지? 어서 이야기 해봐. 어찌보면 너랑 휘미가 비밀이 제일 많아. 말해봐. 다이지에 멀쩡히 있다가 왜 군대로 도망온거야? ”

메지는 식은땀이 나는것을 느꼈다. 하지만 더 이상 거짓말을 하는 것도 불가능 하게 느껴졌다. 그는 어느정도는 사실대로 말해야 될 때가 온것을 느꼈다.

“ 물론 저도 저들은 여기서 처음 봤어요. 하지만 걸리는 점이 있긴 해요. 사실 저와 휘미는 뭔가 중요한 물건을 가지고 있어요. 그 물건을 가지고 나서부터 일이 이상해졌죠. 친구가 사라졌고 누군가로부터 쫒기기 시작했어요. 누군지는 아직도 모르죠. 여하튼 그들이 쫒아왔고 우린 다이지에서 나와 도망가다가 얼떨결에 모병소로 들어간거에요. 그리고 빠져나오지 못하고 군인이 되었던 거죠. ”

기삭이 물었다.

“ 그 중요한 것이라 하면… 네 약을 말하는거야? ”

메지는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

“ 아니에요. 하지만 비슷한거죠. 우리는 그걸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게 뭔지 잘 몰라요. ”

디로단이 말했다.

“ 약 이외에는 한번도 무언가 꺼내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지금 가지고 있어? ”

메지는 고개를 저었다. 디로단이 중얼거렸다. ‘휘미가 가지고 있군. ’ 기삭은 일어나서 손을 허리에 얹은 채 안절부절 못하고 돌아다녔다. 디로단도 심각한듯 고개를 젖히고는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발리율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 이봐 이봐, 다들 정신들 차리라고. 메지 때문이 아닐 수도 있잖아. 다시 말하지만 저들은 아무 이유 없이는 남의 물건을 강제로 뺏거나 누굴 해치거나 그러지 않아. 무정부 단체이지만 항상 정의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저들이지. ”

디로단이 머리를 들고 말했다.

“ 메지, 네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것은 알고 있어. 하지만 우리가 지금 동료인 이상 우리 신변을 통째로 좌지우지 할만한 가능성이 있는 일에 대해서는 우리도 알아야 할 의무가 있다. ”

메지는 힘없이 말했다.

“ 제가 말한게 다에요. 휘미가 가지고 있는 물건 때문에 누군가에게 쫒기고 있었죠. ”

디로단이 이어 물었다.

“ 그 물건이라는 것의 쓰임새 라던지 값어치는 알지 못하고? ”

메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 네. 저희도 처음보는 것이었죠. ”

기삭이 끼어들듯이 말했다.

“ 풀이군. ”

메지는 포기한듯 뒤로 쓰러지듯 누워버렸다. 기삭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 안그래? 풀이었군. 그것도 무진장 귀중한 풀이었어. ”

메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디로단은 입맛을 다시더니 메지 곁으로 다가가 말했다.

“ 메지? 풀이 맞나보군. 그 풀이 어떤 쓰임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가지고 있는 비약을 생각해 본다면… 그 풀도 뭔가 무서운 일을 저지를 만한 재료가 될 것 같군. 그리고 적어도 그걸 강제로 뺏으려는 자들의 손에 들어간다면 나쁜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것 같다. 만약 지금 우릴 가둔것도 오로지 그 풀 때문이라면 그 풀이 엄청난 물건이란걸 증명하는 행위가 되지. 그리고 난 너나 휘미를 믿으니까, 너희가 풀을 계속 가지고 있는것에 도움을 주는게 날 것 같은데. ”

메지는 디로단을 바라보았다. 디로단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메지는 그 손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가 미소를 지으며 손을 잡고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본 기삭도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 어찌됐건, 이곳을 탈출해야 하는 것이 우선의 목표인 것은 맞지? ”

“ 그런것 같아. ”

메지가 대답했다. 디로단도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나더니 감옥의 구조를 낱낱이 살펴보았다. 발리율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 이봐 다들 너무 쉬운것 처럼 이야기 하는데. 아무리 그 미친 약이 있다고 해도 여긴 감옥이야. ”

기삭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 상관없어. 우린 지옥에서도 탈출해 봤으니까. ”

디로단이 발리율을 곁눈으로 보며 말했다.

“ 발리율. 당신은 남아있어도 되오. 이 도시에서 계속 정착해야 한다면 미움을 사면 안될테니. ”

발리율은 고개를 저었다.

“ 아니, 이젠 더 같이 따라가야 되게 생겼소. 난 분명 휘미가 저번에 한 말을 기억하오. 보아하니 쿰에나딘 전체를 움직일 만한 풀도 캐낸 것 같은데, 같이 다닌다면 그것보다 좀 못한 풀들은 수도 없이 많이 발견할 수 있겠지. ”

기삭이 장갑을 단단히 끼고는 양 주먹을 부딪치며 말했다.

“ 좋아. 그럼 당장 시작하자고. 메지 마셔! ”

디로단이 양손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