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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국 ]
꿈을 꿨다. 천국을 봤다.
천국이라면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곳, 늙지도 다치지도 않으며,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사는 곳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꿈에서 본 천국은 너무 달랐다.
긴 통로.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천장이 얼마나 높은지, 바로 코앞이 벽인지 뚫린 길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다만 저 멀리 바늘구멍이 있어 빛이 들어온다. 그 곳에서 천국에 도착한 여인을 보았다.
그 여인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팔꿈치로 기었다. 어둠 속의 통로는 팔꿈치로 기어야 할 정도로 좁은 통로였다. 여인은 멀리 보이는 작은 빛을 향해 기었다.
이곳이 천국인가? 나는 혼란스러웠다. 과거에 읽었던 책이 떠올랐다. <스베덴보리의 위대한 선물>. 저자인 과학자처럼 천국을 꿈으로 만나는 것이라면, 적어도 이해는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나는 지금 보는 천국의 의미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스베덴보리가 본 천국은 굉장히 논리적이었다. 하지만 내가 꿈으로 보는 천국은 길고 좁고 어두운 통로를 기어가는……, 마치 지옥 같은 곳이었다.
여인이 팔꿈치로 기어가다 문득 고개를 들었다. 한 뼘만큼 통로가 넓어졌다. 빛도 조금 가까워졌다. 그 때, 통로의 아래쪽에서 신음소리가 난다. 가늘게 눈을 뜨고 소리에 집중한다. 통로 바닥에는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크기의 구멍이 나 있다. 구멍 아래에 좁은 낭떠러지에 매달린 남자를 발견한다.
그 남자는 수직으로 난 낭떠러지를 올라오고 있었고, 온 몸에 족쇄를 달고 있었다. 맨살이 보이지 않을 만큼 많은 족쇄. 족쇄 끝에는 주먹 크기의 쇠구슬이 달렸다. 그래서 구멍까지 도달했음에도 올라오지 못 하고 있다. 구멍을 통해서 그 사람은 족쇄 하나를 건넨다. 그리고 혀가 잘린 입으로 애처로운 표정을 짓는다.
그녀는 고민한다. 모호한 표정이다. 고민 끝에 그녀는 족쇄를 받아든다. 그리고 자신의 발목에 채운다. 그리고 다시 기어간다.
그녀는 통로 바닥에 뚫린 수많은 구멍을 발견한다. 그럴 때마다 족쇄를 건네는 사람을 만난다. 그녀는 족쇄를 받아 발목에, 손목에, 허리에 채운다. 기어가는 일이 힘들지만 그래도 통로는 그만큼 넓어지고, 빛도 가까워진다. 그녀가 지나간 통로에는 기쁨의 울음소리가 나지막이 난다.
드디어 그녀가 빛에 도달한다. 족쇄로 무거운 허리를 펴는 순간, 온 세상은 갑자기 환해진다. 여인의 몸에 묶인 족쇄는 온데간데없다. 그녀는 어리둥절하다가 이내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꿈에서 깼다.
그리고 이해했다. 꿈의 의미를.
꿈의 의미는 내게 너무도 감동적이었다. 사실이라고 믿고 싶을 만큼.
나의 감동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 이야기를 해야 한다. 어릴 적 나는 교회를 다녔다.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천국과 지옥’ 이야기다. 난 지옥 개념이 싫었다. 죄 있는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영원히 지옥에서 벌 받는 모습은 가혹해보였다. 그래서 종종 지옥에 있는 사람이 구원받을 수는 없을까? 생각하곤 했다.
그러다 아무런 전후사정 없이, 오늘 천국에 관한 꿈을 꾼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천국과 지옥’에 관한 꿈이었다.
족쇄를 찬 사람들은 그녀에게 죄 지은 지옥의 죄인이었다.
그들이 구원 받아 죄를 덜고, 다시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구멍에서 빠져나와야 했다. 하지만 족쇄가 걸려 올라올 수 없다. 그들은 자신이 죄 지은 사람에게 족쇄를 건네 용서 받아야 했다.
그렇다. 천국으로 가는 길목은 지옥 바로 위에 있었다. 천국에 가는 사람은 자신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할 기회를 한 번 더 얻는 것이다. 지옥에 있는 사람도 용서 받을 기회를 한 번 더 얻는 것이다.
내가 본 천국과 지옥이 비록 꿈이라도 해도, 내 머리가 만들어낸 허상이라 해도, 어쩐지 개운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사람을 믿고 살아갈 힘이 생겼다. 비록 내가 만들어낸 꿈이라 해도.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4 15:4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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