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

  민석은 잔뜩 찡그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바꿔 웃는 낯을 했다. 민석은 자신의 속마음이 들키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쏟아지는 햇빛에 드러난 팔과 얼굴이 따끔했다. 민석은 육군 훈련소에 입대한지 3주차인 훈련병이었다. 지금 위치한 곳은 야외 훈련장으로 인위적으로 배치한 바위, 나무 등이 무성했다. 훈련은 같은 날 입소한 훈련병이 모두 참석해 규모가 상당했다. 지금은 오전 훈련 중간마다 주어지는 휴식시간이었다. 소대 별로 그늘에 모여 앉았다. 플라스틱 소재의 훈련용 방탄모를 벗자 고여 있던 땀이 흘러내렸다. 흙먼지와 땀으로 불쾌한 냄새가 났다.

  같이 훈련 받는 동기들도 민석처럼 땀을 비 오듯 흘렸다. 8월의 하늘은 지나치게 화창했고, 그늘에 있어도 탈진하는 사람이 나올 만큼 더웠다. 민석은 더위도 더위였지만 더위에 대해 저마다 한 마디씩 하는 동기들이 더 짜증났다. 제발 입 다물고 있었으면.

  [민석아, 물 있어?]

  뒤에 있던 홍승이란 동기가 물었다. 홍승은 138번 훈련병으로 113번인 민석과는 이야기를 거의 나눠본 적이 없었다. 민석은 거짓으로 웃는 낯을 하며 대답했다.

  [아니, 나도 벌써 다 마셨어.]

  그러면서 아직 반 넘게 남은 수통을 뒤로 감추었다. 민석은 물이 아깝기도 했지만 홍승의 태도에 혀를 찼다. 염치가 없다고 느낀 것이다. 훈련이 3주차가 되면서 훈련소 동기들끼리는 연대감이 생겼다. 특히 분대장을 몰래 욕하거나 숨겨둔 간식을 나눠 먹으며 생긴 연대감이었다. 하지만 민석은 이 모두를 거절했다. 동시에 그런 동기들을 혐오했다.

  민석은 입소하는 날부터 철저하게 자신을 포장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좋은 사람으로 보여 5주 동안 문제없이 지내고 싶었다. 입대 전부터 들은 소문 때문에 초반에는 매우 조심했다. 군대는 사회보다 첫 인상이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2주차부터 조심하기가 힘들었다. 민석이 느끼기에 동기들은 수준 이하였다. 서울에 있는 대학을 다니고 학점도 나쁘지 않았기에 민석은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느꼈다. 하지만 훈련소 동기들은 지방대에 다니거나, 재수 중이거나, 심지어 고졸도 있었다. 일부는 자신보다 명문대였지만 외모가 못 생겼거나 체력이 딸렸다. 민석은 모두에게서 자신보다 부족한 ‘어떤 것’을 발견하고 격하했다. 때문에 자신을 숨기기 더 힘들었다. 그냥 대놓고 무시하는 동기도 몇 있었다. 물론 단 둘이 있을 때만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냈다.

  [휴식 끝! 착모!]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분대장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동기들이 불평하며 일어날 때도 민석은 앉아있었다. 모두가 일어나서야 느릿느릿 일어났다.

  이 날의 훈련은 ‘전장 전투 훈련’이었다. 나무나 바위 웅덩이 같은 것 뒤에 몸을 숨기고 사격을 하는 내용이었다. 엎드리고 기어가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야 했기에 모두 불평이 많았다. 더욱이 점심시간에 내린 소나기로 훈련장 바닥은 온통 진흙이었다.

  진흙을 묻히고 싶지 않아도 훈련 내용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진흙은 손발과 겉옷을 거쳐 내의 속에도 한 움큼씩 들어왔다. 맨살에 진흙이 쓸려 거북한 기분을 유발했다. 흙탕물인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갈 때면 물웅덩이에 온갖 역겨운 벌레가 꿈틀거리고 있어 혐오감을 유발했다. 훈련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부분의 훈련병이 커다란 점토 인형이 되었다. 대부분 열심히 참여했지만 더러는 벌써 요령을 피웠다. 민석이 그 중 하나였다.

  민석은 요령을 피워 훈련에 참가하는 횟수를 줄였다. 하지만 훈련에 다시 참가할 때면 고개를 숙이고 온갖 욕을 조용히 뱉었다. 민석은 진흙 웅덩이를 기어가다 앞에서 머뭇거리는 동기를 봤다. 141번 훈련병으로 이름이 지훈인가 하는 녀석이었다. 낮은 철조망을 누워서 통과하는 코스인데 살이 쪄서 진도가 더디었다. 민석의 눈에는 살진 굼벵이가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민석은 화가 났다. 141번이 늦어질수록 자신은 진흙더미 위에 오래 엎드려 있었야 했다.

  ‘뭘 어떻게 먹어야 저렇게 되는거야? 돼지 자식.’

  141번이 코스를 통과하자마자 민석은 날렵하게 철조망 밑을 지나갔다. 그리고 분대장(조교) 몰래 141번의 다리를 걸었다. 141번은 호되게 넘어지며 바닥을 굴렀다. 커다란 덩치 때문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흙탕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지훈아! 괜찮아?!]

  민석은 자신이 한 짓을 능숙하게 숨기며, 141번을 일으켜 세웠다. 지훈은 코피를 줄줄 흘리고 있어서 얼굴이 거대한 토마토처럼 보였다.

  [뭔가에 걸려 넘어졌어.]

  [저 돌이 튀어나와 있었어.]

  민석은 절대 걸려 넘어질 리 없는 돌을 가리켰다. 그리고 지훈이가 돌을 살펴보기 전에 팔을 감고 부축했다. 지훈은 짧은 비명을 질렀다.

  [아야! 발……발목을 삔 것 같아.]

  [내가 의무대에 데려가 줄게. 가자.]

  민석은 지훈을 부축하며 걸음을 옮겼다. 동시에 멍청이 하나를 골려주며 동시에 훈련도 자연스럽게 빠진 자신의 비상함에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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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석은 갖은 핑계로 분대장의 칭찬을 듣고, 지훈을 천하의 얼간이로 만든 뒤, 저녁 시간까지 버텼다. 하지만 눈치가 보여 야간 훈련은 빠질 수가 없었다. 민석은 어둠 속에서 온갖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섬광탄이 터지면 바닥에 엎드리고, 아까 말한 자세를 취한다.]

  [예, 알겠습니다!]

  도시의 밤과 다르게 훈련장인 숲 속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달마저도 나무에 가려 말 그대로 암흑 속에 있었다. 민석은 훈련에서 빠지고 싶어도 눈앞에 뭐가 있을지 몰라 벗어날 수 없었다. 유일하게 밝아지는 순간은 섬광 탄이 터질 때였다. 하지만 섬광 탄이 터지면 바닥에 바짝 엎드려야 했다.

  [악! 코를 부딪쳤어.]

  [개구리가 무릎 밑에 있었어! 으으.]

  섬광 탄이 터질 때마다 어두운 숲 속에서 벌어질 수 있는 온갖 사고가 생겼다. 그럴 때마다 민석은 욕지기를 했다. 정말이지 한심한 녀석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벌레 봐. 장난 아냐.]

  하지만 누군가의 외침에는 동의했다. 훈련장 바닥은 진흙이 반쯤 말라있었다. 그리고 온갖 종류의 벌레가 기고 있었다. 특히 바닥에 옆얼굴을 대고 엎드리면 천둥소리보다 큰 모기의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여기저기서 손바닥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민석도 이미 세 군데 이상은 족히 물린 것 같았다.

  [미친!]

  민석은 욕을 뱉었다. 모기한테 인지 또 다른 누군가에게인지 알 수 없는, 순전히 악의만 가득한 욕설이었다.

  섬광 탄이 잦아들고 어둠이 다시 찾아오면 훈련병은 일어나 느릿느릿 걸었다. 훈련은 밤늦게까지 지속되었다. 말라붙은 진흙, 땀에 전 군모, 그리고 몽둥이로 맞은 것처럼 부어오른 발 때문에 민석은 계속해서 불평하고 있었다. 그 때 섬광 탄이 터졌다.

  [제기랄!]

  민석은 급하게 몸을 숙이다가 소총 개머리판에 턱을 세게 부딪쳤다. 그 때문에 넘어지는 것처럼 엎드리게 되었다. 왼 손으로 턱을 감싸고 신음을 흘렸다. 찌릿찌릿한 느낌이 몹시 날카로웠다. 하지만 맘 놓고 아파할 수 없었다. 귓가에 다른 모기와는 비교가 안 되는 엄청난 날갯짓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모기는 도통 민석을 떠나지 않았다. 화끈거리는 턱과 소음으로 민석은 정신이 없었다. 민석은 오른손을 휘젓다가 왼손 등을 내리쳤다. 그리고 뭔가가 터지는 것을 느꼈다.

  ‘젠장.’

  미석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일어났다. 그리고 손바닥을 바지에 슥슥 문질러 닦았다.

  [훈련 끝. 2소대 집합!]

  훈련병의 힘없는 환호가 어두운 숲 속에서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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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날 밤은 모두 쉽사리 잠들지 못 했다. 모두에게 까지거나 삔 상처가 있거나, 하다못해 정체 모를 벌레에 물린 상처가 있었다. 의무병을 자처한 (그래봤자 약을 제 때 먹이고, 연고를 발라주는 것이 전부인) 141번 훈련병 지훈은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정확히는 다리를 절며 모두에게 약을 발라줬다.

  내무반은 기다란 복도를 가운데 두고 양 옆의 넓은 마루가 있었다. 벽 쪽에는 수납공간이 있었다. 훈련병에게는 누우면 여분의 자리가 아주 조금 있을 만큼만 공간이 배정되었다. 모두 속옷만 입고 있었다. 남자들끼리만 있으니 거리낄 것이 없었다. 훈련병들은 쉬거나, 편지를 쓰거나, 조그만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날 밤은 힘든 훈련 때문인지 대부분이 상처를 돌보고 있었다. 때문에 141번 지훈은 평소보다 바빴다.

  민석의 차례가 되었다. 민석 근처의 동기들은 옆 내무반으로 놀러가고 없었다. 민석은 동기들이 당분간 돌아오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자신을 꾸밈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아까는 정말 고마웠어.]

  지훈의 말에 민석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됐으니까 약이나 줘.]

  [아아……. 응.]

  민석은 지훈의 피둥피둥한 손에서 연고를 뺏어들고 턱에 약을 발랐다. 민석이 시큰한 고통을 삼키며 지훈에게 약을 돌려줬다. 하지만 지훈은 민석의 앞을 떠나지 않았다.

  [됐다니까. 그만 고마워하고 가 봐.]

  [그게 아니라…….]

  민석은 헛다리짚은 것이 민망해 되레 소리를 질렀다.

  [아니라, 뭐?]

  [너 왼손도 다친 것 같아.]

  민석은 자신의 왼손 등을 봤다. 그 곳에는 빨갛고 크게 부푼 상처가 있었다. 붉게 솟아오른 분화구 같았다.

  [넌 모기 물린 것도 상처로 보이냐?]

  [그렇지만 모기 물린 것치곤 너무 크게 부풀었는걸.]

  [산모기 몰라? 답답하다! 가! 나 잘 꺼야.]

  지훈은 우물우물 말을 삼키더니 절룩거리며 다음 환자에게 이동했다. 민석은 막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가식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지훈에게 함부로 대하며 다른 곳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다. 민석은 지훈을 쫓아내고 왼손 등의 상처를 봤다. 의식하지 않았던 곳이 의식하고부터는 간지러웠다.

  [괜한 참견은 해가지고.]

  민석은 짜증을 부리며 억지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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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련은 나날이 고되었다. 크게 다쳐 병원에 다녀온 훈련병도 있었다. 훈련을 제때 완수하지 못 하면 유급을 하게 됐다. 유급을 하면 다시 5주간의 훈련을 받아야 했기에 모두 몸을 사리거나 아픈 것을 참았다. 민석도 작은 병은 참았다.

  어느새 훈련은 야간 행군 밖에 남지 않았다. 20Kg이나 되는 군장을 매고 20Km를 밤새 걷는 훈련이었다.

  야간 행군이 있기 전까지 민석은 온갖 고생을 했다. 사격 시험을 실패하여 재시험을 거푸 봐야했고, 가려움증으로 밤마다 자다 깨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왼손 등의 상처에서 시작된 가려움증이 온 몸으로 퍼진 것 같았다. 특히 밤에는 왼손과 관계없는 뇌 깊은 곳까지 간질간질한 기분이었다. 머리를 마구 쥐어뜯으며 민석은 고통스러워했다. 그리고 지훈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때때로 폭력도 행상했다. 물론 아무도 모르게 처리했다. 하지만 야간 행군을 이틀 남기고 비밀스런 민석의 쾌감도 끝나버렸다.

  [누가 모를 줄 알았어?]

  129번 재형이었다. 좋은 학벌과 성격으로 민석의 열등감을 자극하는 완벽 남이었다.

  [지훈이가 괜찮다고 해서 넘어가려고 했는데… 도가 지나친 것 같아서.]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는데?]

  [네 본 모습. 이제 모두 알거든. 보기 안 좋으니까 그만 둬.]

  어느새 재형의 두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민석은 손등을 벅벅 긁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모두 경멸에 찬 눈빛이었다.

  [그 자식이 뭐라 했는지는 몰라도…….]

  [아니, 우리도 이미 알았어.]

  재형이 말을 끊었다. 그리고 단호하게 일렀다.

  [다만 동기들끼리 물의가 생기지 않길 바란 거였지. 하지만 넌 도가 지나쳤어.]

  민석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고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잠시 숨을 골랐다. 입이 열렸다. 열린 입에서는 엄청난 욕설이 쏟아져 나왔다. 특정 누구를 향할 때도 있었지만 대개는 적의를 표현하기 위한 방향 잃은 욕설이었다. 어이없이 듣는 동기를 바라보며 민석은 씹듯이 말했다.

  [너희 같이 수준 떨어지는 놈들은 내가 사절이야. 누가 누굴 훈계해!]

  동기들은 질린 표정으로 물러났다. 멀리서 안타깝게 지켜보는 지훈이 보였다. 민석은 더더욱 적의에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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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간 행군 당일이 되었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준비를 했는데도 출발 시간인 오후 6시에야 가까스로 맞출 수 있었다. 야간 행군은 처음 4시간이 평탄하지만, 다음 4시간은 지옥이란 평이 있었다. 모두에게 적용되었지만, 민석은 예외였다. 그는 시작 전부터 몹시 고통스러웠다.

  주말 이후로 모든 동기가 그를 적의로 대했다. 민석은 개의치 않았다. 성격이 무른 지훈이 만류하여 분대장(조교) 귀에는 들어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민석은 내일 모레면 안 볼 사람들이니 무시하겠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가려움증은 온 몸으로 퍼지고 나서부터 더욱 기승이었다. 민석은 온몸을 하루 종일 긁었다.

  야간 행군이 시작되었다. 마지막 훈련을 시작하는 훈련병의 표정은 밝았다. 희망 때문인지 모두 들떴다. 시간의 흐름을 잊은 듯이 걸었다. 훈련은 해질 즈음에 시작되었지만 곧 어두워졌다. 5주 동안 체력이 붙은 탓인지 대부분 씩씩하게 잘 걸었다. 질긴 가죽의 군화도 제법 길이 들어 걷기가 한결 수월했다. 20Kg 상당의 군화, 3Kg의 소총, 방독면, 수통 등을 온 몸에 매고 걷는데도 기쁜 표정이었다. 희망과 기대감이 그들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훈련병들의 예상보다 훨씬 일찍 야간 행군의 첫 1시간이 끝났다. 모두 자리에 앉아 쉬며 물을 마시거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민석은 쉬는 것도 잊은 채, 걷느라 긁지 못한 등과 종아리를 긁었다. 밤낮으로 긁다보니 일부 손톱은 끝이 깨지거나 심하게 닳아있었다.

  [착모! 일어나! 행군 시작!]

  걷는 동안에는 얼굴과 팔, 손등을 계속 긁었다. 팔과 얼굴은 잔 상처가 잔뜩 생겼고, 맨 처음 물린 왼손은 거의 두 배로 부풀었다. 파스도 연고도 효능이 없었다. 민석은 참을 수 없는 가려움이 분노 때문이라 판단해도 긁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다만 야간 행군이 끝나면 가려움이 사라질 것이란 막연한 기대를 할 뿐이었다.

  야간 행군을 하는 내내, 모기가 또 기승이었다. 주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앞에 동기 군장이 흔들거리는 ‘느낌’만 알 수 있었다. 들리는 건 질질 끌리는 군화 소리, 모기의 윙윙 거리는 날갯짓 소리뿐이었다. 가끔 모기를 잡으려는 탁 소리가 울려 단조로움을 깼다.

  [지금부터 대휴식을 취한다. 고생했다!]

  4시간을 걷고서야 10분 이상의 휴식을 얻었다. 모두들 신음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라면과 물을 공급받아 나눠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민석은 의도적인 따돌림으로 모두와 외따로 떨어진 곳에 있었다. 동기들의 복수였지만 민석은 긁는 행위를 위해 모든 정신을 쏟고 있어 눈치 채지 못 했다. 이제는 상태가 심해져 토악질이 나왔다. 두통 때문에 모든 것이 팽팽 돌았다. 민석은 군장과 소총을 내던지고 숲 쪽으로 뛰어들었다.

  ‘약한 모습 따위 보일쏘냐!’

  민석은 토악질을 삼키며 이동했다. 하지만 깊이 들어가지 못 하고 이내 뜨거운 것을 왈칵 토했다. 먹은 것도 없는데 양이 상당했다. 민석은 입가를 닦다 비릿한 냄새를 느꼈다.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주머니를 뒤져 손전등을 켰다.

  [이런 제기랄……. 이게 뭐야?]

  땀에 젖은 손 때문에 한 번에 비추진 못 했지만, 흘긋 봐도 범상치 않았다. 비릿한 냄새가 가득한 침을 퉤 뱉고 바로 비췄다. 토사물이 있어야 할 자리에 검붉은 피가 가득했다. 풀 숨 위에 번들거리는 피는 굉장히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민석은 다리에 힘이 풀려 무릎을 꿇었다. 갑자기 엄청난 통증과 가려움증이 왼손 등에서 느껴졌다. 무심코 손등을 긁다가 민석은 비명을 질렀다. 믿기 힘들었지만 오른 손톱에 살점이 묻어 나온 것 같았다.

  [무슨……?]

  모든 상황이 어리둥절했다. 민석은 눈물을 흘리며 놓친 손전등을 집었다. 그리고 왼손 등을 비춰보았다. 그리고 헉 하며 숨을 삼켰다.

  왼손 등은 살점이 반 쯤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더 끔찍한 것이 있었다. 상처 틈으로 뭔가가 꿈틀거렸다. 그것은 살을 비집고 나오더니 민석과 정면을 향했다. 작고 기다란 그 것은 난생 처음 보는 벌레였다. 언뜻 보면 모기 같았지만 크기는 세 배 쯤 되어보였다. 모기라고 생각한 이유는 머리에 비죽 솟은 바늘 같은 주둥이 때문이었다. 벌레는 등 뒤에서 뭔가를 펼쳤다. 민석의 피에 번들거리는 젖은 날개였다. 그리고 날갯짓을 시작했다. 날개를 덮었던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얼굴로 튄 피 때문에 민석은 눈을 감았다. 벌레를 쳐내려 했지만 그러지 못 했다.

  오른 팔에서, 다리에서, 등에서, 배와 머릿속에서 꼼지락 대던 간지러움이 살을 찢는 고통이 되어 쏟아졌기 때문이다.

  민석이 있던 그 숲 속은 벌레의 거친 날갯짓 소리가 피어올랐다. 수천 마리의 모기가 자신이 부화한 살덩이를 버려둔 채, 밤하늘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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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휴식 끝! 이동한다. 전우 확인해.]

  소대장의 명령에 모두가 자신의 양 옆, 앞뒤를 확인했다. 민석이 없었지만 아무도 알아채지 못 했다. 사방이 칠흙 같은 어둠 속이었고 더러는 의도적으로 민석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다시 기나긴 행렬이 여름의 밤을 관통하기 시작했다. 행렬의 맨 앞에서 소대장과 분대장은 숲길을 통과하며 잡담을 나눴다.

  [… 그래서 이번 주말에도 서울 가십니까?]

  [이제 양가 부모님 인사 해야지. 간 김에 식장도 잡으려고.]

  소대장의 대답에 분대장이 부러운 듯 말했다.

  [서두르시는 것 아닌지 말입니다.]

  [무슨 서두른다고. 원래 이런 건 …… 아얏!]

  [괜찮으십니까?!]

  소대장은 허벅지를 찰싹 내리쳤던 손을 게슴츠레 보고 말을 이었다.

  [모기였나 봐. 놓쳤어.]

  그리고는 허벅지를 벅벅 긁으며 덧붙였다.

  [어휴, 산모기라 독한 것 봐.]

  [요새 들어 모기가 더 기승이지 말입니다.]

  [그러게. 빨리 숲길을 벗어나자구. 또 물릴라.]

  소대장의 뒤를 이어 훈련병의 긴 행렬이 바삐 걸음을 옮겼다. 찬 공기 때문에 모두 코가 얼얼했다. 때문에 아무도 불과 몇 미터 옆에서 나는 피비린내를 맡지 못 했다. 다만 크고 위협적인 모기 소리만은 모두에게 또렷하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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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가 짤린 것을 복귀 전에 발견했네요. 수정했습니다.

창작게 여러분 잘 지내시는 것 같네요. 안 보이던 얼굴도 보이고!

날씨가 엉망진창인데 건강 조심하시고, 좋은 하루 되시길!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2 18:4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