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는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며 모르는 사람이 없는 작곡가이지만, 그가 사후 150년 간(약 1900년까지) 제대로 된 평가 없이 무명상태로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G선상의 아리아(관현악 모음곡 - air)나 인벤션, 골드베르크 변주곡, 토카타와 푸가, 두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특히 2악장) 등등을 한번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혹 TV, 라디오 등을 전혀 보거나 듣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1800년경에는, 바흐의 음악은 아주 일부만이 알려져 있었다. 생전에 출판된 것은 주로 클라비어(피아노의 전신)와 오르간 곡들이었고 이마저도 절판되어 있었다. 몇몇 필사본이 교육용으로(사실 오늘날에도 바흐 인벤션 등이 손가락 교육용으로 사용되고 있지 않은가) 사용되었고, 연주를 위한 것은 전무했다!

  바흐를 무명의 상태에서 꺼내어 위대한 음악가의 자리를 되찾아 준 것은 다름 아닌 펠릭스 멘델스존이다. 멘델스존은 1829년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연주했다. 듣보잡 작품이었던 바흐의 곡은 그 꽉 짜인 완성도와 아름다움 덕분에 사람들에게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1830년, <마태 수난곡>과 <성 요한 수난곡>의 악보가 정식 출판되었으며, 6개의 칸타타, 등이 연이어 출판되었다. 1844~1847년 사이에 바흐의 오르간 전곡집이 출판되었으며, 이후 <브란덴부루크협주곡>도 출판되었다. 실로 바흐의 레퍼토리 연주 붐, 악보 출판 붐이었다.

  이와 더불어 1880년 경(바흐 사후 130년 뒤)에는 바흐의 전기물들이 쏟아져나왔는데 이 중에서 표준적인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슈피타(J.A.P.Spitta)의 것이다. 그런데 이 전기에는 상당수의 과대포장이 포함되어 있다. 후대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바흐가 ‘경건한 음악의 사제’라고 하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다고 한다. 실제로 바흐는 라이프치히에 살던 7년째에 칸토르(음악감독) 대우가 영 만족스럽지 않아 언짢아 했으며 심각하게 전직을 고려하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짜증이 났던 바흐는 칸타타 작곡을 일부러 하지 않았다는 것이 최근 연구 결과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클래식 음악이라는 서구 근대 음악이 기초부터 차곡차곡 세워졌다기보다는, 오히려 후대에 그런 기초를 의식적으로 재구성시켜 전통을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때문에 클래식의 전통은 본래부터 실체가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후대에 채워진 가공일 수도 있다. 클래식 음악의 전통을 세우기 위해서는 ‘음악의 아버지’의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했으며, 그 대상이 바로 바흐였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흐를 연구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바흐의 음악이 수학적으로 완벽한 짜임새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가 호프스테터의 <괴델, 에셔, 바흐>에서 영감을 얻은 것은 익히 잘 알려져있지 않은가. <괴델, 에셔, 바흐>자체가 탁월한 미학서인 것도 말이다. 실제로 필자의 어리숙한 손놀림으로 인벤션을 따라 연주해보다 보면 그 치밀한 화음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

3.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도 바흐의 악보를 얻은 것을 ‘내 생애의 한 시기를 이룩하는 사건’이라고 평했다. 그의 말을 인용해보겠다.

  “그것은 내 생애의 한 시기를 이룩하는 사건이었다. 아버지는 1주일에 한 번 나를 만나러 왔다. 그 무렵 나는 이미 보통 크기의 첼로를 가지고 있었다. 매주 한번씩 올리는 고전 음악회의 독주용 악보를 찾으려고 아버지와 함께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악기점을 뒤지고 다녔다. 그때 내 나이는 13세였다. 어느 날 우연히 한 악기점에서 바흐의 <6개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악보를 발견했다. 말할 수 없이 매혹적인 신비가 악보에 깃들어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이 곡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고 그런 것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이 발견은 하늘이 내 생애에 베푼 계시라고 할 만한 사건이었다. 나는 곧 이 발견의 특별한 의미를 깨달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보물을 건드려보기도 하고 살며시 쓰다듬어 보기도 했다. 그후 모음곡에 열중해 공부하기 시작했으나 청중 앞에서 연주해도 되겠다는 결심이 서기까지는 12년 연구를 계속해야만 했다.”

  
<파블로 카잘스 - 카쉬가 찍은 사진>

이를 테면, 어린 파블로 카잘스는 무림비급을 발견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바흐의 악보가 파블로 카잘스를 현대 첼로 주법을 완성시킨 위대한 첼리스트로 만들어준 것이다. 실제로 그는 첼로의 활 쓰는 방법(운궁법=보잉)을 바꿔놓았을 뿐 아니라 그 합리적이고 예술적인 사용법을 제시했다. 과연, 바흐의 악보 없이도 카잘스가 이러한 위치에 올랐을까? 쉽게 대답하기는 어렵겠지만 아무튼 확실한 건, 카잘스는 이 악보에 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겠다.

<카잘스가 녹음한 바흐 첼로 모음곡> - 추천!

참고도서 :
조우석, <굿바이 클래식>
존 버로우즈, <클래식의 세계>

고려대학교 고전음악감상실에서 보내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