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이하 ‘차라…’)는 1985년경 그가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동명의 서사시를 읽고 깊은 영감을 받아 작곡한 교향시이다. 이 곡은 완주까지 약 1시간 정도 걸리고 총 9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섹션에 붙은 부제는 모두 니체의 원저에 붙은 몇몇 부제들로부터 따온 것들이다.

2. 그 중에서도 특히 첫 번째 섹션의 ‘도입부(Einleitung)’는 니체의 「차라…」에 언급되는 이른바 초인(Übermensch)를 음악화한 것으로 여명의 끝에서 떠오르는 태양과 같이 찬란하게 등장하는 초인의 모습을 고작 2분도 안되는 짧은 연주시간에 매우 숭고하게 표현하였다. 니체의 사상에서 초인이 그 중심에 서 있듯 슈트라우스의 「차라…」에서 역시 도입부는 형식상으로는 곡의 시작이지만 실상 곡의 핵심인 셈이다.

3. 기실 「차라…」의 도입부는 많은 사람들이 익히 들어보았을 정도로 매우 유명한 곡이기도 하다. 이처럼 이 곡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이하 ‘스페이스…’)을 통해서이다. 이 영화에서는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차라…」가 두 차례 흘러나온다. 첫 번째로 영화의 오프닝에서 「차라…」의 도입부가 잔잔히 깔리며 관악부의 팡파레와 함께 지구의 지평선에서부터 해가 떠오르는 장면이 매우 강렬하게 나타난다. 두 번째로 영화의 초반부에 원시시대의 유인원이 동물의 뼈다귀를 만지다가 문득 뼈다귀를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이 장면에서 역시 「차라…」의 도입부가 삽입되었다.

※ 백문이 불여일견. 동영상으로 직접 확인해보자.
너무나도 유명한 영화 「스페이스」의 오프닝 영상.

※ 도구를 쓰는 법을 터득하게 된 유인원의 모습이다.

4. 니체의 초인은 여명의 끝에 떠오르는 태양으로 비유된다. 이는 어둠의 끝에서야 나타난 하나의 광명이고 하나의 시작이고 어둠으로부터의 분절이다. 니체가 말하는 초인은 더 이상 나아가야 할 길을 잃어버린 채 어둠의 끝에 몰린 지금까지의 인간으로부터 새로운 인간으로의 뛰어-넘음(über-gang)이다. 이처럼 태고의 유인원은 뼈다귀조각을 도구로 쓸 수 있음을 마치 ‘아침 해가 떠오르고 빛이 여명을 깨트리듯’ 깨달았고 유인원은 한낱 먹이사슬의 한 고리에서부터 만물의 영장, 인류로 도약을 하게 된다. 바로 이 뛰어넘음의 장면에서 스탠리 큐브릭은 슈트라우스의 「차라…」를 삽입한다. 동물의 일종에서 동물과 분절되는 인간으로 뛰어넘는 모습과 기가막히게 매치를 시킨 것이다.

5. 「스페이스」의 이 장면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유명하며 다른 영화나 예술작품에서도 오마주(Hommage)의 대상이 되곤 하였다. 장준환 감독이 제작한 영화 「지구를 지켜라(2003)」에서도 마치 「스페이스」의 그 장면을 그대로 끼워넣은듯한 씬이 나타난다. 하지만 원작의 씬과는 달리 「지구를 지켜라」에서의 도구의 발명은 그 뉘앙스가 매우 다르다. 여기에서 유인원이 뼈다귀를 도구로 삼아 다른 뼈다귀를 부수는 장면은 인간의 본성에 내재해 있던 폭력성과 잔인함이 최초로 표출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순진무구하던 유인원이 동물의 다리뼈를 거칠게 내려치는 장면에 2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모습들이 오버랩되면서 유인원의 도구의 발명은 잔인한 인간본성의 발현이라는 부정적 의미로 그려진다.

※ 동영상에서 3분 정도 될 무렵에 문제의 그 장면이 나타난다.
앞서 나타난 「스페이스」와는 분위기가 너무 다르지 아니한가?

6.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하면서 이따금 그와 비슷한 것을 떠올리게 되거나 다른 무언가가 연상되기도 한다. 슈트라우스의 「차라…」만 하더라도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이유는 우리가 그 곡을 다른 매개와 유리된 채 받아들인 게 아니라 이처럼 다양한 매체와 연계된 방식으로 우리에게 인지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덧1. R.슈트라우스의 「차라…」음반은 카라얀(Herbert von Karajan)의 베를린필하모닉 73년도 판(짤방의 음반)이 대체로 호평을 받았다. 카라얀은 R.슈트라우스에 관심을 많이 가져 그의 곡을 여럿 다루었는데 이 음반은 카라얀의 「차라…」세 번째 녹음판이다. 이 외에도 다른 음반도 있겠지만 솔직히 필자가 들어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다. 솔티의 베를린필 연주 정도 들어보았는데 도입부만 놓고 보면 카라얀보다 다소 연주가 빨라서 개인적으로 그다지 좋은 느낌은 받지 못하였다. 혹시 이 외에도 R.슈트라우스의 「차라…」명반이 있다면 추천 부탁한다.

덧2. 위에 소개한 두 영화 모두 명작이니 기회가 된다면 꼭 보길 추천한다.

덧3.본래 이번 칼럼의 원제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서사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부터 영감을 받아 작곡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동명의 교향시의 도입절을 차용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오프닝 장면과 유인원의 도구 발명 씬을 오마주한 장준환 감독의 영화 지구를 지켜라에 나타나는 인간본성의 디스토피아적 해석에 대한 고찰.'이었는데 이건뭐 제목만 써놓고보니 불사조의 서재에나 있을법한 글이 되버린거 같아서 간단하게 짤랐다. 

덧4. 걍 써봤는데 반응 좋으면 비슷한 형식으로 또 연재해볼까 한다.
좋은 아이디어 부탁한다. 잘못된 내용도 지적부탁한다.

아 젠장 그냥 차라투스트라 좋아요 들어보세요 이 한마디 쓰면 될걸 헛고생한거 아닌가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