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퍼와 딘은 연애 2년차였다. 스물 초반에 찾아온 풋풋한 감정은 둘을 자연스레 연인으로 만들었다. 제니퍼는 푹신한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고, 딘은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잡지를 봤다. 텔레비전은 쇼프로가 한창이었다. ‘2012년 지구멸망을 주장하며 부흥한 신흥 종교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참가자들은 곤혹스러워 했다. 20대 청년 하나는 아예 문제 풀기를 포기했다. 청년이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었으니. 마찬가지로 제니퍼도 알 도리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제니퍼는 문제를 이해하지 못 했다. 텔레비전은 그냥 켜둔 것이다. 머릿속에 짜증이 한 가득 담겨있었다. 굼벵이가 가득 담긴 낚시 미끼 통처럼 짜증이 꾸물거렸다. 제니퍼는 감자 칩의 봉투를 뜯었다. 얼마 전에 다이어트를 시작했으나 도저히 식욕을 이길 수 없었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다.

[저번에 말했던 내 상사 기억나?]

제니퍼의 말에 중저음의 대답이 돌아왔다.

[재수 없다고 말했던 그 녀석?]

[응, 맞아.]

제니퍼는 감자 칩을 와작 씹어 먹었다. 침이 고였다. 제니퍼는 주저하지 않고 마구 갑자 칩을 입에 넣었다.

[저번 달부터 진행했던 프로젝트를 오늘 드디어 보스한테 보여주기로 했어.]

[자기가 고생해서 완성한 그 프로젝트?]

[응. 내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지?]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제니퍼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당연하지. 우리 자기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내가 다 지켜봤는걸. 정말 대단했어.]

[고마워.]

제니퍼는 잠시 그 손길을 느끼다 말을 이었다.

[보스가 아주 훌륭한 결과물을 냈다고 칭찬을 했어. 당연히 나와 그 자식이 함께 있었지. 언제나처럼 반짝이는 은갈치 양복을 입고 말이야. 역겨운 취미야 정말.]

[멋지다고 생각하는 걸까? 언제 들어도 웃긴 사람이야.]

[내 말이. 어쨌든! 그 자식은 칭찬은 전부 자기를 향한 말인 양, 과장스럽게 고개를 끄덕거리더라구. 싱긋 웃는 낯으로 말이야.]

제니퍼는 손가락을 쪽쪽 빨았다. 그는 자연스레 티슈를 뽑아 건네주었다. 자상하기도 하지. 제니퍼는 속으로 생각했다.

[단 한 가지 결점이 있었는데, 보스가 그걸 지적하자마자 ‘시정하겠습니다. 제가 미처 발견하지 못 했나 봅니다. 여러 번 검토했는데. 죄송합니다.’라고 하는 거 있지?]

제니퍼는 분에 못 이겨 주먹을 꽉 쥐었다.

[미처 발견을 못 해? 아예 참여를 안 했으니 알 도리가 있나!]

제니퍼가 분을 못 이겨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의 떨리는 주먹이 커다란 손에 의해 감싸졌다. 제니퍼가 좋아하는 그의 커다랗고 따뜻한 손이었다. 그는 제니퍼를 끌어안았다. 제니퍼는 그의 품에 자연스레 안겼다. 그리고 등을 다독이는 손길을 느꼈다.

[나쁜 자식이네 그거. 우리 자기 속 많이 상했지?]

[맞아. 나쁜 놈이야.]

[내가 가서 혼내 줄까?]

제니퍼는 핏 하고 웃었다. 이 무슨 유치한 대화인가. 하지만 좋았다. 그는 멍청한 다른 남자처럼 ‘그럴 때는 이러이러하게 행동했어야 하잖아.’라고 근시안적인 해법을 내놓지 않았다. 중간에 말을 끊고 나의 답답함을 표현하지 않았다. 그저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적당히 맞장구 쳐주고, 나를 다독여줬다. 왜 다른 남자들은 이 단순한 방법을 택하지 않는 걸까? 제니퍼는 그의 따뜻한 품 안에서 심장 고동을 들었다.

[내가 우리 자기 기분 풀어줘야겠는걸. 따뜻한 차 한 잔 어때? 목마르지?]

짭짤한 감자 칩을 먹은 탓인지 마침 목이 말랐다. 제니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제니퍼의 이마에 살짝 키스하고 주방으로 갔다. 딘은 좁은 주방으로 들어가는 그를 위해 의자를 당겨 앉았다.

[내가 상품 보는 눈을 정말 좋다니까.]

제니퍼는 리모콘을 들어 채널을 돌렸다. 1004번 채널. 하루 종일 한 가지 상품에 대한 광고 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시청률은 웬만한 드라마보다 높았다. 바로 애완 애인 상품을 파는 채널이었다. 메가로보틱스 사는 로봇 공학으로 유명한 회사였다. 하지만 로봇 사업은 포화였고, 재정난이 찾아왔다. 이 때 손잡은 것이 결혼 정보업체인 러버스였다. 러버스는 연애에도 손을 대기로 했고, 남녀가 원하는 궁극적인 ‘애인’을 만들어내기로 한 것이다. 제니퍼는 합병 탄생한 러버로보틱스에 감사했다. 내가 힘들어하면 위로해주고, 이야기도 잘 들어주며, 필요하면 야외로 데이트도 갈 수 있는 애인. 적당히 원하는 정도까지만 스킨십을 할 수 있어 부담도 없었다. 술만 들어가면 발정 난 고양이처럼 발톱을 세우는 진짜 남자보다 훨씬 좋았다. 제니퍼는 이번 여름에 바다로 놀러갈 생각이었다. 따라서 방수 바디로 교체할 필요가 있었다.

[딘, 나 다음 주에 러버로보틱스 갈 거야. 자기도 갈 예정 있어?]

딘은 제니퍼에게 슬쩍 눈길을 줬다. 그리고 약간 코맹맹이 소리로 대답했다.

[응. 내거 허리 부품이 또 고장 났거든.]

제니퍼는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여성용 애완 애인과 달리 남성용 애완 애인은 순전히 성적 매력에 집중 되어 있었다. 딘이 보는 잡지는 이번 최신 모델들이 실려 있는 광고 잡지였다. 제니퍼는 딘이 집착하는 애완 애인의 외형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굳이 지적할 만큼 어리석진 않았다. 딘도 자신의 애완 애인의 느끼한 멘트를 이해해주니까.

[사랑해 딘.]

딘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나도 사랑해.]

딘은 잡지로, 제니퍼는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