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영은 무릎을 꿇어앉았다. 왼팔로 소진을 감싸 안고 오른 손으로 수화기를 잡은 상태였다. 소진은 열심히 젖을 빨고 있었다. 두 평 반 남짓한 작은 방. 가재도구도 거의 없는 터라 빈 젖 빠는 소리가 요란스레 울렸다.

소영은 수화기를 다시 내려놨다. 그리고 방안을 둘러봤다. 곱게 접힌 옷가지와 몇 가지 가재도구. 두 개의 베개와 겨울 이불 하나. 지금은 여름이지만 이불이라곤 이것 하나뿐이었다. 그마저도 솜이 삐져나왔다.

소영은 고개를 숙였다. 소진과 눈이 마주쳤다.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가는 어미의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바라봤다. 반짝이는 검은 보석 같은 눈. 그 눈을 보니 소영은 가슴이 따끔 하는 것을 느꼈다. 불에 달군 쇠못을 등 뒤에서 콱 하고 박은 것 같았다. 눈물이 찼다. 고개를 위로 들었다. 두어 번 눈을 깜빡이며 눈물을 삼켰다.

[하아]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전화 할 수밖에 없다. 소영은 소진을 봤다. 어미를 바라보는 소진의 눈은 아무런 의구심이 없었다. 그저 반가운 엄마의 얼굴을 보는 아가의 눈. 소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떨리는 오른손으로 아가의 얼굴을 한 번 쓸어주었다.

[아기가 참 얌전하네요.]

언젠가 산책 나갔을 때 들은 말이다. 소진은 아기를 안고서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날이 정말 좋았다. 방 안에 있기엔 답답했다. 공원에 앉아 바람 부는 소리를 듣고 있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말을 꺼냈다.

[이름이 뭐예요?]

[소진이예요.]

[어머, 예뻐라.]

소영은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아빠랑 엄마 이름을 한 자씩 따서 지었어요.]

[그래요? 엄마랑 아빠랑 늘 함께 있는 것 같겠다.]

[네, 그래요.]

소진의 이름은 아빠인 진혁과 엄마인 소영의 첫 글자를 딴 것이다. 아들이면 ‘진영’, 딸이면 ‘소진’이로 정했었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 진혁과 소영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부였다.

소영은 소진을 이불 보 위에 눕혔다. 그리고 깊게 숨을 내쉬었다. 분유가 얼마 남지 않았다. 자신이 배곯는 것은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칭얼거릴 힘조차 없어, 그저 열심히 젖만 빠는 소진을 보는 것은 고문이었다.

소영은 수화기를 들고 번호를 눌렀다. 일 여년 만에 누르는 번호. 하지만 지역 번호도 채 누르지 못 하고 수화기를 내렸다.

‘무슨 말을 하면 좋지?’

소영은 갑자기 막막해졌다. ‘오랜만이에요.’같은 인사로 시작해야 할까. 아니면 ‘죄송해요.’라는 사과부터 해야 할까. 부모님께 이런 일로 전화를 하게 될 거란 생각은 조금도 못 했다. 당연히 잘 살 것이라 생각했다. 어느 부부처럼 서로 사랑하고, 아기를 아끼고. 언젠가 아기를 안고 가 ‘이제 인정해주세요.’라는 말도 하게 될 것이라고. 상상하던 첫 장면은 언제나 놀라움과 환희였다. 이런 비참함과 절박함이 아니었다.

아기가 뒤채는 소리가 들렸다. 소영은 아기를 다독였다. 소진의 작은 손이 공중에서 허우적거리며 엄마 품을 찾았다. 소영은 그 손을 꼭 잡았다.

자기 손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손. 조금만 세게 잡아도 부서질 것 같은 여린 손. 소영은 소진의 손을 쥐고 수화기를 들었다. 어깨와 턱으로 수화기를 받친 채로 번호를 눌렀다. 일 년 동안 한 번도 누르지 않은 번호.

소영은 어머니가 받길 기도했다. 아버지보단 어머니가 더 편했다. 이해하고 용서해주시리라. 첫 마디는 ‘죄송합니다.’로 해야지. 눈물은 흘리지 말아야지. 마음 아파하실 거야.

신호음이 갔다.

‘용서 받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하지만 걱정이 더 커지기 전에 목소리가 들렸다. 낱알이 가득 찬 자루가 터지는 것처럼, 소영은 입 안에 담아둔 말을 내뱉었다.

[엄마, 저…….]

[고객님.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이거나…….]

[아.]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었다. 거친 붓 하나가 하얀 배경에 먹물을 정신없이 칠했다. 검은 먹물은 이내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었다. ‘넌 내 딸이 아니다.’라며 소리를 지르던 아버지. 바닥에 주저앉아 우는 어머니. 떨리던 어깨와 붉어진 얼굴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지워!’ ‘지우면 되잖니.’ ‘안 돼요. 내 아이에요.’ 귓가에 환청이 들렸다.

[아아…….]

간신히 환각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앞을 볼 수 없었다. 눈가에 흥건히 고인 눈물 때문에. 소영은 수화기를 들고 입만 뻥긋거렸다. 제대로 울지도 못 하고 짧은 숨만 간신히 토했다. 눈물은 양 볼을 따라 무릎으로 방울졌다.

[아……!!]

이젠 아무 것도 없다. 부모님은 마지막 희망이었다. 하지만 이제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 부모님은 이제 남이나 다를 바 없었다. 소영은 희망의 끝을 보자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엎드려 짐승처럼 울었다. 의지할 사람이 없다. 믿고 따라 나섰던 남편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지겨워.’와 ‘후회하고 있어.’가 입버릇이었던 진혁. 둘이 함께 일할 때는 형편이 나빠도 버틸 수 있었지만 만삭이 되고 진혁만 일을 하게 되면서 상황이 틀어졌다. 소진이가 태어났을 때, 진혁의 사랑이 다시 피어난 듯 했다. 하지만 순간이었다.

현실은 꿈과 너무 달랐다. 아기 분유 값을 감당하지 못 했다. 기저귀 살 돈도 없어 천 기저귀를 매일 빨아 썼다. 창문조차 없는 방 안은 이내 지저분한 냄새로 가득 찼다. 힘들고 고된 삶은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아기와 자신을 벌레처럼 바라보는 진혁의 눈길은 참을 수 없었다.

[살 길을 찾아야겠어.]

진혁이 집을 나서며 소영에게 한 마지막 말이었다. 지난 엿새 동안 소영은 ‘가족을 위한 살 길’을 찾아 나선 진혁을 기다렸다. 하지만 날이 지날수록 한 가지 확신이 생겼다. 진혁이 나선 이유는 ‘가족’이 아닌 ‘자신의 살 길’을 찾기 위해서란 것을.

체납으로 휴대폰은 이미 정지된 지 오래였다. 방의 전화가 울릴까봐 외출조차 하지 못 했던 소영이었다. 하지만 확실해졌다. 진혁은 자신을 버린 것이다. 아니, 자신과 딸을 버린 것이다.

[아아아!!]

생의 마지막을 보았다. 소영의 삶의 끝자락은 너무도 어둡고 깊어서, 빛이 한 줄기도 없었다. 어둠은 무겁고 눅눅하게 숨통을 조였다. 숨이 막혔다. 울음은 목이 아니라 텅 빈 뱃속에서 나왔다. 뱅글뱅글 돌던 시선은 어느새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었다. 그리고 이내 웃고 있던 진혁에서 경멸이 담긴 눈이 되었다.

[흐에엥… 흐에엥….]

소영은 한참이 지나서야 소진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온 몸의 힘이 다 빠져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간신히 기어 소진의 곁에 갔다. 그리고 오른손을 소진의 가슴에 얹고 다독였다.

[울지 마, 아가. 울지 마.]

[흐에엥….]

소영은 눈을 질끈 감고 소진을 달랬다. 하지만 다독이는 손 사이로 뭔가가 새어나가는 기분이었다.

[배고파서 그래? 그런 거야?]

소영은 눈물을 닦고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분유통을 열었지만, 한 숟가락도 채 남지 않았다. 소영은 남은 가루를 모두 모아 젖병에 넣었다. 그리고 미지근한 물을 넣었다. 물을 데울 가스조차 없었다. 소영은 얼마간 손으로 젖병을 쥐고 있다 소진의 입에 물렸다. 하지만 소진은 마시지 않고 계속 울었다.

[소진아… 엄마 정말 힘들어. 그러지 마.]

소영은 아기 입에 젖병을 물리려 했지만 아기는 도리질을 쳤다. 아기의 얼굴은 우유와 눈물로 흥건해졌다. 소진의 울음소리는 더욱 커졌다.

소영의 머릿속에 다시 소리가 메아리쳤다. 아기의 울음소리 사이마다 아버지의 고함 소리, 어머니의 울음소리, 진혁의 경멸 담긴 욕설이 들렸다. 소영은 애원하듯이 그러지 마. 그러지 마. 읊조렸다.

[울지 마!]

소영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 질렀다. 자기 목소리에 놀라 소영은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소진은 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온 힘을 다해 우는 것 같았다.

[울지 말라니까!]

한 번 더 소리를 지르자, 뭔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동시에 절박하고 끔찍했다. 이제 온 방안에, 머릿속에 울음소리가 가득 찼다. 소영은 양 손으로 머리를 내리 눌렀다. 하지만 소리는 당최 빠져나가지 않았다.

[그만해! 그만해!]

소영은 이불을 확 잡아당겼다. 소진은 바닥에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고, 비명 같은 울음소리를 토해냈다. 소영은 잡아당긴 이불로 아기를 덮었다. 그러자 울음소리가 조금은 누그러졌다.

[그만해! 뭐가 문제야!]

소영은 대답을 원했다.

하지만 뭐가 문제였을까? 답은 무엇일까? 내가 왜 진혁을 사랑했을까? 아기가 생겼다는 의미를 왜 몰랐을까? 아빠는 왜, 엄마는 왜 그랬지? 난 왜 불행해야 하는 거야? 소진이는 왜 이렇게 우는 거야. 배가 고픈 것이 아니면 뭐야? 그런데 왜 지금은 울지 않아. 아까는 그렇게 심하게 울더니 왜 지금은…….

소영은 단말마를 지르며 이불을 당겼다. 그리고 이젠 울음소리는 물론이고 보채는 소리조차 내지 않는 소진을 바라봤다.

[아가……. 아가…….]

소영은 아기의 작은 손을 꼭 잡고 소리를 질렀다.

-

[지독하네요.]

경찰 하나가 비위가 상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실제로 금방이라도 토악질을 할 것 같아 손으로 입을 막고 있었다.

[죽으려면 곱게 죽을 것이지.]

[남 죽이는 것보단 낫지 뭘.]

동료로 보이는 나이 많은 경찰이 고개를 돌리라는 손짓을 했다. 그리고 구경꾼을 물러나게 했다. 높다란 건물 옆에 붉은 꽃이 피어있었다. 사람들은 꽃냄새 맡은 벌처럼 몰려들었다.

[알아낸 건 있어?]

[없어요. 부모에 남편, 친구 연락처도 없어요.]

[귀찮게 또 직접 알아봐야 하나.]

나이 많은 쪽 경찰이 입맛을 다셨다. 동료는 잠시 골똘히 생각하더니 물었다.

[아기는 어떻게 되나요?]

[읍장한테 통보했으니 이제 그 쪽에서 알아서 할 거야.]

[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경찰서보다 멀리 있는 곳에서 온 구급차였다. 죽은 엄마는 늦었지만, 아기는 아직 늦지 않았다.

[차라리 죽는 편이 더러운 꼴을 안 봤을 텐데.]

[네?]

동료가 묻자 경찰은 그저 도리질을 쳤다.

[아냐…….]

그리고 한숨 쉬듯 대답했다.

[인생이란 것이 거 참 더럽게…….]

대답의 뒷부분이 사이렌 소리에 파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