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한숨이 나왔다. 낮은 완연한 여름이었다. 마치 남의 입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불쾌하고 끈적거리는 공기가 맴돌았다. 반면에 밤은 쌀쌀했다. 아침에 외투를 챙기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걸었다. 새벽 공기는 도저히 여름의 것이 아니었다.

꿈을 가지고 대학원을 왔지만 너무 힘들었다. 하루 종일 앉아 있지 못한 것 같았다. 아니 확실히 앉질 못 했다. 점심마저 편의점에서 김밥을 사먹었다. 학교 밖을 빠져나갈 짬이 없었다. 오늘의 유일한 식사였다. 아침 8시부터 새벽 2시 까지 이어지는 석사 생활. 보람도 있다지만. 지금은 너무 힘들었다.

부산에 계신 어머니 생각이 났다. 스무 살이 넘도록 반찬 투정 한다며 꾸중을 주시다가도 언제나 내가 좋아하는 반찬은 꼭 마련해주셨다.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하숙 대신 자취를 선택했다. 냉장고에는 어머니가 주신 반찬이 가득했다. 하지만 정작 먹을 시간이 없었다. 주말에 내가 좋아하는 호박전을 꺼내 데웠다. 역한 냄새가 나서 먹을 수가 없었다. 냉장고 안에서도 음식이 상한다는 말을 그제야 이해했다.

‘후우’

자취방으로 가는 골목에 거대한 차가 서 있었다. 사람이 지나가기에 애매한 통로만을 남기고 당당하게 주차된 차. 어딜 봐도 연락처는 남아있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평소라면 소리부터 쳤겠지만, 너무 지쳐서 그마저도 귀찮았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털레털레 걸었다. 왼쪽 상가건물을 끼고 돌면 길이 있었다. 그렇게 들어선 골목. 근 일 년간 지나지 않았던 골목엔 새로운 가게가 들어서 있었다. 돼지국밥. 갑자기 서울친구 녀석이 생각났다.

서울에 와서 가장 놀랐던 것은 순대를 소금에 찍어먹는 것이었다. 양념장도 아니고 짜기만 한 소금에 순대를 먹다니. 게다가 친구는 부산에 회 밖에 없는 줄 알았다. 물론 조개 구이나 고래 고기도 맛있지만, 밀면이나 돼지국밥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가게 문이 열렸다. 손님으로 보이는 아저씨 둘이 입맛을 쩍 다시며 나왔다. 그 틈새로 따뜻한 공기가 새어나왔다. 나는 그 문이 닫히려는 것을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별로 배는 고프지 않았다. 대학원 진학하고 먹는 것에 대해 많이 포기했다. 그런데 오늘은 뭔가 달랐다. 배고픔이 아닌 다른 것에 끌렸다.

[뭘 드릴까요?]

[저…… 돼지국밥 하나 주세요.]

가게 주인 같아 보이는 아저씨는 고개를 꾸벅하고 물을 가져다 주셨다. 밖과 달리 안은 따뜻해서 기분이 좋았다. 오래 지나지 않아 뽀얀 국물의 돼지국밥이 나왔다. 고향에서 먹던 그 돼지국밥과 똑같아 보였다. 부식으로 나온 부추가 정말 반가웠다. 부추가 반갑다니. 나도 참.

[맛있게 드세요.]

손님이 나 밖에 없어서인지 원래 그런지 몰라도, 주인아저씨는 다정히 말을 걸었다. 나는 고개를 꾸벅하고 국물을 한입 떠 넣었다. 처음 든 생각은 부산에서 먹던 맛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그것뿐이었다. 따끈하고 감칠맛 나는 국물이 들어가자 허기가 동했다. 나는 숟가락을 빠르게 놀렸다. 밥 한 숟가락이 들어갈 때마다, 내 가슴에 달아둔 뭔가 무거운 것도 함께 씹어 삼키는 기분이었다.

나는 눈가를 훔쳤다. 어느새 눈물이 맺혀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보지 않을까 고개를 들었지만 아무도 없었다. 나는 고개를 그릇에 파묻고 꾸역꾸역 밥을 밀어 넣었다.

그릇이 바닥을 보였지만 한참을 더 고개 숙이고 있었다. 그 동안 무덤덤하게 잘 견디고 있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어떤 단어로 표현하기엔 막연하고 그리운 감정이 한 끼 식사로 인해 깨어났다.

주머니를 뒤적여 돈을 찾았다. 꼬깃꼬깃한 지폐를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 폈다.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로 향했다.

[맛있게 드셨어요?]

[네, 감사합니다.]

[혹시 부산 출신?]

[아……. 네.]

내 대답에 아저씨는 씩 웃더니 물었다.

[어쩐지……. 우리 집 국밥 맛 어땠어요?]

그 질문에 나는 잠시 머뭇했다. 맛있었다. 하지만 그냥 맛있다는 답은 부족했다.

[고향에서 먹던 맛이랑 똑같았어요.]

순간적으로 뱉은 말이지만, 내 진심에 가장 가까운 대답이었다. 그 말에 아저씨는 허허 웃으며 말했다.

[그럼 그 집도 대박집이겠네. 하하.]

시원한 웃음에 나도 모르게 따라 웃었다. 가게 문을 열고 나왔다. 여름밤의 시린 한기가 얼굴에 닿았다. 하지만 가게를 들어설 때와 달리 가슴 한 쪽이 뜨뜻했다. 나는 문을 나서려다 말고 아저씨께 외쳤다.

[저기요!]

[네?]

고마워요.

[다음에 또 올게요.]

[더 맛있게 해드려야겠네. 하하.]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가게를 나섰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오늘 밤은 뒤척이지 않고 푹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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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4 혹은 5가 될 내용이었는데, 당겨서 썼습니다.

모티브는 제기시장 쪽의 돼지국밥 집 입니다.

서울토박이라 감정의 깊이가 깊지 않지만, 저는 혼점님의 능력을 믿습니당 ㅋㅋ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6 02: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