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차'라는 휴가를 처음 써본다. 입사하고 휴가를 써본 적이 없다.
특별히 아픈 적도 없었고, 왠만한 볼일은 퇴근 후에 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제 시간에 눈을 떴지만 아내는 자고 있었다. 알람을 접고 가만히 누워있었다.
아내가 기댄 모양이라 자연스럽게 뒤척이면 나올 생각이었다.
잠눈이 밝은 그녀가 모를리 없다 여겼지만 나름의 배려를 해주는거라 믿고 싶었다.

노력, 사랑이 타오르지 않는다면 진심으로 믿는다고 이렇게 표현할 밖에.

2. 먼저 비뇨기과에 갔다. 당당히 걸어가는 아내를 앞세우고 들어가 간단한 검사를 마치고 나왔다.
나중에는 아내도 들어와 의사선생님께 간단히 이야기를 들었다.

결론은,
'아무 이상 없음'

그는 아내의 표정에서 아무것도 읽어낼 수 없었다.

3. 그 다음은 집 근처 산부인과. 아내는 두려운 모습이 들킬까 먼저 들어갔다.
남편의 몸이 정상이라는 결과를 받았기 때문에, 혹시라도 자신의 몸에 이상이 있지는 않을까 두려웠다.
함께 산 이후로 포옹 이상의 스킨십을 해본 적이 없는 부부이기에 못내 불안한 것도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갑작스런 결혼을 생각한 남편의 배려가 고마웠지만 손조차 자신이 잡아야하는 현실은 불안했다.
자세한 집안의 사정을 몰랐기에 남편이 무언가 감정을 쌓고 있는게 아닐까 추측만 할 뿐, 물어보지도 못하는 자신이 미웠다.
물어보면 꼼꼼하게 대답해주지만 그 이상은 말해주지 않는 모습에서 투명하지만 높다란 벽이 느껴졌다.

결과를 기다리는 순간은 1초가 1년처럼 흘러갔다.

[두 분께서 마음만 먹으시면 아이가 생기는 일은 밥먹기보다 쉽습니다.] 의사가 말을 꺼냈다.
안도하는 사이, 의사가 다른 말을 꺼냈다. [..................남편께서 더 세심하게 신경써주시면 더 좋지요.]
하고 그는 웃었다.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을 뿐, 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듣지 못한 말이 무엇이었을까.

4. 세심하게? 남편은 새삼스레 자신의 성격을 자문했다.
그동안의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 행동들은 전부 아내에게 비수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연애경험이 거의 없는 그로서는 무엇이 어떤 상황인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걸 어머니에게 물어도 뚜렷한 해답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는지 옆에서 책을 읽던 아내가 옆에 와서 앉았다.
그러기를 5분, 그리고 아내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기를 1분,

그는 이따금 아내가 자신의 어깨에 기대 흐느껴 울던 일이 기억났다.

살짝 팔을 들었고 생각보다 작은 덩치는 그의 안으로 들어왔다.

5. 너무 오래 울었다. 내가 당신의 마음을 몰라서 미안하다는, 나이 든 어른들이나 할 말을 그는 하고 있었다.
사실 그에게 서운한 점은 없었다. 자신이, 그와 잘 맞물리지 못하는 지금이 답답한 탓이다.
어떻게 대화를 할까.
시부모마저도 그와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음이 뻔히 느껴졌다.
차라리 아이를 빨리 가지면 좋을까.
고민만 많아진다.

이유를 알고 싶었다.
남편이 옆에 있었지만 아내는 휴대전화를 들고 바로 비서실에 전화했다. [사장실로 연결해주세요.]
남편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로서는 몇 개월 만에 처음 듣는 아버지의 목소리.
[네.] 떨린다.
[아버지.]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7 23:4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