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번째 음악공연 관람 ★

[예매] 정경화 바흐 무반주 전곡 리사이틀

2016년 11월 19일 (토) 오후 2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조기예매 10%할인 B석 36000원)

(바이올린 = 정경화)

1부

바흐 _ 소나타 1번 g minor BWV1001

바흐 _ 파르티타 1번 b minor BWV1002

Intermission(중간휴식) 1

2부

바흐 _ 소나타 2번 a minor BWV1003

바흐 _ 파르티타 2번 d minor BWV1004

Intermission(중간휴식) 2

3부

바흐 _ 소나타 3번 C Major BWV1005

바흐 _ 파르티타 3번 E Major BWV1006

[처음~1부]

늦어서 첫 곡을 놓치는 줄 알았는데 아슬아슬하게 들어갔다. 땀을 흘리며 박스석으로 들어가니 주변 사람들에게 매우 미안했다. 땀을 흘리며 듣는 첫 곡, 첫 인상은 어쩐지 물기어린 느낌이었다. 설마 내가 땀에 젖어 있어서 착각한 것은 아니려나. 건조하지 않고 촉촉...하다기에는 약간 눈물이 그렁그렁한 그런 느낌의 소리로 들렸다. 전날까지 너무 피곤한 날들이어서 1부는 눈을 감고 들었다. 1부 끝나고 로비로 나오니 이번에 같이 발매된 바흐 무반주 전곡 음반(2만원)과 프로그램북(3천원)을 팔고 있었는데, '공연 후 바흐 음반 사인회'라는 말에 꽂혀서 음반을 질렀다. 사실 인터넷에서 만 8천원에 파는 걸 봤던 것 같은데 사서 가져올 걸 그랬나... 싶었다.

[2부]

2부는 땀도 좀 식히고 한결 차분해져서 듣는데, 처음에 소나타 2번이 아닌 줄 착각해서 쫓아가지 못하다가 중간에 들었던 곡이 나오면서 겨우 따라갔다. 파르티타 2번부터 제대로 집중한 것 같다. 10월 8일 조진주 대전 공연(264번째 음악공연 관람 후기 참조) 때는 처음에 집중하다가 뒤로 갈수록 지쳤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처음에 피곤에 찌들어서 눈감고 귀로만 간신히 듣다가 후반으로 가면서 점점 집중했다. 어찌되었건 바흐의 무반주 6곡 전체를 3시간 동안 집중하는 건 듣는 관객 입장에서도 힘들었다. 파르티타 2번은 샤콘느가 제일 유명하지만 그 전에 나오는 곡들에서도 샤콘느에 나오는 선율들이 다른 형태로 먼저 모습을 보이고 있는 걸 찾아내는 게 나름 재미있었다. 샤콘느는... 프로그램북의 인터뷰 말처럼 (피아노 반주를 덧붙이는 등의) 덧붙이는 과정이 아니고 내려놓고 깎아내는 그런 곡이 맞는 것 같았다. 부조니의 피아노 편곡은 또 다른 곡이고, 바이올린 원곡보다 자주 연주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피아노 독주회 수가 가장 많으니까) 바흐의 바이올린 한 대를 위한 원곡의 아우라도 대단했다. 정경화 선생님 연주여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냥 많은 것이 함축된 연주였다.

[3부]

2부 끝나고 다시 바람 쐬고 오는데 몸이 많이 피곤했었나 보다. 원래 그랬는지 땀났던 내 착각이었는지 모르지만, 처음에 물기어린 것 같다고 느꼈던 바이올린 소리는 점점 물기가 사라져 가는 것 같았다. 3부, 소나타 3번 마지막 악장부터 파르티타 3번은 빠르고 경쾌했다. 연주 후 그렇게 많은 사람이 기립박수 치는 건 처음 볼 정도로, 수백 명은 족히 일어나서 박수를 쳤다. 1층은 절반 이상(빈자리 빼고 실제 있는 사람 중에서는 2/3도 넘었을 것 같다, 그냥 대부분), 나머지 객석에서도 많이들 일어났다. 나는 10번 박스석에 앉았는데 제일 싼 자리이지만 무대도 보이고 다른 객석도 골고루 다 보여서 기립박수 풍경은 꽤 잘 보였던 것 같다. 블롬슈테트 지휘의 밤베르크 교향악단 연주회처럼 열렬한 반응에, 기립박수까지 많아서 아주 감동적인 분위기였다.

[공연 후, 사인회 등]

공연 끝나고 예술의전당 로비에서 사인 받으려 기다리는데 줄이 어마어마했다. 아주머니 두 분이 일본어로 "그래서 다들 그렇게 빨리 나갔구나"하고 놀라는 말도 들렸다. 고심 끝에 설명 들어있는 종이 말고 CD 위에 사인받으러 들이미는데 양 옆에서 직원이 미리 받아서 정경화 씨 앞에 대령하는 등 컨베이어 벨트처럼 척척 지나가는 싸인 행렬이었다. "건강하셔서 오래오래 연주해주세요"라고 말하려 했더니, 앞사람이 그렇게 말해버렸는지(말소리는 못 들음) 정경화 씨가 "저 건강해요!" 하고 답하는 걸 듣고 급 수정해서 싸인받고 그냥 "감사합니다" 하니까 "네, 고마워요~"하고만 들었다. 뭔가 시간 끌면 안되는 분위기였지만 대 연주자와 말 한마디 나눴다는 게 너무나 뿌듯했다. 머리는 염색했다 쳐도, 정경화 씨 자체가 원래 굉장히 에너지 넘치는 분이었던 것 같다. 가까이서 봐도 그냥 아주머니 정도로 보이지 내일모레 70 다 되는 할머니처럼은 안 보였다. 무대에서도 연주 후 몸을 숙였다가 위로 펄쩍! 뛰면서 객석에 감사 표시를 하고, 뒤돌아서 합창석 쪽에도 손으로 뽀뽀를 보내주는 등 좀 가벼워 보일 정도로 발랄하셔서 팬서비스도 매우 만족스러웠다. 아이유 삼촌팬들이 아이유 팬이 될 때도 이런 느낌이지 않았을까.

[다른 후기, 반응과 비교]

나는 음반으로만 듣다가 무대에서 처음 보고 만족했지만, 종종 독특한 해석처럼 들리는 부분도 많아서 틀린 건지 해석이 다른 건지 긴가민가하기도 했다. 찬양 일색인 후기만 보는 것도 뭐해서 까칠한 사람이 많은 DC 클래식 갤러리도 둘러봤다. 역시나, '전성기와 비교하면 많이 아쉽다', '음 많이 틀리셨다', '왼손 힘이 약하다', '몇 년 전 손가락 부상 여파가 아직 있다' 등의 냉정한 평도 있었고, '68살의 연주자가 악보 하나 안 보고, 바이올린 하나 들고 콘서트홀을 존재감으로 채우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 아니냐. 그 자체로 감동이다'고 말하는 평도 있는 등 평소 다른 공연들에 비하면 호의적인 평이 많은 편이었다. 그 밖에 개인의 해석을 많이 넣겠다고 인터뷰에 썼던 말이, 바흐 곡에 비브라토를 넣어서 풍성하게 들린 건가 싶기도 하다. (아니면, 그 이질적으로 들린 낯선 소리들 중 적어도 일부는 그냥 실수였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연주를 감히 의심치 않게 하는 흡인력 때문에 계속 들을 수 있었다.) 빠른 부분은 엄청나게 빨랐다. 나는 이 분이 지금도 (원숙한 연주 등의 의미에서는) 전성기에 있다고 생각했고, 몇 년이고 무대에 다시 서실 때마다 무조건 공연을 챙겨보고 싶을 것 같다.

// 10월 대전에서 본 바흐 무반주 전곡 공연과 비교하면, 10월은 [바흐 같은 조진주]였고, 이날 공연은 [정경화 같은 바흐]라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