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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1장 글 쓰는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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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장님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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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증명사진 / 제4장 국사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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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문학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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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짓궂은 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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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왼손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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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젊은 문학도의 사회 & 제9장 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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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우리들의 비겁한 영웅 & 제11장 크로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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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칼을 찬 교사 & 제13장 비밀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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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장 혀에는 목 & 제15장 금수 랩소디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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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소설] 문학청소년 - 제8장 젊은 문학도의 사회



제 8장

젊은 문학도의 사회









“여기 있어.” 하루가 시작된 아침, 태운이 책가방을 풀며 준억에게 얇은 소설책을 건넸다.

“톨스토이의 ‘부활’이야. 예전 것과는 다른 판본이지.”

“너 오늘 따라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 준억이 책장을 빠르게 넘기며 훑어봤다.

“오늘부터 학교에서 내가 하고 싶은 걸 당당하게 할 수 있잖아.” 태운이 흥분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기뻐하지 말라고. 네 기대에 어긋날 지도 몰라.” 준억이 싸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태운에게 준석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그는 발을 동동 구르며 얼굴에 미소를 가득 채웠다. 두근거리는 영어듣기와 1교시가 끝이 나고, 늘 있는 담임선생님의 조례가 시작되었다.





“여러분이 신문을 봤다면 알겠지만, 최근 미국산 쇠고기 촛불시위에 대해 말이 많다. 며칠 후에는 포항에서도 촛불시위가 열릴지도 모른다고 하더구나. 너희들은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다.” 선생님은 말을 다하고 태운을 노려봤다.

“오히려 이것을 기회로 삼을 줄 아는 영리한 놈들이 되어라. 그렇다고 완전히 관심을 거두진 말고. 시사문제로 나올 수도 있으니까. 간단한 정리는 해두는 게 좋을 거다.” 담임선생님은 혹여나 태운이 또 학교를 뛰쳐나갈까봐 걱정이 되는 듯 했다. 하지만 태운은 그런 담임선생님의 반응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는 전혀 관심도, 나갈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다음 주제로 화제를 돌렸다.





“오늘부터 언수외 심화수업을 자습시간에 하는 거 다들 알고 있지?”

“네.” 태운과 학생들이 대답했다.

“수학은 탁학섭 선생님이 맡았고, 영어는 노읍연 선생님이 수고해주실 거다. 그리고 국어는 내가 맡기로 했어.” 태운은 그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나는 심화수업을 흔히 말하는 나머지수업 격으로 떨어뜨리고 싶지 않다. 다른 과목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만 받을 생각이야. 그래서 커트라인을 3월 모의고사 언어 90점 이상으로 두겠다.” 선생님은 혹여나 중찬이 또 주제넘게 지원할까 싶어 그를 노려봤지만 중찬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성실반 애들은요?” 저 뒤에서 동훈의 목소리가 들렸다.

“말이라고 하니? 성실반은 검증된 녀석들이니 무조건 들어와야 한다.” 선생님은 못을 박았다. 동훈은 그의 대답에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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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젊은 문학도의 사회 [2화]









“저, 선생님.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태운이 손을 들어 물었다.

“뭔데?”

“국어 심화반은 도문호 선생님이 담당하는 거 아니었나요?”

“원래는 그랬지. 하지만 내가 대신 하기로 했다. 이것저것 준비는 잘 되어 가는지 물어보니 겁에 질려서 나에게 맡아달라고 부탁하더구나. 그 선생님은 아직 실력 있는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이 부족하시거든. 흠흠, 기간제이기도 하고 말이야.” 선생님은 희미하게 입 꼬리를 잠시 올리더니 다시 거뒀다. 그는 1분간 성실반과 지원자들의 이름을 쪽지에 적고는 교실을 나갔다.





“방금 비웃은 거 봤어? 기간제 교사라고 무시하다니. 나쁜 놈. 분명 문호 선생님의 자리를 빼앗았을 거야. 자기가 특반 담임인데도 심화반을 맡지 못했으니 견딜 수 없었겠지.” 태운이 준억에게 하소연을 하는 동안, 준억은 어깨너머 동훈이 있는 쪽을 쳐다봤다. 동훈은 신나서 자신의 무리들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이준억, 내 말을 듣고 있긴 하니?” 준억은 태운의 말을 무시하고 동훈의 무리에 다가갔다. 그는 옆에 있는 창문에 몸을 기대 동훈의 말에 귀 기울였다.

“어때? 내가 또 그 무능력한 기생충을 물리쳤다고.”

“도대체 어떻게 했어? 너 참 대단하다.”





“간단하지. 담임에게 가서 그 선생님이 기간제라서 그런지 너무 못 가르친다는 호소 한마디면 만사 오케이지. 그 인간이 우리를 가르치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단 말이야. 난 성실반이라서 심화반 수업을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는데 그 인간이 심화반까지 얼쩡거리면 구토하고 말 테니까.” 동훈의 너스레에 주변 친구들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준억은 저 멀리서 머리를 쥐어뜯는 태운을 바라봤다.

점심시간과 수업시간 내내 태운은 저기압이었다. 준억은 태운의 기분을 풀어주기보다는 가만히 놔두는 쪽을 택했다. 태운도 준억에게는 하소연이 소용없다는 걸 깨닫고 곧 내색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마지막 교시인 음악시간에 가져갈 교과서를 준비할 때도 태운은 묵묵히 계단을 내려갔다. 준억도 태운을 따라간다 싶더니 발길을 돌려 교무실로 들어갔다.





“들어오렴.” 준억의 노크소리에 도문호 선생님이 말했다.

“안녕하세요.”

“그래, 무슨 일로 왔니?” 교무실에는 문호 선생님밖에 없었다.

“태운은 오늘을 기다렸어요. 선생님은 또 기대를 저버렸고요.” 준억이 나직이 말했다.

“그런 게 아니야. 내 말을 믿어주렴. 비록 심화반은 다른 선생님이 맡게 되었지만 새로운 대안을 찾을 거야. 아무 걱정하지 마라.” 문호 선생님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준억은 그의 손바닥을 정적으로 응시하더니 입을 뗐다.





“최상위권은 논술도 시험을 보죠.”

“우리 학교는 수능형 학교야. 내신 경쟁이 치열해서 수시는 무리란다.”

“갈수록 논술과 수시의 비중은 커질 거예요. 그리고 선생님 논술학원에서 아르바이트 하신 적이 있다면서요?”

“그랬지.”

“그렇다고요.” 준억은 말을 마치자마자 경례인사를 하고는 교실에서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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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젊은 문학도의 사회 [3화]









다음날 저녁을 마치고 야자시간이 다가왔을 때는 이미 밖은 어두컴컴했다. 하지만 공부를 하는 학생들 덕분에 벽산고의 여러 창문은 여전히 연노란 불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준억은 태운과 함께 1층의 음악실로 내려갔다. 1층에는 아무도 수업을 하지 않는 관계로 복도와 교실마다 불이 꺼져 있었다.

“떨려. 글을 마음 편히 쓸 수 있는 곳에 간다니.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동굴로 들어가는 기분이야.”

“문호 선생님이 대머리만 아니었더라면 완벽한 키팅 선생님이었을 텐데 말이지.”





“아까 동훈이 표정 봤어? 우리 둘 다 논술수업에 지원한다고 하니까 미친 사람 보듯 눈이 휘둥그러져서는….” 태운이 웃음을 터뜨렸다.

“헌데 왜 우리 두 명밖에 신청하지 않은 걸까? 뭐 우리만 있으면 다른 애들 눈치를 받지 않고 글을 쓸 수 있게 되니 더 좋지만.” 태운의 말에 준억은 쓴웃음만 지었다. 태운은 문호 선생님이 그들의 반에서 어떠한 평판을 갖고 있는지 잘 몰랐다. 태운이 문호 선생님에게 반항한 그쯤부터, 학생들은 선생님을 얕잡아 보았고, 비웃음거리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그 당시 태운이 선생님에게 반항하며 뱉었던 말들은 알게 모르게 다른 애들의 공감을 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수업을 아무도 듣지 않으려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다른 애들에게는 왜 두 명만 지원했는지 궁금한 게 아니라 왜 두 명이나, 그것도 선생님에게 대들던 장본인이 지원했는지가 더 궁금했을 것이다.





“반갑다 얘들아. 자리에 앉아.” 음악실에서는 문호 선생님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준억과 태운은 인사를 하고 앉았다.

“이 논술수업이라는 것에 생각해보았다.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무엇을 가르칠 것인지 등등을 말이야. 태운, 너는 소설을 쓰기 위해 논술수업에 들어왔지만 논술이라는 표면을 보고 들어온 다른 애들에게는 논술을 가르쳐야 했거든.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소설을 쓰길 원하는 너희 둘만 지원했더구나. 그래서 약간 계획을 바꾸려고 한다. 자습 위주가 아니라 문학 창작 동아리식으로 운영할 거야. 하지만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너희가 다음 시간까지 답해야 할 물음이 하나 있다. 아주 중요한 물음이지.” 문호 선생님은 칠판에 ‘문학을 하는 이유’라고 썼다.





“나는 너희들의 문학에 대한 관심이 한순간의 열정으로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필수적이야.”

“역시 우리의 키팅 선생님이야.” 태운이 준억에게 속삭였다.

“그것도 너희가 이 물음에 대답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문호 선생님이 태운을 바라봤다.

“무슨 말씀이세요?”

“난 너희들의 키팅 선생이 되고 싶지 않아. 너희가 무작정 하고 싶은 걸 부추기는 건 교사로서 책임감이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하거든. 나는 너희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전에 이것이 정말로 너희가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TV 같은 대중매체나 주변 사람들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한 것인지, 혹은 공부에 대한 도피처로 이용하고 있는 건 아닌지를 고민해봤으면 한다. 이 질문을 통해 소설을 쓰는 이유를 좀 더 구체화하여 자신을 납득시킨다면 꿈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게다.” 선생님은 첫 문학수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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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젊은 문학도의 사회 [4화]









“어땠어?” 심화반이 끝나고 준억이 태운에게 떠보았다.

“그게….”

“별로였어? 그러게 내가 너무 기대하지 말라고 했잖아.”

“아니야. 다만 선생님의 말을 이해하기가 힘들어. 저번에도 선생님께서 나에게 왜 문학을 하고 싶은지 물어본 적이 있었거든. 그때 난 재미있어서 하고 싶다고 말했어. 내가 좋아하는 거고 그렇기 때문에 이유를 댈 필요가 없다고 말했지. 선생님은 내 대답에 만족한 듯 보였는데…. 오늘 선생님이 내준 과제를 들으니 다시 헷갈려서 그래. 내 대답이 선생님을 납득시키기에 부족했을까? 나를 계속 설득하기에는 옳지 않은 이유라고 느꼈을까?”





“재미라고 뭉뚱그려서 대답하지 말고 그것을 나누어서 생각해보라는 것 같은데.” 그들은 복도를 지나 교실에 들어갔고 자리에 앉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재미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잖아. 네가 소설을 쓰면서 이런 감정을 드러내고 싶다, 이것을 표현하고 싶다 등등을 생각해봐.” 준억은 태운이 고민하는 모습을 찬찬히 뜯어봤다. 그는 쉽게 답을 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일단 글을 쓰는 것 자체에 대한 재미를 들 수 있지. 자신의 이야기를 나름대로 정리해서 풀어나간다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잖아. 아니면 어떤 작품을 완성했다는 성취감을 위해 글을 쓸 수도 있어. 더 나아가 세상에 보여질 작품을 쓰려고 글을 쓸 수도 있지. 그건 나쁘거나 세속적인 게 아니야.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고 동감해준다는 건 분명 좋은 경험이니까.”





“글쎄, 다른 사람이 내 글을 읽는 게 좋은 건 사실이지만 그것만을 위해 글을 쓰는 건 아닌 것 같아. 그렇다고 글을 쓰는 것에 그다지 큰 재미를 느끼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내가 의도한 대로 묘사가 되지 않을 때면 괴로워지곤 하거든. 글을 다 쓰고 나면 성취감을 느끼는 건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뭔가 흔적을 남겼다는 느낌과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내가 느끼는 재미를 설명하긴 부족해. 내가 인식하지 못한 이유가 있을 거야.” 태운이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데, 상수가 그들 옆에 다가왔다.

“너희들, 무슨 이야기를 이다지 열심히 하는 거니?”

“아무 것도.”





“거짓말하지 마. 너흰 둘이서만 아는 얘기를 계속하잖아. 정말 불공평해. 난 너희들의 비밀을 모르는데 너희는 내 비밀을 알고 있잖아.”

“넌 별로 관심 없을 거야.”

“그건 말하지 않고선 모르는 거지, 안 그래?” 준억은 상수의 끈질긴 요청에 그들은 대화 내용을 아주 간략하게 가르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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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젊은 문학도의 사회 [5화]









“감정표현이 아닐까?”

“감정을 표현하는 건 글을 쓰는 이유라기보다는 글의 소재지.”

“아니, 충분히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어. 가령 슬프거나 행복할 때 누군가에게 내 감정을 전달해주고 싶지 않아? 감정을 공유하고 함께 동감해주길 바라는 건 사람이면 당연하다고 생각해. 글을 쓰는 건 이것의 연장선이야.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말 못하는 감정을 쏟아 붓는 거지. 난 그래서 문학이 존재한다고 생각해. 모든 스토리에는 글쓴이의 감정이 스며들어 있으니까.”

“너도 심화반에 들어올래? 보아하니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준억이 제안했다.





“됐어. 감정표현 같은 건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상수가 얼굴을 붉히며 자리를 떴다. 태운이 준억에게 말했다.

“상수의 말도 맞는 것 같아. 가슴 속 응어리를 풀어내는 것만으로도 글을 쓰는 이유가 될 수 있지. 그러나 난 그것 말고도 뭔가 하나 더 있는 것 같아.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태운은 이마에 잔뜩 주름을 세우고는 피곤했는지 책상에 엎드려 누웠다. 준억은 그런 태운의 모습을 지켜봤다. 태운의 의자에 걸린 책가방에는 온갖 문제집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태운이 어제 쓴 단편이 하나 있었다. 준억은 태운 몰래 그것을 가져갔다.

태운이 다음날 학교에 왔을 때, 교실은 시끌벅적했다. 애들은 칠판 앞에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태운은 그것을 무시한 채 자기 자리에 앉아 영어듣기 책을 펼쳤다.

“태운아, 칠판에 붙여진 글 봤어?” 진영이 태운에게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저번에 쳤던 모의고사 성적이 나왔니?”





“한 번 읽어봐. 이 글로 온 학교가 난리가 났어. 전병설 선생님이 이 글을 쓴 녀석을 꼭 잡아내고 말 거래.” 태운은 벌떼같이 모여 있는 애들을 헤집고 들어가 글을 보았다. 그것은 태운이 며칠 전에 쓴 단편소설이었다. 이 학교의 속물적인 근성을 비꼬는 내용의, 선생님이 화가 날만한 글이었다. 태운은 얼굴이 시뻘개져서는 소설을 칠판에서 떼어냈다.

“왜 그래? 보고 있는데.” 주변의 친구들이 소리를 질렀다. 태운은 그것을 꾸깃꾸깃 접어서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준억이 그의 옆에 다가왔다.

“아직도 네 글이 부끄러운 거니?”

“네가 내 글을 공개했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난 널 믿었는데. 그래서 너에게만 보여준 거라고!” 태운이 소리쳤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 들었어? 다들 관심을 보이고 있어. 누가 썼는지 궁금해 하고. 네 글이 이런 평가를 들으니 어때?”

“어떻긴! 넌 약속을 깨뜨렸어. 우리 둘이서만 글을 보기로 한 약속을 말이야!”

“하지만 너 지금 기분이 좋잖아.” 준억이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지금 화내고 있는 거 안 보여? 넌 정말 구제불능이구나. 널 믿었던 내가 잘못이지.”

“곰곰이 생각해봐. 넌 네 글이 다른 사람에게 사랑 받고 영향을 주는 것을 좋아해. 그렇지 않니? 화를 내고 있는 너의 표정 이면에서 기뻐하는 모습이 보여. 네 글이 누군가에게는 영향을 주고 있다는 기쁨이 말이야.”





“단단히 미쳤구나.”

“넌 사람들이 네 글을 좋아하길 바라는 거지.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남에게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어? 사랑받고 싶다면 고백해야지 안 그래? 부끄럽다고 너의 글을 꽁꽁 숨기는 건 네가 글 쓰는 것에서 얻는 재미 하나를 버리는 것과 같다고.”

“그래도 네가 내 글을 허락 없이 보여준 건 잘못된 행동이야.”

“네가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걸 알고 있었거든. 부끄러워하는 너에게 마음껏 펼쳐도 된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싶었어. 이제 네가 글을 쓰는 이유를 명확히 알 것 같아?” 태운은 그의 말에 생각에 잠겼다.

“내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펼쳐 보인다는 것. 그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었어.” 태운이 중얼거렸다.





“세상에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은 많고 그 이유도 다양하지. 내가 왜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 가르쳐줄까? 네 글 때문이었어. 네 글을 보고 나니 글을 쓰고 싶더라고. 너의 단편은 나에게 영감을 줬어. 알겠니? 나는 이것이 네가 가진 재능이자 글을 쓰는 이유라고 생각해. 글을 쓰고 싶어지게 만드는 글. 그것이 너의 힘이지.” 태운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저 글, 태운이 쓴 글이지?” 뒤에서 상수가 준억에게 물었다. 준억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상수를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문학수업에 들어갈 수 있을까?” 상수가 준억에게 물었다.

“그럼.”

“나도 글을 쓰고 싶어. 그런데 뭐에 관해서 써야 할지 모르겠는데 괜찮을까?”

“태운에겐 열정이 있어. 태운은 그 자체를 소재 삼아 글을 쓰고 있어. 너에겐 아픈 기억이 있지. 그것을 풀어보는 건 어떨까?” 준억이 상수에게 대답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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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젊은 문학도의 사회 [8장 완결]









다음 논술 심화수업이 왔고, 준억과 태운, 그리고 상수는 함께 음악실에 내려갔다. 도문호 선생님은 전과 같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은 태운에게 글을 써야만 하는 이유를 자신에게 설명해보라고 말했다. 태운은 오늘 있었던 일과 단편을 읽으며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를 밝혔다.

“좋아, 훌륭했어. 아주 구체적이라서 마음에 드는구나. 다음으로 상수 네가 한 번 발표해보겠니?” 문호 선생님의 말에 상수가 한 종이를 들고 앞에 섰다. 그는 덜덜 떨고 있었다.

“내가 문학을 하고 싶, 싶은 이유는….” 상수는 읽다 말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갑자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글을 다 쓰지 못했어요.”

“웃지 않을 테니 읽어보렴.”

“아니에요, 글을 다 못 쓴 거예요. 전 아직 준비가 부족한 것 같아요. 가봐야겠어요.” 상수는 교실을 뛰쳐나갔다. 태운은 그를 말리려고 했지만 이미 나간 뒤였다. 태운이 문호 선생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상수가 가는 것을 붙잡지 않았다.

교무실에서 문호 선생님은 퇴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문 앞에 인기척이 들렸다. 준억이 서 있었다. 그가 입을 뗐다.

“걱정하지 마세요. 상수는 되돌아 올 거예요.”

“고맙다.” 선생님의 대답에 준억은 발길을 돌렸다.





“넌 왜 문학수업에 참가했니?” 문호 선생님이 준억의 등 뒤에서 물었다.

“혼자 말하지 않았어.”

“태운의 열정이 흥미로워서요. 제가 갖고 있지 않는 것이죠. 저에겐 열정을 부을 그릇이 없거든요.” 준억은 짧게 대답하고는 교무실을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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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소설] 문학청소년 - 제9장 거미


제 9장

거미









“어떻게 하면 거짓말을 완벽하게 할 수 있을까?” 문학회 시간, 문호 선생님의 질문에 태운은 어리둥절했다.

“네? 무슨 말씀이세요?” 태운이 되물었다.

“대답해보렴. 거짓말을 완벽하게 하는 법이 뭘까?”

“그야 거짓말에 빈틈이 없도록 정교하게 거짓말을 하면 되겠죠.” 준억이 대답했다.

“그럼 거짓말을 하고도 거짓말 탐지기에 걸리지 않는 법은 뭐지?” 선생님이 태운을 바라봤다. 태운은 우물쭈물 단어를 입 안에서 굴렸다.





“괜찮아, 아무 거나 말해봐.”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거짓말을 진심으로 믿으면 되지 않을까요?” 선생님은 태운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말을 이었다.

“문학 시간에 뜬금없이 왜 이 질문을 했는지 아니? 문학은 온통 거짓말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야. 문학이 거짓이라고 해서 그걸 부끄럽게 생각하거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문학뿐만 아니라 예술의 대부분이 거짓말의 유희성에 토대를 두고 있으니까. 물론 일기나 수필 등 진실을 담은 문학 장르도 존재해. 문제는 그것만으로 대중의 수요를 전부 감당할 순 없다는 거지.

다이아몬드 큐빅을 만드는 이유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문학을 비롯한 예술은 경험의 희소성 덕분에 거짓말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거든. 너희들은 지금 문학을 하겠다고 야간자습시간에 내려와 글을 쓰고 있지. 그런데 누가 와서 너희들 보고 나이도 어린 녀석들이 뭘 안다고 글을 쓰냐고 다그친다면 어떻게 대답할 거니?”

“꼭 알아야 글을 쓰나요.” 준억이 반문했다.





“그래 맞아. 꼭 알아야, 겪어야 문학을 할 자격이 생기는 건 아니라고 반박할 수 있어. 그리고 그 말이 옳고. 다만 그만큼 글을 더 잘 쓰기 위해서는 부족한 삶에 대한 경험을 메울 수 있도록 거짓말을 더 잘 해야겠지. 독자가 소설을 믿지 않는 순간 그 작품의 생명은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거든.”

“하지만 판타지 소설을 비롯한 거의 대부분 소설은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걸 알면서 읽잖아요. 선생님의 말씀대로라면 그런 소설들은 모두 죽은 소설이라는 건가요?” 준억이 반박했다.

“이성적으로 봤을 때는 그렇지. 하지만 말이야, 어떤 거짓말은 그 자체로 달콤하거나 자극적이라서 믿고 싶은 것도 있단다. 감성에 호소하여 거짓말을 멋지게 하는 거야. 한 아이가 어머니에게 달려와 다짜고짜 친구가 자기를 때렸다고 거짓말한다고 가정해보자. 그 애가 때렸다는 증거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상황을 자세히 묘사해서 어머니를 설득시킨 것도 아니야. 오직 ‘엄마, 친구가 때렸어!’라고 말했을 뿐이야.

그럼에도 십중팔구는 아이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거야. 어머니는 아이를 믿고 싶거든. 자기 아들이 남을 때렸다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믿기 싫어서 그런 빈틈 많은 거짓말을 믿는 거야. 신이 있다는 것을 알아서 믿는 게 아니라 신을 믿고 싶기에 믿는 것처럼, 믿고 싶은 것은 충분히 믿음으로 이어질 수 있어. 그런 면에서 보면 판타지 또한 거짓말을 꽤 그럴싸하게 하는 편이지.” 태운은 선생님의 말에 생각에 잠겼지만, 그에게 동의를 표하진 않았다.





“너희들이 방금 말한 두 가지 대답은 소설을 잘 쓰기 위한 요소를 가리키고 있어. 첫째, 준억의 말대로 소설 줄거리는 납득이 가야 해. 논리적으로 허점이 없어서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일이라는 걸 독자에게 설득시켜야 하지. 이것을 현실성이라고 부른다. 둘째, 태운의 말대로 작가는 소설이라는 거대한 거짓말에 진심을 불어넣어야 해. 진심이 담기지 않은 거짓말은 아무리 논리적이더라도 수상쩍은 것처럼, 그 꺼림칙함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말이야. 이것이 진실성이야. 이 두 가지 중 한 가지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태운은 그의 말에 반박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그의 문학에 대한 생각은 어딘가 비틀어져 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았지만 어떻게 반박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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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거미 [2화]









“말해보렴.” 문호 선생님이 말했다.

“아무 것도 아니에요.” 태운은 입 안으로 중얼거리고는 쓰다 만 소설로 시선을 내렸다. 그때 선생님이 태운의 소설에 손을 올려 가렸다.

“방금 전 네가 한 말 기억나니?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가 하는 말부터 믿어야 한다고 말했잖아. 너조차 네가 하는 말을 믿지 않는다면 누가 너의 말을 귀담아 주겠니. 늘 하는 말이지만, 넌 자신감이 없어. 너 자신을 믿지 못하는 거지. 넌 아직도 소설을 쓴다는 자체를 부끄러워하고 있어.”

“아니에요.”

“그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니? 반 친구들에게 넌 소설을 쓰고 있다고 말해. 자신에게 비겁하게 행동하지 마.”

“그건….”





“지금 당장 말하라는 소린 아니야. 모든 일에는 시기가 있고 네가 사람들에게 소설 쓴다는 것을 밝히는 것도 때가 있겠지. 다만 그것이 지나친 나머지 비겁해지진 말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네가 소설을 쓴다는 것을 밝히는 건 힘들어 질 거야. 박혀진 돌처럼 살아가는 거지.”

선생님의 말을 들으며 태운은 자기가 무심코 했었던 비겁한 행동을 떠올렸다. 어릴 적 자신을 도와준 친구가 부끄러워 모른 척 했었던 일, 도둑질하는 친구를 보고도 말리지 않았던 일, 부모님에게 당당하게 소설을 쓴다는 것을 밝히지 못하고 숨겨왔던 일, 왕따라는 이유로 선엽을 무시했던 일…. 태운은 머리가 지근지근 아파왔다.

“네가 비겁했던 건, 교육의 탓도 있다고 생각해. 미래의 이익을 위해 하고 싶다는 열정을 포기하고 살도록 가르치니까. 열정이 없으니 비겁해질 수밖에 없지. 이제부터 비겁해지지 않으면 된다. 주변뿐만 아니라 너의 꿈에 대해서도, 그리고 너의 삶에 대해서도.”





논술 심화수업은 빠르게 지나갔고, 태운과 준억은 허울뿐인 논술 책과 연습장을 들고 음악실에서 나왔다. 준억이 태운에게 말했다.

“혹시 내가 모르는 고민거리라도 있니?” 준억이 의심스런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태운이 그의 말에 대답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그들의 허리춤에 조그마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영호 선생님이 그들 앞에 서 있었다.

“너희들, 자습시간에 왜 복도를 돌아다니는 거지?”

“논술 심화수업을 듣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준억이 대답했다.

“다른 애들은?”

“없습니다. 저희 둘만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준억이 감정의 동요 없이 대답했다.





“그래? 마침 너희들을 따로 부르려고 했는데 잘 되었구나.” 영호 선생님은 중얼거리더니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너희들, 왜 이렇게 성적이 떨어진 거지?”

“예?”

“이번에 중간고사 성적표가 나왔다. 너희 둘 다 원래 성적보다 많이 떨어졌더구나. 집에 힘든 일 있니?”

“아닙니다.” 태운과 준억이 대답했다.

“그럼 공부 말고 딴 짓에 정신이 팔린 거니?”

“아닙니다. 3학년 첫 내신이라 약간 긴장했을 뿐입니다. 다음번에는 잘 치겠습니다.” 준억이 대답했다.

“정말이야? 태운 너의 대답도 같으냐?” 영호 선생님이 물었다.





“네.” 태운이 대답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순간적으로 선생님의 시선은 태운의 허리에 낀 논술 책에 머물렀다. 태운은 괜히 움찔했다.

“그게 논술교재라고 했지? 한 번 볼 수 있을까?” 영호 선생님이 태운에게 손을 펼치기도 전에, 준억이 재빠르게 자신의 논술 책을 대신 건네주었다. 선생님은 논술 책을 휙 펼치더니 꼼꼼히 살펴보았다. 태운은 그의 논술 책에 특유의 차분한 손 글씨가 빼곡히 채워진 것을 보고 내심 놀랐다.

“흠…. 이걸 논술수업에서 공부한단 말이지. 어디서 한다고 했지?” 선생님이 준억의 필기를 보면서도 못미더운 듯 말했다.

“음악실에서 합니다.”





“4월에 벌써 논술 준비를 하는 건 좀 이르다고 생각하지 않니? 수능이 최우선인데 이런 것에 너희들의 시간을 낭비해도 될지 모르겠구나. 언제 한 번 논술수업에 가봐야겠다. 만약 별 필요가 없다고 생각된다면 교장 선생님에게 말씀드려서 기존의 국어 심화반과 합치던지 대책을 강구해야겠어.” 태운은 영호 선생님의 뜻밖의 말에 놀랐지만, 준억과 마찬가지로 내색하진 않았다. 그들은 선생님에게 인사를 건네고 교실로 올라갔다. 그들은 문학회를 몰래 열기 위한 새로운 장소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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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거미 [3화]









다음날 수학시간은 윤두민 선생님이었다. 본래 벽산고등학교는 언수외 각 과목당 두 선생님씩 있었는데, 언어는 1반 담임선생님과 문호 선생님이 나눠 맡았고 수리는 탁학섭 선생님과 윤두민 선생님이 수업을 맡았다. 학생들은 탁학섭 선생님보다 윤두민 선생님의 수업을 선호했는데, 그것은 탁학섭 선생님보다 윤두민 선생님의 수업이 훨씬 듣기 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탁학섭 선생님에 비해 편하다는 거지, 영악한 학생들에게 휘둘려 수업을 못하고 잡담만 하다가 가는 선생님은 아니었다. 그의 유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교사로서의 최소한 권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정교하고 방대한 규칙과 그것을 결코 어기지 않는 냉철함, 절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그는 자신의 감정에 휩쓸려 학생을 때리는 법이 없었다.

오로지 1분 졸음 - 2^0대, 2분 졸음 - 2^1대, 3분 졸음 - 2^2대와 같은 ‘졸음법’이나 학생 개개인의 성적 평균을 내서 최근 성적이 그 평균에서 1점씩 낮을 때마다 0.5대를 추가하는 ‘점수평균법’과 같은 나름의 규칙을 철저히 지켰다.

체벌의 방식 또한 다양했는데, 가장 기본적인 20cm의 대나무로 손목을 가볍게 휘두르는 정도의 세기로 때리는 것을 비롯하여 15초 동안 물구나무 서기, 칠판에 2분 매달려 있기 등 학생이 스스로 체벌을 고를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이 벌들은 아무리 모범생이고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라도 예외로 두지 않았다.

덕분에 태운은 바로 전 주에 있었던 윤두민 선생님의 수업시간에 처음으로 준억이 체벌을 받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는데, 저번 모의고사 점수가 그동안 준억 수학점수 평균이었던 98점을 훨씬 밑도는 85점으로 13점이나 낮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광경은 다른 1반 학생들에게도 흔치 않았던지, 준억이 6.5대의 균일한 매를 맞을 때는 애들 전부 숨죽은 듯 지켜보았었다.

“평균점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0.5대씩 맞은 적은 많았지만, 그렇게 몰아서 맞은 적은 처음이었어.” 준억이 수학 교과서를 꺼내며 말했다.

“이번에도 때리면 어쩌지?”

“윤두민 선생님의 체벌은 우리가 마음대로 고를 수 있잖아. 나만 믿어.” 그가 안심해라는 듯 말했다. 잠시 후 윤두민 선생님이 오고, 반장이 대표로 선생님에게 90도의 인사를 하고 앉았다. 선생님 또한 90도의 인사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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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거미 [4화]









“맨 뒤에 있는 학생들은 연습장 과제를 거둬오세요.” 그는 20cm의 매를 양손에 단정하게 쥐고 말했다. 연습장 과제란 윤두민 선생님 수업시간마다 암묵적으로 제출하는 것인데, 수학문제를 푼 흔적으로 가득 찬 연습장 5장을 수업시간 시작하기 전에 바로 내는 것이었다. 단순히 문제를 푼 흔적만 적어 내면 되었기에 마음만 먹으면 10분 안에 베껴서 낼 수도 있는 손쉬운 과제였다.

“선생님, 과제 못한 사람은 뒤로 나가면 됩니까?” 준억이 번쩍 손을 들고 물었다. 윤두민 선생님이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아니, 과제를 못했다고? 네가?”

“깜박 잊어버렸습니다.” 준억의 대답에 선생님은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준억 말고도 과제를 못한 사람은 뒤로 나가렴.” 준억은 태운에게 눈짓을 보냈다. 태운은 연습장을 꺼낼까하는 유혹을 참고 준억을 따라 뒤로 나가 섰다. 역시 과제를 안 한 사람은 그 둘을 빼고는 아무도 없었다.

“너희들, 체벌을 골라.” 그는 나무젓가락이 가득 꽂혀있는 우유통을 내밀었다. 나무젓가락마다 체벌의 종류가 써져 있었다. 준억과 태운은 ‘쓰레기차’라고 쓰인 젓가락을 뽑았다.

“이걸로 하겠습니다.”

“그럼 야간자습시간이 시작하는 저녁 7시까지 교무실 앞에 오너라. 들어가도 좋아.” 태운과 준억은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볼거리를 놓쳤다고 아쉬워한 애들의 탄성을 뒤로 하고, 본격적인 수학수업이 시작되었다.





저녁 7시에 그들은 약속한 장소로 모였다. 윤두민 선생님의 양손에는 커다란 파란색 쓰레기통 두 개가 있었다.

“이 벌칙의 내용은 알고 있겠지? 학교를 돌아다니며 이 휴지통 3분의 1만큼 쓰레기를 주우면 된다. 다 채우면 교무실 문을 두드려라.” 윤두민 선생님은 그들에게 쓰레기통을 각자 건네주고 교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자유롭게 학교를 돌아다니지 못한다는 거 너도 알고 있잖아. 이거면 아무도 우리의 행동에 의심하지 않을 거야.” 준억은 허리를 굽히고는 휴지를 하나 줍는 시늉을 했다. 태운이 웃었다. 그들은 계단을 내려가다가 담임선생님과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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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거미 [5화]









“너희들, 자습시간에 뭐하는 거지?”

“윤두민 선생님의 벌을 받고 있습니다.”

“또 뭘 잘못한 거냐. 정말 이젠 지긋지긋하다.” 담임선생님은 신경질을 냈다.

“깜박 잊고 숙제를 못했거든요, 빨리 끝내고 올라가겠습니다.”





“부탁인데 더 이상 눈밖에 나지마라. 너희들을 관리하는 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아니?” 선생님은 그들에게 쏘아붙이고는 떠났다. 그들은 문학회가 열리기에 알맞은 장소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수업을 할 만한 크기의 방은 찾기가 힘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 학교가 오래되어서 지금은 쓰지 않는 장소가 많다는 점이야.” 준억이 1층 계단 아래의 지하로 통하는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다른 곳을 전부 돌아봤지만 마땅한 장소가 없었다. 문은 쇠창슬로 되어 있어서 안을 볼 수 있었다. 준억은 철사를 가져와 자물쇠를 잠시 주무르더니 손쉽게 문을 열었다. 태운은 미리 준비해두었던 손전등으로 지하를 비추었다. 지하에는 아주 옛날에 쓴 듯한 냄새나는 화장실이 있었고 그 옆에는 교실과 강당이 붙어 있었다. 그들은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 학교가 강당을 새로 짓기 전까지, 여기서 학생조회를 했던 것 같네.” 준억이 말했다. 그는 커튼에서 손으로 거미줄을 거둬냈다.

“그만 가자, 응?” 태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왜? 딱 우리가 원하는 장소잖아. 눈에 띄지 않고 넓은 장소.”

“더럽고 축축한 느낌이 싫어.” 태운은 코를 막았다. 바로 옆 화장실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준억은 태운의 말을 들은 체하지 않았다. 그는 다짜고짜 강당의 무대 위로 올라갔다.

“이것 봐, 여기 어떤 통로가 있어. 우리가 온 길 말고도 다른 통로가 있나봐.” 준억이 말했다.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 태운이 짜증을 부렸다.





“이곳이 마음에 들지 않아?” 준억이 물었다.

“지하라 숨이 탁탁 막힌단 말이야. 수십 년간 갇혀져 있던 냄새며 공기를 쉬는 느낌이야.” 태운이 말했다.

“하지만 나에겐 학교 안의 어떤 공기보다도 자유로운걸. 이곳이야 말로 우리들의 정체성이야.” 준억의 말에 태운은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의 눈에는 아무도 쓰지 않아 거미줄만 심하게 쳐져 있는 벽밖에 보이지 않았다. 태운이 갸우뚱했다.

“우린 버림받은 존재구나.”

“그렇지만 말이야. 이곳에서 우리는 돈키호테가 될 수도 있고, 죽은 시인의 사회도 만들 수 있어. 모든 가능성을 품은 곳이지.” 그는 말을 끝마치고는 책상 위로 올라가 태운을 내려다보았다.

“학교에서는 이럴 수 없잖아. 우린 너무 억압되어 있었다고. 너도 올라와봐. 위쪽 공기는 그리 답답하지 않을 거야.” 태운은 준억의 말을 듣고 머뭇거리더니 책상 위로 올라갔다. 그의 발걸음과 함께 책상에서는 먼지가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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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거미 [6화]









다음날 아침, 태운은 상수 바로 옆에 앉아 속삭였다.

“어제 문학회를 열 새로운 장소를 찾았어.” 상수가 그의 눈을 쳐다보았다.

“나에게 이런 걸 말해주는 이유는 뭐야?”

“그야…. 난 네가 문학회에 다시 들어왔으면 하니까.”

“저번 주에 가봤잖아. 난 글 쓰는 것과 어울리지 않아. 좋아하지도 않고.”

“거짓말 마. 단지 너도 나처럼 글을 보여줄 용기가 필요할 뿐이야.” 태운의 말에 상수는 고개를 숙였다.





“네 말이 맞아. 난 비겁한 놈이야.”

“그래, 그러니까….” 태운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상수가 가로막았다.

“어제도 난 비겁한 짓을 저질렀어.”

“어제? 무슨 일이야?” 태운의 물음에 상수는 입을 열었다.

“어제 하굣길에 동훈과 우리 반 애들이 선엽을 에워싸고 있는 걸 봤어. 동훈은 선엽에게서 돈을 빼앗고 있었지. 그런데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 말릴 수 있었는데도 말리지 않았어. 겁이 나서. 정말 비겁하지? 너라면 그만하라며 그들을 막았겠지. 그렇지?” 상수는 자책하고 있었다. 태운은 그에게 용기를 북돋아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맞아, 나라면 바로 달려가서 막았을 거야. 하지만 너무 괴로워하지 마. 다음부터 당당하게 행동하면 되잖아?”

“알았어.” 상수가 대답했다.

수업시간 내내 태운은 뒤편에 앉아있는 동훈과 그의 무리들을 살펴봤다. 녀석들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고 떠들고 있었다. 때때로 구겨진 종이뭉치를 앞에 앉은 애들에게 던지고는 킥킥 웃어댔다. 아니나 다를까, 종이뭉치가 마침내 선엽의 머리통을 적중했고 동훈의 무리들은 어느 때보다 더 크게 키득댔다. 선엽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종이뭉치를 줍고 다시 칠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태운은 그가 안타까웠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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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거미 [7화]









수업시간이 끝나고 준억은 화장실로 갔다. 준억이 같이 가겠냐고 물었지만 태운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선엽을 계속 바라봤다. 그런데 준억이 교실을 나가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준억이 나가기가 무섭게 저 멀찌감치 장난을 치던 동훈과 무리들이 선엽에게 다가간 것이었다. 그들은 발로 툭툭 선엽을 쳐댔다.

“어이, 어이.” 동훈의 무리 중 한 명인 진혁이 커다란 손가락으로 선엽의 머리카락을 휘저었다. 선엽은 표정을 찡그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듬 떨어지는 것 좀 봐. 더러운 새끼.” 진혁의 말에 주위의 애들이 따라서 웃었다.

“이 놈은 우리가 싫은가 본데?” 동훈을 따라다니는 다른 한 명인 명재가 선엽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동훈은 그의 말에 선엽의 턱을 한 손으로 잡고 억지로 올렸다.

“내 눈을 보고 말해. 우리가 싫어?” 선엽은 그의 손 때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그만해!” 뒤에서 상수가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는 어설프게 들렸다. 동훈과 무리들은 뜻밖의 목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더니 곧 웃음보를 터뜨렸다.





“방금 들었어? 어떤 여자애가 비명을 질렀어. ‘그만해!’ ‘그만해!’” 동훈은 상수의 얇은 목소리를 따라하며 비웃었다. 그들은 선엽을 놔두고 상수의 앞에 섰다. 그들은 웃음기를 싹 지웠다.

“내가 잘못 들은 것이겠지?” 동훈이 상수를 노려봤지만, 상수도 지지 않을세라 눈을 거두지 않았다. 그들 주위에는 순식간에 구경꾼들이 모였다. 아무도 그들을 말리지 않았다. 태운도 구경꾼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동훈은 기선제압으로 상수의 어깨를 툭 쳤다. 상수는 순식간에 바닥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동훈은 기세가 등등해져서 구경꾼 전체를 향해 소리쳤다.

“내가 뭐 하나 가르쳐주지. 왜 힘이 곧 정의인지 알아? 힘이 없으면 정의를 실현시키지 못하기 때문이지. 요즘 힘도 없는 놈을 따르는 녀석이 많은데….” 동훈은 말을 하다 멈추고 태운을 노려봤다.





“그 새낀 둔한 귀머거리를 따른다는 것만 알아두라고.” 그때 상수가 잽싸게 일어나 동훈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그의 작은 주먹은 동훈의 코를 적중했고 동훈은 코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그는 잠시 주춤했지만 곧 반격했다. 상수는 샌드백처럼 이곳저곳 맞았고 다시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뭐 이딴 미련한 병신이 다 있어.” 동훈은 주먹을 한 번 흔들고는 멈추지 않는 코피를 닦기 위해 화장실로 갔다.

“축하한다. 이제 너도 선엽과 똑같은 클래스야.” 진혁과 명재는 상수에게 으름장을 놓고는 동훈에게 휴지와 손수건을 건네러 뛰어갔다.





“상수야, 괜찮아?” 태운은 쓰러진 상수에게 갔다. 상수의 얼굴에는 온갖 상처가 나 있었다. 태운이 손수건으로 그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대체 왜 그랬어. 너도 괴롭힘을 당할 텐데….” 태운은 말을 잇지 못했다. 상수는 후회가 아니라 만족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뜻밖의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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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거미 [9장 완결]









“아니야, 난 지금 너무 기뻐. 일방적으로 맞았지만 어쨌거나 걔네들에게 맞섰잖아. 나 자신이 자랑스러워. 난 비겁한 자가 아니었어. 너처럼 용기 있는 사람이야.” 태운은 상수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네 충고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여전히 비겁하게 행동했을 거야. 고마워. 너에게서 많은 걸 배웠어. 혹시 지금이라도 문학회에 들어갈 수 있을까. 그때 못한 시 발표를 하고 싶어.” 태운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문학회 시간, 상수가 자신의 시를 낭송하고는 주위를 보았다. 그는 예전처럼 겁에 질려있지 않았고 오히려 평온해보였다.





“수고했다.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 상수야. 이제야 뭔가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구나. 강당이 좀 넓은 감이 있지만 이곳도 마음에 들어. 넓은 거야 책들로 채우면 되니까 말이야. 너희들도 이곳을 보금자리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학교생활의 도피처가 아니라 너희들의 문학적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보호처가 되었으면 해. 생활에 쫓기는 겁쟁이가 아니라 용기 있는 문학청년이 되라는 말이야.”

태운은 옆의 상수를 쳐다보았다. 그는 여전히 수줍어하는 기색이 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자신이 있어보였다. 태운은 그런 자신감이 부러웠다. 그렇지만 자신은 그것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그에게는 자신감 대신 죄책감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이것을 깨뜨릴 용기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상처는 괜찮아?” 태운은 괜히 아까 전 물음을 반복했다. 상수는 짜증내지 않았다.

“내가 연고 좀 발라줄까?”

“괜찮은데….” 상수는 손을 내저었음에도 태운은 주머니에서 연고를 꺼냈다. 그는 상수의 이마에 약을 고르게 펴 발랐다. 이마의 푸른 멍은 약으로 보기 좋게 번들번들 빛이 났다. 며칠 후면 이마의 멍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태운의 마음은 언제까지나 공허할 것이었다. 상처에 약을 발라주는 것만으론 그의 죄책감이 치유되지 못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아름다운 꽃밭에 사이좋은 두 마리의 나비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디를 가든 함께 움직였고 같은 꽃가루를 묻힌 채 같은 꿀을 마셨습니다.

어느 날 물결무늬가 말했습니다.

“저쪽 꽃밭에는 더 달콤한 꿀이 있대. 우리 한 번 가보자.” 줄무늬는 탐탁지 않았지만 친한 친구의 부탁을 이기지 못하고 함께 길을 나섰습니다.

“저기에 꽃이 있다!” 물결무늬는 기쁜 함성을 지르고는 날개를 접어 꽃으로 다가갔습니다. 줄무늬도 꿀을 맛보기 위해 내려가려고 할 때 물결무늬가 소리쳤습니다.

“어라? 날개가 움직이지 않아!” 줄무늬는 친구의 날개를 쳐다보았습니다. 그의 날개에는 아침이슬이 대롱대롱 달린 실이 감겨져 있었습니다.

“날 구해줘!” 물결무늬가 애타게 소리쳤습니다. 줄무늬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만 동동 굴렸습니다. 저 멀리 거미가 거미줄의 진동을 느끼고 물결무니 곁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물결무늬는 온갖 힘을 다해 날개를 파닥거렸지만 오히려 거미줄에 더 묶일 뿐이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나도 거미줄에 걸리고 말 거야.’ 줄무늬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쯤에서 친구를 놓아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물결무늬를 향해 다가오던 줄무늬의 날개 또한 거미줄에 묶인 듯 멈춰버렸습니다.

“뭐하니? 가만히 있지 말고 날 구해줘!”

“미안해. 나도 어찌할 방법이 없어. 널 구하려고 하면 나 또한 죽고 말거야.” 줄무늬는 고개를 돌리고 나풀나풀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휴, 다행이다.” 다시 고향의 꽃밭에 도착해서야 줄무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때 눈앞에 탐스러운 장미꽃이 보였습니다. 장거리 비행으로 심신이 지쳐버린 줄무늬는 꿀과 휴식을 취하기 위해 그곳으로 다가갔습니다. 배불리 먹고 몸을 일으키려는데, 그의 날개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어? 왜 이러지?” 그가 날개를 흔들면 흔들수록 자신을 더 죄어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가까이에서 어미거미와 새끼거미들이 줄을 타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고 나서야 그는 자신의 상황을 깨달았습니다.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그는 애타게 소리쳤습니다. 그의 외침을 듣고 꽃밭의 많은 나비들이 줄무늬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에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도와주세요….” 못 본 체 지나가는 나비들을 바라보면서 줄무늬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동료를 도와주지 않고 날아 가버린 순간부터 자신 또한 소극적 방관이라는 거미줄에 묶여 있었다는 사실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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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장

제10장 우리들의 비겁한 영웅 & 제11장 크로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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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칼을 찬 교사 & 제13장 비밀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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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장 혀에는 목 & 제15장 금수 랩소디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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