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인도 ]






           […… 그렇게 고생하며 터득한 방법이 실은 어린이용 도서에도 나오는 내용이더군요.]

           남자는 어깨를 과장되게 으쓱이며 덧붙였다.

           [유치한 표지의 ‘무인도에서 살아남는 법’이란 제목이었어요.]

           좌중 사이에 웃음이 흘렀다. MC는 남자가 이야기 했던 내용을 짧은 문장으로 간단히 정리했다. 그리고 패널에게 비슷한 경험이 있는지 물었다. 개그우먼은 자신의 요리 경험을 이야기했다. 잠시 후, 남자가 목숨을 걸고 터득한 생존방법은 시금치 데치는 방법과 동급이 되었다.

           몇 차례 웃음이 돌았다. 남자의 다른 경험담으로 이야기의 소재가 넘어갔다. 다른 채널에서 여러 번 말했지만, 모두가 처음 듣는 것처럼 반응했다. 녹화는 순조롭게 마무리 되었다. 이제 삼일 뒤에 텔레비전 브라운관에서 그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수고하셨습니다.]

           패널은 남자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하고 사인을 받았다. 남자는 익숙한 듯이 모두의 인사를 받았다. 어색함은 없었다. 7개월 만에 그는 다른 사람처럼 되었다.

           자신의 차로 돌아온 그는 매니저가 운전하게 내버려 두고 눈을 감았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35분이었다. 섬에 있었다면 잔뜩 겁에 질려 웅크려 있을 시간이다.

           남자는 섬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11년 동안 처절하게 경험했던 무인도 생활은 생각보다 많이 무뎌져 있었다. 섬 밖의 삶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무인도에서 11년을 생존한 남자. 영화에서나 보던 인물이 나타나자 언론은 매우 흥미로운 소재로 취급했고, 대중은 열광했다. 세상은 자극을 원했고, 그가 겪은 11년은 결코 녹록한 것이 아니었다. 영화, 드라마, 소설, 자서전, 예능 프로그램까지. 그가 만약 평범하게 살았다면 11년 동안이면 절대로 얻지 못 했을 부와 인지도를 얻었다.7개월 만에.

           [잠깐 눈 좀 붙이세요. 5시간 뒤에 픽업하러 올게요.]

           매니저는 인사하고 떠났다. 남자에겐 습기 차고 벌레가 잔뜩 기던 동굴 대신에 아늑한 집이 생겼다. 목마름에 반쯤 미쳐가면서도 바닷물을 마시지 않기 위해 버티는 대신, 손만 뻗으면 얼음이 담긴 시원한 물 잔이 있다. 썩어 구더기가 있어도 더듬더듬 뜯어먹던 죽은 물새 대신에 신선한 고깃덩이가 냉장고에 있다. 무엇보다 추위와 더위는 이제 그를 괴롭히지 못 한다.

           하지만 그는 답답했다. 11년 동안 홀로 있던 그는 갑작스레 사회로 던져졌다. 국가가 가장 먼저 지원한 것은 정신 치료였다. 생각보다 빠르게 사회에 적응하고, 오히려 사회를 이용한 그의 모습은 빠른 퇴원으로 이뤄졌다. 당신은 정상입니다. 도장 쾅쾅.

           의사는 잘못 진단했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남자는 확실히 병들어 있었다.

           남자는 소파에 누웠다. 그리고 어색한 손놀림으로 스마트폰을 조작했다. 연락처의 수많은 사람들. 과거의 연인, 친구, 가족. 하지만 낯설다.

           11년 만에 세상은 변했다. 너무 많이. 남들에겐 빠른 적응으로 보였던 그의 삶은, 사실 기만이 가득했다. 나는 괜찮아요. 무인도에서도 살아남았는걸요. 아니다.

           ‘난 11년 전부터 죽은 거야.’

           그랬다. 다시 찾은 가족은 살아 돌아온 아들을 환대했다. 하지만 곧 벽을 느꼈다. 십 년 넘게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을 다시 받아들이자 죄책감과 어색함이 벽을 만들었다.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과거의 추억을 곱씹으며 이야기하고 나면, 더 이상 나눌 것이 없었다. 누군가의 가장이 되고, 사회의 비굴함을 맛보며 살던 예전의 친구들은 그를 어색해 했다. 사실 모두에게 자신은 과거의 인물이었다. 현재나 미래가 아닌.

           ‘무인도를 탈출한 화제의 남자!’

           아냐, 구출 된 거야. 구조 신호를 보내고 표류하던 화물선이 날 발견했을 뿐이지.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살아 돌아온 뒤로는 더 많은 것을 얻었어요. 영화처럼 말이에요. 그리고 저는 행복할 것이라 확신해요.’

           그래, 원하는 건 진실이 아니야. 대본대로 읽어주면 되는 거야.

           ‘11년 만에 돌아와서 정말 기뻐요.’

           그런데 왜 그런 표정이야? 제발 어색하게 미소 짓지 마.

           갑자기 분노가 치밀었다. 하지만 두 주먹으로 눈을 꾹 누른 채 누워있을 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주먹에 조금씩 눈물이 배어들었다. 남자는 알고 있다.

           거짓된 삶을 보여주면 많은 것이 들어왔다. 남자는 잃고 싶지 않았다. 가진 것이라곤 가냘픈 목숨 밖에 없던 지난 11년 때문에. 무인도에서 빠져나간다면, 인간답게 행복하게 살고 말겠단 다짐 때문에. 그래서 악착같이 버텼다. 무인도에서 탈출하고 싶어서. 하지만 이제 그는 알고 있다.

           무인도에서 벗어났지만, 그는 다시 무인도에 있었다. 그가 알던 사람들도 없고, 진정으로 알아갈 사람도 없는, 그리고 주위를 지나쳐가는 무정물로 가득한 세상에 있었다.

           남자가 바라던 섬 바깥은, 사실 좀 더 넓은 무인도일 뿐이었다.










------------------------------------------------------------------

멍멍!

오랜만에 지나가던 개가 짖고 갑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8 05: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