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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1장 글 쓰는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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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장님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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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증명사진 / 제4장 국사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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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문학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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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짓궂은 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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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왼손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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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젊은 문학도의 사회 & 제9장 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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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우리들의 비겁한 영웅 & 제11장 크로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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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칼을 찬 교사 & 제13장 비밀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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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장 혀에는 목 & 제15장 금수 랩소디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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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장

왼손잡이




태운에게 있어서 일요일 저녁은 가족과 지낼 수 있는 유일한 휴식시간이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밤 12시가 되어야 집에 도착해 잠을 청하기 바빴고 일요일 오전마저도 어머니의 성화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학교에 가서 저녁 6시까지 자습을 하고 와야 했기 때문이다.

“학교생활은 재미있니?” 태운의 아버지가 새로이 삼겹살을 불판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일요일 저녁은 일주일 중 집에서 먹는 단 한 끼인 만큼 급식에서 나오기 힘든 고기 음식을 먹었다.

“그저 그래요.” 태운이 대답했다.

“공부는 잘하고 있고?” 아버지의 말에 태운은 묵묵부답이었다. 어머니가 대신 대답했다.

“요즘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성적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요. 특반에 들어가면 성적이 더 오를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네요.”





“엄마,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마.”

“엄마에게 무슨 말버릇이니? 아버지는 말이다, 네가 공부를 잘하지 않아도 좋아. 누누이 말하지만 아버지가 원하는 건 네가 공부를 엄청나게 잘해서 판검사가 되는 게 아니야. 그냥 안정적인 직장 하나 잡아서 걱정 없이 살면 된다. 예를 들면 공무원 말이야.” 태운의 아버지는 경찰이라는 직업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태운이 어렸을 때부터 범인을 잡은 등의 경험들을 자랑스럽게 말해주곤 했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경찰을 포함한 공무원 직업군이 얼마나 안정적인지도 귀가 닳도록 말해주었다.

“전 공무원이 되고 싶지 않아요.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거예요.”

“그게 뭔데?” 태운은 또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의 꿈을 말하면 아버지의 반응은 불 보듯 뻔했다.





“배가 불러서 하는 소리야. 아버지 때는 적성이니 자아실현이니 그런 허황된 것을 찾지 않았다. 일을 해서 밥 한 끼 굶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겼지. 이런 고기 음식도 우리 때는 꿈도 못 꿨어. 요즘 청년들이 집에서 놀면서 왜 소위 3D 업종은 기피하는지 알아? 너같이 자아를 실현하겠다는 배부른 고민 따위를 하고 있어서 그래. 굶어봐야 정신을 차리지.”

“하지만 저는 경제적인 편안함 그 이상의 것을 원한단 말이에요. 제가 만약 사회의 질서를 지키고 싶었다면 아버지처럼 경찰이 되고 싶겠죠.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었다면 선생님이 되고 싶을 거고요. 그러나 전 둘 다 아니란 말이에요. 저는 안정적이란 이유만으로 좋아하지 않는 직업을 선택하진 않을 거예요.”

“그래요 여보, 이제 그만해요. 태운 나름대로 원대한 꿈이 있을 거예요. 변호사라든지 의사라든지…. 돈 많이 벌고 사회적인 평판도 좋은 직업을 하고 싶을 건데 굳이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말단 공무원을 추천할 필요는 없잖아요.” 잠자코 대화를 듣고 있던 어머니가 끼어들었다.

“아니,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그런 게 아니에요. 변호사, 의사 같은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직업을 하고 싶은 거예요.”

“하고 싶은 직업이 결국은 모든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 아니니? 누가 변호사나 의사 같은 사회 고위직을 하기 싫어하겠니? 싫어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지.” 태운은 더 이상 부모님과 말씨름해봤자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수저를 내려놓았다.





“저는 먼저 일어날게요. 잘 먹었습니다.” 태운은 자신의 방으로 가서 문을 잠갔다. 그리고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누르고 의자에 앉았다. 그의 책상에는 며칠 전 준억에게서 빌렸던 ‘부활’ 상권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기대한 만큼 쉽게 읽혀지지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운은 그 책을 읽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컴퓨터가 부팅되는 동안 책장을 넘기며 생각했다.

태운의 어머니는 그녀가 정한 직업 피라미드의 상위층에 태운이 오르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것이 자아를 실현하는 방법이라 믿었다. 자식이 성공하기를 원하는 것은 세상 모든 부모의 마음이라지만 태운은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어머니가 성공 지향적인 생각이라면 아버지는 현실 안주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큰돈보다는 안정적인 일을 갖기를 바랐다.

아버지에게 있어 직업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도구 그 이상이 아니었다. 부모님은 이렇게 직업관이 완전히 달랐지만 한 가지 점에서는 공통점을 같이했다. 태운이 무엇을 하고 싶은 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버지의 봉건적 사고방식도 어머니의 근대적 사고방식도 태운에게는 또 다른 정신적 폭력으로 작용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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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왼손잡이 [2화]





태운은 어제 자습시간에 썼던 단편소설을 꺼내 워드프로세서에 옮겨 썼다. 연습장은 태운의 삐뚤삐뚤한 글씨와 준억의 똑바른 글씨로 가득 차 있었다. 태운이 글 쓰는 것에 열중하고 있는데 갑작스레 어머니가 문손잡이를 틀었다. 그녀는 곧 잠긴 것을 알고 문을 주먹으로 쳐댔다.

“태운? 문 열어.” 태운은 황급히 최소화 버튼을 눌러 창을 숨겨두고 문을 열어주었다.

“너, 문 잠그고 뭐한 거야?”

“공부할 준비를 하고 있었어.” 어머니는 태운을 못마땅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너 요즘 정말 이상해. 문을 잠그지 않니, 집에 오면 쓸데없이 소설책만 읽지 않니.” 어머니는 시선을 옮겨 모니터를 훑어봤다. 그러더니 뭔가를 발견한 듯 뭔가를 가리켰다.

“저건 뭐니?” 작업표시줄에는 그가 쓰는 습작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태운은 필사적으로 가렸지만 그녀는 기어코 그 파일을 열고 말았다. 태운이 쓴 소설이 화면 전체에 떴다. 어머니는 그대로 안색이 변해서 말했다.

“이게 뭐니?”

“그, 그게….” 태운이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네가 썼니?” 태운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도대체 왜….” 어머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비로소 그간 태운이 했던 이상한 행동들의 의미를 알아챈 것이었다.





“엄마, 내 말을 들어봐. 나 예전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었어.” 태운이 말했지만 그녀는 컴퓨터 앞만 바라봤다.

“이딴 글 쓰려고 공부를 안 했단 말이야?”

“엄마….”

“장난 그만두고 공부해라. 당장 꺼!” 그녀가 태운에게 소리쳤다.

“이런 짓은 일시적 충동에 불과해. 나중에 안 좋은 대학 가서 후회하고 싶어? 쓸모없는 짓에 팔려 공부 안한 걸 후회할 때는 이미 늦는 거야. 고3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충동적으로 소설을 쓰고 싶은 게 아니라 오랫동안 고민하고 꿈꿔왔던 거야. 이거 봐. 학교에서도 이만큼이나 썼어. 한순간의 열정으로 시작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아줘.” 태운은 어머니에게 자신의 연습장을 건넸다. 그러나 이는 그녀의 화를 더 돋구어줄 뿐이었다.





“너, 학교의 자습시간에마저도 쓴 거야? 네가 학교에서 몰래 쓴 글을 보여주면 내가 좋아할 줄 알았니? 이게 도리어 엄마의 마음에 말뚝을 박는다는 건 알고 있어? 엄마는 그동안 네가 학교에서 공부 열심히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네 성적이 떨어져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거야. 네 성적이 떨어지면 당연히 네가 더 힘들 거라 생각했거든.

내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이면 너는 더 괴로워할 거라 생각하고 내색을 하지 않았어. 이런 부모의 속마음을 알아?” 태운은 어머니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말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만을 보고 살았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태운의 움츠러진 태도에 화를 누그러뜨렸다.

“지금은 네가 어려서 생각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거야. 나중에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알거다. 그때 가서도 정 작가의 길로 나가고 싶다면 그때 생각해보자.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너도 고등학교 시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잖니. 지금만 참으면 너는 행복해질 수 있어. 왜 그걸 못 참니?”





“엄마, 나는 더 이상 내 꿈을 미루고 싶지 않아. 나중에도 대학진학 같은, 아니 더 큰 핑계거리가 또 생길 거란 말이야.” 태운은 준억과 처음 만났을 때의 대화를 떠올렸다.

“엄마는 그걸 핑계거리가 아니라 현실이라고 부르고 싶구나. 소설을 포함한 예술의 영역은 우리 같은 범인이 가지는 직업이 아니야. 현실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돈이 많거나 엄청난 재능과 운이 있어야 해. 넌 둘 다 아니잖니? 네게 소설가는 진로가 아니다. 로또에 당첨되는 것이 진로가 아니듯이 말이야. 나는 그런 사회의 패배자가 될 아들을 둔 적이 없어.

엄만 네가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야. 헌데 그게 그토록 큰 부탁이니? 말단 공무원으로 빌빌거리는 아빠를 보며 내 아들만큼은 큰 사람이 되길 바랄 뿐인데 넌 엄마를 그렇게도 괴롭히고 싶어?” 태운은 그녀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태운에게 너무도 쉽게 ‘엄마의 말뚝’을 박았다.

부모의 이상과 콤플렉스를 해결해주길 바라는 거대하고 뾰족한 말뚝. 크고 뾰족해 자식의 존재를 뭉개버리는 그 말뚝. 태운은 그녀의 이상에 의한 정신적 구속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부모 앞에서 자식은 한 없이 약한 존재였다. 태운은 눈물이 고여 있는 어머니의 눈가 앞에서 더 이상 소리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었다. 여전히 소설과 공부 둘 다 병행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에게 그의 생각을 드러내지 않았던 것은, 첫째로 더 이상 설득해봤자 어머니는 그를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강한 직관이 들었고, 둘째로 더 이상 어머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비겁함이 섞인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태운은 한 발자국 물러남으로 가정의 평화를 지켰다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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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왼손잡이 [3화]









태운은 아침밥도 먹지 않은 채 학교에 와서 힘없이 자기 자리에 앉았다.

“무슨 고민 있어?” 준억이 낌새를 눈치 채고 물었다.

“아무 것도 아니야.” 태운은 주변을 돌아보며 준억에게 눈치를 줬다.

“넌 부모님 인생의 연장선이 아니라는 것만 기억해.” 준억은 태운과 부모님의 관계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가 태운의 어깨를 두드렸다.

“무슨 일이야?” 이 둘의 대화를 조용히 엿듣고 있던 상수가 물었다.





“엄마와 다퉜대.” 준억이 최대한 간략하게 말했다.

“그래? 그래도 너흰 싸울 엄마라도 있으니까 좋겠다. 난….” 상수가 말하며 어설프게 눈을 내리깔았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네가 엄마 카드를 꺼내도 내가 해줄 거 같아?” 준억의 말에 상수가 입술을 깨물었다.

“좀 해줘.”

“뭔데 그래?” 태운이 그들을 번갈아보며 물었다.

“오늘 점심 먹고 함께 그림 그리러 가자고 하는데 자꾸 싫다고 하잖아.” 상수가 대답했다.

“웬 그림?”

“선엽이 요즘 의기소침해져 있어서 좀 위로해주려고. 걔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고 들었거든.” 태운은 그때 미술실의 그를 떠올렸다.





“너희 둘이서 하면 될 걸 왜 날 부르는 거야.”

“그야, 난 선엽이랑 친하지 않으니까 좀 불편하단 말이야. 그런데 넌 아무나와 잘 어울리니까 너한테 부탁하는 거지.”

“미안하지만 난 점심시간에 8반과 축구시합을 해야 해.” 준억의 단호한 거절에 상수는 포기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소리쳤다.

“아참, 태운! 네가 있었지. 나와 같이 가자, 응?”

“그게 말이야….” 태운은 그때의 악몽이 떠올랐다. 준억은 태운의 표정을 유심히 뜯어봤다. 그는 잠시 미간을 찌푸리더니 대신 대답했다.

“이번엔 태운도 같이 하기로 해서 안 되겠다. 미안해. 다음번에 꼭 갈게.”

“태운은 축구를 안 하잖아.”

“골 보이를 하기로 했어.” 준억의 변명에 태운은 그의 발을 밟았다.

“그래…?” 상수는 뜸을 들이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알았어. 대신 다음번에는 꼭 같이 하는 거다.” 상수는 다른 애들에게 부탁하러 자리를 옮겼다.

“괜찮아?” 준억이 태운의 눈치를 살폈다. 그의 걱정스런 표정에 태운은 순간 그사이 있었던 일에 대해 전부 털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에게 모든 것을 고백하면 죄책감이 덜어질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태운은 말하지 못했다.

“나야 괜찮지.” 태운이 씁쓸하게 대답하며 맨 앞자리에서 모자를 쓴 채 엎드려 자는 학생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그는 수업종이 울려서야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내 말은 골 보이를 시켜도 괜찮겠냐는 말이었어.” 준억이 태운의 눈앞에서 손을 흔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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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왼손잡이 [4화]









태운은 준억과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벌써 쉬는 시간은 끝나버렸고 1반 친구들은 하나 둘씩 교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헐레벌떡 뛰어와 사물함에 교과서를 가지러 가는 친구들 사이로 동훈이 교실로 들어왔다. 태운은 동훈을 향한 시선을 거두고 괜히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칠판을 바라보았다.

일주일 전 동훈의 본모습을 알아챈 뒤부터 태운은 그를 의식적으로 피했다. 동훈과 함께 있으면 태운을 악의 세계로 끌어당긴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았기 때문이다. 곧 1교시 종이 울렸고 태운과 준억은 문학 교과서를 꺼냈다. 교과서를 꺼내기가 무섭게 도문호 선생님이 앞문을 열고 교실로 들어왔다.





2주 전이었다면 도문호 선생님이 이렇게 일찍 교실에 들어올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는 언제나 5분은 넘어서야 수업시간에 들어왔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며칠 전 연가를 갔다 오고 난 뒤부터 어딘지 모르게 사람이 변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북어’라는 시에서 갓 튀어나온 것 같았던 그는 수업에 열정적으로 임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오늘은 그의 교과서인 참고서마저도 가져오지 않았다.

태운은 수업시간마다 혹시나 선생님이 자신에게 뭐라고 할까 조마조마해했다. 그러나 도문호 선생님은 태운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가 관심 있어 한 것은 교과서에 실려 있는 소설과 시 작품이었다.





어느덧 오전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학생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우르르 교실 밖을 뛰어나갔다. 꾸물대는 학생은 준억과 태운밖에 없었다.

“얼른 가자.”

“이미 늦었어.” 준억이 느긋하게 말했다. 그들은 텅 비어버린 복도를 거닐었다.

“박태운! 점심 먹으러 가니?” 뒤에서 정영호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태운은 고개를 돌렸다.

“네 선생님.”

“점심은 나중에 먹고 일단 교무실로 오거라.” 선생님의 목소리는 여느 때와 같이 무거웠다. 태운은 준억에게 먼저 가라고 손짓으로 알렸고 준억은 계단 밑으로 사라졌다.





“무슨 일 있으세요?” 교무실에는 배고픈데 붙잡혀 짜증난 기색이 역력한 담임선생님과 구석에서 묵묵히 마우스만 클릭하는 도문호 선생님, 그리고 화가 난 태운의 어머니가 있었다.

“엄마?”

“박태운!” 담임선생님이 골이 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너희 어머니께서 오셨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시니? 네가 소설을 쓴다니 무슨 소설 쓰는 소리야?” 그는 이성을 잃은 채 태운을 꾸짖었다.

“시치미 떼도 다 알고 있어. 네 어머니께서 말씀해주셨다.” 뒤에서 정영호 선생님이 조용히 말했다.

“엄마, 여긴 왜 왔어? 안 한다고 했잖아.”

“어떻게 널 믿겠니? 네가 딴 짓에 홀렸는데 부모로서 어떤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학교에 있을 때도 소설을 못 쓰게 해야지.”





“하지만 어머님, 저희는 태운이 소설을 쓰는지 몰랐고….” 전병설 선생님이 변명을 댔다.

“그게 문제란 말이에요. 이걸 보세요.” 태운의 어머니는 손가방에서 A4용지를 꺼내 보여주었다. 태운의 습작이었다.

“학교에서 이만큼이나 썼대요, 이만큼! 선생님들은 학교에서 학생이 무슨 짓을 해도 신경 쓰지 않나요? 자습시간에 낙서를 하든지, PMP로 영화를 보든지 내팽겨 두나요?”

“학생 수는 많고 선생님 수는 적은 탓에….” 담임선생님은 미간을 찡그렸다.

“그게 어떻게 핑계가 되죠? 전 이 학교가 그나마 면학적인 분위기라고 들었어요. 밤 11시 반까지 강제적으로 자습시키고 방학 따위도 없다고요. 그런데 시간만 많으면 뭐하나요. 이렇게 애들이 딴 짓하고 노는데.”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잘 감독하겠습니다.” 정영호 선생님이 사과했다. 그는 태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머니 말씀이 백번 옳다. 넌 공부에 열중해야 해. 고3은 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해가 될 거다. 소설 같은 유희활동은 나중에 해라. 알겠지? 너 그동안 열심히 해왔잖아. 2년간 네 담임을 하는 동안 공부에 열중하는 네 모습을 봐왔다. 그거 아깝지 않니?” 태운은 어머니와 정영호 선생님의 얼굴을 쳐다보며 말을 꺼냈다.

“하지만….”

“이 녀석이!” 전병설 선생님이 태운의 말을 끊고 역정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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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왼손잡이 [5화]









“이렇게 어른들이 말씀하시는데도 의견 따윈 굽힐 줄 모르고 투정이나 부려?”

“그래도 그런 말씀은 삼가시는 게….” 정영호 선생님이 말렸다.

“당신이 얘 담임선생님입니까? 얘가 잘못하면 욕먹는 사람은 저라고요. 게다가 당신이 학생에게 욕한다고 뭐라 할 입장은 아니죠. 저도 귀가 있고 눈이 있습니다.” 전병설 선생님은 말하면서 입 꼬리에 비웃음을 올렸다. 정영호 선생님은 크게 당황하며 반박하지 못했다.

“그만 하세요. 서로 감정 상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도문호 선생님이 둘을 말리며 말했다. 도문호 선생님과 태운은 어색하게 눈이 마주쳤지만 이내 눈 맞춤을 피했다. 정영호 선생님과 전병설 선생님은 여전히 서로를 쳐다보며 씩씩거리고 있었고 도문호 선생님은 사이에 서서 태운을 바라보았다. 태운은 그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너무도 불편했다. 도문호 선생님에게 대든 이후 처음으로 그와 마주보고 있었다.





“나는 네가….” 도문호 선생님은 태운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태운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바람과 불씨 따위의 헛소리를 다시 들을 수 없었다. 그는 교무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복도에는 하나 둘씩 무리지어 식사를 마치고 교실로 오는 학생들이 있었다. 태운은 그들을 거칠게 밀치며 뛰어갔다. 그리고 그들을 밀친 자신의 두 주먹에 대해 생각했다. 뜬금없게도 어느 손이 더 주먹을 세게 쥐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태운은 본래 왼손잡이였다. 밥 먹는 것도 왼손이었고 연필을 처음 잡은 손도 왼손이었다. 어머니는 태운이 왼손을 쓰는 걸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왼손잡이는 비정상이라고 말했다. 오른손으로 펜을 잡게 했다. 수많은 훈련 끝에 태운은 간신히 오른손으로 글을 쓸 수 있었지만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글씨가 삐뚤삐뚤했다. 지진계 기록용지처럼 밑으로 새나가고 옆으로 튀어나갔다.

그리고 약한 수전증 또한 생겼다. 그건 유별난 어머니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밥 먹는 손 또한 마찬가지였다. 바꿀 수가 없었다. 밥은 본능이었고 어머니는 그것까지 바꾸진 못했다. 태운은 그렇게 양손잡이가 되었다. 삐뚤삐뚤한 글씨를 쓰는 오른손잡이가 되었고 죄책감으로 숟가락을 덜덜 떠는 왼손잡이가 되었다. 무손잡이가 되었다.





태운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은 무기력했다. 주먹은 풀린 지 오래였다. 그는 자신의 인생만큼은 이처럼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누군가에게서 통제받지 않고 순수한 자신의 본능을 따라 살겠다고 생각했다.

“또 도망치니?” 뒤에서 도문호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태운은 그의 말을 무시했다.

“몇 주 전에는 정영호 선생님에게서 맞았다고 도망치더니 오늘은 잔소리 좀 들었다고 도망가는 거야? 나에게 큰소리치던 기세등등한 놈은 어디 간 거지?” 태운은 뒤를 돌아봤다. 도문호 선생님은 단숨에 그를 따라잡아 바로 뒤에 있었다.

“이야기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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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왼손잡이 [6화]









“선생님께서 옳았다는 말씀을 하시려고요? 세상은 꿈을 가지기에 험난하다고요? 전 재방송은 듣지 않아요.” 태운은 거세게 저항했지만 애석하게도 도문호 선생님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는 이것 또한 무손잡이 탓이라고 생각했다. 도문호 선생님은 그를 붙잡고는 1층의 성실반으로 데려갔다. 성실반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책상마다 모의고사 시험지와 문제집이 흩어져 있었다.

“여기가 어딘지 알아?”

“성실반이죠. 서울대 갈 인간들만 모아서 차등교육을 시키는 곳.” 태운이 아무렇게 말을 뱉어냈다.

“여긴 꿈을 실현하는 곳이다.”





“아, 무슨 말씀하시려는 건지 알겠어요. 그러니까 서울대학교를 가는 것이 이 시대의 진정한 꿈이라는 거죠?” 태운이 빈정댔다.

“이들의 꿈을 평가절하하지 마라. 너도 같은 인간이 되는 거야.”

“전 이 친구들의 꿈을 얕보지 않아요. 똑같은 꿈을 강요하는 선생님의 태도를 비꼰 거죠.”

“나는 꿈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럼 왜 여기에 데려오신 거죠? 사회의 정규교육을 착실히 밟아가는 이곳으로.”

“너에게 이 세상에는 너의 꿈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꿈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15년 전부터 이곳은 서울대반, 지금의 성실반으로 불렸어. 수많은 네 선배들이 이 자리를 지나갔지. 이 교실에 있었던 이들 중 서울대에 합격한 아이들은 몇 명이라고 생각하니?” 도문호 선생님은 스무 자리 남짓 되는 자리를 가리켰다.





“일 년에 10명은 넘게 갔겠죠.”

“틀렸어. 15년 동안 총 51명이 서울대를 갔다. 일 년에 세 명 정도가 서울대에 합격했다는 이야기야. 인문계와 자연계 통 틀어서 일 년에 스무 명 공부하는 이곳에서, 3명만이 원하는 대학교에 갔어. 그러면 나머지 17명은? 꿈을 이루지 못했다. 믿겨지니? 내 기억이 맞다면 이 아이들 중 너처럼 다른 길을 가겠다는 놈은 없었어. 전부 서울대를 목표로 삼았고 그곳에 가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지. 그런데도 서울대를 가지 못했어. 네 어머니께서는 이런 현실을 알고 있기에 너에게 공부에 집중해라고 말씀하시는 거야.” 태운은 그의 말을 잠자코 들었다.

“너는 사회가 네 꿈만 방해하고 괴롭힌다고 생각하겠지. 자신을 몰라주는 답답한 세상이라고 욕하며 말이다. 나는 그런 너의 오만함을 지적하고 싶어. 장애물은 네가 쉽게 보는 현실적인 꿈에도 있다. 그 꿈 나름대로 힘들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니?”





“다른 꿈도 힘든 건 마찬가지니까 제 꿈이 힘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라는 말씀이신가요? 동의할 수 없어요. 일단 이들의 꿈과 제 꿈은 처한 상황 자체가 달라요. 보통 이들의 꿈은 주위에서 그것을 이루는 걸 바라고 지원해주죠. 사회가 원하는 꿈이고 그 꿈을 위해 달려가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죠. 그게 성공하든 실패하든 간에 도전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나 제 꿈은 달라요. 아무도 제 꿈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죠. 오히려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비웃으며 막으려고 하죠. 제도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그만두라고 압박을 가하고요. 도전하려는 기회조차 빼앗아버리는 거라고요.” 태운은 흥분해 말했다.

“난 네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꿈은 저마다 힘들고 어렵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 그래서 이곳으로 데려 온 거고. 네가 언급한 기회를 빼앗는 것은 결국엔 다른 꿈의 고난과 다를 게 없어 보이구나. 둘 다 방해물로 작용하니 말이다. 그걸 견디기 위해서는 강한 의지력과 인내심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도 공통점이지. 그런데 너는 그만한 확신을 가지고 있을지 의심이 되구나.”





“네?”

“넌 방금 전에도 제대로 반항 한 번 못한 채 도망가 버렸잖아.”

“그건….”

“이 작은 상황마저 피하는 네가 나중에 더 큰 현실의 잔혹함에 부딪혔을 때 흔들리는 너 자신을 설득할 수 있을까?” 태운은 그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순간 자신이 너무도 나약한 존재처럼 보였다.

“네 목표가 현실과 동떨어져 시작하기가 어렵다는 점은 이해한다. 나도 그것으로 많이 고민했었으니까.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시작했다고 쳐. 넌 꿈을 이어나갈 자신은 있는 거니? 나는 그걸 묻고 싶었어. 예술도 결국은 경쟁사회다. 냉정하게 말해 읽히는 작품이 있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작품이 있다는 말이야. 그 경쟁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이 길이 네 길이라고 확신하니? 견딜 수 있겠어?”

“잘 모르겠어요.” 태운은 자신 없이 대답했다.

“그럼 조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거 같구나.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뭔지, 그리고 그것을 얻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길 바란다.” 도문호 선생님은 방에서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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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왼손잡이 [7화]









태운은 선생님이 나간 뒤에도 계속 성실반에 있었다. 그는 돌아다니다가 준억의 이름이 적혀져 있는 자리에 앉았다. 책상에 펼쳐놓은 갖가지 책을 넘겨봤다. 수학의 정석과 언어 오감도 문제집이 보였다. 또박또박한 글씨가 두 문제집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었다. 태운은 문득 자신이 준억의 숨겨진 치열함을 엿보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동안 준억은 취미로 공부하는 듯한 인상을 풍겼고 태운은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었다. 하지만 도문호 선생님의 말대로 세상 사람들은 나름대로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과는 다소 다른 존재처럼 비춰졌던 준억도 그것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태운은 기분이 착잡해져서 바깥 공기를 쐬기 위해 창문을 열었다. 바람이 그의 이마를 타고 준억의 책 페이지를 파르르 넘겼다. 창문밖에는 통은 가늘지만 잎은 무성한 세 그루의 나무가 사이좋게 자리 잡고 있었다.





“뭐하고 있니?” 태운은 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의 뒤에는 어느새 준억이 있었다.

“생각하고 있었어.”

“무슨 생각?”

“왜 인간은 합리적이어야 할까…?” 태운이 중얼거렸다.

“모두 나에게 자꾸 합리적인 걸 강요해. 네 말 듣고 나만의 길을 갈 거라 결심했고 중찬 덕분에 그 길이 현실과 타협이 가능하다는 것도 깨달았는데 여전히 부모님은…. 성적만 신경 쓰고 있어.” 준억은 대답하지 않았다.

“소설가가 된다는 꿈이 그토록 비합리적인 선택이야?”

“아니지, 글만 안 쓴다면 작가는 정말 최고의 직업일거야.” 준억이 대답했다. 태운은 말을 이어나갔다.





“인생을 버리는 선택이냐고. 아니 비합리적이면 또 어때?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 순 없는 거야? 이런 나약한 생각, 해봤자 답 따윈 나오지 않는다는 거 알고 있어. 그리고 내가 꿈을 따라가기로 결심한 것도 알아. 하지만, 내가 아무리 마음을 굳세게 먹어도, 다른 사람들의 이목이 나를 무너뜨려버려. 병신이지? 도문호 선생님에게 꿈을 잃은 인간을 경멸한다고 그렇게 소리를 질렀는데 정작 나는 내 말과 다르게 행동하니.” 태운의 말에 준억은 얼굴을 돌려 창문을 올려다봤다.

“철학자는 죽은 직업이야. 더 이상 철학만으로 먹고 사는 시대는 지났어. 넌 순수한 철학자를 본 적이 있니? 작가는 죽을 직업이야. 곧 글 쓰는 것만으로 살아갈 사람은 없어질 거야. 그렇다고 괴로워하진 마. 작가가 없어지는 이유는 필요 없어서가 아니라, 세상 사람들 모두 작가가 되기 때문이니까.” 준억은 잠시 숨을 가다듬고 다시 말을 이었다.





“니체는 인류가 아직까지 노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했어. 자신을 위해 하루의 3분의 2 이상을 쓰지 않는 자는 노예일 뿐이라고 보았거든. 데미안에도 니체에 대해 나오지. ‘나는 자유로웠다. 나 자신을 위해 온 하루를 쓸 수 있었다. 교외의 오래된 낡은 집에서 조용하고 아름답게 지냈다. 니체와 함께 살았다. 그의 영혼의 고독을 느꼈다. 그와 함께 괴로워했다. 그토록 가차 없이 자신의 길을 걸어갔던 사람이 존재했다는 것에 나는 행복했다.’

니체는 윤리를 중력의 악령에 빗대어 봤어. 높이 도약한 사람은 중력 때문에 그만큼 처참하게 곤두박질치지. 여기서 중력이란 약한 자들이 정해놓은 한계, 편견, 제약이라는 거야. 세상의 평가에 너무 신경 쓰지 마.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투명한 병에 갇힌 개구리일 뿐이니.” 준억이 말했다.

“진지한 이야기는 이제 그만할까?”

“알았어.” 태운이 대답했다.

“그건 그렇고….” 준억이 느닷없이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네가 퇴학당했다는 소식 들었니?” 태운은 준억의 말에 놀라 다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준억이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자 태운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 준억이 말을 이었다.

“난 가봐야겠어.”

“어딜?”

“선엽과 함께 그림을 그리기로 했어.”

“응? 바쁘다고 하지 않았어?”

“하고 싶어져서 말이야.” 준억은 짧게 대답하고는 성실반을 나가버렸다. 준억의 말을 다 듣고 나서야 태운은 깨달았다. 준억이 그림을 그리러 가는 이유를, 그리고 그 자신의 이유를. 태운은 교무실로 뛰어갔다. 선생님에게 말해주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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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왼손잡이 [8화]









“선생님.” 태운이 교무실에 들어갔을 때는 수업종이 친 뒤라 다른 선생님은 수업하러 가고 없었고 도문호 선생님만 있었다. 그는 태운을 쳐다봤다.

“선생님 말씀이 맞아요. 저는 경쟁을 이길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요. 그러나 선생님 질문의 본질은 그게 아니었어요. 선생님은 제게 그 경쟁을 견딜 자신이 있냐고 물으셨어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 있냐고 물으신 게 아니라요. 그런 건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문제일 뿐 중요한 건 제가 시련을 견디면서 원하는 일을 꾸준히 할 수 있겠냐는 물음이었죠.

저는 그 물음에 대답할 수 있어요. 선생님 말대로 전 나약한 인간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대신 그만한 열정을 가지고 있어요.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하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일을 하는 데는 강인하든 나약하든 상관이 없으니까요.” 태운은 횡설수설 말을 뱉어놓고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선생님은 갑작스런 말에 잠시 놀란 듯 했지만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너를 볼수록 내 학창 시절이 생각나네.” 태운은 이 말을 듣고도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더 이상 태운에게 도문호 선생님은 인생의 패배자가 아니었다. 그에게 닥칠 인생의 전철을 먼저 밟았던 증언자였다. 선생이었다.





“나도 너처럼 고민을 많이 했었어. 열정은 있지만 경쟁에 대한 압박감은 떨칠 수가 없었지. 사회의 시선도 두려웠고 나 자신에 대한 믿음도 없었어. 그래서 중도에 포기했던 거고. 너는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했다. 포기할거면 지금 포기하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해서 너를 몰아붙였던 거야. 이 작은 시련도 이기지 못한다면 넌 꿈을 좇을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거든.

하지만 지금은 내가 잘못 생각했던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는구나. 네 말대로 먹고 살아야 한다는 쓸모 있음에 대한 강요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내가 참되게 나로서 살아갈지 고민했어야 했는데 말이야. 이 점에 대해 너에게 사과하고 싶구나. 너에게 쓸모의 경쟁을 강요한 것에 대해서, 미래의 편안함을 빌미로 현재의 열정을 식힐 것을 강요한 것에 대해서.”

“선생님도 늦지 않았어요. 저 그때 선생님의 글을 봤어요. 왜 쓰셨던 소설들을 버린 거죠? 다 썼으면 투고해보시지 그랬어요.” 태운의 말에 문호 선생님은 쓴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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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왼손잡이 [7장 완결]









“퇴고를 마친 장편소설이 있었지만 출판사에 갈 때마다 퇴짜를 받았다.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였지. 그들을 탓하는 건 아니다. 상업성이 없는 작품은 내놓지 않는 게 당연해. 하지만 그걸 쓰는 건 자유였어. 나는 그 둘의 차이점을 몰랐다. 상업성이 없는 작품은 쓸모없는 상품이지만 그 자체로 열정이 담겨진 것을 몰랐어. 단지 어떻게든 쓸모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 글을 포기했었고 국어 선생이 되었던 거야.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네 말을 들으니 새로 시작하고 싶어졌구나.”

“소설을 다시 쓰시겠다는 말씀이세요?” 태운이 물었다.





“아니. 네가 몇 년 동안 묵혀뒀던 감정을 꺼내주었어. 하지만 그때와는 조금 달라. 그때는 소설을 향한 열정이었다면 이제는 삶에 대한 열정이야. 그동안 무기력하게 너희들을 가르치고 살아왔던 것의 반성이랄까. 열심히 수업에 임하마.” 태운은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예전에 태운이 준억에게 소설을 쓰겠다고 말했을 때, 준억은 그에게 자신이 썼던 글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태운의 선택을 지지해주었다. 하지만 정작 준억의 위치에 자신이 서게 되자,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랐다.

“그건 그렇고…. 네 어머니의 의견에 학교 측도 동의해서 자습시간에 소설을 쓰거나 읽는 건 금지되었단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선생님이 아쉬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그렇군요.” 태운은 애써 무심한 척 말했다.

“그래도 쓸거니?”

“….” 태운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한테는 솔직하게 말해도 좋아. 이르지 않으마.”

“네, 쓸 거예요.”

“그렇다면 넌 이제 국어 심화반의 학생이다.”

“네?” 태운은 되물었다.

“각 과목별로 실력이 뛰어난 애들을 모아 가르치는 심화반 제도가 있다는 건 너도 알고 있을 거다. 학교에서 나에게 국어 심화반을 맡아달라고 하더구나. 자습시간에 넌 심화반에 내려와서 수업을 하게 될 거야. 거기서 자습도 하게 될 거다. 내가 감독하지. 그곳에서 네 인생의 공부를 하렴.” 태운이 우물쭈물 감사의 말을 꺼내려고 할 때 선생님이 자리를 떴다. 선생님은 그럼 그때 보자는 말을 던지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선생님, 나중에 제가 쓴 소설 읽어주실 수 있으세요?” 그러나 선생님은 태운의 외침에 응하지 않았다. 태운이 다시 큰 소리로 말하려고 할 때 선생님이 사무실 문을 열며 먼저 소리쳤다.

“내일 저녁 자습시간에 쓴 글을 가져오렴.” 그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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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

제8장 젊은 문학도의 사회 & 제9장 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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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우리들의 비겁한 영웅 & 제11장 크로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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