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토끼]

포우웰은 허리를 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참 동안 감자를 캐다보니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동료인 클라크는 흙투성이가 된 채, 쉬지않고 감자를 캤다. 녀석의 바구니는 알이 굵은 감자로 가득했다. 동료지만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생존을 위해 함께 있는 편을 택했을 뿐, 유대감은 깊지 않았다.

감자밭은 반쯤 무너진 건물 한 가운데 있었다. 동쪽 지구 제 3구역 25 반장에 의해 관리되는 밭 중에 하나다. 한낮에도 관리인 없이 감시카메라로 관리되는 ‘위험 수준 3’인 곳이다. 주의 잔해는 4m 정도 밖에 되지 않고, 창문과 문은 모두 부수어져 있다. 천장은 무너져 하늘이 훤히 보였다. 감자가 자라기엔 좋은 환경이지만, 목숨을 잃기 딱 좋은 환경이기도 하다.

포우웰은 감자를 다시 캐기 시작했다. 이렇다 할 교육도 못 받아 몸으로 때울 수밖에 없다면, 식량 지원일이 제격이다. 클라크도 마찬가지 이유로 지원했을 것이다. 그리고 몸으로 때우는 일 중에는 식량 지원만큼 벌이가 괜찮은 일도 없다.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괴물 토끼가 출현한 이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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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토끼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다. 정말 급작스럽게 대도시 한복판에 갑자기 나타났다.

당시를 촬영한 영상이 유투브(Youtube)에 올라와 많은 이가 괴물 토끼의 모습을 보았다. 6m 정도 되는 키에 토끼지만 사람처럼 두 발로 직립 보행을 했다. 생김새는 토끼에 가까웠지만, 완전한 토끼는 아니었다. 원숭이의 손발처럼 다섯 개의 자유로운 손가락을 갖고 있었다. 눈이 붉고 귀가 큰 것은 토끼를 닮았지만 사람처럼 움직였다.

하지만 가장 이질적인 것은 식성이었다. 초식 동물인 토끼와 영 딴판으로 괴물 토끼는 사람의 피를 마셨다. 개구리처럼 긴 혀를 쏘아 피를 마셨다.

영상은 짧지만 자극적이었고, 온 세상은 충격에 빠졌다. 몇 시간 정도는 합성 논란이 일었지만, 괴물 토끼는 대도시 한복판에 주기적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가 증명될 때까지 충분히 머물렀다. 영락없는 현실이었다.

괴물 토끼는 원숭이처럼 벽을 자유자재로 탔고, 매우 민첩하게 사냥하여 사람을 잡아먹었다. 희생자의 휴대폰에 남은 영상을 확인하면, 창문에 갑자기 나타난 붉은 눈과 빠르게 뻗어오는 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비닐 팩에 담긴 음료를 빨아먹는 것 같은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피해자 시체에 남은 괴물 토끼의 세포를 분석했으나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외계에서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이 지배적이었다.

괴물 토끼를 막기 위해 군대가 동원되었다. 하지만 의미가 없었다. 소총부터 박격포까지 어떤 것도 괴물 토끼에게 피해를 주지 못 했다. 핵무기 이야기까지 나왔지만, 그러자니 핵 피해를 입을 지역이 너무나도 광범위했다. 인근 도시 인구까지 포함하면 수천만 명. 대피할 곳도 대민지원을 할 방법도 없었다.

모두가 포기할 무렵, 또 다른 괴물이 나타났다. 키는 괴물 토끼보다 1m 정도 더 컸고, 초록색 개구리를 닮은 괴물이었다. 식성은 괴물 토끼와 비슷했지만, 사람을 통째로 삼킨다는 점이 달랐다.

거대한 재앙이 서로 만나자, 오히려 희망이 피어났다. 둘은 영역 싸움을 하는 개처럼 서로를 죽일 것처럼 싸웠다. 인류는 처음으로 괴물 토끼의 상처를 볼 수 있었다. 인류는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점점 괴물 토끼가 유리해졌다. 덩치나 힘은 괴물 개구리가 유리했지만, 괴물 토끼의 영악함을 따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인류는 두 괴물의 격투가 심해지는 것을 노리기로 했다. 언젠가는 둘 중 하나가 목숨을 잃을 것이 분명했다. 둘 다 약해진 순간에 총공격을 하기로 국가 연합은 결정했다.

화창한 봄날, 괴물 개구리가 식사 중인 괴물 토끼를 습격했다. 사방에 피가 튀었고 끔찍한 비명 소리가 퍼져나갔다. 준비 중이었던 탱크, 박격포, 전투기가 모두 출격했다. 괴물 개구리가 괴물 토끼에 올라타 무지막지하게 주먹을 내리 꽂는 순간, 대도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화력이 쏟아졌다.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폭음이 수 분 동안 계속 되었다.

먼지 구름 사이에서 나타난 것은 괴물 개구리 시체를 번쩍 든 괴물 토끼였다. 괴물 개구리는 너덜너덜한 걸레처럼 되었지만, 괴물 토끼는 멀쩡해 보였다. 괴물 토끼는 그 자리에 모인 군대를 하나도 남김없이 파괴했다. 인류는 깨달았다. 괴물 토끼도 이 순간을 노렸다는 것을.

일부러 허점을 보여 괴물 개구리의 습격을 허락하고, 괴물 개구리를 없애기 위해 가능한 많은 병력이 모이길 원했던 것이다. 동시에 두 적을 없앤 괴물 토끼는 시체를 이용해 거대한 호수를 만들었다. 온갖 잔해를 둘러싸 호수를 만들고 가운데 괴물 개구리와 인간의 피를 쏟아 부었다. 일부러 도시 한 가운데를 선택해 만든 피의 호수는 아무리 봐도 경고였다.

나에게 대항하지 마라. 나는 너희들 위에 군림하는 존재다.

이후 다양한 시도가 있었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녀석은 너무 영악했다.

괴물 토끼는 정확히 처음 나타난 도시의 범위만을 머물렀다. 이 때문에 점점 대도시를 돕는 외국 국가 연합은 등을 돌렸다. 자국에는 피해가 없다는 것이다. 대도시가 속한 국가도 손을 놓았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비난 여론이 있었으나 곧 잠잠해졌다. 내 도시만 아니면 돼. 이기적이지만 현실적인 이유였다.

괴물 토끼는 대도시 외부로 나가지도 않았으며, 동시에 외부로 나가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대도시는 고립되었다. 국가 한 가운데에 고립된 독립 도시. 사람들은 살기 위해 오랜 삶의 방식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지하를 이용해 거대한 생활공간을 만들었다. 하지만 오랜 시일이 걸렸기 때문에, 지상에서 생활하기 위해 창문과 통로에 두꺼운 철문을 달았다. 괴물 토끼는 하루에 5명 이내의 인간을 섭취했다. 따라서 사형으로 괴물 토끼에게 보내는 형벌이 생겼다. 사형수가 모자랄 때는 지원자가 있었다. 늙었거나 병든 사람이 지원을 통해 할당량을 채웠다. 사회는 가족에게 보상을 했다.

짧은 시간이 지났지만 겉보기로는 안정적인 삶이 되었다. 하지만 속으로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우린 괴물 토끼에게 길들여진 것이다.

수천 만 규모의 거대한 인간 축사에서 괴물 토끼만이 진정한 자유를 누렸다. 이따금 5명의 정원을 채운 날도 괴물 토끼의 습격이 있었다. 한 명 정도의 인간을 해가 지기 직전까지 추격한다. 쥐를 가지고 노는 고양이처럼 인간을 가지고 놀다 탈진 직전의 인간을 잡아먹었다. 그리고 바싹 마른 시체를 거주지 근처에 두고 사라졌다. 두 가지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유희, 그리고 경각심 유지.

인류는 생존 이외에도 안전을 위해 스스로 담금질 했다. 지하의 안전한 공간은 권력, 재력, 혹은 뛰어난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만 허락 되었다. 빈민가는 지상에 위치했다. 그렇기 때문에 생존과 안전이란 모토로 더욱 분발했다. 빠른 성장이 괴물 토끼의 사육 아래에 이뤄졌다.

괴물 토끼에게 저항하는 세력도 있었지만, 소득은 없었다. 오히려 괴물 토끼에 의해 대규모 학살이 이어졌다. 괴물 토끼의 학살을 경험한 사람들은 스스로 억눌렀다. 대들지 마. 그냥 이렇게 살아!

수천만의 인류가 괴물 토끼에게 길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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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우웰은 감자 무더기를 건물 앞까지 끌고 왔다. 감자가 자꾸 쏟아져 애를 먹었다. 건물 앞에 있는 검사관은 감자의 수를 세고 상태를 확인했다.

[이 정도면 가격이…….]

[아뇨, 돈 말고 숙박권으로 주세요. 모자란 돈은 여기에.]

검사관은 두툼한 지폐를 세더니 ‘1일치 지하 숙박권’이라 쓰인 티켓을 주었다. 티켓 한 장이면 지하의 안전한 숙소에서 하루 묵을 수 있다. 위험한 식량 지원에 지원하면 이틀에 한 번 꼴로 지하에서 잘 수 있었다. 클라크는 모두 돈으로 받았다.

[그렇게 돈 벌어서 뭐하려고? 밖에서 자다가 토끼가 습격하면 어쩌려구? 곧 장난질 시작할 시즌인데.]

포우웰은 대답을 기대하지 않고 물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대답을 했다.

[이 돈으로 북쪽 지구로 갈 거야.]

포우웰은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클라크의 이야기를 들었다. 클라크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북쪽 지구 저항단체에서 이번에 생화학 무기를 하나 만들었어. 독성이 매우 천천히 퍼지는 대신에 효과가 아주 확실하지. 사람의 몸속에 0.3L 가량 넣어둬도 이틀 정도는 살아있을 수 있어. 고통스럽겠지만. 하지만 그 이후로는 확실한 죽음뿐이지.]

클라크는 미소를 지었다.

[독약의 가장 놀라운 점은 혈관이 아닌 소화관을 통해 들어가도 같은 효력을 발휘한다는 거야. 어떤 생물체라도.]

말을 마치자, 클라크는 작별 인사도 없이 뒤돌아 뛰어갔다. 포우웰은 소름이 끼쳤다. 이야기를 괜히 들었다 싶었다. 클라크가 계획을 시행하려면 얼마나 남았을까?

포우웰은 수중의 남은 돈 전부를 숙박권으로 바꾸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오늘 밤을 새더라도 감자 몇 바구니를 더 캐내리라 마음먹었다. 괴물 토끼는 죽지 않을 것이다. 다만 심한 배탈 뒤에, 끔찍한 보복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반드시 지하로 도망가야 한다. 살기 위해서.

포우웰은 클라크의 계획이 성공하리라 여길 수 없었다. 그도, 인류도 괴물 토끼가 준 ‘두려움’이란 사료에 의해 철저히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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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4일

제가 꾼 꿈을 소설로 바꿔 써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