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승 (出家僧) 

        진운(眞云) 스님은 고요 속에 차곡차곡 쌓이는 시간의 소리를 들었다. 진운 스님의 사산(寺山)은 치악산이었다. 머무는 암자는 아주 작아 두 사람이 지내기에는 조금 좁을 정도였다. 빽빽한 나무 틈에 눈 덮인 암자는 콩나물시루 속의 백설기처럼 보였다. 달빛이 닿지 않는 새벽 세 시의 어둠 속. 진운 스님은 몸을 일으켰다.

        차갑게 언 누비이불이 손끝에 스치는 기분이 낯설었다. 따뜻한 이불 속과 대비된 싸늘한 방은 바깥의 추위를 간접적으로 전해주었다. 진운 스님은 방문을 살짝 열었다. 고오오 하는 바람 소리와 함께 몇 송이 눈꽃이 들어왔다. 보이진 않지만 밤새 눈이 쌓였을 것이라 여겼다.

        하얀 입김을 내며 진운 스님은 잠자리를 정리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왔다. 깊은 어둠에 적응될 때까지 몇 번이나 눈을 깜박였다. 간간히 얼굴에 닿는 차가운 눈이 느껴졌다. 버선을 신고 걷자 뽀드득 뽀드득 눈 밟히는 소리가 살가웠다. 하지만 발에는 시린 한기가 전해졌다. 얼음을 깨 물을 떠온 진운 스님은 세안을 시작했다. 차가운 물이 몸서리치게 만들었다.

        산중의 밤은 바람 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산 중 바람소리는 도시의 소리와 달랐다. 나무 사이로 이리저리 춤추는 바람은 때론 목소리처럼 말을 걸곤 했다. 때로 산은 사람이 알아들을 법한 질문을 바람을 통해 건넸다. 그런 날이면 진운 스님은 명상 속에서 그 답을 찾았다. 구도의 길은 신비롭다. 어디서나 질문을 얻지만, 답은 자기 내부에서 얻어야 하는 것이었다.

        진운 스님은 신문에 불을 붙여 장작을 태웠다. 그리고 솥에 얼음물을 부숴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아침 공양은 수양의 일부였다. 두 사람 분의 쌀을 가늠하고 진운 스님은 밖으로 나섰다.

        달빛은 사라지고, 해가 미처 뜨기도 전인 새벽. 진운 스님은 기억에 의존해 밖으로 나섰다. 단단히 동여맨 옷 사이로 겨울바람이 비척이며 들어왔다. 언 손으로 싸리비를 쥐고 앞마당을 쓸기 시작했다.

        사르륵. 사르륵.

        눈과 언 모래가 싸리비에 닿아 흩어졌다. 좌우로 박자감 있게 움직이는 몸짓이 하나의 춤처럼 보였다. 진운 스님은 천천히, 그리고 차근차근 마당을 쓸었다. 그리고 산중 길을 쓸었다. 암자의 위치를 모른다면 쉬이 찾을 수 없는 길이다. 이 길은 치악산 등반 코스와 연결되어 있었다.

        손이 얼 때면 허벅지 사이에 손을 넣었다. 온기는 잠깐. 다시 눈을 쓸었다. 이마저도 눈이 다시 오면 쓸모없을 일이나, 할 수 밖에 없었다. 손과 발은 꽁꽁 얼었으나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나무 틈 사이로 햇빛이 살짝 보일 시간이 되어서야 기나긴 비질이 끝났다. 다행이 눈은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돌아보니 새하얀 세상 위에 좁지만 확실하게 이어진 갈색의 흙길이 드러났다. 진운 스님은 길을 따라 암자로 돌아갔다.

        밥을 짓고, 공양 받은 반찬을 소담하게 담아냈다. 매년 같은 날이면 진운 스님은 손님을 맞이했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수행하는 산사가 바뀌어도 어김없이 찾는 손님이었다. 진운 스님은 매해마다 더해지는 손님의 주름살을 떠올렸다. 매해 찾는 손님 때문에 진운 스님은 난처했었다.

        ‘세상과 인연을 끊고 출가 한들, 모정(母情)은 끊질 못 하는게야.’

        큰스님이 한 말이었다. 그 이후 진운 스님은 일 년의 단 하루는 찾아오는 이를 위해 비질을 하고 밥을 지었다. 자신이 겨울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손님의 산행도 한결 수월 할 텐데. 한 끼의 함께하는 식사를 위해, 손님은 고된 산행을 마다하지 않았다.

        진운 스님은 아궁이에 장작을 더 넣었다. 불티가 탁탁 소리를 내며 튀었다. 두 사람 분의 밥 익는 냄새가 향처럼 퍼지며 암자를 안았다. 새벽빛이 나무 틈바구니로 비집어 들었다. 진운 스님은 아궁이 앞에 앉아 언제 들릴지 모를 발소리에 귀 기울였다.

        설렘과 약간의 두려움으로, 손님을 기다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