쏴아아
푸욱

“크윽, 도,도대체 네놈이 무슨짓을 저지르는거냐!”

“너희들은 나를 배신했어. 죄라면 그게 다야.”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는 어두운 골목.
그는 그렇게 말하며 숨을 벅차게 몰아쉬고 있는 사내의 복부에 쑤셔 넣었던 칼을 거칠게 뽑아내었다.
이윽고 칼에 찔렸던 사내는 핏물을 비웅덩이에 섞어가며 쓰러졌고
그를 찌른 이는 이제는 시체가 되버린 그를 묵묵히 쳐다보다가 골목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새벽녘 폭우가 쏟아지는 날 벌어진 일이었다.











방에 담배연기가 자욱한 탓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탓인지 모르겠지만
모두 얼굴 표정이 좋지 않았고 분위기 또한 무거웠다.

방 안의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은
모두 갈색 가죽소파에 앉아 수심에 찬 얼굴로 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 중년 남자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 하고 있었다.
낡은 백열등만이 간간히 깜빡거리며
지금 이 방의 시간이 멈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담배연기가 막 창틈 나갈곳을 찾아내 그곳으로 향해가고 있을 때
조용히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우던 중년인이 말을 꺼냈다.


“그래... 치타는 결국 당했단 말이지...”

“네, 형님”

누군가의 대답에 형님이라 불린 남자는 잠시 눈을 감고 고개를 천장으로 향했다.
이미 몇 번이나 들어서 알고 있는 사실이건만 왜 이리 믿겨지지 않는지.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맨 처음 대답을 했던
그에게 대답을 했던 남자가 말을 이었다.

“...제 잘못입니다. 치타형님이 잠깐 담배를 사러 가신다 했을때 따라 갔어야 했습니다.”

“네 잘못이 아니다 코요태. 다 그녀석이 박복한 탓이지.”

“면목 없습니다. 형님. 형님과 그렇게 절친했던 의형제셨는데...”


큰 덩치에 작은 눈을 가진 코요테라는 남자가 그렇게 말을 흐리자
그의 뒤에 있던 왜소한 사내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도대체 어떤놈이...”


도대체 어떤놈이 붉은 피바닥 이라 불리던 타이거의
안암동 들짐승파를 건드릴 수 있단 말인가.
안암동 제일의 호걸, 참살이 나와바리의 군주라 불리우던 그가
자신을 지극히 따르는 어깨들만 모아 만든
그야말로 최정예중의 최정예의 집단이 아닌가.

지금이야 그가 말년에 들어 깨달은 바 있어 싸움을 기피하고 있다지만
그렇다 해도 아직 그들을 함부로 건드리는 자들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피리부는 쥐새끼’ 파를 몽땅 시궁창 강가에 쳐박아 넣은것도 그들이었고
‘브레맨의 사야차’라 불리던 나귀 더 킬러, 누렁이, 그레이브 캣, 치킨헤드를
이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한 것도 그들이었다.

안암동 들짐승파의 저력을 아는 이들이라면 그들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
요즘에는 그들과 라이벌 관계라 할 수 있는 ‘신촌 날짐승’ 파가 시비를 걸긴 하지만
그뿐, 그들 또한 그렇게 큰 마찰을 벌이고 있지 않는 상태였다.

그렇다면 정말로
‘도대체 어떤놈이’
대 안암동 들짐승 파 보스 타이거의 의형제 치타를
묻어버렸단 말인가?




분위기가 침중한 가운데 눈이 빨갛게 충혈되고 날쌔보이는 청년이 말을 꺼냈다.

“형님, 정말 송구스럽습니다.
내일이 형님의 탄신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다니...”
통칭 ‘레빗’이라고 불리는 사내는
보스의 심정을 떠보기 위해 조용히 말을 꺼냈지만
타이거는 계속해서 천장을 바라보며 묵묵부답 담배만을 태울 뿐 이었다.




타이거는 골초다.
하루에 세갑씩 주머니에 가지고 다닐 정도로 심각한 골초다.
그가 한창 날리던 시절에 항간에는
그의 힘의 근원이 ‘니코틴’이라는 말이 떠돌 정도였다.
그에게 지금의 위치와 담배 둘중 하나를 고르라면
그는 분명 담배를 고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그에게 조차 담배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속이 시커멓게 타 들어갈 때 까지 수수깡을 물어 태우는 듯한 느낌.
정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끊겠다.”

“...무엇을?”


매우 큰 덩치덕에 킹콩이라 불리는 사내가 조심스레 그의 보스에게 물었다.
그의 질문에 타이거는 잠시 눈을 들어 그를 쳐다보았고
킹콩은 잠시 움찔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타이거는 그에게 겁을 줄 생각은 없었기에
자신의 생각을 좀더 명확히 밝히기로 마음먹었다.


“담배를 끊겠다.”


담배를 끊겠다.
자신들의 두목이 담배를 끊겠단다.
꽤나 힘든 일이 될 것이다.
애주가, 애연가들이 왜 마약중독자들과 비견되는가.
막 그들이 혼란스러워 지려 할 즈음 타이거는 말을 덧붙였다.


“녀석의 원수를 알아 낼 때 까지.”













“자, 자, 형님! 여기 우울한 마이너스 파는 몽땅 날려버릴
이 레빗의 막강 춤 웨이브가 나갑니다!”

“우우!”

“개춤이다! 꺼져라!”

“뭐야, 이새끼들이?”

힙합인지, 재즈인지, 그것도 아니면 전통무용인지
도무지 탄생비화를 알 수 없는 막춤이 레빗의 몸으로 구현되었고
당연히 그것은 의외로 안목이 높은 조직의 일원들에게
철저하게 씹혀버리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야유소리로 연회장이 가득 차 가자
비쩍 마르고 눈꼬리가 올라간 남자가 낄낄거리며 레빗을 밀치고 중앙에 섰다.
그리고 좌중들을 향해 바이올린 케이스를 꺼내어 흔들어 대며 말했다.

“저런 눈깔뒤집히는 춤은 보지 말자구.
그나마 이중에 뭔가 좀 배운 것이 있는 이몸이 너희들한테 음악이라는 것을 들려주마.
이래보여도 내가 어렸을때 음악신동, 절대음감...
뭐 이런소리 듣던 몸이다.
잘 들어봐라. 사운드 오브 더 무식 ”

“사운드 오브 더 무식? 이 무식한새끼.”

“그 바이올린 케이스는 자폭용 폭탄이 들었냐!”

“까지마! 진짜 바이올린이야!”


폭스는 좌중의 야유에 그렇게 항변하고 바이올린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나, ‘어렸을때’ 신동은 ‘어렸을때’ 죽은 모양이었다.
조직원들은 바이올린으로도 디스토션 이펙팅이 가능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그에게 갖은 물건을 던져댔다.


타이거는 조용히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1년전 백록담 반달가슴파와의 전쟁에서 얻어낸
고급 와인 '웅담‘ 12년산을 따라 마셨다.



"얘들아 두목이 잔을 들었다!"

"예로 부터 두목의 생일 연회장에 온 사람중
살아나간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는 이야기가 있지.
오죽하면 오는 타이어자국은 많은데
나가는 타이어자국이 없냐는 질문을 하겠어?
전부 죽을때 까지 마셔라!"

"와아~"








비범한 자의 출생에는 항상 어떤 비화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타이거에게 그런 비화는 없었다.
그는 고아원에 태어났다.
정확하게는 태어난뒤 고아원에 간 것이지만
그 이전은 별 의미가 없었다.
비화랄 것 까지야 없는 흔하디 흔한 뒷골목 무뢰한의 출생비밀 이었다.



천애고아이기에, 그는 생일에 그다지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저 오랫동안 못보던 사람들 끼리 모여 사업이야기를 하고 담소를 나눈다.
혹은, 가식적인 선물을 받아들고 웃음을 지어 보인다.
그것도 아니면 자신을 열렬히 따르는 부하들의 환호를 받는다.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지루하고 상처뿐인 나날 중에서는
손에 꼽을 만큼 흥미있는 날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타이거는그다지 자신의 출생일을 싫어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그것은 레빗이 춤을 춰보겠다며
되지도 않는 막춤을 춰보여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폭스녀석이 한때 음악신동이었다며
바이올린을 꺼내들어 좌중의 고막에 심대한 타격을 준 것 때문도 아니었다.
바로 어제 걸려온 한통의 전화 때문이었다.


그가 어제 수면을 청하기 위해 샤워를 끝마치고 나왔을때
그의 핸드폰 벨이 울리고 있었다.
공중전화로 걸었는지 못보던 전화번호가
핸드폰 액정화면에 떴고 그는 아무 생각없이 핸드폰을 들었다.


‘내가 너의 원수다. 내일, 청계천 A창고 밑에서 기다리겠다.
혼자 나오도록.’

음성변조를 했는지 긁히는듯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타이거가 무언가 말을 꺼내려 하자 전화는 무정하게 끊겨버렸다.





그렇기에 그는 심기가 불편함에도,
이것이 함정임을 확신함에도 나갈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이 바로 산중의 마지막 호걸, 타이거의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저기 웃고 떠드는 순진한 녀석들에게는 말 할 수 없다.
굳이 전화기의 목소리가 혼자 나오라고 해서 뿐은 아니다.



그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녀석도 나와 1대1 담판을 기다리고 있다고.
아니, 1대1이 되지 않아도 좋다.
그저 녀석을 쓰러뜨릴 수 있다면.

타이거는 그렇게 생각하고 자신의 외투를 슬그머니 걸친 후
탁상위에 놓여있던 담배 한갑,
정확히 말하자면 담배 한가치가 들어있는 담배갑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놈을 쓰러뜨린 후 맛보기 위해서이다.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된 타이거는 조용히 정문으로 향했다.

“어디 가십니까 형님.”

하지만 타이거의 작은 소망은 무산되고 말았다.
눈치 빠른 레빗이 어느새 왔는지 그의 뒤에서 그를 불렀고
레빗의 형님, 타이거는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는 레빗에게 잘 말해 보내기로 하고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리고 그는 그 자리에서 멈춰버릴 수밖에 없었다.
어느샌가 그의 부하들 모두가 문앞으로 다가와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레빗은 씨익 웃어보이고 말했다.

“형님, 괜한 변명은 하지 마십시오.
그런 심각한 표정을 지을때면 항상 뭔가 일을 벌리지 않으셨습니까?”

“저번 의사당 철새무리 사건때도 그러지 않으셨습니까.
무턱대고 혼자 나가시려는걸 저희가 극구 말렸던걸 기억하십쇼 형님.”

폭스가 레빗의 말을 받았다.

“사실 몸이 근질거립니다. 같이 데려가 주십쇼. 그냥 떨거지만 처리하겠습니다.”

조용하기로 유명한 뚝배기까쓰가 말을 꺼냈다.

“에... 죽어도 데려가 주십쇼!”


모두가 한마디씩 꺼냈지만 정작 타이거만은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순간 그의 마음속에서 무언가 응어리 졌던 것이 풀어지는 듯 했다.

혼자서 그 무슨 짐이라도 혼자 지려 하는가?
그렇다 해서 자신의 마음이 가벼워 지겠는가?
잠시간 그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언젠가 이 조직을 만들때 맹세하지 않았던가.
어디든 같이 가겠노라. 그곳이 혹 지옥이라 할지라도.





타이거가 고개를 들어 말을 꺼내려 할 때였다.

쾅!

문짝이 부숴지며 파편이 타이거를 덥쳤고 타이거는 몸을 날려 나무조각들을 피했다.
이윽고 박살난 문으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밖에서 들어보니... 아주 쇼를 하던데? 신파극을 찍더구만?”

작은 키에 반대머리, 브라운 정장을 입은 사내는 그들을 한번 둘러보고 중얼거렸다.

“너 이새끼... 신촌 날짐승파 참새새끼아냐?”

“아~정말. 너무 유명해도 불편하단 말야.”

누군가의 욕설이 담긴 항의에 참새는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그리고 잠시 혼자 낄낄 거리고 웃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뭐 이제 들짐승파도 많이 죽었지.
보스는 늙어서 몸사리기 바쁘고...
그 날리던 치타는 칼침맞고 뒈졌다면서? 누구짓일까나...”

“설마 너희가...”

“아, 난 몰라. 난 모르는일 이구말구. 그리고 나 잡담할 시간 없는데 어쩌나.
난 너희를 쓸어버리러 온거야. 만담하러 온게 아니라고. 어이, 들어와”
참새의 마지막 말에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날짐승파 일원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두달전 흡수한 오작교 까치파 10형제들,
가락동 늑대를 긴병으로 때려죽인 두루미,
공작 깃털 밀수업자 까마귀,
닭대가리형제 꼬이치킨과 삼통 등등 쟁쟁한 인물들 이었다.

치타까지 죽어버린 지금의 들짐승파 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력이었다.
하지만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폭스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다 쓸어버리면 되겠네.”




“나 원 썅. 내일 물짐승파 슬로우 터틀이랑 쇼부 있는데 말야. 야, 묻어버려!”

레빗이 그의 말에 동조하며 말을 꺼냈고
마지막 외침에 들짐승파 전원은 날짐승파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윽고 연회장은 난장판이 되었고 또한 달려가려던 자세를 취한 레빗은
아차 한 듯 잠시 자세를 풀고 뒤에 있는 타이거를 보고 말했다.

“형님은 원래 가려 했던곳으로 가십쇼. 여기는 저희한테 맡겨두시죠.
안가시면 간을 배밖으로 꺼내버리겠습니다. 하하!”

말을 마친 레빗은 자신 또한 피투성이가 된 동료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숨이 막힐 듯이 어두운 창고.
거미조차 어두워 집을 짓지 않을 듯 빛이라고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아직 어둠이 눈에 익지 않은 타이거의 발소리만이
벽면을 때리며 작은 메아리를 울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잠시 멈춰섰을때 어디선가 작은 실소와 함께 말소리가 들러왔다.

“하핫, 역시 왔군. 역시 혼자왔어.
어차피 날짐승파 때문에 혼자 올 수 밖에 없었을테지만 서도말야.”

“누구냐...너.”

타이거는 어둠속에서 들려오는 말소리를 향해 질문했다.
하지만 목소리의 주인은 질문에 답하지 않고 다시 침묵을 만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분노한 듯한 음성으로 다시 외쳐왔다.

“누구냐고! 누구냐고 물었지!
제기랄! 그래, 나 따위는 네놈의 조직에서 아무짝에서 상관없는 놈이었군!”

퍽

상당히 화가난 목소리는 어느새 바로 코앞에 와있었고,
그 사실을 자신의 주먹과 타이거얼굴의 스킨쉽으로 알려줬다.




퍽퍽

"개새끼.”

욕설과 함께 다시금 쓰러져있는 타이거에게 발길질이 들어왔다.
그러는 사이 실눈을 뜬 타이거는
이제 어렴풋이 어둠이 눈에 익어 앞에 있는자의 얼굴을 알아 볼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을 발로 찬 자의 얼굴을 알아본 그는 신음과 함께 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배...배트, 쿨럭, 너...”

“맙소사, 이제야 알아보는군.
그래, 한때 들짐승파의 조직원이었던 배트이올시다 형님.
참을 수 없는 푸대접에 날짐승파로 가버린 배트라 이말입니다! 알아 쳐들었냐!”

배트는 그에게 다시한번 욕설을 퍼부었다.
그동안 일어나 몸을 추스린 타이거는 인상을 찡그리고 배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질문했다.

“치타를 죽인게 너냐.”

“그래, 그 자식을 죽인게 나다.
왜냐고? 왜냐니? 나는 날짐승파니깐. 특히 치타녀석 맘에 안들었거든.
힘 좀 있다고 설치고 다니면서 날 무시하고 다니는게 말야.”

“...무시한 적 없다. 치타녀석은 자신의 똘마니에게는 누구에게나 잘해 줬어.”

“지랄 한번 거창하군! 잘해줘?
녀석은 나를 출신성분도 불분명한 놈이라고 상대도 안해줬어.
쓰레기 취급했다고. 하지만 날짐승파는 달라. 나를 받아줬다고. 나를 인정해!”

“그건 네 생각일 뿐이다. 날짐승파는 너를 이용해먹기 위해 받은 것뿐이야.”

타이거는 그렇게 말하여 집중하여 기회를 탐색하였다.
배트 녀석이 저렇게 여유로운걸 보면 분명 무슨 수를 써둔게 분명할 게다.


그런 그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배트는 계속해서 흥분하여 외쳐댔다.

“그거야말로 네 생각일 뿐이지!
어쨌든 나는 이번 일 후로 중요한 자리를 얻게 돼 있다고!
영원한 숙적 들짐승파의 대들보 치타와 보스 타이거를 죽이고
조직을 허물어 뜨리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날.짐.승.파의 조직원으로 말야!”

“도대체 내가 어떤잘못을 한거냐.”

“몰라? 모르겠습니까 형님? 하하하. 이거 참...”

배트는 허탈한 듯이 웃은 후 자신의 가슴팍에서 무언가를 꺼내어들었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것이 아무래도 총인 듯 하다.
아마도 저것 덕에 겁 역시 많이 없어졌으리라.

“중동쪽 마피아인 곤충파 비틀즈한테서 직수입 받은거지. 이름도 랫잇비다.”

빡!

그렇게 말을 끝마친 그는 총으로 타이거의 머리를 후려쳤다.
타이거는 넘어지며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박스에 몸을 뉘옇고
배트는 그 모습을 보고 그에게 뚜벅뚜벅 걸어와 조용히 말을 하기 시작했다.

“글쎄 뭐랄까... 모두가 뛰어 저쪽을 넘어가고 있는데
마치 나만 따로 떨어져 어기적 어기적 기어가고 있는거 같다고나 할까.”




말을 잠시 끊은 그는 고개를 숙이고
타이거의 머리를 총으로 툭툭 치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날짐승파 전대 보스 알지? 지금 보스인 맥 도널드덕 말고 헤이트덕 말야.
그 사람이 나랑 똑같아. 맨 처음에는 신설동 백조파를 들어갔거든.
그런데 거기서 죽어도 그를 인정 안 하는거야.
실력은 뛰어난데 말이지, 너무 가오가 안 산다는 거야.
그래서 백조파에서 뛰쳐나와 우이동 오리파로 들어갔지.
그런데 더 가관이란 말야 이게. 오리파가 원래 3류파잖아.
오히려 너무 뛰어난 실력이라 자신의 조직에 화를 부를까봐 멀리한거지.
결국 그는 백조파에서도, 오리파에서도 버림받은거야.”

푸념을 하던 배트는 타이거의 입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잠시 푸념을 멈추고 그에게 질문했다.





“응? 뭐라는거야?”

“...달러.”

“뭐가 다르다는거야?”

“그는 오리파의 오리도, 백조파의 백조도 아니다.”

“뭐야 그게. 내가 한 말이랑 똑같잖아.”

“그는 날짐승파의 보스였던 헤이트 덕이다.
너 따위 개념없는 쓰레기와는 격이 다르다.”







배트는 타이거의 말에 차가운 눈으로 총을 겨눈 후 말했다.

“...다시 지껄여봐.”

“격이 다르다 했다. 헤이트덕은 적이었지만 훌륭한 놈이었다.
진정 자신의 날개로 날줄 아는 녀석이었지.
자신의 날개를 쓸 줄 모르고, 자신의 발을 쓸 줄 모르는 네놈과는 다르다!”

“미친자식!”

철컥!
퍽!

타이거는 그가 총을 장전하자마자 바로 상체를 일으켜 그의 손목을 비틀고 복부를 가격했다.


배트는 신음성을 내뱉으며 총을 떨구었고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이내 일어서 자신을 내려치려는 타이거의 주먹을 피해
그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내려찍었고 타이거 또한 바닥을 구르게 되었다.

“크아아!”

그가 비틀거리며 일어서자 마자 배트가 달려들었지만
타이거는 가볍게 이동하여 다시한번 그의 안면에 주먹을 꽂아주고는
옆에 놓여있는 총을 들어 엎어진 그의 뒤통수에 갔다 대었다.

“좀 더 자신을 자각하고 덤벼라.”

“제길! 나도 알아! 어차피 들짐승파를 처리하고나면
나 또한 날짐승파에서 찬밥 신세가 되리란걸!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내가 할 수 있는일이라고는 그런 것 뿐이야. 그런것밖에 시켜주지 않아.
새처럼 잘 날 수도, 맹수처럼 잘 뛸 수도 없어.
오직 어중간하게 주변을 떠돌뿐이야!”

차가운 총구에 뒤통수를 붙이고 그는 미친 듯이 외쳐댔다.
타이거는 총을 그의 머리에 댄 채로 묵묵히 그 비명을 들어줄 뿐이었다.







그리고

타앙!

하는 소리가 창고에 울려퍼졌다.









잠시뒤, 배트의 실눈엔 눈앞의 상자에 뚫린 작은 구멍에서 연기가 나는 모습이 보였다.




타이거가 말했다.

“들짐승파를 배신한 배트는 죽었다. 이제 넌 오직 날짐승파의 배트일 뿐이다. 어서 꺼져.”

그렇게 말 한후 그는 총을 땅바닥으로 내던지고 작은 박스 위에 걸터앉았다.
배트는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지 그저 멍하니 바닥에 누워있었다.



타이거는 잠시 코트를 뒤적거리고는
담배 한가치가 꽂혀있는 담배갑을 꺼내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다시한번 코트 주머니를 뒤지다가는 피식 웃었다.

‘라이타를 안가져 왔군.’

급하게 나오느라 그런것일까.
사실 타이거 담배피던 시절엔 라이터가 발에 밟힐듯 많았는데,
지금은 조직원들이 라이타를 다 치워놨을게다.

담배를 챙길때의 일을 생각하자 부하녀석들의 일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워낙 자존심이 센 놈들이라 지는걸 죽기보다 싫어할텐데 말이다.

하지만 녀석들은 그 일을 자신들에게 맡기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두목이 할일은 오직 하나뿐, 믿는 것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속이 한결 편해진 타이거는 입에 미소가 걸리는 것을 느꼈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담뱃불이 있었으면 더없이 기분이 좋을텐데,
하고 그는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담뱃불을 가지고 있을만한 사람이 하나 더 있다.
그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이봐 배트, 담뱃불 가진거 있나?”






타앙

창고에서 울려퍼진 두 번째 총소리.
그리고 두 번째 탄환은 정확히 타이거의 왼쪽 가슴을 통과해 뒤편 나무상자에 박혔다.








......




...





환웅 선생님.
선생님은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철없던 학창시절,
쑥마늘 고등학교를 결국 마치지 못해 중졸이 전부인 타이거의 학력.
항상 급우들에게 "떡하나" 로 통칭되는 상납금을 받으며 교내를 호령할 때
그에게 호통치는 유일한 선생님이었다.

항상 재수없어하긴 했지만 유일하게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선생님이기에
타이거는 항상 그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품고 있었다.
결국 그가 자신이 짝사랑하던 전교1등 베어걸과 결혼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도
뻑치기해버리자는 주위 부하들에게 환웅 선생님에 대한 변명을 해줄 정도였다.
뭔가 오해가 있을거라고.





..........



...





언제한번 꼭 뵙고 싶었는데...


타이거의 눈엔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배트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는 조용히 자신의 머리로 총을 가져다 댔다.


타앙


그렇게 창고에서는 세번째 총소리가 울려퍼졌다.




.....















그렇게 타이거의 생일날 밤은 깊어만 가고 있었다.







***







산~중~   호걸이라하는 호랑님의 생일날이 되어
각색짐승 공~원에 모여 무도회가 열렸네~

토끼는~ 춤추고~ 여우는~ 바이올린
찐~짠 찌까찌까 찐짠 찐짠찐짠 하더라~

그중에~ 한놈이~ 잘난체~ 하~면서
까~불 까불까불 까불 까불까불 하더라~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6 21:0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