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습

                                                                                                                                                            by. YouZine

K는 집으로 향한다. 그곳은 좁고 어두운 주제에 K에게는 자궁과도 같은 곳이어서, 그에게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언저리에서 항상 그를 기다리는 묵묵함이다. 하지만 정작 문을 열면 기다리는 이 하나 없는 뭉클한 공간이다. 그래도 다행이야.
 무언가를 향하고 또 누군가를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 K는 낯선 이들의 어깨, 가슴 그리고 다리를 지나 걷는다. 걷는다. 그렇게 버스 정류장에 닿는다. 수많은 사람들은 각자의 갈 곳을 향해 각자의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고 K역시 그들 중 하나가 된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K의 적이었다.


  K보다 먼저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 편히 앉아 가기를 고대하는 사람들. K와 같이 시험을 보고 나온 젊은 사람들. 불쾌한 미소, 마음에 거슬리는 유쾌한 통화 그리고 최신이랄 것도 없는 스마트폰 까지. 그들의 음성과 웃음 그리고 외침 따위들은 차곡차곡 쌓여서 K에게는 두려움이 되고 또 불행이 되었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간다.
  K는 피식 웃는다. 그의 적들은 모두 잠시의 외로움을 견뎌내지 못하고 있었다. 외로움에 있어서만큼은 그들 모두 K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잠시 혼자인 것이 마치 시험 문제라도 되는 듯 어려워하고 있는 이들. 이내 스마트폰 따위에게서 위로를 구한다. 모두가 각자의 새로운 끈을 잡는다.


K는 그것이 오히려 외로움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외롭게 하고 있구나. 가여운 사람들 또 우리들. 여기 외로움은 구름 같은 것이고 안개 같은 것이어서, 우리는 모이면 모일수록 서로의 외로움을 짙게 하는 역설의 관계에 놓여 있구나. K는 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한 버스에 오밀조밀 부비고 탄다 해도, 그들이 모르는 외로움은 결코 가시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오히려 짙어진 외로움은 저마다의 문자와 채팅 그리고 통화음의 혼탁함 속에서도 뭉게뭉게 그 농도를 짙게 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자 이들과 함께 버스에 타는 것이 두려워 졌다. 손에 꼭 쥐고 있던 김연수의 책도 아무런 도움을 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렇게 버스가 한두 대씩 구름들을 퍼가기 시작하자 하늘엔 노을이 선명했다. 무심히 어디론가 떠나버리는 구름, 이 사람들. 붙잡지 못한 하늘은 쓰고도, 노랗게 짙어가고 있었다. 뜰채로 한 움큼 구름을 건져내간 자리에는 그만큼의 적막만이 남았다. 움푹하게 패인 도시의 허공에는 또 다시 이어지는 기다림 뿐이었다. 그리고 그 여백은 운치를 즐길 틈도 없이 다른 공기들이, 다른 이들이 와서 꾸역꾸역 자리를 채웠다. 그러다 문득,


   K는 정류장에 혼자 남았음을 깨닫는다.

  
  그에게 남은 건 노을뿐이라 생각했을 때, K는 새삼 마음이 저려온다. 저 구석에서 때 이른 동이 터오는 것처럼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것이 새록하다.


  그것은 분명 또 다른 색의 외로움이었다.


  외로움은 그렇게 외로움을 사색하던 K에게 논증과 비교의 결론으로 오롯이 고개를 내미는 것이 아니었다. 마음을 단단히 먹은 이의 주머니에 들어있는 송곳 같은 것 또한 아니었다. 그것은, 문득 짙어가던 노을처럼 무심히도 주어지는 무엇이었다. K는 그렇게 양손에 외로움을 한가득 부여받고 매콤한 콧등을 훔쳤다.



구름을 싣고 하나 둘 떠나버린 버스는 결코 뒤를 돌아볼 것 같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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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8 23:4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