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를 하기 위한 장소는 과방도 있고 동아리방도 있지만, 역시 열람실이 가장 좋다. 과방이나 동아리방에서 과제를 하려면 할 수 있으나 역시나 사람이 많이 있으면 그러기도 쉽지 않다. 아무것도 몰랐던 새내기 때는 동아리방에서 과제를 하려다 스타크래프트 래더 점수만 올렸던 기억이 난다. 결국 그 학기 학점은 적절하게 C+로 도배가 되었다.
이학관의 빨간 기둥을 지나서 과학도서관 쪽으로 향하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하나스퀘어가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훼미리마트가 있고 그 옆에 고대빵, 그 옆에 버거킹, 그 옆에 커피숍, 그 옆으로 쭉 가면 열람실이 있다. 열람실에 가기 위해서는 키오스크에서 좌석배정을 받아야 하는데, 4대 중 두대는 고장이요. 한대는 학생증을 읽을 수 없고, 한 대가 남는데 그 한 대는 언제나 줄이 길게 서 있으며 맨 앞에 있는 사람은 언제나 그 키오스크로 '유비트'를 플레이하는 듯 했다. 그러면서 옆에서 좌석을 반납하고자 하는 사람이 등장하면 비켜주곤 하면서 약간씩 줄이 빠졌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리듬게임은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빈 좌석이 있는지만 확인했다. 역시나 빈 좌석은 없었다. 내가 3월의 다소 추우면서도 새싹들이 피던 시기에, 학생증을 처음 받아들고 하나스퀘어로 향하던 그 때도 빈 좌석이 없었는데. 그것은 어떠한 시험도 없는 지금에도 계속되었다. 애초에 일반화학이라든지 일반물리학 시험이 있는 때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 중앙도서관까지 꽉 차버리는데 무슨 기대를 하겠는가?
하지만 정말로 이상한 일이었다. 유리창으로 보이는 하나스퀘어 열람실은 빈 자리가 곳곳에 보이는 그런 곳이었는데, 어째서 키오스크는 빈 좌석을 내뱉지 않는 것인가? 그것에 대해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지만 그들도 알 턱이 없다. 나도 키오스크에 줄을 서 있는 많은 사람들처럼 "유비트"를 한다면 자리를 얻어 하나스퀘어 열람실을 쓸 수 있겠지만, 딱히 그러고 싶진 않다. 중앙도서관으로 향한다.
애기능 캠퍼스와 본교 캠퍼스의 마음의 벽이며 또한 물리적 벽을 형성하는 안암역 4번출구 부근의 언덕을 내려가던 중 전화가 왔다. 참살이길에서 술 한잔 하지 않겠냐는 전화였다. 그런 제안을 마다할 내가 아니었기에, 안암역 사거리에서 참살이길 쪽으로 들어간다. 험준한 계단을 내려가니 웬일로 사람이 많이 모였다.
칵테일 바라 그런지 맛은 음료수 같지만 알콜 함량은 높은 술을 엄청나게 마셔서 그런지기분이 좋다. 이 기분이라면 과제가 잘 될것 같아서 친구들과 헤어진 뒤 4번출구 쪽으로 향한다. 평소와는 다르게 이 길이 전혀 힘들지가 않다. 이공계 북문을 지나 하나스퀘어로 들어가면서 얼핏 보니 역시나 사람이 어느 정도 있었으나 자리는 더 많아진 듯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 한걸음에 키오스크 앞까지 달려가서 학생증을 인식시켰으나 역시나 자리가 없었다. 어떻게 이 시간에도 자리가 없을 수 있단 말인가? 분명 누군가가 밤에 몰래 와서 좌석을 마구 연장하고 가는 것이 분명했다. 이왕 온 김에 키오스크 뒤에 몰래 숨어서 혼을 내 주기로 했다.
잠시 숨어 있으니 적어도 50명은 넘어 보이는 사람들의 무리가 키오스크로 향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키오스크에 서서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좌석연장이었다. 옳타쿠나 싶어 혼을 내 주기 위해 마지막으로 준비를 하며 일어나기 위해 몸을 숙이는 순간 나는 좌석연장을 하던 사람의 발 부분과 눈이 마주쳤다. 발이 있어야 할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일어나 보니 하나스퀘어의 원형 의자였다. 보아하니 경비가 키오스크 뒤에서 정신을 잃은 나를 업고 의자에 앉혔으리라. 키오스크는 역시나 사람들로 가득했다. 내가 쓰러진 것을 보고 안심하며 좌석연장을 했으리라. 나는 어이가 없어 그만 웃고 말았다. 나와 내 친구, 그리고 이공계 학생들이 겪었던 좌석부족 사태가 귀신들의 농간인 것과, 귀신들이 어째서 열람실 좌석에 집착하는지 이해가 안되서 말이다.
시간을 보니 10시 20분이었다. 2교시 수업은 교양관이니 이제 출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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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 앞부분은 괜찮은 것 같은데 뒷부분이 영 아닌거 같군요. 창게 데뷔작이지 말입니다.
*유비트 : 오락실용 게임기의 이름임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7 05:59: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