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을 하기 전에

먼저 당신은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야한다. 그 말을 하기 전에.
그녀가 '여보세요.'라고 말을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그 말을 하지마라.
그냥 자연스레 그녀의 안부를 물어라.
점심은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짜지는 않았는지, 또 너무 달지는 않았는지.
저녁은 아직인지, 무엇을 먹을 생각인지 그녀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네가 그 말을 그녀에게 하기 전에 그녀는 전혀 몰라야 한다. 그 말을 하기 전에.
'차가운 밤공기가 마시고 싶다'며 '혼자 걷기 뭐하니 나와달라'고 그렇게만 말해라.
그녀가 거절해도 상관은 없으나 너의 진심이라는 것만 담아서 말해라.
별이 보이지도 않는 까만 밤에 달빛조차 빛나지 못하는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그녀와 걷게 된다면 너는 기다려라. 아직. 그 말을 하기 전에.
그녀의 두 볼이 차가워질 때를 기다려. 절대로 둘 사이에 흐르는 침묵의 끈을 끊지 마라.
아무도 없는 그 곳을 지나게 된다면 잠시 너는 아무 말도 없이 발걸음을 멈춰라.
그녀 역시 가만히 서서 널 뒤돌아볼때까지 넌 그저 서있어라. 그녀를 보며.
너에게 그녀가 다가오기 시작하면 준비를 해라. 허나, 아직 여전히 기다려라. 그 말을 하기 전에.
네 앞에 그녀가 널 바라보며 무슨 일이냐고 묻거든 너는 그녀를 꼭 안아라.
저항하는 그녀가 네 두 손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잠시간 그녀와 실랑이를 해라. 너에게서 벗어나려는 그 몸짓이 멎을 때까지.
넌 더욱 세차게 힘을 주어야 한다. 절대로 그녀를 놓쳐선 안된다.
그렇게 그녀의 몸부림이 사라지면 너는 그녀를 안은채 그녀의 귀에 속삭여라.
그러나 그 말을 하기 전에, 그 순간에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라.
그 말을 하기 전 이 모든 것을 지켰다고 해도 넌, 다시 생각해라.
아무리 네가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해도, 지금 이 순간, 넌 그녀에게 그 말을 뱉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해야한다. 그렇게 그 말을 해야겠다는 확신이 들면 그 순간 이제, 그때
그녀 귀에 그 말을 조용히 하고선 그녀의 차가운 볼에 흐르는 그 눈물을 그저 흐르게 둔 뒤
너는 그녀를 그 곳에 버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절대 어떠한 내색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나라.
네가 몇 발자국 걸어간 뒤 네 뒤의 그녀가 쓰러진다고 해도 넌 절대 뒤돌지 말아라.
그녀가 바닥에 검붉은 원을 그려도, 그녀의 입술이 파랗게 물들어도, 넌 뛰어가지 마라.
태연하게 걸어라. 후회하지 마라. 눈물도 보이지 마라.
넌 그 말을 하기 전에 이미 선택한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