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껏 제가 공연장에서 들은 합창 교향곡 중에서는 최고였습니다.

전날 연극에 감동해서 글 쓰다 보니 한 시간이나 걸려서
오늘은 안 쓰려 했는데 오늘 본 공연도 아주 좋아서, 써 보겠습니다.
리플은 기대도 안 하지만, 그냥 나중에 제가 보고 '아, 그랬지' 하려고요.

합창 교향곡은 여자친구와 보기도 했고, 어머니 모시고 보기도 하고,
그냥 집에서 듣기도 하고, 하여간 생소한 곡은 아닙니다.
하지만 희한하게 3악장만 되면 기억이 없어져서, 이번에는 벼르고 갔습니다.
오늘 공연은 단지 합창 교향곡을 만원에 볼 수 있어서 갔습니다. 대개 이름값은 안봅니다. 지휘자 이름도 몰랐습니다.

코리안심포니 제177회 정기연주회
2011.12.05(월) 20:00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제일 싼) A석 1만원

베토벤 - 에그몬트 서곡 f단조 Op.84
베토벤 - 교향곡 제9번 d단조 Op.125, '합창'

교향곡에만 집중해서, 서곡도 별 신경 안쓰고 있었는데 난생 처음 들은 에그몬트 서곡이 아주 제 취향이었습니다. 여태껏 들은 서곡 중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서곡에서 호감도가 확 올라가고, 집중해서 메인 요리로 옮겼습니다.
4악장이 가장 유명하지만, 전곡을 처음 들은 날 이후로 1악장도 상당히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5번도 그렇지만, 베토벤은 하나의 동기를 집요하게 밀어붙이는 데 능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1악장 처음의 신비한 하강 동기를 들으며, 브루크너의 4번 1악장 처음도 비슷하다 싶었습니다. 이윽고, 다성 음악에서 각 성부들이 유기적으로 모여 내는 소리도 좋았습니다.

이어서 2악장입니다. 사실 그렇게 급한 연주는 아닌데, 급한 곡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왜 그런가 보니, 스타카토 음형 때문인 것 같습니다. 현악기나 관악기나, '따라라라라라'와 '따따따따따따'는 느낌이 확연히 달랐습니다.

벼르던 3악장입니다. 막상 듣고 보니 그렇게 졸린 곡도 아니고, 따스한 곡이었습니다. 처음의 동기가 점점 변형되는 과정이 아름다웠습니다.

'합창'은 3악장으로 끝났어도 좋았을 것이고, 4악장은 거대한 사족일 뿐이다.라고 누군가 말했던(또는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인지, 4악장은 앞선 세 악장과는 또 다른 맛이 있고, 거대합니다. 오늘 처음 발견했는데, 4악장 처음에서 관현악이 격렬하게 정적을 '찢어버린' 후, 앞선 악장들이 한번씩 나옵니다. 1악장 선율 조금 나오고 첼로&더블베이스가 모두 같은 선율로 끊습니다. 그리고 2악장 나오고 저음이 받고, 3악장이 나오고 받고, 그리고 4악장의 선율이 살짝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느꼈습니다.

레          라
파 파 솔 라 라 솔 파 미 ~ (편의상 이해하기 쉽게 부정확한 계이름 썼습니다.)

이런 식으로 전곡에 걸쳐 나왔던 '레 - 라(정확히는 D-A)'음형이 겹쳐져 있었습니다. 전곡에 통일성을 주려고 했던 베토벤의 의도일까요.

4악장에서 바리톤이 처음 나올 때 만족했습니다. 전에 다른 사람이 질질 끌어서 확 깼는데, 오늘 하신 분은 끌지 않고 적절히 '선언'했습니다.(성악 파트 시작-이라고?)

감동해서 "브라보-!"하고 박수를 치다 보니 5분 넘게 박수만 쳤습니다.
어제 연극처럼, 좋은 공연 보는 눈이 아주 무르익었구나 하고 스스로에게 만족하며 집에 왔습니다.

.. 오늘 옆자리에는 부부, 뒷자리에는 커플...다음에 '합창'을 볼 때는 지하철 타며 보는 만화책이 필요 없었으면 하는 소망;;; 이라고 넋두리 한번 해보고 갑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8 15:27: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