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과 상상이 만들어내는 이미지와 이야기의 향연

가느다란 펜으로 기다란 종이에 자신만의 세계를 담아온 작가 류승환이 오는 8월 18일부터 8월 31일까지
포스코 미술관에서 또 한 번의 개인전을 갖는다. <그림, 꿈을 꾸다>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작가가 지난해부터 그리기 시작한 '300'시리즈를 필두로 하여 그동안의 작품들 중 주제에 어울리는 작품을 함께 엄선하여 전시된다.
'300'시리즈는 이번 전시를 목표로 하여 하루에 1장씩 그려낸 300장의 방대한 드로잉 작업이다.
이 시리즈는 각각의 그림 하나하나가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또한 전체적으로도 연결되는 통일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밖의 작품들도 환상적인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그의 대표작들이다.
그동안 류승환의 작업이 주로 자신의 사유를 깊이 탐구하고 그 정신의 여정을 치밀히 좇아 그 이미지를 찾아내 종이에 옮긴 것이라면,
이번에는 작가의 내면에서 피어나는 환상과 상상들을 가감 없이 자유롭게 풀어낸 작품들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라고 하겠다.

삶의 깊은 성찰을 통해 우러나오는 드로잉

드로잉은 사실 우리나라 미술계의 주류는 아니다.
그러나 류승환은 자신이 말하고 싶은 주제를 가장 잘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을 소신 있게 선택하였고,
오랜 시간동안 세간의 평가와는 상관없이 드로잉 작업을 지속해왔다.
작가의 오랜 뚝심과 치밀한 내면의 사유가 점점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좀 더 많은 주목을 받게 되어
개인전, 초대전, 단체전 등 국내외에서 다양한 형태의 전시를 활발하게 열게 되었다.
 
매일 크지 않은 책상에 진득하게 앉아 0.3mm의 펜으로 우직하게 자신의 그림을 그리는 류승환은
밑그림 없이 생각을 그대로 종이에 옮김으로써 시간의 흐름과 그림의 진행을 일치시킨다.
작품의 주제는 시공간을 넘나드는 작가 내면의 깊은 사유이지만
작품은 시간과 사유의 순서를 역행하지 않고 차근차근 끈기 있게 단계를 밟아 완성된다.
류승환은 항상 그림을 그리는 책상 위에 다양한 주제의 책을 함께 올려놓는다.
작품을 구상하는 과정은 내면의 사유를 완성시키기 위한 정신의 여정을 떠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끊임없는 독서와 함께 하는 겸손한 성찰을 통해 그림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든다.
성찰은 원리를 만들어내고 세계의 다양한 형상을 만들어낸다.
그렇기 때문의 그의 그림을 사유가 만들어낸 원리의 시각적인 가상 실험(시뮬레이션)으로 보는 비평가도 있다.

이번 전시는 십여 년이 훨씬 넘는 세월동안 드로잉 작업을 해온 류승환 작가의 하나의 새로운 전기가 될 전망이다.
작가 스스로도 정신의 탐구는 끝이 없는 법이라고 말하지만 세계의 진리를 찾는 구도(求道)의 길에서도 그 방법적인 환기는 필요한 법이다.
작품 세계의 한 시기를 완성하는 단계에서 류승환은 오히려 과감하게 환상과 상상을 자유롭게 펼쳐보는 길을 선택하고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이야기의 가능성을 살펴보려고 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류승환 작가는 그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고민의 해답을 어느 정도 찾은 것 같다.
그동안 작가와 그 작품을 옆에서 오랜 시간동안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았던 사람들,
그리고 그의 작품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표명해왔던 해왔던 미술계가 이번 전시에 주목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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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것은 제가 써서 여기저기 보낸 보도자료입니다.

(인터넷 비슷한게 있더라도 제가 원문 저자이니 표절 의혹은 없길 바랍니다)

문화게시판 오랜만입니다.

선생님과 저의 인연은 지난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미술에 문외한이었던 저는 동아리 선배의 소개로 한 미술동호회에서 술도 얻어먹고 사람도 만나는 과정에서
동호회의 고문으로 계셨던 선생님을 처음 뵙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그림을 잘 알지는 못했지만 선생님의 인품과 무엇인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한 기다란 그림들에 매료되어
자주 찾아뵙고 술도 얻어먹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며 친분을 쌓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나이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때는 한참 더 어렸을 때인데도 선입견 없이 깊은 이야기를 오랜 시간에 걸쳐
성의껏 나누어 주셨고, 미술계에서 큰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학교 출신으로 전혀 거만한 모습이라던가 혹은 세상에 자신의
작업을 타협시키는 일 없이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수시간 동안 묵묵히 그림을 그리시는 모습이 참 신선했습니다.
제가 접했던 예술가라는 사람들의 세상과 괴리된 모습이 아닌, 생을 지탱하기 위해 차린 학원 한켠에 소박한 자리를 마련하여
그림을 그리시는 선생님을 보면서 저는 예술가에 대한 선입견을 깼던 것 같습니다.
생을 지탱하기 위해 마련한 학원에서 뎃생이나 줄긋기를 학생들에게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은 또 얼마나 놀라운 일이었는지요!

저는 그러다 2005년에 군대를 가게 되었고, 2007년 말에서나 전역을 하였습니다.
전역하고 이것저것 할일이 많았기 때문에 잠시 잊고 지냈던 선생님을 2009년 겨울에 다시 뵙게 되었습니다.
세월의 무게를 조금 더 덧칠하신 모습이었지만, 반갑게 맞아주심에 죄송한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는 또 가끔 짬을 내어 경기고 옆에 있는 선생님의 화실을 찾아가고 예전처럼 지내게 되었지요.

그러다가 우연인지 필연인지, 제가 문화예술 계통의 일을 하게 되면서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을 접하고 분석하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과정 중에 제가 시간을 좀 들여서 선생님께 도움이 될만한 일이 있을까를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찾아낸 일은 1990년대 초반부터 2010년까지 완성된 선생님의 작품들이 제대로 목록화되거나 정리되어 있지 않음에
그 작품들의 제목, 제작년도, 크기, 재료 등과 작품들의 이미지를 담은 간이도록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작가들 중에 자신의 작품 목록과 도록을 제대로 가지고 있고, 그림의 역사를 제대로 정리한 작가는 거의 손에 꼽을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추후 위작시비에 휘말려 작품의 가치하락을 낳기도 하는 부분입니다.
(우리나라 작품이 외국 컬렉터들에게 꺼려지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처음 해보는 일이고 깜냥이 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저는 어느날 술자리에서 무턱대고 선생님 작품을 정리해보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처음에는 별 말씀이 없으시다가 구체적인 계획과 목표 등을 말씀드리니 그럼 8월 중순에 전시회가 하나 있는데
그전에 필요한 것들을 좀 만들어줄 수 있느냐 고 물어보셨습니다.
엽서 크기의 작은 작품까지 하면 총 1000점 이상이 될 것이라는 말씀에 한번 심호흡을 했지만 저는 일을 시작했지요.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누구에게 맡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곳에 비해 여유가 좀 있긴하지만 평일은 최소 6시까지 다른 일을 할 수 없는, 그런 직장인이 일을 마치고
작품을 정리하기 위해 퇴근 후 시간과 주말에 짬을 내어 정리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작품을 꺼내 사진을 하나하나 찍고
작품의 크기를 다시 재고
주요특징을 기록하고
연도를 추정하고
기록한 후
가지고 있는 스캔파일과 대조하고
없으면 다시 스캔하고
순서를 맞추고

하는 작업은 너무나 더뎠습니다. 진짜 노가다였지요.
사람들과 만나 술을 먹지 않는 날은 집에 돌아가 보통 2시까지 또 제 글을 써야만 했습니다.
(뭔가 기한을 두고 글을 써야할 일이 있었거든요)
아침 9시부터 새벽 2시까지 문화예술에 치이는 삶은 솔직히 즐겁지만은 않았습니다.

마침내 5월부터 시작한 작업이 대충 큰 작품 위주와 이번 전시작 위주로 정리된 것은 지난 7월 말이었습니다.
드디어 작품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300p짜리 간이도록이 만들어졌습니다.
모든 작품을 펼쳐놓고 볼 수 없기 때문에 도록을 통해 큐레이터 등 여러사람과 쉽게 전시작을 선정하고
전시 컨셉을 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작품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되었지요.
그뒤엔 150평이나 되는 커다란 미술관을 어떤 작품으로 어떤 개념을 채울 것인지에 대한 논의와
보도자료를 작성, 배포하고 오디오북을 위한 작품해설을 써내려갔습니다.
드디어 8월 18일날 전시가 시작되는데, 저는 공교롭게 17일부터 예비군이라 오픈 당일날에는 못 가지만 참 뿌듯합니다.

선생님의 작품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사실 제가 가늠해서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작가와 작품에 애정을 가지고 일을 진행했기 때문에 주관적일 수밖에 없겠지요.
하지만 어떤 사람이 사람과 만나 신뢰를 쌓고 작품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면
분명 그 작품 자체가 가지는 힘도 있었기 때문일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저는 어느 순간에 작품의 내용과 그 흐름을 너무 잘 알게 되었고, 더 많이 좋아하게 되었으니까요.

사람이 어떤 것을 좋아하게 되는 계기는 그 자체에 있기도 하고, 그 외부적 영향에 있기도 합니다.
근처에서 시간이 되시는 분은 무료 전시이니 한번 들러봐주셔도 좋고, 그렇지 않으시면 이 글을 읽으며
어떤 사람이 어떤 것을 좋아하게 되고 그것에 함께 뛰어드는 능동적인 참여를 하는 경우도 있구나,
나도 뭔가 좀 더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 정도의 생각만 해주시면 됩니다.
작가분을 뵙고 싶은 분이 계시면 또한 만남의 자리를 주선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