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인의 김병만은 이렇게 말한다. “안 해봤음 말을 말어!”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생각에 익숙해, 결과 지상주의에 매달려 왔던 우리 가엾은 청춘들에게는 말 해보지 못할 일들이 너무나 많다.
짜여진 틀에서 어른들이 그것이 맞다고 하는 것에 대해 반기를 들기는커녕, 의문조차 가지지 못했던,
이미 대가리가 커서 그런 의문을 가지게 될 때에는 세상의 풍파가 두려워 잔뜩 움츠리고 밥그릇을 어떻게 사수해야 하는가,
하는 현실적인 문제에 맞닥뜨린 청춘들에게 자유는 거추장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결과에 닿기 위해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과정들은 방황과 방종의 상징인 것 마냥 사회에서, 집단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거세된다.

[로드무비]

여행을 통해 인간관계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거나, 진정한 자아 정체성을 정립하게되는 과정을 제시하는 영화들을 로드무비라고 한다.

로드 무비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한다면 여행동안 벌어지는 예측 불허의 사건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사건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주인공을 통해 관객 역시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것이다.

대표작으로는 빔 벤더스 감독의 파리 텍사스(1984), 로브라이너 감독의 스탠바이미(1985)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아이다 호(1990),
리들리 스콧 감독의 델마와 루이스(1991) 등이 있다. - 네이버 용어사전http://terms.naver.com/item.nhn?dirId=705&docId=2129

‘인투더와일드’는 영화배우 숀펜이 감독한 첫 영화이다.
이 영화는 연기로 감동을 이끌어낸 숀펜이 어떻게 화면으로 감동을 담아낼지 솔직히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에 보게 되었다.
펄잼의 리드보컬 에디 베더의 거친 노래소리가 배경으로 깔리며 시작되는 이 영화는 어떻게 보면 젊은이들의 치기어린 한때를
낭만적으로 포장하고자 하는 여타 다른 시시껄렁한 청춘 로드무비들과 다를 바 없이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는 잘 했지만 약간은 반항기 있는 대학생이 졸업 후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편지 하나를 달랑 남기고
그동안 모은 돈을 모두 기부하고 가족을 떠나 미대륙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는 설정은,
로드무비를 잘 모른다고 하는 사람일지라도 대충 위에 언급한 로드무비의 성격을 들려준다면 어쩌면 대충 내놓을 법한 스토리니까.

알렉산더 슈퍼트램프,
라는 가명을 쓰며 미대륙을 돌아다니던 젊은이는 집시와 노동자들과 홀로 사는 노인 등을 만난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것을 깨닫지만 그의 에피소드들은 특별한 경험이되 놀라운 경험은 아닌,
잔잔한 인생의 경험들처럼 폄훼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만남과 헤어짐의 순간들에 벌어지는 사람과 사람 간의 끈끈한 정 역시 그 영화 속 인물만이 아닌 전 인간사과 관계를 관통하는
아름다운 코드가 아니던가. 이 영화가 주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잔잔한 서사는,
마음에 평온을 주되 파문은 일으킬 수 없는 한계를 가진다고 생각하는 순간 영화는 자칫 지루해질 위험에 놓였다.
결국 내가 체험한 것이 아닌 이야기로 듣는 경험은,
혹은 영화로 만들어진 경험은 아름다운 경험은,
책을 통해 만나는 시대의 보편적인 감수성과 윤리에 대한 끝없는 고민은,
그렇기 때문에 또한 진정한 마음의 울림을 주기에는 어쩌면 조금 부족한 것이라는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더군다나 시나리오에 의한 이런 영화에서라야 더 말할 나위가 있을까.

그러나 나는 이 영화의 말미에 가서야 내가 이 영화의 손을 끝끝내 놓지 않고 있었음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를,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깨닫게 되었다.

결국 알라스카에까지 간 영화의 주인공은 그곳에서 1930년대 근처 광산이 폐광할 때 길 위에 버려진 버스 속에 근거지를 잡고
대자연에 홀로 맞서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다가 결국 가을이 되기 전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고 만다.
굶어죽기 직전,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며 진부하디 진부한 “행복은 나눌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라는 깨달음을 얻으면서.
나는 솔직히 맞는 말이지만 영화는 참 진부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엔딩 직전에는 영화에 등장하는 버스 앞에 앉아있는 청년의 사진이 떠있다.

바로 다음의 사진이다. 사진은 점점 클로즈업 된다.

 
<크리스토퍼 존슨 맥캔들리스를 추모하며 (알렉산더 슈퍼트램프의 본명)
-1968년 2월 12일 생, 1992년 8월 18일 사망.>

바보같게도 한참을 멍하게 쳐다보고서야 영화 속 주인공과 사진 속 주인공이 좀 다르게 생겼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보고 나서야 마음 속에는 깊은 전율이 일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인터넷 페이지 등을 검색하면서 이 영화는 크리스토퍼 존슨 맥캔들리스라는 청년의 실화라는 것.
압축한 이야기는 한 블로그에 잘 정리되어 나와 있으니 바로 아래 소개한다.

1992년 9월의 어느 날이었어요.

미국령 알래스카의 어느 숲 속, 오래 전에 버려진 어느 버스 안에서 순록 사냥꾼들이 한 청년의 시신을 발견합니다.
사망한 지 2주는 넘어 보이는 청년의 사인은 굶어 죽음. 침낭에 싸인 청년의 시신은 깡말라 있었고,
버스 안에는 청년이 죽기 전까지 먹으며 연명한 것으로 보이는 각종 식물들과 그가 읽은 책들과 카메라,
그리고 일기가 적힌 노트가 있었다고 하네요.

청년은 1930년대 근처 금광이 폐광되면서 사람들이 오가던 길 위에 버려진 버스를 숙소로 삼아
100일 넘게 그곳에서 지낸 모양이었습니다. 그곳은 가끔씩 사냥꾼들이나 지나다닐까, 사람들이 거의 오고 가지 않는 곳으로
말 그대로 야생의 숲 속이었죠. 청년의 죽음은 긴급 뉴스를 통해 미국 내에 타전됐고,
사람들은 왜 젊은 청년이 그곳에서 그렇게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무척 궁금해 했어요.
소식을 들은 청년의 여동생이 알래스카로 날아와 오빠의 유해를 수습해 갔습니다.

첫번째 사진은 그 여동생이 오빠의 카메라에서 나온 필름을 현상해 공개한 것입니다.
청년은 전형적인 미국의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난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미항공우주국(NASA)의 연구원이었다고 하니, 자라 온 환경은 그리 나쁘지 않았겠죠.
그런데 청년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자신이 가진 전 재산 2만 달러를 복지단체에 기부하고
신용카드, 자동차 등 가진 모든 소유물을 버리고 훌쩍 알래스카로 떠났습니다.
바로 자신이 대학 때 탐독했던 책들의 작가
잭 런던, 톨스토이, 헨리 데이빗 소로우 같은 자연주의자들의 삶을 그대로 실천해 보고 싶어서였다고 합니다.

[출처] 영화 <인투 더 와일드>에서 맥캔들리스가 읽은 책들|작성자 푸른꽃(네이버)

공식페이지 http://www.intothewild.com/

한 시간 남짓을 들여 영화에 관한 자료를 여기저기 찾아보고 나서 내가 다시 시작한 일은 이 영화의 DVD를 한 번 더 트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크리스토퍼 존슨 맥캔들리스의 겸손한 젊음과 그 기록인 일기, 그 일기의 산물인 이 영화를 곱씹어보았다.
2008년 봄이 오기 전 추운 시절에, 나는 몇 번이고 이 영화를 보며 내 청춘의 비겁함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 것이다.

그가 얻은 결론은-찾아본 바에 의하면 맥캔들리스의 마지막 일기에서 마지막 대사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행복은 나눌 때에 가치가 있다”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것.
초등학생들에게 행복은 혼자 누리는 게 좋을까, 나누는 게 좋을까 하고 물어봐도 “나누는 게 좋아요!”하고 답할 뻔한 것이다.

이 영화의 아름다운 점-그러니까 그의 청춘이 위대한 점-은 세상이 내어놓은 진부한 가치를 머리로 아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얻기 위해 진정 자기의 온 힘과 젊음을 다 바치고 깨달음을 갈구하는 젊음을 그리고 있음에 기인한다.
그는 적어도 머리로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한 허상에 대해 의심하고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아니면 정확히 알기 위해 거짓 없는 길을 택했다.
그 길은 모든 이에게 강요할 수 없는 길이지만 아름답고 올곧은 ‘길’이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고 알기 위해 찾는 젊음은 무모하지 않고 오히려 너무 겸손하지 않은가.
로드무비의 감동은 그런 진실성에서 온다. 그래서 이 영화는 내가 본 궁극의 로드무비다.

내 삶의 가벼움은 머리만 사용하는 기능적인 이해와 체험의 부재에서 온다.
그런 사람의 입에서는 거짓이 나온다.
그런 사람의 삶에는 진실한 향기가 없다.

머리로 알고 있는 가치는 실천이 어렵다.
그런 사람들의 말은 논리적이지만 가슴을 울리지 않는다.
체득된 깨달음은 진부하지만 진실성이 있다.
그것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단단한 보석이 되어 영원히 빛난다.

난 요새도 가끔 이 영화를 보며 겸손하지 못하고 진실하지 못한 내 젊음을 반성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