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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자기소개하자면, 나는 한국의 한 지방대의 이공계 학과, 좀더 자세히 말하면 생명과학 관련 학과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 와 몇년 전 박사과정을 마치고 너무나도 당연한 절차인 포닥(Postdoc: 한국 정식 명칭은 박사 후 연수 과정일 게다)을 4년간 거친 후 2014년 초에 겨우 겨우 미국에서 이름 들으면 다 아는(물론 나의 착각일 가능성이 크다.) 유명한 사립대학에서 정년 트랙(tenure-track) 조교수 임용을 받았다

1)순혈주의 확인
먼저 초기서류심사과정의 핵심 단어는 바로 ‘sorting out’이다. 다른말로 ‘initial screening’, 한국말로는 '추려내기' 정도? 자 그럼 어떤 자격요건으로 1차 추려내기를 시전하느냐? 누구나 다 추측해볼 수 있는 뻔한 기본자격(초빙분야 박사학위가 있는지나 논문 저서가 충분한지 등등)은 일단 제하고 여러가지 요건 중 감히 첫 번째로 꼽고 싶은 것이 바로 ‘학부 출신 대학’이다. '에이 설마 그럴리가'라고?

서울대에서 연간 새로 임용한 교수직 중 2006년에는 최고 83.3%가 모교학부 출신이었고 2010년에는 43.3%까지 떨어졌는데, 그 줄어든 만큼 외국인 교수임용이 늘었을 뿐이다. 물론 인문사회과학 쪽에서 이런 현상이 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만 생명과학부도 총 78%의 현직 교수가 서울대 같은 학부 출신이라 하니 뭐 이공계나 인문계나 이러한 동종교배(inbreed: 같은 학부 학과 출신으로 교수자리를 채우는 되는 현상을 이리들부르더라) 현상은 도찐개찐이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라고 본다.

뭐 상위권 대학들만 그런 거 아니냐고? 물론 지방의 대학들은 모교출신 교수의 비율이 확연히 적게 나타나기는 한다. 하지만 그만큼 상위권 대학학부 출신 교수님들이(사실 대부분이 서울대 출신)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전혀 인위적으로 조절한 적 없는데 자연스럽게 이렇게 됐다고 하면 당연히 다들 믿어주시겠죠?

후에 지인을 통해 전해 듣고 알게 된 건데 200장의 지원서류 받아놓고 반나절 만에 탈락 공지 받은 A대에서도 내 학부 출신 대학을 보고 그냥 교무처 직원이 sorting out한 경우라고 한다. '어디 이런 근본없는 학교 출신이 우리 같이 좋은 학교에 지원하다니!?' 이렇게 혼쭐이 난 것이다.(사실 내 학부 출신 대학이 규모도 작고 알려진 이름도 없기는 하다). 논문 실적 같은 것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말이다. (여기에 100% 확신이 있다. 왜냐면 자기네들이 공지하고 내세운 실적평가 기준으로 계산해보는 데만 꽤 시간이 소요될 것이기 때문이고 지원자가 두세 명도 아니었을 테니 말이다).

이런 풍조에 대한 문제제기가 꽤나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는 것을 이번 글을 준비하면서 알게 되었다. '교수임용 쿼터제'라고 분야별로 학부를 기준으로 특정대 출신자가 몇% 이상 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인데 98년부터 하네 마네, 법을 만드네 마네, 그게 위헌이네 어쩌네 하면서 지금까지도 제대로 시행하지 못하고 있단다.

그렇다면 이렇게 학부 출신을 중요하게 여기는 게 왜 문제가 되는 걸까? 상식적으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첨단 과학연구를 이끌어가기 위한 교수의 핵심 능력과 소양은 대학원 과정에서 대부분 만들어진다고 봐야한다. 석사 2년과 박사과정 5-8년(한국은 3년, 석박통합과정이면 좀더 짧고)을 통해 연구계획을 세우고 실패도 거듭해보고 수많은 논문들을 읽고 실험하고 또 수정하고 밤잠 못자면서 고민도 하고 머리도 쥐어뜯고 한 과정과 그 결과물들이, 학부 4학년 동안의 성과,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고등학생 시절 남들 놀 때 안 놀고 열공했거나 타고난 수재이던가 집에 돈이 많아 과외를 빵빵하게 했거나 혹은 좋은 입시학원서 쪽집게를 만났던가해서 얻은 좋은 학부 대학교의 타이틀이라는 것을 뛰어넘지 못한다면 도대체 뭐하러 대학원을 가고 연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런 지독스러운 동종교배 현상을 두고 혹자는 '아무도 공부하고 연구하지 않게 만든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1등 대학은 이미 1등이라고 공부하지 않고, 3등 대학은 아무리 1등이라도 3등으로 취급받으니 공부하지 않는다."물론 이런 것들 또한 누군가가 주장하듯이 다 '일부의 이야기'일 뿐일 수도 있겠다.

2) 연구실적 심사
두 번째(물론 다들 첫 번째라고 주장하고 있지만)로 초기 심사에 적용되는 요소를 보자. 그렇다. ‘연구실적’이다. 앞서 누군가가 의견 주시기를, '연구실적을 평가하는 한국 대학의 시스템은 아주 훌륭하게 잘 갖추어져 있지만 단지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주장이 있었는데 난 거기에 적극 반대하는 입장으로 ,시스템 마저 매우 구리다고 본다.

평가기준에서 <Nature>, <Science>, <Cell> 세 개만 따로 빼놓은 것도 일단 웃기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저런 저명한 저널에 실린 논문들은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도 높이 평가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1000점, 500점, 100점 이런 식으로 절대적인 평가수치의 개념으로 표현되지는 않는다. (저렇게 하는 나라 딱 하나 더 있다. 바로 중국이다. 자랑스럽지 아니한가 최고의 선진국의 모델과 같은 것을 우리가 사용하다니!). 각 논문저서의 질이 평가에 반영되어야지 그냥 어느 저널에 나왔는지만 가지고 점수가 결정난다. 그러니 공저자라도 저런 논문에 이름 한자 넣을려고 온갖 수작(?)을 다 부리게 되는 것 아니겠는가? 서로 친분으로 이름 넣어주고 실제로 연구한 학생이름은 기회만 되면 뺄려고 하는 등등. 이름만 넣으면 인정률이 1000%이니까 왠만한 논문 1저자 수준이 되는 거니까. (그리고 이건 현직 교수들의 실적평가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한 예로 A의 경우 SCI급(이런 등급에 대한 설명은 그냥 생략하겠다)의 논문 들 3개가 있는데 셋다 고만고만한 저널에 고만고만한 내용이라고 치자. 예를 들어 영향력지수(IF)가 0.4 이런 것도 일단 SCI에 들어가니까.(IF가 객관적이고 중요한 지표라고 하도 주장하니 예를 들어보는 거다). 그런데 B는 IF가 10점대의 논문이 10개가 있다 치자.(실질적으로 IF가 0.4인 곳과 10점인 곳에 논문 게제하기 위해서는 실험결과의 질과 양부터 많은 면에서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일단 같은 SCI급으로 점수가 들어가고 질적 검사에도 3개씩 골라야하니까 심사위원들이 A의 3개 논문을 주관적인 기준으로(무슨 이유를 붙이던가간에) 더 훌륭하다 해버리면 실제로 수준낮은 논문 세 개 가진 지원자가 수준 높은 10개의 논문 가진 지원자를 누르고 선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되어있으니 막말로 누굴 뽑을지 내정해놓으면 그렇게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고 겉으로 드러나는 점수라는, 객관적으로 보이기 쉬운 형식을 빌려서 포장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고 말이다.

설마 이렇게까지 심사하는데 한 명도 아니고 여러명의 교수님들로 이루어진 심사위원단에서 말이 안나올까 의문이 드는 것이 아주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여기서 다시 동종교배의 힘이 드러나는 것이다. 자 보자, 학과 교수님들이 다 한 학교 출신 선후배지간이다. 내 학부 15학번 선배님께서 이번에 얘 뽑자 그렇게 맞춰주라 하는데 그렇게 못하겠다고 대들 수 있는 분위기가 한국사회에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물론 술자리나 뒤에서 불만은 제기하겠지. 그리고 나중에 연구비 부분 할 때 이야기 나오겠지만 아직까지도 한국에서 정부지원 연구비를 획득하는 것은 많은부분 선배가 땡겨주고 인맥으로 서로 돕고 하는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함부로 개겼다가 연구비 다 끊어진다.

3)면접과 연구발표회의 내용

와서 연구 공개발표 시켜서 질문 던져서 어떻게 답변하나 보고 강의를 시켜보고 능력을 가늠해보는 정도이다. 한가지 한-미 다른 점이 있다면(여전히 이걸 한 후에 분야별로 점수로 환산해서 매기느냐 그냥 의견 나누면서 어떤지 확인해보느냐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의 경우 채점 항목 중에 인성 점수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보통 전체 점수에서 10% 정도를 차지하는데, 몇 시간 만나보고 그 사람됨을 판단할 능력들이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 놈이 나중에 안정적인 자리에 올라가면 학생들 추행하거나 막말할 놈인지 윗사람한테 대들 놈인지(이건 저 살기위해서는 해라 해도 안 할테지만) 몇 시간안에 다 알아내는 것이다. 이렇게 인성이 중요한 채점 요소로 자리 할만큼 추태를 부리는 교수들을 많이 봐왔다. 그래서 미리 걸러내자는 취지는 좋은데 차라리 미국처럼 저런 추태부리면 두 말 없이 잘려나가는 시스템을 도입해서 원래 그런 성향이 있던 놈이라도 못하게 만는 것도 좋을 방법이 아닐까 한다.

지난 시간에 잠시 다뤘고 댓글들로 알려도 주셨듯이 미국의 경우 호구나 신상, 개인에 관련된 건 살짝 물어보는 것 조차 아예 다 금지되어 있으며한국의 경우 늘 그래왔듯 자연스레 호구조사, 인맥조사로 면접이 흘러가는 경향성이 있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겠다.

마무리)
슬슬 마무리를 하려다보니 마음에 계속 남는 것이 있다. ‘Faculty search committee’라는 것과 ‘교수임용 심사위원단’이라는 두 단어이다.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심사위원이라고 불리는 이것은 말 그대로 네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능력이 있는지 내가 심사해보겠다는 다분히 ‘갑’의 향이 나는 단어인 것 같고 그에 반해 faculty search committee라는 건 말 그대로 우리 학교가 필요로하는 faculty를 ‘찾아’내겠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 같다. 찾는 자는 찾고 있는 인재에 비해 우월한 존재일 필요가 없고 ‘갑’일 이유도 없다.

한국의 대학들이 가지고 있는 현 교수임용 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해 쓰다보니 '고칠 방법은 없다. 포기해라'는 답변이 뻔하게 돌아올 것 만 같다. 하지만 일단은 문제가 있다고 떠드는 행위 자체가 소중하다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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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고선 강의실에선 근엄하시죠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23 18:4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