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씹다爵, 작’를 어떻게 쓰더라?” 필자가 한국어 강의를 하던 도중에 어떤 한 중국 학생이 두리번거리며 주변 중국인 학생들에게 묻는 말이었다. 자기 나라말 글자가 생각나지 않는다니, 한국어가 모어인 나에게는 무척 생소한 풍경이었다. 그런데 주변 친구들이 그건 이렇게 쓰는 거라며 설명을 해준다. 비단 ‘씹다爵’뿐만이 아니라 ‘표범豹, 표’처럼 비교적 간단한 글자를 쓸 때에도 종종 이런 문답이 오간다. 그렇다면 간체자簡體字, 자형字形을 간략하게 고친 한자로 표기되지 않는 번체자繁體字, 한자의 약자略字가 아닌 본디의 글자의 경우에만 그런 것일까. 그런데 꼭 그렇지도 않단다. 컴퓨터를 사용하면서부터 시작된 현상이 현재 스마트폰 시대에 이르러 정점을 찍었고, 요즘 글자 안 잊어버리는 사람 없을 거라며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인다. 요즘 중국인들은 한자를 잘 못 쓴다. 역설적이면서 짧은 이 한마디에 폄하의 의도는 전혀 없다. 생활환경의 변화가 언어생활에 이렇게 큰 영향을 끼치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데 최근 이런 세태를 고스란히 보여주어 중국인들을 각성시키고, 더불어 교육 효과까지 거둔 프로그램이 방영되어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중국 국영방송 시시티브이CCTV의 ‘받아쓰기 대회’가 그것이다. 《中國漢字聽寫大會중국 한자 받아쓰기 대회》라는 이름의 이 프로그램에는 중국 31개 성 및 홍콩, 대만, 마카오 등 각 지역의 중∙고등학생 청소년 대표들이 참가하여 실력을 겨루고, 승자진출전토너먼트 방식으로 최후의 승자를 가린다. 어려운 한자도 또박또박 잘 써서 최종 우승을 한 참가자의 실력은 높이 평가해야 마땅하나, 방송 중 일부 참가자들이 글자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장면이나 이런 주제의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게 된 동기는 한번 되짚어 볼 만하다. 방송이 나갔던 해 5월에 중국의 한 기관이 베이징, 상하이 등 12개 대도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94%에 달하는 응답자가 손혹은 펜으로 글씨 쓰는 법을 잊어버린 적이 있다고 하며, 그중 26.8%의 사람은 이런 현상이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방송 후 홍콩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SCMP는 해당 프로그램에서 제시한 ‘두꺼비蟾, 섬’를 쓰지 못한 성인이 70%에 달했고, 이에 비해 간단해 보이는 ‘두껍다厚, 후’를 정확하게 써내는 이도 절반에 미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이어 9월에는 러샨르바오樂山日報에 “‘민망하다尷尬’를 쓰지 못하다니 정말 민망하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중국 러샨시樂山市에서 문자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회사원 세 명을 인터뷰하여 그들에게 ‘민망하다尷尬’를 써보도록 했더니 한 명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단어尷尬는 ‘민망하다’, ‘어색하다’, ‘난처하다’ 등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어서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이 상당히 자주 쓰는 말이다. 동 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한 이 방송의 여파로 매체에서는 ‘키보드 손鍵盤手, 건반수: 글을 쓰지 못하고 키보드에만 특화된 손’, ‘실사증失寫症: 쓰기 능력을 상실한 증상’, ‘반문맹半文盲’ 등의 단어가 새로 생겨나거나 재조명되기도 했다. 시청자들의 의견도 이어졌는데, 아이들에게 영어나 피아노 따위의 교육에만 집중하는 사이에 모어母語를 잊고 있었다며 한자 교육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학부모들의 반응도 많았다. 표음문자의 장점 덕에 우리나라에서는 통째로 글자를 잊어버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영어나 다른 많은 언어들도 그러하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문자 입력체계가 유독 한자에게 혹독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방해 공작이 없음에도 ‘굳이’를 발음에 따라 ‘구지’라고 쓰거나, ‘어이’를 ‘어의’로 쓰는 등 맞춤법에 맞지 않는 표현을 흔히 쓴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 하지 않는가. 우리도 우리말을 얼마나 바르게 잘 쓰고 있는지 한번 돌아보는 것도 좋겠다. 글_윤기원 부경대학교를 졸업하고 중국 푸단대학에서 현대 중국어 문법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상하이 지역 학교와 기관에서 한국어와 중국어 강사로 재직하였고, 세종학당 교원 양성 과정을 거쳐 강사로도 활동하였으며, 현재 중국 상하이 사범대학 박사 과정에서 공부하며 국립국어원 국외 통신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출처 : 국립국어원 온라인 소식지 - 중국의 신문맹 (http://www.urimal365.kr/?p=18661) |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6-09 20:4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