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4강 소식을 보니 36년 전 1983년 멕시코 청소년축구대회 4강 갔을 때 기억이 나서 끄적거려 봅니다. 그땐 지금처럼 20세 이하가 아니라 19세였고 명칭도 U20 월드컵이 아니라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World Youth Championship)였습니다. (영어 명칭은 구글링했음) 출전국 수도 지금은 24개국이지만 그 땐 16개국이었죠. 당시 저는 국민학교 6학년이었고 그 대회 직전 우리집은 컬러 TV를 구입했기 때문에 그 대회는 제가 컬러로 본 첫번째 세계 대회였습니다.

사실 우리는 아시아 예선에서 3등을 했기 때문에 못나가는 대회였는데 북한이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 심판을 폭행하는 바람에(그 경기 생중계로 봤는데 살벌했습니다) 어부지리로 우리가 나간 거였어요. 첫 경기는 스코틀랜드전이었는데 생중계를 봤는지 뉴스를 봤는지 가물가물한데 2:0으로 졌습니다. 역시 글렀구나 싶었어요. 다음 상대가 홈팀 멕시코였거든요. 1:1로 비기고 있다가 거의 후반 종료 직전에 스트라이커 신연호가 극적인 결승골을 넣어서 이깁니다. 문전 우측에서 크로스가 올라왔고 신연호가 받아 먹는 그림이었는데 이것도 생중계로 봤는지 녹화로 봤는지 기억이 안나네요. 이 경기가 아마 대한민국이 거둔 FIFA 주관 대회 첫 승이었을 거에요. 성인팀은 86년에 가서야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게 되고 월드컵 첫 승은 그로부터도 16년이 지난 2002년에서야 이루어지게 되니까요.(그래서 저는 월드컵 첫 승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진짜 너무 오래 기다렸거든요.) 다음 상대는 호주였고 아마 2:0인가 이겼을 거에요. (2:1이었나 가물가물. 검색하면 나오겠지만 오로지 기억만으로 쓰겠음) 세상에 2연승이라니. 아무리 청소년 대회라지만 세계 대회에서 2연승이라니. 당시 대한민국 축구의 위상을 생각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온나라가 들썩들썩하기 시작했죠. 8강 상대는 우루과이였는데 일요일 오전 경기(우리 나라 시간)였어요. 요즘 류현진 경기 오전이나 낮에 생중계하는 것처럼 시차가 적당했던 거죠. 앞집 사는 5학년 동생이 컬러 TV로 보고 싶다고 우리집에서 같이 보자고 해서 그 동생이랑 저랑 제 동생 이렇게 셋이 봤습니다.

완전 답답한 경기 흐름이었어요. 점유율은 앞서는 데 골은 안터지고 가슴 졸이며 보다가 우리가 선제골 넣고 우루과이가 동점골 넣고 1:1이 됐어요. 우루과이 동점골이 상당히 운이 좋았습니다. 이문영 골키퍼가 실수로 살짝 알을 깠는데 하필 그 볼이 골라인을 살짝 넘어갔어요. 황급히 되잡았는데 이미 골이 선언된 후였죠. 후반 막판에 이길 수 있는 결정적 기회가 찾아옵니다. 우리가 PK를 얻은 것이죠. 키커가 노인우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하필 골대를 맞춥니다. 몇 분 안남았기 때문에 그걸 넣었으면 연장전까지 안갔을텐데 그게 안들어가더군요. 당시에도 PK 못넣는 팀은 진다는 징크스가 있어서 연장전에 들어가서도 상당히 찜찜했었습니다.  근데 결국 연장 후반 막판에 신연호가 골문 앞 혼전 상황에서 살짝 밀어넣어서 결승골을 넣습니다. 온동네가 난리가 났지요. 골목마다 다 뛰어나와서 동네 꼬마들끼리 얼싸 안고 만세 부르고 그랬어요. 4강이라니 이게 말이 되냐구요. 언론도 연일 대서특필!!!

4강전은 평일이었습니다. (아마도) 전국의 학교가 수업을 중단하고 생중계를 봤습니다. 당시는 학교에 티비가 없던 시절이라 선생님들이 티비를 공수해오고 교실에 설치해서 봤어요. 당시 티비는 외부 안테나와 연결되어 있어야 화질이 제대로 나오는데 급히 공수해 온 거라 외부 안테나는 없고 티비에 달린 안테나로 전파를 잡으니 화질이 구렸습니다. 그래도 생중계로 볼 수 있다는 게 어딥니까. 티비 사이즈도 16인치 정도였는데 그 조그만 티비에 6학년 3개반 학생 200명이 다닥다닥 붙어서 봤습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는 6개반이었는데 티비 두대를 공수해와서 3개반씩 나눠서 봤지요.  

4강전 상대는 세계 최강 브라질. 첫 골을 한국이 넣습니다. 김종부(지금 경남 감독)가 아크 서클 주변에서 패스를 받아 땅볼 중거리슛을 때렸는데 골 모서리로 정확히 가서 꽂혔죠. 온교실이 난리가 났습니다. 세상에 브라질 상대로 선제골이라니. 이거 기적이 일어나는가 했죠. 근데 얼마 안있어 동점골 먹고 후반에 역전골 먹어서 결국 2:1로 안타깝게 패하고 맙니다. 브라질의 두 골은  모두 한 선수가 넣었는데 후일 94년 미국 월드컵에서 브라질 우승의 주역이 되는 전설의 베베토였습니다. 아. 얼마나 아쉽던지요. 결국 그 대회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결승에서 만나 브라질이 아르헨티나를 꺾고 우승했습니다.(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기억이 쿨럭)

그 대회 이후로 죽 조별 예선 통과를 못하다가 1991년 포르투갈 대회에서 남북단일팀이 8강에 진출합니다. 예선 첫 경기가 아르헨티나전이었는데 후반전 종료 직전 북한의 조인철이 통쾌한 25미터짜리 중거리슛으로 아르헨티나를 격침시켰죠. 당시 저는 기말고사 끝나고 고향 안내려가고 제기동 85학번 선배 자취방에 빌붙어 살았는데 그 경기를 복학생 선배들이랑 같이 봤었죠.

그리고 오늘 36년만에 4강 진출이네요. 오늘 경기 자체도 역대급 명승부였기 때문에 기쁨이 더합니다. 우승합시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26 19:58: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