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룡이 잠든 고산
거대한 로키 산맥을 품고 있는 콜로라도주는 높은 고도에 걸맞게 1년 중 절반인 6개월 동안 눈이 내립니다. 콜로라도주를 대표하는 도시인 덴버는 평균 해발이 1마일에 달해 ‘The Mile High City’라고 불릴 정도입니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상 덴버에서 열리는 스포츠 경기들은 다른 지역보다 더 혹독한 체력 소모를 요구합니다. 그러한 가혹한 환경 속에서 콜로라도 로키스는 그 역사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1993년 창단한 로키스는 내셔널 리그 서부 지구 소속 구단입니다. 홈구장 건축 공사현장에서 발굴된 공룡 뼈로부터 영감을 얻은 마스코트가 팬들을 맞아주는 로키스는 상당한 인기를 구가하는 구단입니다. 창단 첫해 평균 관중 수 5만 5천 명을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운 로키스는 미국의 국기인 미식축구 구단이자 손꼽히는 명문인 덴버 브롱코스 다음으로 연고지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로키스의 인기는 언뜻 보기에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로키스의 성적은 창단 이래로 변변치 않았던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엔 박찬호와 류현진의 소속팀으로 잘 알려진 LA 다저스, 내셔널리그 최다 우승에 빛나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등 강팀들과 한 지구에 소속되어 있기에 쉽사리 하위권을 벗어나기 힘든 로키스. 과연 그 인기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2. 부정 구장
미국 대학 미식축구계의 명장 폴 브라이언트는 이런 말을 남긴 바 있습니다. “Offense sells tickets, defense wins championship.” 이 격언처럼 팬들은 언제나 화끈하고 공격적인 경기에 환호합니다. 로키스 역시 최종적인 순위는 좋지 않아도 매 경기 불같은 타격전을 선보였기 때문에 많은 관중을 불러 모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경기 내용의 가장 큰 요인은 바로 로키스의 홈구장인 쿠어스 필드였습니다.
창단 초기 로키스는 브롱코스의 홈구장인 마일 하이 스타디움을 함께 사용했고 관중 기록을 달성할 정도로 흥행에 성공합니다. 하지만 이미 지은 지 40년이 넘은 데다 야구에 적합하지 않은 구조인 마일 하이 스타디움을 대신할 새로운 구장의 건설은 필수적이었습니다. 2년 동안 새 구장을 건설하기 위한 공사가 진행되었고 1995년 마침내 쿠어스 필드는 메이저리그 역사에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높은 해발 고도로 인한 공기 밀도 및 습도 저하는 쿠어스 필드를 메이저리그 최악의 타자 친화형 구장으로 만들었습니다. 투수들의 변화무쌍한 구종은 밋밋해졌고 타자들의 타구는 총알같이 빨라졌습니다. 특히 가장 큰 문제점인 체력 소모는 매 투구에 전력을 다하는 투수들에게 직격타였고 그 결과 쿠어스 필드에서 열리는 경기들은 십중팔구 수많은 안타와 홈런을 양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3. 투수들의 무덤
로키스는 쿠어스 필드를 극복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투수들을 영입합니다. 무려 8년 1억 2100만 불의 FA 계약을 준 마이크 햄튼, 폭포수 커브를 자랑했던 데릴 카일 등이 쿠어스 필드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랜디 존슨, 페드로 마르티네스 등 야구 역사에 전설로 남은 투수들은 물론 클레이튼 커쇼, 맥스 슈어저 등 현역 최고의 투수들 역시 쿠어스 필드에선 부진한 것을 고려하면 부질없는 시도였을지도 모릅니다.
한국 투수들 역시 쿠어스 필드에선 악몽을 꾸었습니다. 한국 야구사의 전설 박찬호는 쿠어스 필드에서 통산 5승 2패를 거두었지만, 방어율이 6.06에 달했습니다. 로키스 입단 첫해 준수한 활약을 펼친 오승환 역시 2019년 방어율 9.33이라는 처참한 기록과 함께 방출되었습니다. 현역 최고의 투수인 류현진조차 쿠어스 필드에선 언제나 주춤했고 엄청난 페이스를 보여 준 2019년에도 4이닝 7실점을 기록하며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쿠어스 필드에서 좋은 추억을 남긴 한국 선수도 존재합니다. 2005년 9월 24일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한 김선우는 9이닝 동안 단 3개의 피안타만 허용하며 완봉승을 기록했습니다. 2020년 현재까지 단 14명의 투수만이 기록한 대기록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비록 메이저리그에서 꾸준히 활약하진 못했으나 이후 두산 베어스에서 보여준 활약과 함께 김선우 경력의 하이라이트라고 꼽을 만합니다.


4. 두 산사나이
투수들의 좌절은 반대로 타자들의 환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키스의 타자들은 쿠어스 필드에서라면 상대가 누구든 당당히 맞섰습니다. 앞서 서술했듯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거나 올릴 명투수들 역시 로키스의 방망이에 혼쭐나기 일쑤였습니다. 물론 홈에서의 파괴력을 원정에서도 이어나가진 못했기에 전문가들의 평가는 박했으나 경기장을 찾은 덴버 시민들의 마음을 통쾌하게 만드는 데는 충분했습니다.
30년이 채 되지 않는 로키스의 역사 속에서도 단연 빛나는 두 선수가 있습니다. 먼저 소개할 래리 워커는 17시즌 동안 타율 0.313, OPS 965, 2160안타, 383홈런을 때려낸 강타자입니다. 1997년엔 49홈런 130타점을 때려내며 NL MVP를 수상하기도 한 워커는 약 10년간 로키스에서 활약했습니다. 선수 생활 말년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이적하여 ‘Murderer’s Row’, 일명 ‘살인 타선’의 일원으로도 꼽히며 로키스 최초의 명예의 전당 헌액자가 됩니다.
토드 헬튼은 워커에 버금가는, 사람에 따라선 더 높이 쳐줄 수 있는 선수입니다. 17년 동안 타율 0.316, OPS 0.953, 2519안타, 369홈런을 때려낸 헬튼은 선수 생활 내내 로키스에 헌신했습니다. 헬튼은 훌륭한 수비를 선보인 1루수였으며 마찬가지로 수비가 뛰어난 우익수였던 워커와 함께 쿠어스 필드의 오른쪽을 철통같이 지켜왔습니다. 로키스는 두 선수의 등번호를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며 그 공로를 치하했습니다.


5. Rocktober
상기한 대로 로키스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고 호성적을 거둔 적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런 로키스가 가장 화려했던 시기는 바로 2007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직전 시즌인 2006년 시즌 76승 86패로 초라한 성적을 거두었고 눈에 띄는 보강도 없던 로키스는 많은 이의 예상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9월 16일 기준 76승 72패를 기록 중이었던 로키스의 시즌은 평범하게 마무리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남은 14경기 중 단 1경기를 제외한 모든 경기에서 승리한 로키스는 훨씬 승률이 앞서 있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기어이 따라잡습니다.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한 단판 승부가 열렸고 많은 이들은 트리플 크라운과 사이 영 상을 동시에 거머쥔 제이크 피비가 나올 파드리스의 우세를 점칩니다. 하지만 물오른 로키스의 선수들은 피비에 이어 NL 역대 최고의 마무리인 ‘지옥의 종소리’ 트레버 호프먼까지 무너뜨리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로키스의 기세는 꺾일 줄 몰랐습니다. 디비전 시리즈에서 만난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3전 전승,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만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4전 전승으로 무너뜨리며 창단 첫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게 된 것입니다. 비록 월드 시리즈에선 당시 최강이었던 보스턴 레드삭스를 만나 4전 전패로 준우승에 그쳤지만, 2007년 10월은 로키스 팬들에겐 잊혀진 계절이 아니라 잊을 수 없는 계절로 남았습니다.


6. 후일담 및 근황
2007년 이후 나름대로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이던 로키스는 2011년 이후 다시 부진의 늪에 빠집니다. 하지만 놀란 아레나도, 트레버 스토리, 찰리 블랙몬 등의 타자들과 존 그레이, 카일 프리랜드 등의 투수들이 새롭게 등장하면서 다시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하게 됩니다. 비록 2019년엔 투수진이 무너지면서 다시 하위권으로 처지고 말았지만, 덴버 시민들은 언제나 로키스를 향해 뜨거운 응원을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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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460&aid=0000001208&viewType=COLUMN
먼저 콜로라도 로키스의 전망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칼럼 하나를 소개합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한 번 읽어보세요. 어느덧 4월도 3분의 1 넘게 지나갔습니다. 봄이 오고 꽃이 핀 지 오래건만 여전히 우리들의 마음은 겨울에 머물러 있는 듯한 요즘입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혼란스럽지만 각자 책임감과 배려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다면 어떠한 위기라도 극복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다음 이야기는 축구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24 08:4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