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대표자님들께 드립니다.
- 전체학생대표자회의 무산에 부쳐

10월 17일 전체학생대표자회의가 있었습니다. 전체학생대표자회의는 1년에 두 번 개최되는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의 최고의결기구입니다. 전체학생대표자회의는 우리를 규율하는 총학생회칙도 개정할 수 있으며, 총학생회와 각 단과대학 학생회, 특별기구(응원단 등) 예･결산을 심의하고, 총학생회의 모든 정책을 심의하고 결정할 수 있는 고려대학교 내에서 가장 중요한 회의체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10월 17일에 열린 전체학생대표자회의는 그 전주에 열리기로 예정되어 있던 것이 정족수 미달로 무산되어 다시 열린 회의입니다. 그러나 10월 17일의 회의마저도 첫 번째 순서였던 예･결산안 심의 도중에 정족수(총 재적 81명 중 과반인 41명)에 미달되는 인원만이 남게 되어 자동으로 산회(散會)되었습니다.

저희는 사실상의 전체학생대표자회의는 열리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국회의 기능 중에 국정을 감사하고 국가 예산안을 확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전부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법률의 제정을 통해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문제가 국회의 본질적 기능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지위가 국회에 비견될 수 있는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도 예･결산안 심의가 중요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핵심적인 기능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번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는 총학생회칙 개정안, 선거시행세칙 개정안, 정문 앞 재개발, 학과제 개편 논의･결의안건, 학생복지위원회 인준안건 등 고려대학교 학생들에게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들이 논의될 계획이었으나, 중간에 산회됨으로써 그런 문제들이 전혀 논의되지 못하고 저 안건들 중 일부가 정치적 중량감과 책임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중앙운영위원회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저희는 사실상 실질적인 의미의 전체학생대표자회의는 개회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국회가 국회의원들의 불출석과 외면으로 개회되지 못한다면, 그 나라가 제대로 되었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번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의 무산이라는 초유의 사태는 누구 한 사람 혹은 한 단위만의 잘못은 아닐 것입니다. 총학생회와 각 단과대 학생회의 임기가 끝나가는 이 시점에 잘잘못을 가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고민도 듭니다. 하지만 전체학생대표자회의가 무산되었다는 것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문제라고 생각해 무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문제제기를 합니다.

우선 총학생회장단 및 총학생회 중앙집행국의 책임유기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체학생대표자회의는 9월에 있던 중앙운영위원회에서 10월 4일에 개회하기로 결정되었던 바, 이에 대한 신뢰를 보호하는 것이 총학생회장단 및 총학생회 중앙집행국의 책임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공고가 되어야 하는 날짜(10월 4일의 10일 전)에 공고가 되지 않아서 회의가 미뤄진 것은 그냥 넘어가기 힘든 문제입니다. 그 후 총학생회장단 및 총학생회 중앙집행국이 대의원들의 연락처를 수합하여 문자로 개별 연락을 하는 등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따라서 무산의 책임이 총학생회장단 및 총학생회 중앙집행국에 있다고 하는 것에 대해 불쾌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총학생회장단 및 총학생회 중앙집행국은 ‘고려대학교 제41대 총학생회 고대공감대2008’이라는 총학생회장단과 총학생회 중앙집행국을 표상하는 것으로 보이는 조직만을 대변하고 업무를 집행하는 것으로 그 역할을 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학생대표자회의는 총학생회 스스로의 회의이고, 총학생회장은 ‘고려대학교 제41대 총학생회 고대공감대2008’의 대표가 아닌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의 의장으로서 당 회의를 주재하고 책임질 의무가 있습니다. 저희도 총학생회만큼 큰 조직을 운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학생회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그 업무의 과중함이 적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업들만큼이나, 어쩌면 다른 어떤 사업보다 중요한 이 전체학생대표자회의 개회 문제에 조금 더 신경써주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러한 말씀을 드립니다.

또한 중앙운영위원회의 책임유기도 간과하기 어렵습니다. 총학생회는 총학생회장단 두 명이 운영하는 조직이 아닙니다. 엄연히 중앙운영위원회와 전체학생대표자회의가 관리･감독･운영권을 갖고 있는 조직이 총학생회입니다. 따라서 중앙운영위원회는 총학생회장단과 중앙집행국에 업무의 집행을 제대로 운영하고 또한 관리･감독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중앙운영위원회에서 그러한 기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중앙운영위원회를 구성하는 중앙운영위원들은 그저 총학생회가 잘 할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스스로 총학생회를 구성하는 주체이며, 전체학생대표자회의를 조직해나가야 하는 주체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중앙운영위원은 모두 각 단과대학･독립학부･동아리연합회의 대표로서 산하의 과･반 학생회장(동아리연합회의 경우 각 분과장)의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의 참여를 독려하고 책임질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중앙운영위원이 그 책임을 유기하였고, 심지어 어떤 중앙운영위원은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 참석하지 않거나, 지각 혹은 조기퇴장하는 등의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회의 연기 및 산회의 직접적인 원인이신 참석하지 않으시거나 지각･조퇴하신 전체학생대표자회의 대의원분들께도 문제제기를 하고자 합니다. 물론 전체학생대표자회의가 시험 기간 직전에 개회된 점, 한두 차례나 연기되었다는 사실, 또한 지난 전체학생대표자회의가 무려 20시간 동안이나 진행되었고, 예･결산 심의에 6~7시간이나 소요되는 소모적인 회의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개인적인 이유로 참석하기 어렵거나, 또한 참석을 꺼리게 될 만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이 점에 대해 중앙운영위원으로서 총학생회를 대표해 사과드립니다. 그러나 각 학생회의 대표자라는 것은 그 학생회 내에서만 역할을 다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각 학생회의 대표자라는 직위와 별개로 고려대학교의 최고의결기구를 구성하는 전체학생대표자회의 대의원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것입니다.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의 대의원 직위가 그저 각 학생회를 대표하여 발언할 권리뿐 아니라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의 사업 및 문제 전반에 대해 발언할 권리를 수반한다는 점에서, 법리적으로 볼 때 각 학생회 대표직과 전체학생대표자회의 대의원직은 분리해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대의원이라는 별개의 직에 대한 책임, 즉 총학생회 회원 전체(고려대학교 전체 학우)에 대한 책임도 마땅히 수행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학우 여러분, 저희는 누군가가 잘못했으므로 비난을 해달라는 취지로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저희도 중앙운영위원이자,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의 대의원으로서 이번 문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총학생회 및 각 단과대 학생회의 임기는 곧 종료됩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전체학생대표자회의는 계속 개회될 것입니다. 이 문제는 단지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의 위상 추락 문제가 아닙니다. 저희는 학생회란 학생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기구라고 생각합니다. 고려대학교 총학생회는 총학생회 회장단과 집행국에서 일하는 몇 명만을 일컫는 것이 아닙니다. 고려대학교의 모든 학생들이 총학생회의 ‘회원’입니다. 이 회원들이 모두 나서 총학생회를 직접 운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학생회장단을 뽑고, 대의제 체계를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각 과반의 학생대표자회의부터 각 단과대의 학생대표자회의, 전체학생대표자회의까지 위계적으로 연결된 회의체가 곧 대의제 체계의 뼈대입니다. 총학생회의 본질은 총학생회장단과 중앙집행국이 아니라 회원 여러분 개개인의 의사가 합치되는 선거와 회의 과정에 있습니다. 따라서 회의에 대한 소홀은 곧 총학생회의 본질이 상실되어감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의 위상 추락은 곧 총학생회의 본질을 회원들이 잊고 있다는 징표가 아닌지 우려스럽습니다.

이번의 문제제기가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의 위상부터 시작해서, 총학생회장단 및 중앙집행국과 중앙운영위원들과, 각 학생회 대표자들이 전체학생대표자회의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를 고민해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전체학생대표자회의를 어떻게 진행해야 대의원과 학우들의 외면을 받지 않을 것인가의 방법론적인 부분도 함께 토론되고 논의되길 희망합니다.

덧붙여 중앙운영위원회의 의장이신 총학생회장님께서는 전체학생대표자회의 무산 직후에 약속하신 것처럼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중앙운영위원회를 소집하시어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논의되지 못한 안건이 논의되게 하시고, 예산을 배분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많은 단과대학 학생회가 선거관리위원회 체제로 전환되고 있으며, 2학기 예산이 들어오지 않아 예산 집행에 큰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저희 법과대학 학생회의 경우에도 빚을 내서 사업을 집행하고 있습니다. 빠른 처리를 부탁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　원  법과대학 학생회장 ･ 총학생회 중앙운영위원 ･ 전체학생대표자회의 대의원
유태양  법과대학 부학생회장 ･ 전체학생대표자회의 대의원
박경선  법과대학 학생회 집행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