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에 관한 법률 제8조 1항은 “법학전문대학원을 두는 대학은 법학에 관한 학사학위과정을 둘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조항으로 인해서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인가를 받은 25개 대학의 법학과는 2009년부터 신입생을 받을 수 없고, 현재 재학생이 모두 졸업할 때까지만 한시적으로 운영된 후 폐지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법학 학부과정의 강제 폐지는 엄청난 문제들을 발생시킵니다.

법학부의 폐지는 곧 법학의 폐지이다.

우리는 실용학문들을 선호하는 풍토에서 인문학과 자연과학 등의 기초학문이 겪고 있는 위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는 비단 학문과 학문 사이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법학전문대학원은 직업 교육 기관으로서 3년 안에 법학 전반에 대한 교육을 완료해야 합니다. 게다가 학생들이 변호사시험을 치러야 하는 마지막 학기가 파행적으로 운영될 것까지 고려한다면 굉장히 짧은 시간 안에 헌법, 민법, 형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상법, 행정법 등 기본적인 법 과목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거기에 로스쿨은 기본적으로 실무에 대한 학습이 가능해야 하고, 또한 각 로스쿨들은 기업법무, 국제법무 등 각각의 특성화 과목들을 추가적으로 가르칠 계획을 갖고 있으므로 시간은 더더욱 부족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적 제약은 결국 기본 법 과목들의 커리큘럼 축약으로 이어질 것이고, 이는 4년에 걸쳐 시간을 두고 심도 있게 기본적인 법률 과목의 조문과 이론을 파악하며 학리적인 내용을 강의, 학습하는 과정이 사라지게 됨을 뜻합니다. 게다가 이러한 축약적인 교육과정은 법학의 이론적 기반인 법철학, 법사회학, 로마법 등을 학습할 여유 또한 없도록 할 것입니다. 이러한 법학의 영역들은 사실 실무적인 법학의 기반이 되는 것들인데도 이러한 과목을 수강하지 못한 채 단지 실무법학만을 학습하는 것은 법학을 제대로 학습하는 방법이 아닐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로스쿨 체제에서는 법학을 심도 있게 장기간 공부하는 법학자가 배출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하면 대학원의 석·박사과정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학부에서 심도 있게 각 기본법 과목들에 대한 이론과 판례들을 학습했다는 것은 전제로 하는 것인데, 로스쿨은 변호사 양성에만 치중하고, 로스쿨 예비인가에 탈락해 남게 된 법학부들은 공무원 시험 내지 로스쿨 입학준비에 중점을 둔 과정으로 변질될 것이 뻔하므로, 대학원에서 법학을 연구할만한 사람은 어디에서도 배출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로스쿨 졸업생 중 일부가 학자가 되면 된다고 말하지만, 현재 로스쿨은 졸업할 때까지 1억 5천만 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고가의 교육과정이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투자비용을 회수해야 하므로, 장기간 법학을 공부하여 학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현저히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법학을 하는 학자가 줄어들게 되면, 이는 결국 법학 자체의 학문성을 위협하는 결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법학부 졸업자의 다양한 가능성을 말살하는 로스쿨법.

로스쿨은 다양한 전공자들이 추가적으로 법학을 학습하도록 하여 각 분야의 전문변호사를 양성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전공자들이 추가적으로 법학을 학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 반대로 법학 전공자들이 추가적으로 다른 학문을 학습하고 접목하려는 시도도 긍정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법학부의 강제 폐지는 후자의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는 문제를 가집니다.

또한 학부에서 법학을 가르치는 것은 법학을 학습하는 학생이 단순히 변호사를 위시한 법률가로서 활동하도록 하는 것만을 목적하는 것이 아니고, 법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하도록 하는 것도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학을 학습한 사람이 기업가도 되고, 교사도 되고, 기자도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야만 소수의 법률가들만이 독점하고 있는 법학적 지식이 사회 각 분야에서 공유되고 그럼으로써 법치주의의 기반이 형성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법학부를 강제로 폐지해버리면 그러한 가능성은 송두리째 사라지게 되며, 오직 법학전문대학원을 나와 변호사가 된 사람들만이 법학적 지식을 독점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로스쿨은 기존의 법학부를 흡수할 수 없다.

법학전문대학원과 학부의 법학과는 엄연히 다른 교육 과정으로서, 법학전문대학원이 수행하지 못하는 많은 역할을 현재의 법학과가 수행하고 있습니다. 법학전문대학원은 변호사를 양성하는 일종의 직업교육기관이지만 법학과는 법학을 가르치는 학부과정으로서 다양한 분야로 진출할 학생들에게 기본적인 법 소양을 교육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법학전문대학원이 설립된다고 하여 법학과를 강제로 없애게 되면 변호사가 되고자 하는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기본적인 법 교육을 할 수 없게 되어, 법률적 지식이 오히려 변호사의 전유물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는 법학전문대학원의 본래 취지와도 맞지 않는 것입니다. 게다가 로스쿨의 1년 학비가 2000만원이 넘는 곳도 있을 정도로 고가의 교육과정이기 때문에 로스쿨이 법학 교육을 독점하게 되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법학 교육을 받고자 하는 요구는 아예 충족시킬 곳이 없어지게 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미국에는 법학부가 없다고?

이러한 수많은 문제들을 야기하는 법학부 폐지 규정이 왜 들어가게 되었을까요? 혹자는 로스쿨의 시초인 미국에는 법학과가 없기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는 잘못 알려진 사실입니다.

우선, 미국의 경우 국가가 주도하여 법학부를 폐지하고 로스쿨로 전환시킨 것이 아니라, 1920년대부터 대학들이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전문대학원 체재로 전환시킨 것입니다. 그러므로 법학과를 강제적으로 폐지하는 우리의 로스쿨 제도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법학과가 없다는 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많은 미국의 로스쿨 설치 대학에서는 이른바 'Pre-Lawschool'과정으로서의 법예과(法豫科)를 운영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로 되어 있고, 나아가서 학부에서의 법학 전공 자체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법률로서 학부에서 법학에 관한 학사학위 과정 자체를 전혀 운영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미국에서도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입니다. 또한 미국식 로스쿨 제도를 수용한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도 전공으로서의 법학부의 필요성을 인식하여, 법학부를 계속 유지하고 있으며, 역시 로스쿨 제도를 도입한 일본의 경우에도 법학부를 존치시키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로스쿨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다른 국가와 비교해보아도 로스쿨 제도 하에서 로스쿨과 함께 법학부를 운영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전적으로 대학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우리나라처럼 국가가 법으로서 로스쿨을 설치할 경우 법학부를 폐지하도록 하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법학부 폐지 규정의 얼토당토않은 ‘목적’

로스쿨 설치 대학의 법학부를 폐지하도록 한 것은 ‘로스쿨의 본래 목적을 살리기 위해 다양한 전공의 학생이 로스쿨에 입학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법학과가 남아있으면 로스쿨 입학생의 상당수가 법학과 학생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는 타당하지 않습니다. 우선 로스쿨 입시에서 법학을 평가요소로 할 수 없도록 법이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법학과 학생이 특별히 유리하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법학을 전공하지 않은 학생을 1/3 이상 뽑도록 규정한 이른바 ‘쿼터 규정’ 등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충분한 장치를 만들어놓았음에도, 그 목적을 달성하려고 법학부 폐지까지 강제한다는 것은 비례성이 결여된 과도한 기본권 제한입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조항이 삽입된 것은 입법상의 실수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생각건대 이는 로스쿨 입시에서 법학 과목에 대한 본고사를 치르는 것을 전제로 로스쿨 설치 대학이 로스쿨 예비과정을 운영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법학과를 설치하지 못하게 하는 쪽으로 일단 법률안을 만들었다가, 후에 법학 과목에 대한 본고사를 금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법학과 설치 금지 규정을 삭제하지 않고 그냥 남겨둔 것입니다. 결국 국회 입법 과정에서 법률이 가져올 영향이나 파급 효과 등에 대한 제대로 된 검토 없이 법을 졸속으로 통과시킨 결과 이렇게 어설픈 결과를 발생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또 하나의 숨겨진 목적은 로스쿨에서 탈락된 대학들의 법학부를 로스쿨 예비과정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여, 탈락 대학들의 불만을 완화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로스쿨 인가대학의 법학부를 폐지하도록 하면서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오히려 각 대학들이 법학부의 폐지를 통해 생기는 잉여정원으로 이른바 자율전공이라 불리는 로스쿨 입시를 위한 학부를 만들면서 달성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다시 말해, 법학부 폐지 규정은 오히려 인가대학들이 법학부의 잉여정원으로 자율전공제를 만들게 하여 로스쿨 탈락 대학 측의 입지를 더욱 좁힌 꼴이 되었습니다. 결국 전혀 목적을 달성할 가능성이 없는 엉뚱한 수단을 도입하여 법학에 대한 학사학위 과정이라는 학술 과정을 폐지함으로써, 선의의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피해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법학부와 법학전문대학원의 공존을 허(許)하라.

법학전문대학원이 개설되는 대학에서도 법학부를 유지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여, 법학을 장기적으로 공부하여 법학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나, 판·검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법학을 학부과정에서부터 심도 있게 학습할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혹자는 법학부를 존치시키면 법학전문대학원 제도의 정착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하지만 앞서 말했던 여러 장치들을 통해 충분히 해결될 수 있고, 법학부의 폐지를 통해 목표했던 것은 오히려 해당 조항을 ‘법학전문대학원을 두는 대학은 법학전문대학원의 입학시험 준비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학과를 학사학위 과정으로 운영하거나, 그러한 학과임을 표방하여 학사학위 과정의 신입생을 선발하여서는 아니 된다.’ 정도의 규정으로 바꾸면 애꿎은 법학부를 폐지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목표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만약 법학전문대학원법 제8조가 폐지되어 학사학위 과정의 신입생을 모집하더라도 전체 법과대학의 정원 중에 법학전문대학원의 정원을 제한 나머지 정원만으로 법학부를 운영해야 하므로 기존의 법학부에 비해 굉장히 소규모의 인원이 됩니다. (고려대학교의 경우에는 133명, 서울대학교의 경우에는 93명). 이 정도의 소규모 인원은 법학전문대학원 입시에 있어 다양한 전공의 학생의 입학을 해할 정도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법학부 과정까지 운영할 수 있게 되면 로스쿨 설치 대학의 입장에서는 동일한 교원과 시설로 이중의 등록금 수입을 벌어들일 수 있게 되어, 기존 로스쿨 등록금을 현저히 낮출 수 있게 되고, 이는 현재 로스쿨의 최대 문제인 고비용의 문제를 해결하여 귀족학교라는 항간의 비판을 잠재우고 로스쿨의 정착에 크게 이바지할 것입니다.

법학부를 법학전문대학원과 병치할 수 있도록 하고, 법학 학사를 가진 사람은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할 경우 더 짧은 시간 내에 졸업할 수 있도록 하여 변호사 양성 과정을 이원화하면(법학과4년+로스쿨2년/비법학과4년+로스쿨3년), 다양한 전공자의 법학 학습을 통한 전문 변호사 양성이라는 본래 목표도 달성하면서, 법학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를 원하는 학생들의 요구도 충족할 수 있게 됩니다. 법학을 깊이 있게 공부한 법률가와 특정 분야의 전문 변호사, 급변하는 법조 환경에 양자 모두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한쪽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다른 쪽을 죽이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는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학생들의 대표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법학도로서 국가의 실책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법학부 강제 폐지 조항이 삭제되어 법학부가 되살아나는 그날까지 저항할 것입니다.

2008. 8. 7.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제41대 학생회장 김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