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집 떠나서 나들이를 다녀오는데, 불현듯 집에서 해주는 카레가 생각이 났다.

학교 근처 카레집이라면 어지간히 다 돌아다녀 보았는데, 써니사이드는 위치도 약간 애매하고, 또 앞에 지나갈 때마다 외관이 참 애매하게 느껴져서 한 번도 가보지 못했었다. 그래도 소포게에서 마르지 않는 추천글들을 믿고, 집에서 해주는 느낌의 카레라이스를 먹으러 애매한 시간 네시 삼십분에 써니사이드를 방문했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아무도 없을줄 알았는데 연세가 좀 있으신 두 아주머니께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그리고 사장님으로 추정되는 분이 가장 안쪽 테이블에서 노트북을 펼쳐놓고 계셨다.

테이블에 앉으려고 했는데, 사장님이 일어나셨다. 무언가 애매해져서 나도 같이 일어났다. 메뉴를 주문하려고 했는데 음료 메뉴가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서, 당황한 나머지 '어... 그... 카레... 디너...'라고 중얼거렸다. 사장님은 그 말을 알아들으시고는, 음료 메뉴가 쓰여진 브로셔를 가져다주셨다. 나는 주저없이 '라떼 차가운거요'라고 말했다. 순간적으로 103 아이스라떼가 생각이 나서 흐뭇해졌다.

나는 안쪽 구석에 있는 식탁에 거울면을 마주보고 앉았다. 왼쪽 벽에 위치한 선반에는 커피와 관련된 여러가지 기구들이 있었는데, 일본어가 가득했다. 대부분은 커피 필터처럼 보였는데, 대략만 보아도 열 종류가 넘었던 것 같다. 필터에 따라 커피맛이 달라지는 것인가 아니면 장식용으로 그냥 여러가지를 둔 것인가 잠깐 고민하다가 그냥 그만두었다.

제일 먼저 물이 담긴 물잔과 찬이 담긴 조그마한 종지 두 개가 식탁 위에 올라왔다. 하나는 핑크색이었고 하나는 초록색이었다. 일식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여, 그냥 핑크색은 베니쇼가라는 것인가 하고 그냥 있었다. 목이 말랐기에 물을 한 번에 다 마셨는데, 조금 있다가 사장님께서 '목이 마르셨나봐요'하고 주둥이가 긴 철제 주전자로 컵에 물을 부어주셨다. 손목 스냅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그 찰나에 식물성의 핑크색과 초록색의 정체를 물어보려고 했으나, 타이밍을 놓쳐서 아쉽게도 물어보지 못했다.

곧이어 잠깐 튀김이 지글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밥 부족하면 말씀하세요'라는 멘트와 함께 카레라이스가 식탁 위에 올라왔다. 제법 향이 좋았다. 원형의 접시에 밥이 위쪽 반, 카레가 아래쪽 반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 왼쪽 경계부에 해쉬브라운이 위치했다. 카레에는 감자와 세 종류 정도로 추측되는 버섯, 브로콜리가 넉넉히 들어있었다. 말린 버섯을 사용한 것인지, 얼려둔 버섯을 사용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큰 덩어리의 버섯이 뭔가 약간 질겼다. 그래도 크게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카레는 적당히 진했고, 적당히 매콤했다. 막 일품이라거나 아름다운 맛이라거나 하기에는 조금 부족했지만, 반찬 다 떨어졌을 때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시는 카레에서 느끼는 집밥의 정취가 있었다. 배가 썩 고프지는 않았던 상태라, 한 두 숫가락 정도를 남기고 배가 불러왔으나 기왕 먹는거 마저 다 먹자 싶어서 싹싹 긁어먹었다. 포만감이 느껴졌다.

수저를 놓고 잠깐 머뭇머뭇하자, 사장님이 다시 주방으로 가셔서 치익 칙 촥 촥 촥 하고 커피를 내리셨다. 나는 그제서야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어올 때에는 보지 못했는데 길목에 있는 선반에도 일본어 가득한 그라인더나 홍차 틴케이스가 장식용으로 올려져있었다. '계산하시겠어요'라는 말에 얼른 포스기로 다가가서 값을 치르고 시럽을 약간 넣은 차가운 라떼를 받아왔다.

문을 나서서 빨대로 라떼를 들이키는데, 이건 좀 아름다운 맛이었다. 약간의 쓴맛이 우유의 느끼함을 살짝 잡아주면서 원두와 우유의 고소함이 어우러졌다. 거기에다 약간의 단맛이 더해졌다. 103 아이스라떼와는 비슷하면서도, 뭔가 살짝 덜 정제된 맛이랄까?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맛이었다.

세 줄 요약:

집밥 스타일 카레가 먹고 싶어서 써니사이드에 처음 갔다.
카레는 '일품'까지는 아니여도 재료도 넉넉하고 집밥 맛이 났다.
라떼는 좀 내 스타일이었다. 추천.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29 17: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