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으로 피 흘리기

  시작은 여성들이 주로 사용하는 커뮤니티 카페 및 SNS였다. ‘(릴리안 생리대를 사용하면서) 생리불순을 겪었다.’, ‘생리량이 줄었다.’ 등등의 경험담이 속속히 올라왔다. 이에 지난 21일 식약처는 릴리안을 검사하겠다고 했고, 릴리안을 만든 깨끗한 나라 측은 생리대 부작용 논란이 일자 홈페이지에 제품의 성분 정보를 공개했다. 또한 '릴리안은 식약처 판매 허가를 받은 안전한 제품이다. 릴리안이 사용하는 모든 재료는 안정성을 검증받아 개발부터 생산까지 엄격한 관리 하에 생산되고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나 지난 3월 여성환경연대와 강원대 환경융합학부 김만구 교수가 공동으로 진행한 일회용 생리대 유해물질 검출 시험에서 국내 최다 판매 11종의 생리대에 200가지의 총휘발성유기화합물(TVOC, Total Volatile Organic Compounds)이 포함된 것이 드러났다. 여기에는 발암물질도 있었다. 생리대 때문에 생리 부작용이 있었는지는 아직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여성의 몸에 가장 가까이 닿는 생리대가 ‘이제야’ 논란이 되는 걸 보면, 이번 사태는 생리대를 비롯한 여성용품에 대한 관심과 규제가 얼마나 부족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 생리대와 함께하는 흔한 일상

  '냄새나'. 누구보다 내가 제일 먼저 맡는다. 앉아 있으면 밑에서 피가 썩는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와 내 코로 들어온다. 나 스스로 불쾌하기도 하고 괜히 눈치를 살피게 된다. 나는 지금까지 그게 내 생리혈에서 나는 냄새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생리혈이 일회용 생리대 속의 화학약품에 닿으면서 생기는 냄새였다.

  냄새도 냄새지만 월경을 하는 동안에는 원하는 옷도 마음대로 입을 수 없다. 면도 종이도 아닌 것을 팬티에 붙이면 이상한 각도로 엉덩이 부분이 튀어나왔다. 딱 붙는 하의는 내 생리대의 실루엣을 보여줄 수밖에 없게 되니까 걸렀다. 그리고 흰 옷은…. 절대로 입을 수 없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모두가 알기 쉽다, 내가 월경 중이라는 것을. 왜냐하면, 세 시간마다 몰래몰래 생리대를 챙겨서 화장실에 갔다 오기 때문이다. 눈으로 확인할 수도 없이 오직 감으로 한 개의 생리대가 수용할 수 있는 피의 한계를 느끼고, 생활하는 동안 적당한 타이밍을 살피며 일어나야 한다. 나의 신경은 온종일 나의 일과 내 밑으로 분산된다.

# 일회용 생리대, 이젠 안녕

  안 그래도 불편했던 일회용 생리대였다. 딱 붙어서 찜찜하고, 땀이 차서 축축하고, 혹시라도 뒤태에 티가 나지는 않을까 불안하기도 했다. 이번 릴리안 사태(물론 릴리안만의 문제는 아니다)는 일회용 생리대에 안녕을 고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일회용 생리대의 대안으로는 면 생리대, 생리 컵, 그리고 생리 팬티 등이 많이 언급된다.

‘면이 소재인 생리대, 들어보셨나요?’  
일회용 생리대의 대안으로 가장 친숙한 것이 면 생리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생리대 사태가 터지면서 면 생리대로 가장 유명한 ‘한나 패드’는 지금 주문하면 11월에 받을 수 있을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면 생리대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소재 자체가 면이기 때문에 피부에 자극을 덜 받는 것이다. 여름이 되면 일회용 생리대의 까슬까슬한 촉감은 불쾌감을 주고, 통풍이 안 되고 땀이 배출되지 않아 습진에 걸리거나 심한 경우 피부가 짓무르기도 한다. 하지만 면 생리대는 그런 불편함이 없다. 또한 한 번 구매해두면 3~5년 이상 사용할 수 있어 일회용 생리대보다 친환경적이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에도 경제적이다. 물론 번거로운 부분도 있다. 일일이 세탁 및 건조를 따로 해 주어야 하며, 생리혈이 늦게 흡수돼 축축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또 바깥에서 장시간 착용하는 경우 사용한 면 생리대를 따로 보관해서 가져와야 한다.

'냄새도 안나고 느낌도 안나고 기간도 줄어든다고?'
최근 생리대의 대안으로 생리컵이 떠올랐다. 의학용 실리콘으로 만든 손가락만 한 컵을 질 안에 삽입하는 건데, 우리나라에는 들어오지 않은 것이었다. (미리 예약을 받아 8월 중으로 들어왔고, 가격은 평균 25000원 정도다). 원리는 간단했다. 생리혈이 몸 밖으로 나오기 전에 컵으로 미리 받아 내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여자들이 피를 많이 흘리지 않기 때문에 8시간에 한 번꼴로 컵을 씻어주면 된다. 피가 화학 약품에 닿는 것이 아니라서 냄새도 안 날뿐더러 활동할 때 이물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단다. 그러나 질 안에 무언가를 넣는 게 처음에는 어렵고, 소독하는 것이 번거로울 수 있다. 또 화장실 칸 안에 세면대가 없는 한국 화장실에서는 사용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팬티처럼 입기만 하면 되는 생리대?’
마지막으로 생리 팬티에 대해 알아보자. 생리 팬티란 생리혈을 흡수해주는 팬티다. 생리 팬티는 위생팬티와 달리 생리대를 따로 착용할 필요가 없는 것이 큰 장점이다. 생리혈이 샐 수도 있다는 걱정은 마시라. 생리 팬티는 4개의 천이 얇게 덧대어 있어 액체를 바로 흡수한다. 또 이 천이 박테리아의 번식도 막아준다. 이러한 생리 팬티의 경우 생리컵보다 진입장벽이 낮다. 생리컵은 착용 전에 질의 크기를 재야하는데, ‘삽입’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다. 그러나 생리 팬티의 경우 그런 불편함 없이 바로 ‘입기만’ 하면 된다. 이 밖의 장점과 단점 모두 면 생리대와 비슷하다. 세탁 자체가 번거롭고, 다 말린 후 다시 사용하기까지의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처럼 여러 가지 대안들이 있지만, 이 중 어떤 하나도 무조건 옳다고 말할 수 없다. 각자가 취향이 있고, 편리함에 대한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안들을 통해 여성들은 적어도 불편하고 건강까지 위협받는 일회용 생리대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여성들의 선택지가 일회용 생리대 하나에 국한되지 않고, 자기 몸에 맞는 생리용품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권리를 갖게 되는 것이다.



# For Vagina’s Sake

여기, 많은 여성들의 월경 이야기를 담은 영화 <피의 연대기 (For Vagina‘s Sake, 2017)>가 있다. 내 몸에 대해 알아가고 자기만의 생리용품을 찾는 여성들의 이야기다. 영화를 만든 김보람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1. 영화를 만드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2015년 가을에 샬롯이라는 네덜란드 친구를 만났어요. 샬롯은 11살 때부터 탐폰을 썼는데, 평생 일회용 생리대만 써온 저에게는 그녀의 경험이 색다르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해 미국과 영국 등지에서도 생리 이슈와 관련된 글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어요. 저는 그때 오랫동안 발화되지 않았던 생리에 대해 전 세계의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생각했고, 변화의 조짐을 보았습니다. 이때 이러한 움직임을 목격하지 않았더라면 연출 경력이 없는 제가 감히 다큐멘터리 연출을 하겠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렇게 <피의 연대기>가 시작됐습니다.

Q2.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어떤 영향을 받길 기대하시나요?

  옛날 여성들이 흘리는 피를 어떻게 처리했는지와 월경에 대한 다양한 자료들을 보면서 여성들이 흐르는 피를 처리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사고하고 움직인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우리도 생활 속에서 더 적극적으로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엔 생리대나 탐폰 말고도 시도할 수 있는 다양한 생리용품들이 있어요. 생리용품을 처음 시도해 볼 때 가장 중요한 건 긴장하지 않는 겁니다. 이건 내 몸이니까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팔이나 다리처럼. 사람들 모두가 내 몸에 대해 알아가고 내 몸을 받아들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Q3. 영화를 제작하신 후 본인이 느낀 것들이나 달라진 것들이 있으신가요?

  느낀 것 많습니다. 이렇게 짧은 글로 정리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 내가 내 몸에 대해 무지했다는 거, 알아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됐을까?’라고 생각했을 땐 결국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서 그렇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내 몸에 대해 ‘알아가는 힘’을 길러주는 교육이 어려서부터 있었다면 남을 나와 비교하지도, 내 몸을 스스로 비하하지도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만들고 제 몸이 편해졌어요. 영화를 만들기 전이나 만든 후나 제 몸은 변함이 없지만 내 몸을 바라보는 시선이 편안해진 거겠죠.

  <피의 연대기>에서 여성들은 ‘어떻게 피 흘릴지’ 자신만의 방식을 선택한다. 영화는 내년 1월에 개봉할 예정이다. 김보람 감독은 잊지 말고 보러 오라는 당부를 덧붙였다.



# 월경 주체로서의 여성에게

   한 달에 일주일씩 피 흘리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여성들은 월경을 할 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긴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여성이라면, 월경하는 것 자체는 선택할 수 없다. 하지만 최대한 ‘편안한’ 월경을 선택할 권리는 있다. 면 생리대부터 생리컵, 생리 팬티까지 대안 생리용품들은 편안한 월경을 추구하는 여성들에게 다양한 길을 제시한다. 월경의 주체인 여성은 자신의 몸에 대해 잘 알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더불어 더 이상 쉬쉬하지 않고 월경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경험을 공유하는 과정 역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생리대를 부끄러워하며 감추듯 건네지 않을 때까지, 생리대를 사면 검은 봉투에 넣어주는 것이 ‘매너’가 아닐 때까지 말이다.


김윤수 기자(yunny65@korea.ac.kr)
문민지 기자(allysamj@korea.ac.kr)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6-03 14:5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