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은 ‘언어학의 거장’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1857~1913) 서거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소쉬르는 생전 산스크리트어의 세계적 권위자였고 말년에 ‘일반언어학 강의’로 구조주의 언어학의 토대를 마련해 언어학계의 거인으로 불린다. 소쉬르 스스로 저서를 출판한 적이 없어 관련 저서는 사후 제자들이 강의 수기본을 모아 출판한 한 권 밖에 없지만, 이에 관련된 논문은 수만 편에 이른다. 절대적으로 적은 저서 양 때문에 소쉬르에 관한 연구는 그가 생전에 개인적으로 쓴 육필본에 의지하는 상황이지만, 소쉬르 이론을 응용·해석하는 연구는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본교에서는 소쉬르 사후 100주년을 맞아 한국기호학회(회장=김성도)와 응용문화연구소(소장=김성도) 주최로 각각 ‘소쉬르 사상의 인문학적 유산’, ‘미셸 아리베(Michel Arrive) 강연’을 개최했다.

  2일 서관 132호에서 ‘소쉬르 사상의 인문학적 유산’이라는 주제로 한국기호학회(회장=김성도)의 추계학술대회가 진행됐다. 60여 명이 참석한 이날 학술대회는 미셸 아리베(Michel Arrive, 파리 10대학) 명예교수의 기조강연으로 시작됐다. 1부는 김성도(문과대 언어학과) 교수, 아카타네 수에나가(Akataen Suenaga, 세이죠 대학) 교수의 강연으로 진행됐으며 2부는 ‘소쉬르와 현대 기호학의 흐름’, ‘소쉬르와 현대사상의 유산’, ‘소쉬르와 구조주의의 현대적 적용’ 등 3가지 주제의 발표로 진행됐다.

랑그와 빠롤의 심적 특성
  
  1부 강연에서 아카타네 수에나가 교수는 ‘소쉬르 이론에 나타난 청자의 위치: 일반 언어학 강의와 수고를 중심으로’란 주제로 발표했다. 아카타네 교수는 소쉬르 언어학의 핵심 개념인 랑그(langue), 빠롤(Parole), 기표(Significant), 기의(Signifie)의 관계를 설명했다. 언어활동에서 언어의 의미에 대한 구성원의 사회적 약속 등을 의미하는 랑그는 그 자체가 가진 ‘사회적’ 특성상 듣는 사람 즉, 청자에 초점을 맞춘 개념이다. 반면 우리가 실제 사용하는 발화를 의미하는 빠롤은 ‘개인적’ 특성 때문에 빠롤에 관련된 연구는 주로 발화의 주체인 화자에 집중한다.

  일반적으로 소쉬르는 랑그에 중점을 두고 자신의 언어학 이론을 구축했다는 평을 듣는데 이는 랑그가 가진 심적 특성에 기인한다. 일반적으로 랑그는 사회적이며 발화인 빠롤을 실현하는 구조체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수동적이다. 또한 랑그는 언어를 이용하는 개인의 머릿속에 틀(frame)로 저장되는데 랑그의 심적 특성이 바로 이것이다. 소쉬르는 이 심적 특성에 관심을 가지고 랑그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는데, 소쉬르가 구조주의 언어학자인 동시에 랑그를 중시했다는 평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랑그만 심적 특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소쉬르는 랑그와 빠롤이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지면서도 심적 특성만은 공유한다고 봤다. 빠롤은 개인적이고 물리적이며 능동적이어서 랑그와 정반대의 특성을 지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소쉬르는 빠롤도 랑그와 동일한 심적 특성이 있다고 주장했다고 아카타네 교수는 밝혔다. 이는 소쉬르가 화자와 청자 간 구분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화자와 청자의 구분은 일방적이지 않은데 이는 상호 대화를 통해 화자는 청자가 되고 청자는 화자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본질적으로 구별되지 않는 랑그와 빠롤의 특성 때문에 랑그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심적 특성이 빠롤에도 나타난다. 소쉬르가 언어학 연구에서 이분법적인 랑그-청자, 빠롤-화자의 구도를 만든 건 연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지 둘의 특성이 명확히 다르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랑그와 빠롤이 공유하는 심적 특성은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에게 오해를 낳기도 했다. 그의 유일한 저서인 의 ‘기호구성’란에 그려진 기표와 기의 사이에는 쌍방향의 화살표 표시가 있다. 기표에서 기의로 향하는 화살표는 언어의 형식이 의미를 환기시키는 것을 뜻하고 반대로 기의에서 기표로 향하는 화살표는 언어의 의미가 형식을 환기시키는 것을 뜻한다. 소쉬르는 저서에서 기표와 기의는 서로가 서로를 환기하는 ‘붙잡는(Hold) 관계’라고 밝혔다. 그러나 소쉬르 생전에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의 수기에선 화살표가 나타나 있지 않거나 기표에서 기의로 환기되는 화살표밖에 나타나 있지 않다.

  아카타네 교수는 와 수기에서 나타난 ‘화살표의 괴리’를 심적 특성을 공유하지만 차이가 있는 랑그와 빠롤의 애매모호한 특성 때문에 비롯됐다고 해석했다. 랑그와 빠롤을 통해 구현되는 기표와 기의의 조응 관계 자체가 명확하게 구분될 수 없어 이를 잘못 이해한 학생들의 수기에 화살표가 그려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정서영 기자 jsy@kukey.com
기사원문 1736호(11월 11일자)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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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6-03 09:2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