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방통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이게 하다 보니 촉한 인물들만 하게 되는 것 같아 삼국지 연재가 아니라 촉빠 연재가 되네요. 다음부턴 위나라의 주요 인물들을 여러 명 훑어 보려고 합니다.
방통은 양양군 사람으로 사마휘가 매우 높이 평가하여 명성이 자자했다고 합니다. 연의에서는 방통이 못생긴데다가 약간 자뻑질이 심하고 남을 깔보는 듯한 이미지가 좀 씌워져 있는데, 정사에서는 오히려 반대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나옵니다. "방통은 말할 때마다 칭찬만 해서 듣는 사람이 자신의 재능보다 자신을 과대평가하게 되었다."
왜 이렇게 고평가만 하는가 누구가 물었더니 방통이 답하길, 열 사람을 칭찬해서 절반만 얻어도 세상의 교화를 높일 수 있으며 뜻 있는 선비로 하여금 노력하게 하니 이 또한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하였습니다. 칭찬으로 사람의 자신감을 올려주려는 전략으로 보입니다. 독설가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죠. 방통은 주유와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주유가 죽자 그 시신을 운구하여 오나라로 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후 방통이 유비 밑으로 들어간 후 유비와 대화를 하는 장면에서 방통이 주유 밑에 있을 때 사건이 등장합니다. 유비가 방통에게 "내가 오나라 갔을 때 주유가 나 죽이려고 했다던데 그때 너 주유 밑에 있었잖아 진짜냐?"라고 물어봤고 방통이 진짜라고 하자 유비가 "그때 요청할 것이 있어서 공명이 반대했음에도 진짜 어쩔 수 없이 가서 일 보고 왔는데 하마터면 진짜 골로 갈 뻔했구나"라고 합니다. 아마 이때 유비와 손권이 형주 소유권에 관한 논의를 하지 않았나 추측됩니다.
제갈량도 형주 출신인지라 방통을 유비에게 천거했다고 합니다. 소설에서는 아주 미묘한 라이벌 관계? 구도를 형성하려는 듯하지만 실상은 형주 꽌시죠. 제갈량과 방통은 형주 인맥입니다. 이에 제갈량과 방통이 유비의 군사중랑장이 되고 제갈량은 형주에 남습니다. 방통이 입촉하죠. 방통은 유비가 유장과 연회를 가지게 되자, 이 연회를 이용하여 바로 유장을 사로잡는다면 편하게 익주를 평정할 수 있다고 간언합니다. 이른바 홍문연의 계책이죠. 중국 역사에 자주 등장하는 암살책입니다. 그러나 유비는 이제 막 다른 나라에 들어왔기에 은혜와 신의가 빛나지 않아 그렇게 할 수 없다며 거절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보고 유비 답답하다며 불평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참으로 적절한 판단입니다. 게임처럼 유장 하나 잡는다고 익주가 갑자기 데굴데굴 굴러와서 유비 밑으로 들어가진 않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익주의 토호 세력들 그리고 민심을 휘어잡을 명분입니다. 실제로 유비는 형주에서 다 지키지도 못할 백성들 데려가겠다며 쌩쑈를 하면서 형주 호족들과 백성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죠. 결국 "조조에 맞서 우리를 진짜로 지켜줄 사람은 유비구나"라는 인상과 명분을 주었고, 유비는 형남 지방을 힘들이지 않고 꿀꺽합니다. 결국 유비에게는 "익주로 들어갈 명분"뿐만 아니라 "유장 대신 유비가 필요한 명분"까지도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게 없었다면 익주는 먹지 않는 것만 못하게 되죠. 이렇게 유비는 일단 군을 이끌고 한중 방면으로 출진합니다.
방통은 다시 3가지 계책을 내놓습니다.
1. 상책: 정예병을 몰래 성도로 진격시켜 급습하기
2. 중책: 형주로 돌아가는 척하다가 유장의 명장인 양회와 고패를 베고 성도로 진격하기
3. 하책: 백제성으로 돌아가 형주와 연결하여 다시 기회를 엿보기
유비는 중책을 택하여 유장에게는 악진이 관우와 대치하고 있으니 이를 막으러 가야한다며 병사 1만 명과 군량을 보내달라고 합니다. 이에 유장은 병사 4천 명만 보내주고 군량은 요구한 양의 절반만 보내주니 유비가 곧바로 언론플레이를 시작하여 "우리는 익주를 위해 병사들이 이렇게 좃뺑이 치고 있는데 유장은 창고에 재산을 쌓아두고도 포상을 아낀다. 이게 말이 되냐!" 소리치며 괴벨스 뺨 후리는 연설을 토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양회와 고패를 목 베어버리고 성도로 진격합니다.
정사 삼국지에 의하면 부성 함락 후, 성도 점령 전에 유비가 부성에서 크게 연회를 열어 술을 마시고 있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때 유비가 만취해서 연회가 너무 즐겁다고 하자, 방통은 "다른 나라를 토벌하고 즐거이 여기는 것은 어진 사람의 군대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유비가 "무왕이 주왕을 토벌할 때(시중의 책들에는 '주나라를 토벌할 때'라고 잘못 번역되어 있는데, 주나라가 아니라 주왕입니다. 무왕이 주나라의 왕이죠) 노래 부르고 춤추고 그랬으니 이 또한 어진 사람이 아닌 것이냐?"라며 일갈합니다. 이에 방통이 물러나자 유비가 후회하고 다시 불러들이는 이야기입니다. 굉장히 유명한 일화인데, 이게 좀 의심스럽습니다. 누가 봐도 익주를 완전히 꿀꺽 삼킨 후에 열린 축하연에 가깝지 않습니까? 무왕 역시 상나라를 멸망시킨 군주로, 이 비유 자체가 익주를 완전히 손에 넣었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그래서 방통이 죽은 시점에 대해서 여러 논란이 분분하게 됩니다. 정사 삼국지에는 이 연회가 있은 후에 방통이 진군하여 낙현을 에워싸다가 화살에 맞아 숨졌다고 되어 있는데, 그럼 성도 점령 후에야 비로소 낙현이 함락된 것인지 논란이 있는 것이죠. 유명 유튜버 손찬이형은 방통이 성도 함락 후에 죽은 것 같다는 추측을 하시던데, 저도 여러 정황상 그게 타당해 보이긴 합니다.
사실 성도 함락 전에 죽었든 후에 죽었든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유비가 방통을 오래 쓰지 못했다는 것이죠. 방통이 살아 있었다면? 이라는 if 논쟁도 삼국지 팬들 사이에서 아주 핫한 주제인만큼 방통의 임팩트는 대단했습니다. 유비는 방통이 죽자 눈물을 흘릴 정도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만, 방통이 안 죽었으면 제갈량이 형주에 남아 있었을까? 이건 아니라고 봅니다. 유비가 군을 돌려 성도로 진격한 게 건안 16년(211년)인데 이 해에 제갈량, 장비, 조운도 형주에서 군을 끌고 백제, 강주, 강양을 평정하며 익주로 들어갔습니다. 당시 통신 상황과 군 소집에 필요한 기간, 작전 수행 시간 등을 고려하면 방통이 죽기 훨씬 전에 이미 형주에서 지원군을 끌고 익주로 쳐들어 오려는 계획을 세웠다는 게 타당하다고 봅니다. 방통의 죽음과 제갈량의 입촉과는 무관하다는 것이죠.
유비에게 군사적 책략을 간언하며 직언도 서슴지 않던 방통과 법정이 단명하자, 유비는 책사 없이 옛날 맨땅에 헤딩하던 때처럼 이릉대전을 수행합니다. 마량이 있긴 했지만 너무 어렸고 방통, 법정과는 궤가 다른 인재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관우 사후 이릉대전에 유비가 데려가지 못한 인재만 방통, 법정, 장비, 황충, 마초(이릉대전 때 살아는 있었지만 그 직후 병사한 것으로 보아 이땐 골골대던 때로 추정됨)였고 위연은 한중을 지켰으며 조운은 후방을 지켰으니 그야말로 차포는 물론이고 말과 상까지도 떼고 장기 두는 거나 마찬가지였죠.
방통의 동생은 방림인데 이릉대전에 따라 나섰다가 황권과 함께 위나라에 투항합니다. 여러모로 이릉대전은 대단하네요. 다음엔 말씀드렸던대로 위나라 인물로 돌아오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6-10-24 17:39: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