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나타난 ‘국가보안법’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쟁점.
지난 1월, <노동자의 책> 이진영 대표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압수수색 6개월 훙야 내려진 이와 같은 결정과 그 근거인 '국가보안법'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이번 호 본지에서는 국가보안법의 간략한 역사와 쟁점들, 그리고 현재의 정세에서 이번 사건이 갖는 의미 등에 대해 살펴보았다.

- 때 아닌 국가보안법?
지난 1월 5일 ‘노동자의 책’ 이진영 대표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에 따라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노동자의 책’에서 취급하는 서적 중 이적표현물이 있다는 것, 그리고 이진영 대표의 증거인멸 및 도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구속의 핵심적인 사유였다. ‘이적(利敵)표현’이란 적을 이롭게 하는 표현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노동자의 책’을 통해 접할 수 있는 맑스의 『자본론』과 고리키의 『어머니』, 심지어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와 같은 서적의 어느 구절이 북한을 이롭게 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한편, 이진영 대표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민단체는 이진영 대표가 도주할 가능성이 없었음에도 검찰이 구속을 강행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구속의 사유가 부단히 자의적이라는 데서 논란이 일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국가보안법이 위력을 발휘하는 이 공교로운 상황은 다분히 문제성이 짙지만, 원론적인 차원의 논의도 오가는 중이다. 사회 이론을 공부하고 사회 문제를 고민할 자유조차 억압당하는 현실의 중핵에 국가보안법이 있다. 이 기획에서는 사상통제의 과거와 현재, 그 쟁점에 관해 간략히 살펴본다.
- 식민지 유산으로서의 ‘사상 통제’
국가보안법이 냉전시대의 산물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일본은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영향에 힘입어 활성화되고 있던 국내의 사회주의 운동이 국체 사상을 위협한다고 판단, 이를 억제하기 위한 법률을 제정했다. 1925년 5월부터 일본과 식민지 조선, 그리고 대만에서 모두 시행된 ‘치안유지법’이 그것이었다. 식민통치 기간 내내 조선에서 치안유지법은 일본 열도에서 적용되던 것보다 훨씬 높은 강도로 시행되었다. 탄압의 대상은 일차적으로 사회주의 운동가였으나, 치안유지법은 식민지 해방운동 일반을 규율하는 일제의 가장 강력한 무기로 자리매김했다. ‘국체를 위협’한다고 간주될 만한 것들이라면 얼마든 치안유지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누군가 특정한 사상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사상이란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고, 그것이 아직 행위의 결과로서 나타나지 않은 한 처벌의 대상으로 간주되기 어렵다. 따라서 ‘사상’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법적용 대상의 ‘마음’을 판단할 수 있는 매뉴얼이 필요했다. 한국 사상통제기제의 역사적 형성을 연구한 강성현은, 식민지기 성립된 치안유지법이 “형사법의 철칙인 행위 ‘결과’를 두고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 ‘목적’을 판단해 처벌”하는 최초의 법이라고 지적하면서, 이러한 성격의 법이 “세계사적으로도 유일무이한 사상처벌법”이라고 강조했다. 치안유지법의 적용을 위해서는 어떤 결사를 조직하는 행위만으로도 그것이 즉각적으로 사회 변혁의 ‘목적’ 및 ‘결과’와 결부된다고 간주해야 했다. 그리고 식민당국은 결사 조직 행위와 목적·결과 양자를 매개하는 것으로서 ‘사상’을 지목했다. 이 과정에는 자의성이 개입될 수밖에 없었다. 사상통제법의 연속성만큼이나 사상통제법의 자의성 역시도 계속되고 있는 현실이다.
사상통제법은 해방과 함께 사라지는 듯 보였다. 일제의 치안유지법은 미군정에 의해 공포된 군정법령 11호에 의해 폐기되었다. 그러나 포고2호 계열의 법령들이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만들어지면서 사상통제법의 명맥이 이어졌다. 이후 1948년 12월 제정된 국가보안법이 식민지기 치안유지법을 참조·계승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제주 4·3사건과 여순사건을 계기로 사상통제법은 빠르게 재정립되었다. 형법의 제정이 1953년에 이루어졌으니, 국가보안법의 등장은 시기적으로 매우 이른 것이었다. 이승만 정권으로서는 ‘좌익 세력’을 일망타진하고 그것을 본보기 삼아 분단체제에 걸맞은 ‘국민’을 생산할 도구가 필요했을 때였다. 대한민국 형성의 기원에 해당하는 시점이었다. ‘빨갱이’를 ‘국민’과 ‘민족’의 범주에서 박탈하고 특정한 사상적 지향을 곧 국가 안보의 문제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는 관습은 이 시기를 전후로 고착화되기 시작했다.
- 국가보안법의 최근 적용 사례
국가보안법이 적용된 사례로 가장 가깝게 기억되는 것은 ‘이석기 사건’과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일 것이다. 2013년 8월 국가정보원은 내란음모, 내란선동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당시 통합진보당 의원 이석기를 고발했다. 2014년 2월 헌법재판소는 이석기 사건의 세 가지 혐의를 모두 인정하고 유죄를 선고하였으나, 같은 해 8월 항소심에서 서울고등법원은 내란음모에 혐의에 한해서는 무죄를 판결했다. 이듬해 1월 대법원은 이 판결을 확정했다. 내란음모 혐의의 핵심으로 지목된 ‘혁명조직(RO)’의 실체를 입증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에 따라 과거 헌법재판소의 정당해산 결정이 정당했는지의 여부를 두고 다시금 논란이 일었던 바 있다. 한편,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관해서는 판단이 관철되었다.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자”를 처벌한다는 국가보안법 7조의 내용이 적용된 것이다.
- 국가보안법 7조 ‘고무·찬양·동조’ vs 정신의 자유
국가보안법의 존폐 여부를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문제적이었던 것은 위에 일부 밝혀 적은 국가보안법 7조이다. 여타의 국가보안법 조항들은 기존하는 형법이나 기타 형사특별법규와 중복되어 있는 경우가 많지만, 7조는 국가보안법만의 고유성을 보여주는 조항이다. 명시되어 있듯 7조는 처벌 대상이 직접 ‘반국가 단체 구성원’이거나 그 ‘지령’을 받은 자가 아니더라도 얼마든 적용될 수 있다. 국가보안법 7조가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를 포함한 정신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은 줄곧 지적되어 왔다. 과거 치안유지법이 그러했듯 ‘정신’과 ‘마음’을 심문하는 법은 그 자체로 자의성이 개입되지 않을 수 없었다. 단지 북한의 주장과 유사한 표현을 구사했거나 그러한 문서를 유통했다는 것만으로도 혐의가 인정되곤 했다. 이번 ‘노동자의 책’ 이진영 대표를 구속하는 일 역시 취급서적 내의 단순한 표현상의 유사성이 곧 북한을 이롭게 한다는 비약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우리 사회의 자체적 기준에 따라 위법성을 판단하지 않고 북한의 주장과 이익이라는 외부적 기준에 따라 위법성을 판단한다. 자체적 기준에 따른 사회적 문제제기가 외부적 기준에 의해 제약된다면, 사회 문제의 자율적 해결 가능성에는 언제나 그 임계점이 설정된다. 흔히 ‘종북’이라고 불리는 자들과 그들의 저술이 정말로 터무니없는 것이라면, 그 주장과 표현을 금기시하여 음성화시키기보다 공적인 토론의 장에 나와 그 유효성을 시험해보도록 해야 한다. 주의주장이 무엇이 되었든 합리적인 토론의 과정을 통해 그것을 지양·채택해나가는 길을 찾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사회’에 보다 어울리는 일이겠다.
국가보안법이 근본적으로 정신의 자유를 침해한다면, 국가보안법이 자유민주주의·인권의 보편적 가치와 양립하기 어려운 것은 자명하다. 역설적이게도 국가보안법은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명분을 걸고 있는 국가보안법. 이제 국가보안법은 과거의 치안유지법이나 군정기 포고 2호 계열의 법령처럼 식민 지배자나 위임 통치자의 지배력 확대에 기여하는 법이 아니다. 자국민의 주권국가인 대한민국의 치안과 안보를 위해 존재한다는 엄연한 명분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가 국가보안법을 문제시해야 한다면, 그것은 국가보안법이 ‘통치’와 ‘지배’, ‘규율화’를 위한 수단이라는 점에서일 것이다.

■ 반재영 기자 qkswodud1044@korea.ac.kr

〈노동자의 책〉 이진영 대표 구속

지난 1월 4일, 서울남부지검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노동자의 책〉 이진영 대표에게 구속 영장을 청구했다. 〈노동자의 책〉은 ‘다중 인문사회과학 전자도서관’을 표방하며 1980~1990년대의 사회과학 서적들을 전자책으로 만들어 공유하던 사이트이다(홈페이지 http://www.laborsbook.org). 검찰은 이미 지난해 7월 이진영 대표의 자택을 압수수색하여 107권의 도서와 문건 10여 건을 임의로 압수한 바 있다. 구속영장에서는 ▲다른 국민들에게 계속적인 의식화 시도가 예상된다는 점 ▲이후 더 수위가 높은 활동을 전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 ▲도주와 증거인멸이 우려된다는 점 등을 들어 이씨를 ‘일정 기간 사회에서 격리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구속 영장이 청구된 다음날 서울 남부지법은 이 대표의 구속을 결정했다.

󰡔페다고지󰡕 등을 ‘이적표현물’로 규정한 검찰
이 대표가 구속된 다음날, 20여 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국가보안법 탄압저지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은 보도자료를 통해 검찰과 법원을 비판하며 이 대표의 석방을 요구했다. 공동행동은 ▲문제시된 도서들이 대부분 시중에서 구할 수 있고, 국회도서관에서도 열람 가능하다는 점 ▲이미 1991년 개정된 국가보안법 해석에서 반드시 요구되는 ‘실질적 위험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점 ▲해당 사이트가 이미 오랫동안 공개적으로 운영되어 왔고, 이 대표 또한 철도노조 대의원으로 신원이 확실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이 대표의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세계일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검찰이 문제 삼은 책 130권 중 88권(67.6%)이 국회도서관에서 열람 가능하며, 95권(73%)은 주요 온라인서점에서 구매 가능하다. 즉, 해당 책들의 ‘소지·판매’를 문제 삼기 어렵다. 또한 공동행동 측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해당 책들의 ‘불온’ 사유도 황당하다. 검찰이 “민중의식화를 목표로 하는 민중교육론을 전개한 것이며 폭력투쟁을 정당화하고 계급의식을 고취하는 논리를 전개한 불온서적”이라 지적한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는 교육학에서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저작이다. 또한 “레닌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내용”이라는 체르니셰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는 레닌이 태어나기도 전인 1863년에 출간된 소설이다.

80년대 이전에 머무르고 있는 법 해석
이번 이 대표의 구속은 법 해석의 측면에서도 억지스러운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이광철 변호사에 따르면, 문제시된 표현물들은 1991년 5월의 법 개정 이전의 국가보안법을 적용할 때에만 이적시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 사건은 1990년대 후반부터 국가보안법 제7조에서 이적표현물의 범위를 좁히고 이적 목적도 엄격하게 판단하고 있는 추세에도 어긋난다. 특히 대법원은 이미 지난 1982년에 학문의 자유를 언급하며 “대학생이 학문연구를 위하여 시내 일반서점과 대학 도서관에서 구입 또는 대출받아 보관한 연구자료가 반국가단체 또는 국외공산계열의 사상과 가치체계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만으로써는 그 불법목적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1982. 5. 25. 선고82도716 판결). 또한 개정된 법에 따르면 이적 목적을 증명하는 책임은 검사에게 있는데, 이 대표가 실제로 그런 목적을 지니고 있었는지 세밀하게 밝혀내지 못했다는 것이 이 변호사의 주장이다.

■ 문장원 기자 creep0927@korea.ac.kr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5 05: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