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를 넘어서

2017년은 여러모로 기념할 만한 해이다. 󰡔자본론󰡕 1권 출간 150주년, 러시아혁명 100주년, 87년 6월항쟁 30주년 등을 맞이하는 해이기 때문이다. 󰡔자본론󰡕 출간 등이 과연 기념할 만한 것인지 묻는 이들 역시 정치, 경제, 사회, 혹은 이에 대한 연구에서 앞서 언급한 사건들이 큰 전환의 계기가 되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묘하게도 6월항쟁 30주년이 되는 올해, 우리는 과연 1987년 이후 우리 사회에 민주주의가 도착하고 제대로 뿌리내렸는가를 다시 물을 수밖에 없는 전환점에 서 있다. 또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미국, 폭격과 학살이 자행되고 있는 시리아 등을 떠올려 볼 때, 이는 비단 한국 사회에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이 시점에서 앞서 거쳐 온 전환점을 되돌아보는 것은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하는 데 참조점으로 삼기 위해서라는 점에서 중요한 작업이다. 지난 2월, 〈자본주의를 넘어서-󰡔자본론󰡕 150주년, 러시아혁명 100주년, IMF 위기 20주년을 맞으며〉라는 주제를 다룬 한국사회경제학회의 발표자들은 그러한 참조점을 얻기 위해 위에 열거한 사건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아카데미즘 내부에서의 저항, 그 ‘방법’으로서의 󰡔자본론󰡕
‘[󰡔자본론󰡕 출간 150주년] 󰡔자본론󰡕의 성격과 현재적 의미’라는 주제로 열린 제4분과회의 A에서는 류동민, 이진경 등이 발표를 맡았다. 우선 류동민은 박도영과 함께 쓴 ｢󰡔자본론󰡕과 경제학체계｣라는 글을 통해 아카데미즘 내부에서의 지식생산양식과 이에 대한 비주류경제학자들의 대응 전략에 대해 논의했다. 류동민 등에 따르면, 아카데미즘은 논문투고자와 심사자, 최종 게재 여부를 결정하는 에디터 사이의 정치적 상호과정이 일종의 담론구성체(discursive formation)을 형성하고, 평판이 높은 학술지에 많은 논문을 싣는 것이 학문적 권위라는 상징자본과 직장, 혹은 성과급 등을 보장해 주도록 하는 지식생산양식이 이를 뒷받침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닌 두 기제는 연구자로 하여금 세부 전공에 전념하게 하고 학문의 ‘체계’ 자체를 문제 삼지 못하게 한다.
‘체계’에 대한 고민과 비판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곧 지배적 담론구성체에 대한 ‘저항’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지식생산양식은 이를 가로막는 장벽이 되는데, 아카데미즘으로부터 완전히 탈출하지 않는 한 비주류경제학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식은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비주류경제학자들끼리 모여 학술지나 학회를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류경제학계의 내부로 들어가는 전략이다. 전자의 방식이 이미 그 효력을 상실했다고 보는 류동민 등은 후자의 측면에서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시도한 방법이 여전히 유효함을 주장했다. 즉, 마르크스가 당시의 주류였던 고전학파 정치경제학의 개념과 용어들을 대부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개념과 체계를 내부로부터 전복하는 전략을 취했음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류동민 등은 고전학파 정치경제학과 기본적으로 많은 부분을 공유했던 󰡔자본론󰡕의 방법을 이미 주류경제학과의 간극이 크게 벌어진 지금의 비주류경제학의 그것과 비교하는 것은 경계해야 함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총체성을 갖춘 마르크스의 이론 체계 자체가 아니라 현실과 이론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 그 자체’에 주목할 때, 󰡔자본론󰡕의 방법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류동민 등은 주장한다. 류동민 등은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신고전학파의 체계 안에서 그 모순을 폭로했다는 점, 그리고 멘큐로 하여금 주류 경제학이 “개인적 철학”에 불과함을 고백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적’ 비판의 방법과 힘을 잘 보여준 사례라고 주장했다.

인공지능 이후의 자본주의
한편 이진경은 ｢인공주의 이후의 자본주의｣라는 글에서 ‘인공지능 이후의 사회’를 자본의 축적법칙과 재생산양식을 통해 예측했다. 우선 이진경은 인공지능이 자본주의를 지반으로 하여 자본과 국가권력에 의해 개발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인공지능의 개발도, 또 그 효과도 자본의 운동법칙을 토대로 하기 때문에 인공지능의 미래 역시 그 법칙에 주목해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관점에서 이진경은 인공지능의 미래가 ‘노동 없는 생산’과 ‘이윤 없는 생산’이라는 경향을 보일 것으로 예측했다. 우선 전자의 경우, 마르크스가 분석한 ‘자본의 유기적 구성’에 주목해 도출한 결론이다. 여기에서 유기적 구성이란 가변자본에 대한 불변자본의 비율, 즉 노동력에 투하된 자본과 생산수단에 투하된 자본의 비율을 말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자본이 축적됨에 따라 증가한다고 보았다. 이진경에 따르면 유기적 구성의 증가란 독립적 의지를 가진 노동자들을 노동과정에서 축출하려는 자본가의 의지의 경제학적 표현이다. 그리고 인공지능은 유기적 구성의 증가 경향을 ‘노동의 종말’이라는 극한값에 수렴시킨다. 인공지능이 모든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는 ‘일반성’을 특징으로 한다는 점에서, 새롭게 창출될 일자리조차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
한편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증가는 이윤율의 저하로도 이어지는데, 이 점에서 인공지능은 이윤율 역시 0에 가깝게 떨어뜨린다는 것이 이진경의 분석이다. 이윤의 원천이 노동에 의해 생산되는 잉여가치라면, 위와 같이 생산에서 ‘노동’이 제거될 때 ‘이윤’ 역시 제거된다는 것이다. 특히 생산에서 인공지능의 비중이 커질수록 소프트웨어 등 한계비용이 0에 가까운 ‘정보재’의 비중이 높아지는데, 한계비용이 0에 가깝다는 것은 돈을 내고 상품을 사야할 필요성 역시 0에 가깝게 됨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진경은 위와 같은 경향이 자본주의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강조한다. 위와 같은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축적체제가 등장할 텐데, 이진경이 보기에 그 핵심은 미시적 부불노동의 착취와 적정 수준의 소비를 보장해 줄 수 있는 기본소득의 보장이다. 이미 자본은 한계비용이 0인 정보재의 복제나 이용을 막고 독점지대를 수취하기 위해 지적 재산권을 강화하거나 새로운 연구를 가로막으려 애쓰고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될수록 자료의 입력이나 행정적 일처리 등이 개인에게 전가되어 ‘고용 없는 노동’, 즉 미시적 부불노동이 확대된다. 이러한 부불노동이 직접적 고용 없는 잉여노동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는 것이 이진경의 주장이다. 또한 인공지능 이후의 상품 판매 전략이 ‘맞춤형 다품종화’될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소량생산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즉, 이미 상품의 대량생산체제를 되돌릴 수 없는 이상 소비시장을 유지하기 위한 소득 분배가 자본의 새로운 전략이 될 수 있다. 실제로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대중은 물론 정치인, 행정가, 혹은 인공지능 연구자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는 것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 물론 이진경은 기본소득이 소비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제공할 뿐 ‘풍요’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을 역설하기도 했다.
이진경은 위와 같은 논의를 통해 새로운 노동운동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이진경에 따르면, 간접고용이나 계약직 등 비정규직을 중심축으로 하는 유연적 축적체제에서 노동조합의 힘은 이미 약해졌다. 인공지능 이후 자본주의에서 이와 같은 경향이 더욱 두드러진다면, 기업별 노동조합을 통해 개별 자본가를 상대하는 방법, 혹은 직접적 노동자 조직에 한정해 진지를 형성하는 방법은 큰 위력을 발휘하기 힘들다. 오히려 인공지능과 집단지성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DIY 운동이나 노동자 조직의 범위를 넘어선 대중적 조직형태가 새로이 발명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진경의 결론이다.

레닌과 마르크스의 사회주의론(論)
이어진 제5분과회의 A의 주제는 ‘[러시아혁명 100주년] 러시아혁명의 성격과 현재적 의미’였다. 해당 분과에서 정성진은 다소 논쟁적인 성격의 ｢레닌의 사회주의론의 재검토｣라는 글을 통해 레닌의 사회주의론(論)이 마르크스의 사회주의론을 발전적으로 구현시킨 것이라는 통념을 비판했다.
정성진에 따르면, 레닌의 사회주의론은 마르크스의 그것보다 경제주의와 국가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제2인터내셔널 마르크스주의에 더 가깝다. 우선 마르크스가 사회주의를 공산주의의 동의어로 사용한 것과 달리 레닌은 두 개념을 구별한다. 즉, 레닌은 마르크스가 서술한 공산주의의 ‘초기’ 국면과 ‘발전’ 국면을 각각 사회주의, 공산주의로 구별하고 있다. 그렇기에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공산주의’로의 이행기에 해당되는 것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라고 본 마르크스와 달리, 1917년 러시아혁명 직후를 사회주의로의 이행기로 파악한 레닌은 당시 소비에트 정부 형태를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라 규정했다. 또한 ‘세계혁명’과 관련해서, 정성진은 레닌이 1915년에 제출한 ｢유럽합중국 슬로건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일국사회주의론을 정식화했다고 보았다. 즉, 사회주의가 “단 하나의 자본주의 나라에서도 가능하다”라고 주장한 레닌의 관점은 사회주의=공산주의가 세계적 차원에서만 완성될 수 있음을 일관되게 주장한 마르크스의 관점과 대치된다는 것이다.
한편 노동자계급의 자기활동보다 전위당의 권력 장악에 집중했다는 점, 생산수단의 개인적 소유가 아니라 생산 수단의 국유화를 주장했다는 점, 공산주의 사회에서 상품, 화폐 및 시장이 소멸되고 노동이 폐지될 것으로 본 마르크스의 전망과 달리 그것들이 존속할 것이며 존속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는 점, 마르크스가 정식화한 노동시간 단위 경제조절에 기초한 참여계획이 아닌 국가독점자본주의 계획 경제를 참조했다는 점 등에서 레닌의 사회주의론은 마르크스의 사회주의=공산주의론과 구별된다는 것이 정성진의 주장이다. 정성진은 이와 같은 논의를 통해 1991년 스탈린주의, 역사적 공산주의의 파산은 레닌 사회주의론의 한계를 지시하는 것이지 마르크스 공산주의론의 실패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도출한다. 마지막으로 정성진은 ‘마르크스=레닌=트로츠키’라는 도식으로 인해 억압되거나 인식할 수 없었던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사상이 재조명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자본 헤게모니의 성립 과정과 민주주의의 위기
한편 이 날 학술대회의 마지막 분과인 제6분과회의는 ‘[1997년 경제위기 20주년] 1997년 경제위기 20주년과 한국경제의 대안’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해당 분과에서 김정주는 ｢경제위기 이후 ‘97년 체제’의 성격과 한국자본주의의 모순｣이라는 글을 통해 한국에서의 신자유주의 수용과 자본축적 방식의 전환, 자본 헤게모니의 성립과 그것이 야기한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 분석했다.
‘작은정부론’, ‘반노조주의’, ‘통화주의’ 등을 주된 특성으로 갖는 미국의 신자유주의는 1980년대 경제 개방화 및 자유화 과정을 통해 한국에 수용되었다. 김정주에 따르면 한국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핵심적 역할을 담당한 이들은 경제기획원을 중심으로 한 경제관료 집단인데, 대부분 미국식 대학교육을 받은 이들은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고 있었다. 또한 노태우 정부 이후 기업 관련 인사들의 각료 충원이 잦아지면서 재벌-관료 동맹체가 형성되기도 했다. 집권 세력의 교체와 무관하게 정책의 핵심적 위치를 지킬 수 있었던 이들은 일관된 정책적 기조를 유지할 수 있었고 국가를 대신해 경제적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IMF 외환위기 시기 재벌을 중심으로 한 자본이 투자 및 고용의 축소를 통한 비용절감 위주의 전략으로 사회 양극화를 야기할 때, 정부가 이를 방관하거나 오히려 심화시켰다는 점이 위와 같은 사실을 잘 보여준다.
한편 위와 같은 과정은 경제 영역이 ‘탈정치화’ 되었음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는 한국의 민주주의에도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 김정주의 분석이다. 우선 김정주가 보기에 1987년 획득된 정치적 민주주의란 축적된 물질적 부에 대한 대중들의 실질적 지배와 통제의 확장을 수반하지 못한 채 형식적 의미에 머무른 것이다. 김정주는 특히 신자유주의 정책이 ‘시장’이 아닌 ‘기업’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인 한 정치적 규율이 작동하지 않는 시장이란 결국 기업의 자본 축적 욕망을 정당화할 뿐임을 강조했다.  
국가가 개입을 포기한 상황에서 시장에 정치적 규율을 작동시킬 수 있는 이들은 시민들인데, 김정주가 보기에 그 정치적 가능성을 결정적으로 차단시킨 것이 노무현 정부이다. 특히 노무현 정부는 신자유주의적 질서가 완성되기 위한 마지막 영역인 공공부문에서 국가가 담당할 역할을 포기함으로써 위와 같은 경제 질서 재편을 완성시켰다. 주택과 교육 부문의 시장화는 가계부채를 증가시켰고, 대중들의 일상적 삶 자체가 금융적 관계망에 포섭된 것이다.
이러한 한국사회의 시장화가 가져온 가장 파괴적인 결과는 개인과 대중이 자기 이해관계와 자본의 이해관계를 동일시하게 되었다는 점(자본의 헤게모니 성립), 그리고 이를 통해 한국의 민주주의는 사회공동체의 이해로부터 유리된 채 단지 선거를 통해 정권이 교체되는 문제로 협소화되었다는 점(민주주의의 위기)에 있다는 것이 김정주의 결론이다. 마지막으로 김정주는 그간 한국의 진보진영이 국가물신주의와 성장물신주의를 비판하면서도 그와 같은 물신주의가 재생산되는 현실적 근거와 사회적 주체성을 억압하는 제도적 힘에 대한 분석에 소홀했음을 지적했다. 또한 대중들이 자유로운 사회적 주체로 등장하는 것은 주체성을 억압하는 역사적, 제도적 조건들을 스스로 변화시킬 수 있을 때에만 가능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논의를 마치고 있다.

■ 문장원 기자 creep0927@korea.ac.kr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3 18:08: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