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재생산 도구로만 전제하는 출산장려대책에 반대한다.

  지난해 말부터 정부가 출산장려대책이라고 내놓은 안들이 갈수록 가관이다. 행정자치부가 가임기 여성의 수와 비율을 지도에 표시해 뭇매를 맞았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인데, 최근에는 출산율 저하의 원인을 고학력·고소득 여성에게 돌리며 이들로 하여금 스펙을 낮추고 하향결혼을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제출한 이 보고서가 싣고 있는 결혼율과 출산율 상승 대책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보면 이렇다. “여성의 교육수준과 소득수준이 상승함에 따라 하향선택 결혼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관습 또는 규범을 바꿀 수 있는 문화적 콘텐츠 개발이 이루어져야 함. 이는 단순한 홍보가 아닌 대중에게 무해한 음모 수준으로 은밀히 진행될 필요가 있음.”
  그동안 정부는 이러한 저급한 인식을 바탕으로 인구관리대책을 마련해왔고, 그 가운데 특히 여성은 재생산을 위한 도구로서만 전제되어왔다. 출산율은 물론이고 결혼율을 결정하는 원인을 전적으로 여성에게 돌리며 당장의 수치와 비율을 증가하는 데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대책은 문제적이다. 그 속에는 여성들이 왜 결혼을 하지 않는지, 출산과 육아의 길을 선택하지 않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부재해있다. 연애, 취업, 결혼 등을 포기하는 ‘n포 세대’ 이야기를 굳이 하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가 재생산이 이루어질 수 없는 구조적 문제에 봉착해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더욱이 대부분의 여성들은 여전히 출산과 육아의 상당 부분을 떠안게 되면서 경력단절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출산을 하는 이에게 지급되는 얼마의 돈이 구조적 문제와 불안감을 지우는 데 얼마나 효과적일 수 있을까. 지난 10년 간 출산장려를 위해 80조원 가량을 쏟아 부었지만 출산율과 신생아수가 사상 최저인 작금의 상황은 정부가 내놓는 대책들의 허망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숫자나 비율 따위에 집착하는 인구관리 대책에는 삶과 노동의 질, 인간적 가치에 대한 고려나 배려가 조금도 개입해 있지 않다. 이 부분을 간과하고는 재생산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최근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여성은 아이 낳는 기계나 걸어다니는 자궁’이 아니라며 재생산을 거부하는 강력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육아나 출산에 대한 거부 뿐 아니라 비혼을 선언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와 같은 재생산 대책에 저항하는 흐름이 가시화 되면서, 우리는 더 근본적인 질문 앞에 놓이게 됐다. 이성애 정상 가족을 보편으로 상정하는 사고와 재생산을 지상 과제로 여기는 태도의 만연은 정당한 것인가. 출산장려대책에서 전제하는 재생산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일본의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우에노 지즈코는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에서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의 단초를 “인구의 규모가 국부國富라고 보는 이들”로부터 찾기도 한다. “결혼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아무 상관할 필요가 없어요. 대체 무슨 상관이죠? 뭐가 문제란 겁니까? 사회학사 아카가와 마나부씨는 《아이가 줄어들어 뭐가 나쁜가!》라는 책에서 ‘결혼이 줄고 아이가 줄어서 대체 누가 힘든가’라고 했습니다. 재계만 힘들다, 곤란하다고 하소연하죠.”
  그리하여 다시 묻자. 정부의 출산장려대책은 대체 누구의 필요를 위한 것인가.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4 01:48: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