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문제입니까

염동규

대학원생들이 겪는 부조리와 삶의 애환을 다루는 을 연재하면서 자주 보게 되는 독자들의 반응이 있다. ‘안 그런 곳도 많으니 대학원 생활의 좋은 점도 반영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은 애초 기획 단계에서부터 말 그대로 ‘슬픈 대학원생들’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진 작품이었다. 대학원생이 겪는 슬픈 이야기들을 확산시킴으로써 제도적 차원에서의 해결을 유도해보자는 명확한 기획 취지가 있었다. 다시 말해, 한국 대학원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그 잘못된 부분을 조장·방치하는 대학원 제도 전반에 대한 시정을 촉구하는 웹툰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몇몇 독자들은, 이 일부의 사례에 불과한 것을 ‘과장’하여 웹툰 속 이야기가 마치 대학원 전체의 현실인 것처럼 ‘왜곡’한다고 말하곤 한다. 웹툰 작가로서의 책임감이 없지 않기에, 직접 독자들에게 웹툰의 기획 취지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고 있다. 없는 이야기를 지어낸 것도 아닌데 왜 내가 움츠러들어야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사실 독자들의 이러한 반응은 꼭 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는 반응이다. ‘헬조선’ 담론에 대해 함부로 훈수를 두었던 정치인들은 ‘헬조선’이라는 언어가 몇몇 청년들의 단순한 ‘열패감’에서 비롯한 것뿐이라고 일축해버렸다. 위대하고 고명한 자유 대한민국에는 자랑스러운 부분도 많이 있지 않느냐는 논리였다. 세월호의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시대의 예술 작품들, 신문 기사, 댓글 등에 대해 ‘천안함도 잊지 맙시다’ 운운하는 반응들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사회의 응답을 촉구하는 ‘고통’들에 대해 딴 소리를 하고야 마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런 반응들은 모든 문제를 부분적인 문제에 불과한 것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부분적인 문제는 다른 부분적인 문제들과 정확히 동등한 위상을 가질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 사회의 어둠은, 빛이라고 가정된 다른 부분들, 혹은 같은 위상을 지녔다고 가정된 다른 어둠에 의해 덮인다. 이들이 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그런 일은 흔하다. 모든 게 정상적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발견되는 이런 식의 반응들은 오늘날의 ‘현실 전반’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될 수 있는 사회적 외상들을 ‘개인 혹은 일부의 국소한 문제’로 한정하려 한다. 이는 전형적인 봉쇄 전략이고, 반드시 극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걸음 더 들어가 말해보자면, 사실 이런 형태의 봉쇄전략들은 ‘전체의 문제’로까지 문제를 확장하여 보는 전망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정작 ‘부분’의 실상에 대해서도 온전한 응답을 수행하고 있지 않다. 그런 점에서 매우 문제적인 현상이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 앞에서 천안함은 왜 기억하지 않느냐고 훈수를 두는 일은, 세월호도 천안함도 애도하고 있지 않은 자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들은 결국 불편한 문제 제기가 싫은 사람들이다.

‘모든 문제의 개별화’로 축약할 수 있는 위와 같은 현상은 대학원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석사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학업에 관해 겪었던 내 자신의 절박한 문제들은 곧잘 ‘나만의 문제’인 것으로 취급되곤 했다. 어째서 수업은 학생들의 발제로만 채워져야 하냐는 의문, 교수님도 모르는 걸 왜 강의 주제로 삼냐는 의문, 아무런 기준도 참고 문헌도 지정되지 않은 종합시험제도가 이대로 괜찮은지에 관한 의문, 논문을 쓸 수 있는 연구자로 길러내기 위한 교육적 측면의 뒷받침은 왜 부족한지에 대한 의문. 별반 해주는 것도 없이 등록금만 왜 이렇게나 높은지에 대한 의문. 늘 그랬던 건 아니었겠지만 나의 의문에 대한 대답은 종종 냉소적이었다. 결국 공부는 당신 혼자서 해야 하는 것이므로, 교수로서든 선배로서든 해 줄 일은 없으며 그럴 의무 또한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그 뒤에 이런 말들이 따르곤 했다. ‘너만 힘든 거 아니다. 그건 대학원의 문제가 아니라 너만의 문제일 뿐이야.’

그건 나도 안다. 공부는 결국 혼자서 하는 것이다. 연구자들 각자에게는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것이니 남에게 내 세계의 문제를 의탁해봤자 소용없는 부분이 분명 있다. 나 혼자만 힘든 게 아니라는 것도 물론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의 불만은, 왜 대학원 생활을 거쳐 나가면서 겪는 어려움들을 그 자체로서 읽어주려 하지 않느냐는 데 있다. 모든 문제는 당신 자신의 문제일 뿐이니 대학원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 네가 말하는 그것이 문제라 하더라도 너만 힘든 게 아니니 별 일 아니라는 것.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직간접적으로 들어왔던 이 같은 말들은, 개선을 기다리고 있는 대학원 사회의 문제들을 은폐하는 방편이 되고 있지 않은가?

어떤 분야의 학문에서든 연구자가 성장해나갈 수 있는 방식은 다양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변화와 그에 따른 학문 풍토의 변화, 혹은 연구자들 사이에서 새로 생긴 문제의식 여하에 따라 연구자가 연구자로 성장해 나가는 방법 또한 가변적이다. 이런 식의 강의 방식, 이런 식의 연구 방법, 이런 식의 시험 제도가 유일한 것이냐는 의문, 자기 자신의 공부를 찾아나갈 수 있게끔 뒷받침해주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는 호소는 그래서 정당하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므로 이 호소들을 단순히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라는 구호 아래 덮어버릴 수는 없다. ‘알아서 하라’는 지상명제의 이름으로 개인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만 남겨둔다면 전체 학문이 성장해 갈 수 있는 새로운 경로가 차단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다. 아니 그런 걸 떠나서도, 개인이 느끼는 절박한 문제들을 없는 것 취급해버리고 마는 게 옳은 일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제기되는 불만들을 단지 개인의 문제로만 취급하지 않기로 하자. 어떤 사회에서건 ‘전체’의 문제들은 오로지 ‘개인’을 통해서 체감될 수 있고, 언제나 가장 개인적인 것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