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엔 발리바르, 진태원 옮김, 『폭력과 시민다움』, 도서출판 난장, 2012.

우리는 어떤 시민인가?

허 민(문화연구자)

문재인 정부의 초기 내각 구성이 난항인 가운데, 시민들의 정치참여가 이슈로 떠올랐다. 총리인선을 위한 청문회가 생중계되자, 정권을 출범시킨 시민들의 감시가 고조되고, 부당한 질의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물론 이 자체는 매번 반복되는 현상이다. 다만 그 정치참여의 형태가 ‘문자와 카톡’으로 이루어졌다는 특이성이 있을 뿐이었다. 부패한 권력을 끌어내린 촛불 시민들은 이제 민의를 대의하는 의원들과 어떠한 간접적인 매개 없이 스마트폰 하나로 연결되고 있다. ‘팩트 체크’가 실시간으로 검색되고, 질의한 의원의 ‘과거’가 전송된다. ‘당연히’ 야당의원들은 반발했다. 그들은 대개 시민들의 문자세례를 ‘폭탄’이나 ‘테러’로 규정하며, 민주주의를 유린한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선출된 권력’이란 언제든 국민이 그에 대한 지지를 거둘 수도 있다는 사실위에서 확보되는 자리이다. 즉 그 권위는 국민에 의해 항구적인 감시-피드백을 당하는 한에서만 유지된다는 것이다. 항의문자는 (직접민주주의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대의’의 이 자명한 원리를 상기하는 방법일 수 있다. 대의제란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자들의 의사까지도 수용하기를 강제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회에 전송되는 수많은 문자가 수행하고 있는 폭력성에 대한 성격규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다시 말해, 야당의원들이 자신을 향하는 ‘문자’에 대해 ‘테러’ 운운하는 것을 다만 부정할 것이 아니라, 외려 그것이 함의하고 있는 폭력적인 효과에 대해 사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에티엔 발리바르의 『폭력과 시민다움』이 좋은 참조가 된다. 발리바르는 맑스주의의 이론적 한계를 ‘게발트(Gewalt)’의 측면에서 다룬다. 이때 ‘게발트’란 ‘폭력’과 같이 “법이나 정의에 반대말을 가리키는 동시에, 법이나 정의의 실현내지, 어떤 제도(일반적으로 국가)가 그 실현의 책임까지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18쪽) 기본적으로 다의적인 개념이지만, 바로 이 다의성이 정치와 폭력의 잠재적 변증법, 또는 ‘대립물의 통일’을 표시케 한다.

흔히 폭력은 지배자들의 구조적 폭력과 이에 대응하는 인민의 폭력적 해방(또는 혁명적 폭력)이라는 대립적 관계로 사유되는 관행이 있다. 고전적 맑스주의는 전자의 폭력을 후자의 폭력으로 극복-발전케 할 수 있다는 ‘상상’에 기초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폭력을 자본주의의 구조 속에서 식별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모든 부의 살아 있는 원천, 곧 대지와 노동자를 파괴함으로써만 사회적 생산과정의 기술과 결합을 발전시킨다.” 하지만 “살아있는 노동력의 파괴는 노동력 자신의 저항, 전자본주의적 생활-문화 양식의 체계적 소멸을 가져오는 사회의 근대화 때문에 극단적으로 폭력적인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44쪽) 결국 자본주의에서 ‘극단적 폭력’이라는 현상은 제거할 수 없으며, 그럼으로써 혁명의 문제는 단지 권력 장악이나 생산양식의 변혁만이 아니라, 문명화의 관점으로 확장해야할 필요가 요청되는 것이다.

‘혁명의 문명화’, 정치를 문명화하고, 국가를 문명화하는 현실적인 가능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맑스의 분석을 확장해야 한다. 맑스를 ‘다시’ 읽으려는 발리바르의 문제의식이 바로 여기 있다. 폭력은 무분별하게 행사되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쉽게 지양할 시킬 수도 없는 정치의 근원적인 사태이다. 그렇기에 문제는 혁명을 문명화할 수 있는 정치적 주체성, 즉 ‘시민다움’의 확보 가능성에 있다. 그가 말하는 ‘시민다움’의 정치란, ‘비폭력’도 아니며, ‘대항폭력’과도 동일시 할 수 없다. 정치에 있어 폭력은 종결되지 않는 것이기에 그러하며, 목적을 위해 폭력이라는 수단을 정당화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시민다움’이란 ‘평등자유’라는 정치의 토대를 허구로 간주하고, 외려 폭력과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이를 ‘지연’시킬 수 있는 우발적이면서도 현실적인 가능성을 사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촛불혁명은 ‘정권교체’를 이루어냄으로써 부패한 권력을 반성케 하는 동시에, 반대로 정치를 항구적으로 감시해야하는 ‘시민의 몫’을 돌이키게 했다. ‘문자폭탄’은 물리적인 강제를 동반하지 않으면서도 기성의 권력에 ‘폭력적인 효과’를 야기함으로써 새로운 정치성을 확보케 한 것이다. 시대교체의 입구에서 ‘시민다움’의 상상은 계속되어야 한다. 우리는 과연 어떠한 시민으로 남게 될 것인가? 이러한 고민의 영속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다시’ 기대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