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 김유동 기자

두 소녀의 따뜻한 악수

3·1절을 맞아 주한일본대사관 옛터 앞에서 열린 정기 수요집회에 4명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포함한 1200여명의 시민이 참가했다. 이들은 정부의 굴욕적인 위안부 합의와 소녀상 철거에 반대하며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해임을 주장했다. 3월 8일에는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유럽 최초로 독일 비젠트의 네팔-히말라야 파빌리온 공원에 평화의 소녀상이 일본의 철거 압박에도 불구하고 세워졌다. 일본의 외교적·경제적 공세에도 굴하지 않고 희생자와 진실을 잊지 않겠다는 힘이 여전히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고무적인 일들이었다.

그러나 비판의 날을 안으로 돌려보면 어떤가. 우리 안에도 ‘조용히’ 폭력을 행하고 ‘서슴없이’ 침묵하는 모습이 남아 있다면? 1966년부터 1971년 사이 한국군에 의해 자행된 베트남 민간인 학살은 80여건으로, 피해자 수가 9000여명에 달한다. 이는 베트남 당국의 조사에 의한 것이지만 수많은 민간인 피해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문제는 단순히 숫자의 차원이 아닌, 치를 떨게 할 만한 학살의 잔인함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파병되었던 종군기자와 미군 장병들의 증언에 의하면, 한국군은 동료가 한 명이라도 죽거나 다치면 베트콩과 무관한 마을이라도 보이는 대로 초토화했고, 여자들은 강간한 뒤 살해했다. 때문에 베트남 마을 곳곳에는 위령비가 아닌 한국군 ‘증오비’가 세워져있다.

한국 정부는 학살 51주년에 접어든 올해에도 베트남에 공식적인 사과를 전하지 않았다.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이 없었다’는 것이 국방부의 입장인데, 이는 ‘입증자료가 없다’며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인하는 아베 정부의 입장과 무슨 차이가 있나. 한편, 학살은 인정하면서도 ‘한국은 동맹국의 처지로서 미국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또는 ‘상관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다’는 식의 논리는 독일 전범 아이히만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논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한국 정부는 가해자로서의 입장을 받아들이고 피해자 베트남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와 보상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훗날 일본의 사과를 받더라도, 우리의 평화의 소녀상은 인류 보편적 차원의 ‘평화’를 대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물론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월남참전자회는 기자의 민간인 학살 보도를 명예 훼손으로 고소하고, 고엽제 전우회는 평화적인 베트남인들의 ‘학살 피해자 행사’를 방해하며, 해마다 6800여명의 베트남 여성이 몇 백 만원에 3~40대 한국 남성에게 ‘팔려’간다. 그럼에도 지난 2015년 4월 수요집회에서 김복동 할머니가 베트남 피해 여성을 만나 꽃다발을 전해주고 서로 악수하고 격려하는 모습은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촛불’이 그러했듯 국경을 넘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연대와 공감이 위안부 문제 해결에도 새로운 빛을 비춰주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