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의 진보적 인사들에 대한 불이익을 줄 목적으로 비밀리에 작성된 이른바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2016년 10월부터 구체적인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 명단은 야당후보를 지지했거나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 선언’과 ‘세월호 시국선언’ 등 세월호 침몰 사고 관련하여 서명을 한 문화예술인 9473명을 대상으로 청와대와 문체부가 직접 기획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결국 지난 달 2월, 특검이 블랙리스트 관여자로 박근혜 대통령을 지시하면서, 블랙리스트의 지시 계통이 보다 소상히 드러나게 되었다.
  이미 이명박 정부 집권기부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정부 측의 행태에 분노해 왔던 문화예술계는 발칵 뒤집혔다. 문화예술인들의 집단 소송과 항의가 거세게 이어졌고, 블랙리스트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블랙리스트의 시대, 그 의미는 무엇이며 문화예술인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본지는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저항의 움직임 중심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해 오고 있는 문화연대 집행위원장인 이동연 한국예술종합대학교 교수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념 편향’적인 ‘유신‧극우’의 정권
  문화예술계에서 블랙리스트의 존재에 대한 추측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4년 하반기부터 합당하지 않은 이유로 진보적 예술단체나 작가들이 예술사업 지원에서 대거 탈락하기 시작하자, 검열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짐작은 지속적으로 있어왔다. 하지만 명단 등의 구체적 물증이 없던 중, ‘최순실 게이트’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면서 ‘블랙리스트’는 실재하고 있으며, 조직적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이동연 교수는 블랙리스트의 존재 자체가 반민주적 정권의 실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지적했다. “문화예술인들은 기본적으로 박근혜 정부의 사상적 뿌리인 유신과 극우적 성향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예술의 태생적 성향이 진보적인 관점을 견지하는 것인데, 문화 예술이 불균형하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정권의 이념적 실체를 드러내준 거라고 생각합니다. ‘문화 예술계가 좌편향 되어있고, 이들을 가리기 위한 블랙리스트가 필요하다’는 발상 아닙니까. 이것은 정부가 기본적인 문화 예술에 대한 개념 이해를 잘못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오히려 예술을 이념 편향적으로 보는 당사자는 예술가가 아니라 이 정권입니다. 이런 점에서 정권의 본질이나 실체를 극명히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검열과 탄압을 당연시 생각하고, 통치행위의 일부로 여기는 것은 유신정권이 행해온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현 정권이 가진 유신과 극우의 뿌리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블랙리스트 사태인 것이죠. 블랙리스트는 기본적으로 표현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 위헌적 측면도 있지만, 이 행위 자체가 유신의 실체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정권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속적인 문화예술인들의 저항과 그 의의
  이명박 정부 때부터 ‘좌파 예술가’들에 대한 탄압과 청산 움직임은 문화 예술계 여러 부분에서 감지되었다. 정권 비판적인 영화창작에 대한 압박이나 한예종에 대한 대대적 감사와 사업 폐지, 예술위원의 조기교체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이 대규모 리스트로 본격화된 것은 세월호 사고 이후부터다. 이 교수는 문화예술가들에 대한 대대적인 정리의 움직임은 이 때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블랙리스트 작성이 시작된 것이라고 밝혔다. “근무학교가 문체부 소속기관이라서,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의지와는 무관하게 문화예술 자문이나 정책에 대한 의견수렴 회의 등에 참여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기억을 되짚어 보면, 2014년 여름부터 그러한 요청이 깨끗이 끊어지고, 연락 자체도 잘 되지 않았습니다. 자문회의 같은 명단에서 중간에 철회되는 일도 있었고요. 그때 ‘구별 짓기를 하는구나’하는 예상은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큰 불이익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 차원의 경험이 있었죠.”
  단순한 지원 대상자에서 탈락하는 것이 아닌, 적극적인 탄압을 겪은 사례는 알려진 것만도 수두룩하다. 영화진흥위원회와 부산국제영화제의 갈등, 천안함이나 세월호를 다룬 영화가 대관 불허를 받은 것 등이 그 예이다. 실체를 밝힐 증거가 없었을 뿐, 불합리한 처우에 대해 문화예술계는 적극적으로 저항을 해 왔다. “정부가 한 작업에 대해 예술가가 가진 책임은 없습니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반발하고, 문제제기를 해 왔습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저항해온 예술가들의 행동이 있었기에 실체가 드러날 수 있었던 것이죠.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지고, 문화예술인들이 광장과 거리에서 나와 항의를 한 과정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국면에 있어서 전위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예술인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 필요
  마지막으로 올바른 문화예술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예술가들이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고 지킬 수 있는 태도에 대해 물었다. 이 교수는 무엇보다도 이념의 잣대로 예술을 편 가르고 재단하여 문화예술인들을 권력에 이용하고 복종시키려는 태도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예술인들에게 특별한 대우를 해 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들이 행사하는 표현의 자유를 헌법적 가치 차원에서 보장해달라는 것이고. 또 문화예술에 대한 공정한 지원, 평등한 지원, 좀 더 다양한 지원들을 해야 합니다. 원칙만이라도 잘 지켜야 한다는 겁니다. 더 나아가, 예술인들 스스로가 창작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화예술인이 지원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익을 얻으려는 게 아니라, 납세자로서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이기도 하고요. 중요한 것은 재정지원의 여부가 아니라 검열을 하고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고, 자기 정치 입맛에 맞게 동의도 안 받은 채로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에 대한 분노거든요. 다른 정권에서 일어난다면 똑같이 저항해야 될 문제입니다. 문화예술인들이 좀 더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국내에서는 예술이라 하면 비정치적인 ‘순수한 분야’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문화예술인들도 예술가 혹은 예술이 처한 사회적 환경이나 재난의 현장에서 외부인일 수 없습니다. 오히려 더 적극적인 발언과 표현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예술은 미술관이나 무대, 공연장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술가가 사회적인 주체로서 적극적으로 사회적 발언도 하고 표현도 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 예술계는 아직도 보수적이지만, 자기성찰을 통해 조금 더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인터뷰·정리: 김유동, 신지현 기자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0 23:1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