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민중가요, 한결같은 노래들

-[새민중가요선집]

서정민갑(대중음악의견가)

음악을 분류할 때는 대개 장르로 구분한다. 록, 일렉트로닉, 재즈, 포크, 힙합 같은 장르는 바로 음악의 어법에 따른 분류이다. 그런데 음악 어법과 무관한 분류도 있다. 음악을 언제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분류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파티음악, 종교음악 같은 분류가 바로 음악의 용도에 따른 분류이다.

민중가요도 마찬가지이다. 민중가요는 민중들이 좋아하는 노래가 아니다. 민중가요가 민중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라면 대중음악이나 유행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민중가요는 ‘민중’에 주목한 노래이다. 민중가요의 민중은 그저 어디에나 있는 사람의 무리인 대중이 아니다. 민중은 가진 것 없는 피지배계급이며, 빼앗기고 억눌리면서도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일하는 이들이고, 지배권력에 맞서 싸우면서 역사를 밀고 나가는 사람들이다. 계급적이고 진보적인 개념이 배어있는 용어로서 민중가요는 다양한 어법의 음악을 통해 현실을 고발하고 개선하고자 하는 목적의식적인 문화예술운동이다.

한국에서 민중가요가 본격화된 시대는 1980년대부터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음악을 통해 현실에 개입하려는 음악은 많았다. <새야새야> 같은 구전민요들과 근대개화기 부국강병의 메시지를 담은 노래들 역시 민중가요의 자장으로 묶을 수 있는 노래들이다. 독립군가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해방 이후 만들어진 진보적 이념의 노래들 또한 소중하고 의미 있는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은 한국사회를 강력한 반공병영국가로 만들어버렸다. 정부를 비판하고,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모든 시도는 빨갱이로 몰렸다. 간혹 현실의 문제점을 정직하게 노래하려는 목소리들조차 검열 앞에서 가로막혔다. 1970년대 말 대학 노래패들이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은 노래들을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변변한 민중가요를 찾기 어려웠다.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을 거치며 치열한 신념으로 무장한 운동권이 대학과 공장 안팎에 뿌리를 내리면서 비로소 민중가요는 본격화되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한국의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의 성장과 맞물려 민중가요는 운동세력의 이념을 외화하고, 대중화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되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솔아 푸르른 솔아>, <광야에서> 같은 노래는 운동세력의 세계관과 지향을 노래에 담아 표현함으로써 효과적으로 확산시켰다. 노래는 멜로디와 리듬, 가사를 하나로 이어 어떤 연설과 구호보다 큰 감동과 설득력을 안겨주었다. 또한 민중가요는 운동세력의 신념을 다지고 결속시키는 역할도 담당했다. 노래를 부르며 결심했고, 노래를 부르며 견뎌냈던 것이다. 민중가요는 운동세력을 상징하는 문화와 기호 가운데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9년에 출반된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2집이 50만장에 육박하는 판매고를 올린 사실은 대표적인 증거이다.

그러나 1990년대 중후반 이후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이 쇠퇴하거나 체제내화하면서 민중가요 역시 영향력이 줄어들었다. 민중음악은 단지 음악으로서만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중가요는 운동세력과 함께 존재했고, 운동세력의 조직을 통해 생산되고 유통되고 보급되었다. 보금자리와 마찬가지였던 운동세력의 영향력이 줄어들자 민중가요 진영의 뮤지션들은 팀 활동을 지속하기보다는 개별적인 활동으로 방향을 틀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활동을 벌이기도 하고, 보다 사적이고 내면적인 이야기를 노래하기도 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와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를 거치면서부터 문화제 형식으로 변모한 집회에 인디 신의 뮤지션들이 적극적으로 결합하기 시작했다. 운동세력과 연계되지는 않았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보편적 상식을 공유하고 공감한 뮤지션들, 실제 삶이 전통적 의미의 민중과 크게 다르지 않은 뮤지션들이 집회에서 노래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 중에는 현실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노래하는 이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들에게는 민중가요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반면 민중가요는 그저 현실을 비판하는 노래운동이라고 볼 수 있었음에도 1980년대부터 민중가요라고 불렸던 노래의 어법과 정서를 공유하는 기존의 노래운동권에게만 국한되는 용어처럼 여겨졌다. 민중가요 진영의 음악 어법은 전혀 천편일률적이지 않았으나 민중가요라는 용어는 군가풍의 행진곡이나 장엄한 합창곡으로 한정되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인디 신의 뮤지션들은 자신들의 움직임과 음악에 별도의 이름을 붙이지 않고 자유롭게 다양한 현장에 결합했다. 두리반 철거 반대 투쟁, 4대강 사업 반대 집회, 세월호 추모 현장 등 곳곳에서 흔하게 인디 신의 뮤지션들을 만날 수 있었다. 뮤지션유니온, 자립음악생산조합 등의 조직이 결성되었고 뮤지션의 삶과 음악적 실천을 고민하는 움직임이 조직적으로 펼쳐졌다. 이 가운데 인디 뮤지션과 민중가요 뮤지션들이 함께 연대하는 모임도 있고, 집회 현장에서 서로 만나기도 하지만 이들은 서로 결이 다른 집단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최근 몇몇 인디 뮤지션들이 [새민중음악선집]이라는 음반을 발표한 사실은 매우 이채롭다. 이 음반에 참여한 뮤지션 이형주, 예람, 오재환, 황경하는 기존 민중음악 진영의 뮤지션이 아니다. 이들은 민중가요가 영향력을 갖고 있던 시대에서 성장한 이들도 아니다. 20대와 30대 초반 연배인 이들은 자립음악생산조합에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뮤지션들로서 그동안 노량진 수산시장, 신사동 우장창창, 이태원 테이크아웃드로잉, 아현동 포장마차 등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강제 철거 반대 투쟁에 꾸준히 함께 해왔다. 기존 민중가요 뮤지션들이 민주노총쪽의 노동조합이나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움직이는 편이었다면 이들은 몇몇 단체들과 함께 소규모로 진행된 철거반대투쟁에 꾸준히 결합했다. 크게 화제가 되지 않았고, 많은 이들이 참여하지도 않은 투쟁에 자립음악생산조합쪽의 뮤지션들이 계속 참여해왔는데 흥미롭게도 이 투쟁들에는 기존 민중가요 진영 뮤지션들이 거의 결합하지 않았다. 그 바람에 이들의 움직임을 아는 이들 역시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들의 움직임은 테이크아웃드로잉, 우장창창을 비롯한 현장의 투쟁이 지속되고 순조롭게 마무리하는데 큰 원동력이 되었다. 또한 일회적인 결합이 아닌 상시적으로 결합함으로써 2000년대 예술행동의 중요한 사례가 되었다. 뮤지션이자 기획자인 황경하가 주도해서 만든 음반 [젠트리피케이션]은 이들의 음악과 실천이 담긴 의미있는 결과물로서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 특별상을 수상하면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리고 네 명의 뮤지션들이 5박 6일동안 성주의 사드 반대 투쟁에 참여하면서 만들어진 [새민중음악선집]은 민중음악 진영과는 다른 과정을 거쳐 현장에 참여해온 이들이 스스로를 민중음악으로 명명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앞서 언급했듯 이들은 기존의 민중음악을 들으며 성장한 이들이 아니고, 현재 민중음악이라는 용어가 현재의 젊은 음악인들과는 단절된 과거 특정 세대와 어법의 음악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회과학적 학습을 통해 인식의 틀을 만들고 그 틀에 기반해 음악을 만들고 현장에 결합하는 민중가요 진영의 방식과 달리 현장에 결합하면서 자신의 인식을 만들고, 현장에서 느낀 충격과 인식을 바탕으로 노래를 만드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어찌보면 과거 운동집단의 형성과정과 유사한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들이 기존의 민중가요 진영의 음악으로부터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들의 성장 과정은 자발적 성장에 가깝다.

그래서 이들의 노래에서는 과거 민중가요의 노랫말에 흔히 담겼던 자유, 해방, 투쟁, 노동, 연대 같은 낱말들이 없다. 과거 민중가요의 작품 경향을 되짚어보면 비교적 생활 언어에 가까웠던 민중가요의 노랫말이 1987년 이후 보다 관념화되고 구호화된 경향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들의 노래에서는 그러한 경향을 찾을 수 없다.

[새민중음악선집]에는 총 7곡의 노래가 담겨있다. 광주에서 활동하는 블루스 뮤지션 이형주가 <방식대로>, <영가>, <다신 돌아갈 수 없을까요>를 불렀고, 예람이 <나가주오>와 <그림을 그린다>를 불렀다. 그리고 오재환이 <그래도> 한 곡을 불렀고, 황경하가 <별고을>을 노래했다. 이형주의 <방식대로>는 경쾌한 블루스 리듬 위에서 “네가 하는 그 방식으로 3일만 굴러가면 틀림없이 우린 모두 망할거야”라는 노랫말로 성주와 성주 밖에서 벌어지는 모든 지배권력의 폭력을 비판한다. 예람의 노래 <나가주오>는 여린 목소리로 “여기 남겨진 사람들에 대해서” 노래하면서 “하늘에는 답이 없”는 모든 절망을 완강하게 거부한다. 어쿠스틱 기타에만 맞춰 부르는 노래임에도 노래는 세상의 모든 성주에서 느꼈던 절망과 분노를 절망과 분노의 아름다움으로 탁월하게 전달해낸다. 이형주의 <영가>는 성주 대치시위에서 함께 외웠던 원불교의 주문 ‘영가’가 지닌 영성을 블루스의 영롱한 사운드 안에 간절하게 담아냈다. 원불교가 담지한 영성이 고난의 현장에서 스스로 평화가 되어 발현되고, 다시 노래가 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종교와 삶과 예술이 만나는 연대와 일치의 소중한 성과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오재환이 부른 <그래도>는 “이 곳은 사실 나라의 땅인데 / 어느 나란지는 너랑 상관이 없다고” 말하는 권력의 무자비함과, ‘온갖 추상적인 단어들과 거대한 명분’을 동원해 권력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현실을 넌지시 풍자하고 비판한다. 이형주의 <다신 돌아갈 수 없을까요>는 경건한 목소리로 빼앗긴 이들의 불안을 노래한다. 그리고 예람의 <그림을 그린다>는 다시 포크의 어법으로 “자유로운 마을”과 “사라지지 않는 꿈”을 노래한다. 음반의 마지막 곡인 황경하의 <별고을>은 그 자체로 성주를 말하고 있다. 초창기 민중가요의 투박함과 간절함이 고스란히 옮겨진 듯한 노래는 “힘이 없는 사람들 / 두려움에 떨고 있네”라는 노랫말로 성주의 고통에 대한 진심어린 공감과 연대를 표현하고 있다.

이 음반에는 화려한 편곡이나 다양한 악기의 변주는 없다. 장르 역시 포크와 블루스 정도이고, 자본의 부족으로 인한 한계 역시 숨김없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이 음반에는 지금 고통받는 사람들, 지금 피흘리며 싸우는 이들의 곁에 가서 자신이 보고 느낀 목소리를 자신의 노래에 담으려는 진실함과 진지함이 있다. 그 마음을 노래안에 고스란히 담아내고만 뮤지션의 고투가 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 것도 아니고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이들은 이렇게 제 몫의 노래를 부르며 노래의 길을 잇고 있다. 민중가요가 특정 장르가 아니라 하나의 정신이라면 이 또한 민중가요가 아닐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40여년을 거슬러 다시 아름다운 노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