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건너편 – 김애란, 「건너편」, 『바깥은 여름』, 문학동네, 2017.

한영인(문학평론가)

노량진을 대표하는 것은 생선과 수험생이다. 힘차게 펄떡일 만큼 싱싱하지만 좁은 칸막이 안에 갇혀 기약 없는 탈출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 둘은 묘하게 닮았다. 물론 도마 위에서 난도질당한 뒤에야 비로소 그곳을 벗어날 수 있는 생선과 뚜렷한 목적 하에 공부에 몰두하고 있는 수험생의 처지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생선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생(生)의 출구가 수험생들에게는 비록 바늘구멍만큼 작더라도 분명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 작은 희망이나마 움켜쥘 수 있는 인류는, 그래서 어류보다 얼마나 더 행복할까. 노량진을 무대로 하는 김애란의 소설들은 종종 이런 엉뚱한 상념에 빠지게 만든다. 「건너편」 역시 마찬가지다.

도화와 이수는 만난 지 팔년 된 연인이다. 수험생들에게 무료로 밥을 나눠주는 노량진의 한 교회에서 처음 만난 그들은 현재 보증금을 함께 마련한 은평구 신사동 전세집에서 동거하는 중이다. 그들은 모두 ‘탈(脫)노량진’에 성공했지만 시험 합격만이 유일한 ‘탈(脫)노량진’의 길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 외의 길이 더욱 보편적일 텐데 그것은 바로 시험을 포기하고 노량진을 뜨는 일이다. 재수 끝에 경찰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도화와 달리 이수는 거듭되는 낙방에 공무원 시험을 접고 현재 부동산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건너편」은 노량진에서 만나 청춘의 바다를 함께 건너온 도화와 이수가 이윽고 당도한 삼십대의 기슭에서 헤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이 시작하는 순간부터 도화는 이수와의 이별을 마음먹은 지 오래로 그려지지만 그 이유가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으므로 독자는 그녀가 품은 헤어짐의 이유를 짐작해 볼 수밖에 없다. 그럴 때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상실된 ‘청춘’이다. 도화는 화장하던 중 눈가에 진 주름을 보고 “자신이 한창때를 지났다는 걸 체감”하며 “자신도, 이수도 바야흐로 ‘풀 먹으면’ 속 편하고, ‘나이 먹으며’ 털 빠지는 시기”를 맞았음을 깨닫는다. 청춘이 저물어 버린 것은 이수도 마찬가지다. 그는 “지난 십 년간 자기 삶에 남은 것 중 가장 귀한 것이 뭘까” 생각해보지만 답을 찾지 못한다. 지난 십 년의 청춘은 현재의 삶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그저 휘발되어 버린 것이다. 둘의 사랑 역시 시들어버린 청춘처럼 바싹 말라 작은 마음의 물결에도 쉽게 바스라진다. 청춘이라는 강물에 떠다니던 조각배 같은 사랑은 강물이 말라버리는 순간 갈 곳을 잃고 만 것이다.

소설은 이번 크리스마스에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자는 이수의 제안으로 시작한다. 이수는 친구 결혼식에서 사회를 보고 받은 오십 만원으로 도화에게 회를 산다. 이수는 도화의 만류에도 아랑곳없이 25만원짜리 줄돔을 고른다. 그들은 상차림 비용만 받는 식당에 들어가 노량진 시절 한 달 생활비에 육박하는 생선의 흰 살을 씹는다. 이수는 자신이 집주인을 찾아가 전세보증금을 빼서 반전세로 돌린 일을 도화가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도화는 이미 집주인의 연락을 받은 상태다. 도화는 무덤덤한 얼굴로 묻는다. “그 돈으로 뭐했어?” 당황한 이수는 곧 그 돈을 돌려놓겠다고 말하지만 그 전부터 이별을 준비한 도화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는 없다. 사실 이수는 회사를 관두고 그 돈으로 노량진의 학원을 등록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왠지 느낌이 좋아. 잘될 거 같아. 사 년 전에도 마지막이라고 말했지만 이번에는 정말 마지막이야. 정말 딱 한 번만. 내년 여름까지만 부탁할게.” 이수는 이렇게 간청하지만 도화의 마음은 바뀌지 않는다. “나는 네가 돈이 없어서, 공무원이 못 돼서, 전세금을 빼가서 너랑 헤어지려는 게 아니야...그냥 내 안에 있던 어떤 게 사라졌어. 그리고 그걸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 같아.” 이내 침묵이 둘을 감싸고, 그렇게 팔 년에 걸친 둘의 인연은 끝이 난다.

다음 날, 출근한 도화는 교통방송을 진행하던 중 노량진에 대한 교통정보를 전하다가 울컥함을 느낀다. 이 울컥함은 “한 번도 제철을 만끽하지 못하고 시들어간“ 이수의 모습이 문득 떠오른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수와의 헤어짐을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던 자신에 대한 느끼는 일말의 죄책감 때문이다. 소설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이 난다. ”더이상 고요할 리도, 거룩할 리도 없는, 유구한 축제의 뒷날, 영원한 평일, 12월 26일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소설이 10여 년 전 발표된 「성탄특선」의 후일담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거기서 여관방을 찾아 전전하던 가난한 20대 청춘들은 이제 30대가 되었지만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30대의 삶은 축제의 흥분과 기대감마저 모두 사라져버린 ”영원한 평일“의 날들로 그려진다. 김애란 소설에서 노량진은 현재를 희생하는 대가로 미래의 안정과 행복을 도모하는 공간의 은유다. 「건너편」은 그렇게 도달한 미래 역시 또다시 희생되고 유예되어야 하는 현실에 불과하다는 서늘한 통찰을 보여준다. 청춘의 건너편을 지긋이 응시하는 작가의 태도에는 특유의 재기발랄한 유머와 위트가 빠져 있다. 그것 역시 작가가 도화의 입을 빌려 말한 ‘내 안에 있던 어떤 것’인지의 여부는 불확실하지만 이러한 상실이 삼십대의 삶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