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어느 동성애자의 죽음을 기억하며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더 곱씹어야 하는 죽음이 있다. 그의 친구들은 파운데이션, 술, 담배, 녹차, 묵주, 수면제를 가장 가까운 벗으로 알고 지낸 그를 육우당(六友堂)이라고 불렀다. 시조시인이기도 했던 그는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과 실제 성소수자이기도 했던 자신의 마음을 담은 시조와 가사(歌辭)를 적었다. 고등학교에 재학하면서는 스스로 커밍아웃을 했고, 그로인해 집단따돌림에 시달렸다. 그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아버지는 그를 학교에서 자퇴하게 했다. 동성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집과 학교로부터 외면당했던 그는 성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활동하다가, 2003년 4월 열여덟의 나이로 자신이 일하던 동성애자인권연대 사무실에서 목을 매 죽음을 선택했다. 어느 기독교 단체의 동성애자 비판 성명이 있은 지 얼마 후의 일이었다. “동성애는 소돔과 고모라의 유황불로 심판해야 한다.”는 세상을 향해 육우당은 죽어서 당당히 동성애자임을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유언을 남겼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1년이 지나 청소년 유해물의 심의 기준에 포함되어 있던 동성애가 삭제되었다. 성소수자들이 겪는 고통이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고, 그 고통을 함께 짊어지기 위한 연대가 활발히 모색되기도 했다.

그로부터 훌쩍 십여 년이 흐른 지금, 세상은 더 나아졌는가. 사회의 진보에 대한 물음 앞에 그러하다 선뜻 답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24일 동성애자인 대위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군인, 준군인에 대해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군형법 92조의 6항을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미 지난 1월부터 육군의 동성애 색출이 논란의 도마 위에 올라있던 상태였다. 육군은, 누가 동성애자인지, 누구와 함께 잠자리를 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성관계를 맺었는지 등을 집요하게 추궁하면서 용의선상에 수십 명의 군인을 올렸다. 아주 사적인 성적 지향이 성 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만인에게 낱낱이 까발려 질 수 있는 상황. 성 정체성만으로도 용의자가 될 수 있고, 언제든 범죄자로 낙인을 찍을 수 있다는 인식. 그리고 그러한 인식을 무엇보다 견고하게 뒷받침해주는 법의 조항. 나와는 다르다는 이유로 비정상의 굴레를 씌우고, 단죄하고, 처벌하는, 이 끔찍한 상황 앞에서 육우당은 죽음을 선택했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조용히 자신을 숨기고 있는 ‘대위들', 그러다가 결국에는 생을 마감하고 마는 수많은 ‘육우당들’이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한 대학은 국내에서 최초로 동성애와 동성결혼을 반대한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동성애 행위가 근본에서 인간 개인과 공동체에 해와 병을 가져”온다는 입장을 대학에서 앞장서서 발표하고 그것이 허용되는 현실은 ‘소돔과 고모라’를 운운하던 십여 년 전과 다르지 않다. 그 대학 내에도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성 정체성과 종교적 신념, 그리고 사회적 분위기 사이의 불일치를 온몸과 마음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것이다. 대학마저 성 소수자들을 침묵과 존재 부정,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상황 속에서, 우리 사회가 육우당의 죽음을 잊지 않고 떠올려야 하는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하므로. 다양한 정체성과 삶의 방식을 인정할 수 있어야, 진정 민주주의를 입에 올릴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