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무거워진다”

단편선 (음악가)

  젊은 음악가를 만났다. 나와 그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얼마 전 있던 이벤트에서 그를 처음 보았다. 이벤트는 '인디 음악가로서 먹고 산다는 것'을 주제로 음악가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는 식의 구성이었다. 나는 '인디 음악가로 먹고 살기는 아무래도 힘드니 차라리 투잡을 하면서 천천히 음악을 만드는 것이 생활의 질적인 측면, 양적인 측면에서 나을 것'이라는 요지의 이야기를 했다. 그건 평소 내가 늘 하고 있는 생각인 탓에 딱히 마음 걸릴 것은 없었으나, 나를 제외한 연사 모두가 자신의 긍정적인 경험들과 앞으로의 밝은 전망들에 대해 이야기한 탓에 내가 괜히 찬물 끼얹는 말을 했나 싶어 건물 바깥에서 혼자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때 한 분이 다가와 인사를 하고 명함을 건네주었다. 자신도 음악을 하고 있다 말했다. 내게 조언도 구할 겸해서, 시간 되면 다음에 한 번 뵙자는 제안을 주셨다. 물론 밥은 자기가 대접한다 했다. 나는 밥만 주면 어디든 가는 인간이기 때문에 그럽시다, 했다. 이런 바보 같고 부정적인 이야기만 하는 인간이 무슨 도움이 되겠냐는 생각도 잠시 들었으나, 어쨌건 공짜 밥을 먹을 수 있는 건 좋은 일이니까.
  며칠 뒤 약속을 잡았다. 당일 아침에 어디로 가면 되는지 물어보니 본인이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카페로 오시면 된다 했다. 스마트폰에 주소를 찍어보니 마침 종종 가는 카페 근처였다. 시간에 맞춰 약속장소로 가보니 그는 크림 파스타를 만들고 있었다. 아직 요리 중이셨던 지라 나는 카페의 이 곳 저 곳을 구경하고 있었다. 한 쪽 벽면에는 간단한 공연을 진행할 수 있는 장비들이 갖추어져 있고, 규모에 비해 조금 더 넉넉한 테라스가 있는 깔끔한 인상의 공간이었다. 자리로 돌아오니 파스타가 차려져 있었다. 평소에는 조금 더 간을 하는 편인데 코감기 때문에 간이 안 맞을까 걱정된다 했다. 하지만 살짝 심심하게 먹는 걸 선호하는 나로선 좋은 느낌이었다. 원래는 요리에 취미가 없는데 카페 매니저로 일하게 되면서 메뉴를 리뉴얼할 필요성이 있어 요리사로 일하고 있는 사촌 형에게 파스타를 배워와 연습하고 있다 했다. 앨범을 몇 장 냈지만 간신히 본전치기만 했고 같이 밴드를 하던 친구들도 생계 때문에 밴드를 그만 두게 되어 음악을 처음부터 다시 해보고자 하는 요즘이란 이야기도 들었다. 오기 전에 그의 음악을 들어보았다. 음악은 매력 있는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으론 평이해 매력이 잘 살아날만한 스타일은 아니었다. 듣고 느낀 점을 조금 이야기해주다 보니, 어느새 이야기가 음악으로 어떻게 먹고 살 수 있을까에 대한 쪽으로 흐르게 되었다.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나 자신도 내 앞가림 잘 한다 생각지 않는 까닭에서다. 카페에서 나오면서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었다. 내가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보다도 지금 음악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더 어려운 점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나는 열아홉 살에 남들 앞에서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열아홉 살이라곤 하지만 빠른 년생이라 대학교 1학년 때였다. 그 전까지는 곡을 쓰고 합주를 했다. 고등학교 시절 게임 동호회에서 만난 친구들과 처음 밴드를 하기 시작했다. 밴드를 시작할 무렵만 해도 기타를 칠 줄 몰라서 나는 키보드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부른 것도 목소리에 자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만든 곡이니까 내가 불러야겠지, 하는 생각에서였다. 기타를 처음 연주하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였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눈뜨고 코베인이라 불리는 밴드의 팬이었다. (한국의 인디 음악에 딱히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잘 모를 수도 있는 이름인데, 지금은 유명해진 장기하 씨가 드러머로 활동하던 밴드다.) 그들의 라이브를 좋아했고, 그래서 그들이 연주하는 조그만 클럽들을 종종 찾았다. 그 중 하나가 '재머스'란 클럽이었다. 친구들과 나는 우리가 좋아하는 눈뜨고 코베인이 활동하는 그 클럽에서 데뷔를 했으면 했다. 찾아보니 재머스는 오디션이란 제도를 통해 신인 밴드를 발굴하고 있었다. 클럽 공연이 있는 날, 공연 끝나고 정리를 마친 다음에 클럽의 사장님이 보시는 앞에서 두 세 곡 정도를 연주하고 사장님 마음에 들면 오디션에 통과하는 식이었다. 우리는 언니네 이발관이란 밴드의 곡과 우리가 만든 곡을 몇 개 준비해서 연주했고, 보기 좋게 떨어졌다. 몇 주 뒤 조금 더 준비를 해서 이번에는 신촌 근처에 있는 롤링스톤즈라는 클럽에서 오디션을 보았다. 사장님은 연주를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너희들 음악은 좀 들을만 한 것 같은데 연주를 너무 못 한다. 무엇보다 연주를 하기 전에는 먼저 조율을 하고 시작해야한다"고 말해주셨다. 그때까지 우리는 연주를 하기 전에 조율을 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던 것이다. 어쨌건 그렇게 라이브 클럽이란 곳에서 연주를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의 클럽은 다음과 같은 제도에 따라 운영되고 있었다. 오디션에 통과한 밴드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다. 클럽은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운영되며, 갓 데뷔한 신인밴드는 목요일 공연의 오프닝부터 시작한다. 밴드의 실력이 늘고 조금씩 인기가 올라가면 차차 더 좋은 요일에 공연할 수 있게 된다. 보통 목요일, 일요일, 금요일, 토요일 순으로 점차 등급이 올라가는 식이었다. 우리도 목요일부터 시작했고, 한 달에 한 번 쯤 주어지는 공연에 참여하거나 갑작스레 펑크가 난 밴드의 대타를 뛰곤 하면서 차차 더 좋은 요일로 옮겨갔다. 어쨌건 클럽이 돈을 버는 것은 금요일이나 토요일 공연 때였기 때문에 주말, 특히 토요일에는 당시 인디씬에서 꽤 유명하다 싶은 밴드들이 무대를 가졌다. 어린 우리들에게 '토요일 밴드'라는 존재들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목요일에도 많진 않았지만 관객이 있긴 했다. 어떤 밴드의 팬이라기보다는 하루 일과가 끝난 저녁에 마치 맥주를 한 잔 마시고 귀가하듯, 클럽에서 라이브를 보는 것이 라이프스타일로 맞춰져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헤비리스너이거나 얼터너티브한 음악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잦았고, 우리 같은 풋내기 밴드들이 연주하는 '잘 못하지만 어쨌건 새로운' 음악들에 대해서도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분들 중 일부가 우리에게 호감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우리도 조금 더 나은 무대에서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2004년과 2013년 사이에는 13년의 시차가 존재하며, 그 사이에 나는 앨범도 몇 장 내고 군대도 다녀오고 대학도 졸업하고 예비군도 끝나 버린 서른 두 살의 중년 음악가가 되어버렸다. 유명하고 돈 많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불행히도 그런 사람은커녕 아직도 겨울 되면 공연이 없으니 일감 뚝 끊겨서 일용직 아르바이트나 하러 돌아다니는 아픔과 슬픔의 프리랜서 인디 음악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직 음악을 그만두진 않았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내가 처음 데뷔할 당시 활동하던 클럽들은 거의 대부분 영업을 그만 두었다는 점이다. 2004년 음악을 처음 시작할 무렵만 해도 신촌의 상권은 아직 건재했고 홍대앞은 지금만큼 시끄럽지 않았다. 홍대 앞이 전에 비해 크게 상업화 되었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상업화 되는 것 자체가, 물론 주민들의 삶은 질은 급속히 하락하겠으나, 당장에 음악가나 음악가들의 공간에 바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일시적으로 유동인구가 늘어나고 편의시설이 많이 생기니 좋은 점도 있다. 하지만 급속도로 지대(rent)가 높아지면 몇 년 안에 영세한 규모의 클럽으로선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실제로 그런 문제 때문에 문을 닫게 된 클럽이 적잖다.
  한편 관객들의 문화도 크게 바뀌었다. 이제 관객들은 더 이상 평일에 클럽에 와서 이름도 잘 모르고 실력도 대개 떨어지는 신인 밴드들의 음악을 입장료까지 내면서 보지 않는다. 대신 유튜브를 통해 신인 밴드들을 체크한다. 손님이 오질 않으니 클럽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평일까지 영업하려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주말 공연을 신인들에게 맡길 순 없다. 그러니 신인들이 설 자리는 점차 없어진다. 이 외에도 여러 요인 때문에, 지금 클럽의 공연을 꼬박꼬박 챙겨보는 사람은 전에 비해 굉장히 드물어졌다. 클럽에서 공연을 해도 관객이 들질 않으니 밴드로선 인지도가 높아지는 것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결국 많은 밴드들은 자구책으로서 EBS나 CJ, KT&G에서 정기적으로 진행하곤 하는 경연 프로그램 등에 기댄다. 상대적으로 이목이 집중되는 경연 프로그램인 탓에 성공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상을 타거나 한다면 주목받을 가능성도 높아진다. 나이가 나보다 조금 더 많은 음악가들은 이를 야박하다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시대가 바뀐 것뿐이다. 문제는 큰 기업이나 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자생력이 약해졌는데, 이에 대한 대안이 딱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풀뿌리 민주주의' 같은 게 존재하기 어려워진다 해야 할까.
  열아홉 살에 데뷔할 때, 내가 속한 생태계에 대해 내가 져야하는 책임은 없거나 극히 미미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서른 두 살이고, 어떤 책임들을 져야할 나이가 되었다 생각한다. 아마 몇 년 뒤면 나 역시 다음 세대에게 '선배는 도대체 해놓은 게 뭐가 있냐?'는 이야기를 듣기 시작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 놓인 것이 음악가들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사회 역시 수많은 저항에도, 심지어는 거대한 촛불시위를 통해 정권을 교체해냈음에도 몰려오는 자본의 거대한 파도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자본이나 자본주의가 꼭 나쁜 것은 아닐 테지만, 권력이 한 곳에 집중되는 것은 늘 부작용을 낳기 마련이며, 실제로 수많은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젊은 음악가는 성공할 수 있을까. 그가 성공한다면 그에겐 물론 좋은 일이겠으나, 혹시 그 뿐인 것은 아닐까. 몇 년 뒤 나는 그보다 더 젊은 음악가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마음이 무거워진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19 11: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