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은폐하고 있는 노동권 회복을 위하여

  그동안 대학은 ‘학문의 상아탑’이나 ‘지식 생산의 중심지’라는 고상한 이미지 속에서 여러 노동을 은폐해왔다. 대학 내 노동에는 그 권리를 제대로 주장할 수 없으며 세간에 그와 관련된 문제가 제대로 의제화 되지 않아왔던 사각지대가 존재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조교 노동이다. 연구를 평생의 업으로 삼으려는 대학원생들에게 이들 노동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2015년도 국가인권위의 <대학원생 연구환경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30%가 넘는 학생들이 생계나 등록금을 조교 노동을 통한 수입에 의지하고 있다. 장학금에 의지하고 있다는 학생비율은 50%에 임박하는데, 많은 대학들이 대학원생들에게는 노동을 전제하지 않는 성적 장학금 등을 매우 낮은 비율로 제공하고 있다는 점, 조교 노동의 임금 지급 형태가 장학금이라는 점, 이 조사가 중복 답안 체크를 허용하고 있다는 점을 두루 고려할 때, 조교를 통해 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대학원생의 절박함은 그 정도가 상당하리라 추측할 수 있다.
  문제는 대학을 유지하는 데 대학원생 조교의 역할이 막중함에도 불구하고, 대학 측에서 이들 조교들이 하는 일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러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장학금’이라는 임금 지급 방식이다. 장학금의 사전적 의미가 ‘학문의 연구를 돕기 위하여 연구자에게 주는 장려금’이라는 것을 따로 언급하지 않더라고, 임금을 장학금의 형태로 지급했을 때 그곳에 노동의 권리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사실상 조교 일을 하고 받는 돈을 ‘임금’이라고 말할 수 없고, 여러 노동의 조건들에 대해서 논의하면서 환경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 어렵게 된다. 같은 맥락에서 흔히 조교를 시작할 때에는 구체적인 업무 방식과 시간, 임금 지급 방식 등을 명시한 계약서에 서명을 하지 않는다. 혹 작성하더라도 그것이 유의미한 효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노동을 하되, 노동이라고 불리지 않고, 부를 수 없는 구조. 그 구조 위에서 조교 노동이 처한 여러 문제들은 은폐된다.
  조교 노동의 또 다른 한편에는, (지도) 교수와의 관계가 절대적인 것으로 작동하는 대학원생의 지위 문제가 놓여있다. 조교 업무와 무관한 일들을 해야 하는 상황이나 불합리한 일을 겪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대학원생은 그것을 발화하기 힘든 입장에 처해있다. 학계 내에서 지속적으로 연구를 하고 연구자로서 자리를 잡아나가기 위해서 현실적으로 교수의 눈에 나는 행동을 하거나 그 말을 거스르는 행동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참 사회적 이슈거리였던 인분교수 사건은 (지도) 교수가 본인의 권위를 이용하여 발생한 문제들의 극단적인 표출일 뿐, 그밖에 묻힌 문제들은 수없이 많다. 대학은 이러한 대학원생의 지위나 입장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조교 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교수들은 특정 개인의 사람됨의 문제라고 치부하거나 이에 대해서는 아예 방관해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견고하게 유지되어오던 조교 노동 문제에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다. 작년 동국대 총학생회가 조교가 최저임금도 받지 못 하는 상황에 대해 총장을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고소했고, 최근에는 인천대에 조교 노조가 발족됐다. 그 길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작년 미국 콜롬비아 대학교에서 대학원 조교들이 노동조합을 구성하고 노동권을 주장할 수 있다는 판결이 있었다. 미국에서 60년대 조교 노동조합 설립 운동이 시작된 지 70년 만이다. 변화는 더디지만, 반드시 찾아온다. 그래서 이제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조교도 노동자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0 02:2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