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와 선거하지 못하는 자들의 민의
- 자크 랑시에르, 오윤성 옮김,『감성의 분할』, 도서출판b, 2008.

허 민(문화연구자)

선거철이다. 길가의 담장에는 역대 최다 인물이 나선 덕분에 10m 남짓의 벽보가 늘어져 있고, 거리에는 후보자들의 이름이 확성기를 통해 어지럽게 흘러나온다. “나라를 나라답게”, “국민이 이긴다”, “노동이 당당한 나라” 등 후보자들의 슬로건도 가지각색이다.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낯익은 말들의 향연. 그럼에도 이번 선거는 여러 의미에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성격과 양상을 보이는 듯하다. 우선 대통령 탄핵으로 앞당겨진 ‘장미 대선’이며, 과거엔 보기 힘들었던 다자 구도가 형성되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다. (현시점에서 단일화는 요원해 보인다.) 그 외에도 보수의 분열과 진보의 결집, 속화된 토론과 엔터문화의 결합, ‘카톡’ 정국 및 ‘문자테러’의 정치, ‘가짜뉴스’의 횡행과 ‘팩트 폭행’의 반동 등, 5년마다 찾아오는 대선임에도 익숙하다고만은 할 수 없는 선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만큼 유권자들의 관심도 고조되는 것 같다. 특히 2030세대가 그러한데, 이들의 투표의지가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한다. 사실상 캐스팅보트가 된 젊은층의 투표율이 이번 대선의 주요 관전 포인트라 하겠다.

하지만 선거는 항상 선거에 참여하지 못하는 자들을 양산하는 정치 시스템이기도 하다. 단순히 산술적으로만 보더라도 유권자의 20~30% 정도는 투표를 포기하는데, 그 중에는 아예 선거권이 박탈된 계층도 있다. (이 비율은 대선 기준이고, 지방선거나 총선은 투표율이 더 낮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가령 이번 대선의 경우도, 5월로 앞당겨 실시되는 바람에, 1988년 5월 10일 이후에 태어난 ‘성인’, 약 40만 명은 투표를 할 수조차 없다. 만 18세인 자들의 선거권도 획득하지 못한 차였다. 아울러 적지 않은 노동자들은 ‘여전히’ 선거 날을 일터에서 보내야만 하며, 이주민이나 장애인들 역시 투표에 참여하기 어렵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물론 사전 투표나 부재자 투표와 같은 제도적인 보완책이 마련되어 있지만,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민의’가 선거에 반영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당선자에겐 ‘화합의 필요’를, 낙선자에겐 ‘기회의 조건’을 마련해주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랑시에르는 정치의 본질을 바로 이 점으로부터 확보하려고 한다. 참여와 배제의 ‘경계’와 그 유동하는 조건들 속에서 말이다. 그는『감성의 분할』(2008)에서 ‘공통적인 것’에 참여하는 방식 자체를 결정하는 공간들, 시간들, 그리고 활동 형태들의 분할에 주목한 바 있다. ‘감성의 분할’이란, “공통적인 것의 존재 그리고 그 안에 각각의 몫들과 자리들을 규정하는 경계설정들을 동시에 보여주는 감각적 확실성의 체계”(13쪽)를 의미한다. 시민은 통치행위와 피통치행위에 ‘참여하는 자’이지만, 거기에 참여하는 자들을 결정하는 분할은 이 참여하기에 우선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하는 동물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다. 그러나 노예는 언어를 이해할 지라도 언어를 ‘소유하고 있지’ 않으며,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일 외에 다른 것에 헌신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공통적인 것에 개입할 수 없다. 따라서 그는 정치의 본질을 확보하는 일은 참여와 배제 사이의 경계들을 정립하는 좌표를 재배치하고, 논쟁적으로 재형성함으로써 ‘불화’의 논리를 ‘치안’에 대립시키는 해방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이때 노동은 급진적으로 ‘재정의’ 된다. “노동의 이념은 우선 결정된 활동의, 물질적 변형 과정의 이념”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의 부재’에 근거한, ‘다른 것’을 하는데 대한 불가능성이라는 어떤 감성 분할의 이념”(58쪽)인 것이다. 이는 예술적 실천을 노동의 외부가 아니라 전치된 가시성의 노동 형태로 보는 이론적 전도를 통해 주어질 수 있었다. 이를테면, 플라톤이 ‘국가’에서 시인-모방자를 추방한 이유는, 그들이 이 감성의 분할 속에 갈등을 가져오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즉, 개인에게 운명 지어진 본성에 기반을 둔 공동체의 원리는 예술적 실천에 의해 언제라도 위협-전복될 수 있다. (예술적 실천으로부터 확보된) 민주주의적 감성 분할은 노동자들에게 토의하는 시간을 줌으로써 이중적 존재로 만든다. 결국 랑시에르에게 노동의 ‘통상성’과 예술의 ‘예외성’ 사이의 관계를 묻는다는 것은 미학적 실천과 정치적 실천의 합류를 가능케 하는 가능성의 조건을 마련하는 작업일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제 예술을 경유하지 않고도, ‘표심’을 온전히 ‘민의’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대선에도 선거에 참여하지 못하는 자들이 적지 않게 양산될 것이다. 물론 한국의 정치현실에서 수치화되지 못한 이들의 의사가 ‘유효한 민의’로 받아들여 질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 누구도 선거로부터 배제된 이들의 의사를 무시할 권한이 없다. 따라서 선출된 자는 항상 겸허해야 한다. 아마도 이 글이 발표될 즈음에는 대통령 당선자가 결정되었을 수도 있겠다. 부디 자신을 선택하지 않거나 못한 사람들의 민의도 보살펴 줄 수 있는 정권이 탄생되었기를 바라본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16 15:3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