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은,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 동녘, 2017.

‘프로불편러’, 세상에 말을 걸다

  페미니즘은 불편함을 동반한다. 은폐되었던 일상 속의 부당함이 페미니즘을 통해 드러나기 때문이다. 세상은 다시 이 부당함을 고하는 자를 ‘프로불편러’라 이름 붙이고 문제 제기를 폄하하지만, 불편은 분명 균열을 남긴다. 홍승은 작가의 첫 페미니즘 에세이집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는 이러한 균열의 과정에서 발생한 에너지가 가득한 책이다. 춘천에서 인문학 카페를 운영해온 홍승은 작가는 여성혐오가 익숙할 만큼 일상적인 한국 사회에서 살아오며 겪었던 차별과 폭력을 섬세한 시각으로 정련하여 글로 엮어냈다. 이번 호에서는 홍승은 작가를 만나 책의 안팎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Q. 이전부터 에세이를 기고해 오셨는데, 페미니즘 에세이 책을 발간하게 된 계기를 여쭤봅니다.

A. 작년 8월에 책 출간 제안을 받았지만, 저는 페미니즘 이론을 공부하기 전부터 글을 계속 써왔습니다. ‘나 자신’을 설명할 언어가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독립출판 등에 대해 이전부터 관심이 많았거든요. 저는 ‘학교 밖 청소년’이었을 때나 학생운동을 했을 때, 인문학 카페를 열었을 때도 항상 질문과 해명을 요구받아왔습니다. “넌 돈도 안 되는 걸 하고 왜 그렇게 사냐”며 저를 한심하게 보는 경우도 있었고요. 그럴 때마다 대답할 자신의 언어가 부족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야 말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인문학, 철학 등 다양한 것들을 공부하고 마주쳤습니다. 카페에서도 글쓰기와 그림 모임을 열고, 독립출판물을 발간하면서 자신을 드러내고 마음껏 이야기하는 활동들에 계속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은 사실, 동생 홍승희가 효녀연합 사건으로 이름이 알려지며 저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이 먼저 붙인 것이었어요. 제 불편함이나 고민되는 지점들을 글로 써서 SNS에 올렸는데, 그것을 보고 “동생을 질투하는 꼴페미”라 하더군요. “아, 내가 페미니스트인가?” 하는 생각이 처음 들었습니다. 이후 남들이 딱지 붙인 말들과 표현에 반발심이 생겨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죠. 그렇게 공부를 하니까 페미니즘을 통해 제 삶의 많은 부분이 설명되었어요. 글쓰기에도 더 재미가 붙었고요. 글과 이야기를 계속 공유하고, 사람들에게 돌아오는 피드백을 보며 함께 힘을 내거나 절망하기도 하는 과정을 겪다가 출간 제안을 받았습니다.

  저에 대한 소개에도 적었듯, 저는 여전히 말하는 연습 중인 것 같습니다. 저는 글 한 편을 쓰는데도 많이 고민하고 망설입니다. 여전히 소심하고, 자기부정과 검열이 습관처럼 남아 있어서 책 출간을 제안받았을 때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은유 작가님의 책, 『올드걸의 시집』에 작가님이 책 출간을 결심한 계기가 나옵니다. ‘성공한 중년여성도 아니고, 아이를 잘 키워내서 육아 비법을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평범하게 모성과 자기 주체성 사이를 오가며 고민하는 중년여성의 책은 어디에도 없었기에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자 책을 냈다’고 하셨어요. 이 글은 제가 책 발간을 결심할 때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이런 목소리가 많이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용기를 냈던 것 같아요.

Q. 정치는 일상의 불편을 계속 폭로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런 지점에서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는 가장 개인적이고 가장 정치적인 책이라 생각합니다. “한 여성이 자신의 삶에 대해 진실을 털어놓는다면, 세상은 터져버릴 것이다.”라는 뮤리엘 루카이저의 말을 인용하셨는데요. 여성의 글쓰기에서 ‘나’를 이야기한다는 의미와 가치란 무엇일지, 글을 쓰며 느낀 점을 듣고 싶습니다.

A. 제가 용기 내어 글을 쓸 수 있었던 이유는 저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믿어주는 관계망에 늘 닿아 있었던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소수일지라도 “그것은 너만이 쓸 수 있는 글이기에 가치 있고, 너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니까 꼭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렸으면 좋겠어.”라고 이야기해주는 사람들이 늘 곁에 있었고, 그 관계가 있었기에 글을 쓰고 많은 사람에게 내보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페미니즘은 특히 요즘 젊은 세대 여성들이 관심을 많이 가지는 주제인지라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싶다고 카페에 찾아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저희는 이론만을 공부하지는 않았고요, 글쓰기나 그림 모임 속에 페미니즘의 독서도 녹여서 프로그램을 기획했습니다. 이론을 얼마나 아는가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즘이란 지금까지 사고해온 것, 관계 맺는 방식 등 살아왔던 삶의 패러다임 자체를 변화시키는 관점이고, 그렇다면 가장 구체적인 일상에서의 변화와 내가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저희 카페에 페미니즘 이론을 공부하고 싶다고 찾아왔던 여학생이 있었어요. 이 분은 글쓰기 모임을 통해 자기 글을 처음으로 쓰기 시작한 거였는데, 오히려 이론서를 보고 공부할 때 보다 자기 삶에 더 힘이 생기는 느낌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내가 어떤 언어를 장착하는 과정뿐 아니라, 내 삶을 해석해 낼 때 힘이 생기는 거잖아요. 그 과정이 글을 쓰는 과정이고요. 그것을 함께 해나갈 수 있는 오프라인의 연대체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두 명, 세 명의 작은 집단이라 하더라도, 온라인보다 탄탄한 만남으로 만나서 글을 함께 읽고 그것을 나눌 수 있는 존재란 제게 글쓰기의 원동력이었습니다. 나를 존재 자체로 대할 수 있는 공동체에 자신을 안내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Q. 여성 작가들의 글은 많지만, 저희 세대의 젊은 여성 작가가 자신의 삶을 말하며 ‘이것이 나다’하고 외치는 책이 이렇게 많은 주목을 받은 경우는 처음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어떤 독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읽을지, 이 책의 귀추가 궁금해집니다.

A. 여성 작가가 자신의 삶을 말한 책들은 피해 경험이나 삶의 성취 등, 하나의 주제에 집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범속한 일상을 사는 목소리를 담은 책은 접하기 어려웠죠. 이 책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세상이 ‘여성의 삶’에 전보다 더 관심을 가진다는 증거이기도 하겠지요. 제 동거인이 어머니께 저의 이번 책을 선물했다고 합니다. 책에 임신중절 경험 등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어머니께서 “읽고 있는데 매우 불편하다, 그래도 내용을 숙고해 보겠다.”고 하셨대요. 그런 반응이 재미있었습니다. 여태까지 지지받지 못했던 말이 세상에 나와서 공론화된다는 것이 너무 통쾌하고 즐거운 일인 것 같아요. 당신들이 틀렸다고 한 내 말도 이렇게 지면을 얻고, 또 많은 지지를 얻는다는 것이요. 세상을 계속 들썩거리게 하고, 딸꾹질하게 하는 그런 불편함이 지속되는 것이 참 즐겁습니다.

  저의 아버지께서도 이 책을 두고 딜레마에 빠지셨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책을 발간한다는 건 명예로운 일처럼 여겨지는데, 하필이면 여기에 제 아버지에 대한 내용이 많잖아요. 사적이라고 여겨졌던 것들을 이야기하고요. 그러니 당황스러우신 듯합니다. 딸이 책을 낸 일이 장해서 자랑하고 싶은데, 보여주거나 알리기도 어색하셔서 그런지 자주 연락을 해오세요.

Q. 책에서 아버지와 가부장의 권력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많은 경우 여성에게 ‘아버지’란 어쩌면 ‘최초의 폭력’, ‘그리운 고향과 같은 폭력’의 대표적 상징인 것 같습니다. 공생해 가야 하는 남성 집단의 권력 기제이기도 하고요. 우리는 ‘아버지의 세계’와 어떻게 공존해야 할까요.

A. ‘아버지’는 젠더의 틀 안에서 생각하게 되는 것들을 지속해서 고민하게끔 하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사실 ‘남성과의 공존’,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는 어렵고, 자신의 한계를 많이 느낍니다. 어떤 관계를 이어가야 할지 고민하고, 계속해서 목소리를 건네고, ‘당신이 살아보지 못한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서로 소통하여 알리고 싶은데 대부분 일방적인 소통이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최근에는 최현숙 선생님의 『할배의 탄생』이라는 책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그 책에서는 제가 생각해오던 ‘꼰대’, ‘할아버지들’의 삶이 구술 생애로 전개되는데, 읽으며 새삼 ‘이분들은 이렇게 살았구나.’하는 생각을 해 본 것 같습니다. 이들의 삶을 처음 들여다본 것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중년 남성의 이미지와 목소리도 획일화된 양상이 있지요. 특히 할아버지, 어르신의 이미지는 자신의 목소리로 표현된 것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저는 그 책이 좋았습니다. 다양한 계층과 다양한 상황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스스로 발화권이 없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접할 기회와 계기의 외연이 넓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도 ‘아버지’라고 했을 때 하나의 이미지를 상상하게 되는 한계가 있는데, 이런 이미지를 계속 해체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Q.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에는 용기도 필요하지만, 또 자기 자신이 글쓰기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느껴지는 어려움도 있었을 거라 짐작됩니다.

A. 이 책을 쓰며 가장 조심스러웠던 것은 저 자신을 피해자화 하는 문제였습니다. 아무래도 피해 경험을 기록할 때는 다시 화날 때가 많으니까요. 저는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의 정체성도 있지만, 저의 정체성은 그뿐만 아니라 다양하게 교차하잖아요. 관계 또한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데이트폭력도 젠더의 권력 구조에서 일어나는 일은 맞되, 그렇다고 일상적으로 나눴던 모든 일이 폭력 하나로만 해석되는 것은 아니죠. 사건과 관계는 복합적인 것이니까요. 좋은 글은 단편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복잡한 과정이 필요함을 알고 있음에도, 아직 제 글 실력에서는 이런 문제들을 풀어가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이 책에서 ‘아버지, 전 남자친구=나쁜 사람’이라는 도식처럼 감정적으로 서술한 부분에 대해 여전히 고민인 지점이 많습니다. 이러한 복잡한 감정과 이야기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가 저의 최근의 화두입니다.

  저 또한 불확실하고 불확정적인 존재이고, 스스로에 대해 고민을 하는 순간도 물론 많습니다. 요즘에는 나 자신이 모순적인 부분이 있음을 그냥 받아들이려 노력합니다. 내가 완벽한 인간이라고 믿는 순간, 자기혐오는 타인에 대한 혐오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인간은 다들 나약한 존재고, 흔들릴 수밖에 없잖아요. 나 자신의 모순점을 받아들이는 자세도 글쓰기를 위해 필요했습니다.

Q. 페미니즘의 언어로 ‘자신의 말’을 하고 싶은 여성들과 독자들에게 한마디 더 부탁드립니다.

A. 계속 전선을 만들어가고 대립하고 쟁취해가는 방법도 필요합니다만, 그런데 제가 지향하는 삶의 방식이나 글쓰기의 방식이 늘 그렇지는 않습니다. ‘지리산에서 글 쓰는 여자들’(이하 ‘지글스’)이라는 모임과 잡지가 있습니다. 그분들의 글을 보다 보면, 정치라고 하는 패러다임을 바꿔나가는 것은 사실 이렇게 사소한 것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아요. 지글스의 잡지에는 사회 이슈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사는지, ‘앞마당에 꽃이 언제 어떻게 피었는지’와 같은 농사일기, 농촌에서 여성들이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등을 계속해서 담론으로 만들어내고, 꾸준히 이야기하거든요. 페미니즘 안에는 우리가 대립하는 것 외에도 창조해 낼 가능성이 풍부하다고 생각합니다. 광장에 나가지 않아도, 특정 이슈에서 대립하지 않아도, 우리가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일상의 이슈들을 끊임없이 말하는 것도 정치 패러다임의 전환이라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좀 다른 방식의 언어나 다른 방식의 담론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우리가 속한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다양하게 상상할 수 있는 공동체, 그리고 이를 지지할 수 있는 경험이 각자의 자리에서 필요한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글쓰기 모임의 참석자는 대부분 여성인데, 대화하다 보면 다들 자기 경험을 꺼내놓거든요. 약물 강간이나 술을 마신 후 생긴 일들, 생각해보니 성폭력이었던 관계. 이런 순간을 공유하며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내가 안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에 계속해서 나를 안내하는 것, 이게 중요한 것 같아요. 내가 말할 수 있을 때 글도 더 힘 있게 써낼 수 있고요. 계속 자신의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신지현 기자 jhlily0408@korea.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