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X 자회사 문제는 승무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11년 전 KTX 승무원들이 겪어야했던 차별과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이 말은 취업사기에 반발해 직접고용을 주장하며 4,200일 넘게 투쟁을 지속하고 있는 승무원 33인에 국한된 말이 아니다. 전국 주요도시들마다 KTX역이 설치되고 코레일이 승무·유통·매표·주차·설비 유지 등에 특화된 5개의 자회사를 거느릴 정도로 규모가 비대해졌음에도, 늘어난 자회사에 소속된 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근무여건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철도공사 코레일의 자회사로 분류된 회사는 코레일관광개발, 코레일네트웍스, 코레일테크, 코레일유통, 코레일로지스로 5곳이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에 따르면(작년 기준) 이들 자회사에 간접고용된 정규직의 임금은 코레일에 직접고용된 정규직 임금의 50~70% 수준이다. 자회사 내 평균 42.6%를 차지하는 비정규직은 임금이 이보다 훨씬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레일 소속 계열사 중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은 코레일테크의 경우(91.5%), 비정규직의 평균 연봉은 2,300만 원대로 정규직 연봉의 57.5%에 불과했다. 문제는 정규직·비정규직 구별이 임금 차별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안전문제로도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지난 2016년 중반까지 5년간 코레일테크에서 발생한 안전사고는 21건으로 사상자 29명이 모두 비정규직인 것으로 드러났다.

승무업무를 담당하는 코레일관광개발은 비정규직의 비율이 10% 정도로 계열사 중 가장 적으나, 직원 대다수가 최저임금에 가까운 임금을 받는다. 이는 11년 전 180만원 가까운 월급을 받았던 승무원들과 비교해도 50만원 가까이 차이가 난다. 지난 9월 파업을 진행한 승무원들은 열악한 임금 외에도 판매승무원의 업무 전환 강요, 직장 내 성희롱과 능력가감급제 등을 문제 삼았다. 코레일은 2008년 이후로 열차 내에서 먹거리 등을 판매하는 판매승무원의 위탁비를 삭감하고 이들의 열차 탑승을 제한하여 추가 수당을 못 받게 했다. 그러나 이는 열차 내 먹거리의 수요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판매승무원을 외주 업체로 대체해 회사가 추가 임대 수익을 내기 위함이었다. 철도노조에 따르면 능력가감급제와 성희롱 문제는 서로 연결돼 있다. 객관적 평가가 불가능한 업무 특성상, 승무원들은 32~42만원의 임금 격차를 낳는 평가의 권한을 지닌 지사장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하고, 이는 권력 구조에 기댄 성희롱을 방기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역무·여객 매표·주차사업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코레일네트웍스도 코레일에 의해 임금 축소와 인원 감축의 압박을 받아왔다. 2014년 박근혜 정부의 전사적 무기계약직 전환 방침에 의해 코레일네트웍스 내 현장 정규직들은 전부 무기계약직 신분이 됐다. 이에 따라 2016년 기준 무기계약직의 연봉은 정규직 대비 2천만 원 적은 2,500여만 원에 불과하다. 더불어 십 년 이상 근무한 경력직들은 경력을 인정받지 못해 신입과 비슷한 임금을 받고 있다. 판매승무원처럼 네트웍스의 매표창구 직원들도 코레일에 의해 간접적으로 해고 압력을 받기도 한다. 코레일은 내년 3월까지 매표창구를 역사당 한 개만 남기고 폐쇄하고 이를 스마트승차권 자동발매기’로 대체하는 계획을 세웠다. 코레일은 매표창구 폐쇄를 합리화하기 위해 창구 발권율이 2013년 38%대비 25%로 줄었다고 해명했으나, ‘현장의 목소리’에 따르면 이는 원인과 결과를 반대로 해석한 결과다. 코레일이 창구 축소를 자회사에 강요해 무인발권기 발권율을 인위적으로 늘린 것이 창구 발권율 감소를 낳은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선박, 자동차, 철도, 항공기 등 여객운송사업 및 해당 분야에서의 정비, 승무 업무 등에서의 비정규직 사용을 금지하고 직접고용 정규직화하도록 할 것”이라 한 바 있다. 취임 직후에는 인천공항 공사를 방문해 ‘비정규직 제로화’를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 7월 20일 고용노동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해 상시·지속적 업무를 담당하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바 있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가이드라인의 세부내용과 이에 대한 사측의 조치가 기대에 못 미쳐 노동계는 실망과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가이드라인에서 자회사 소속이더라도 공공기관의 정규직이면 정규직 전환의 대상일 수 없다고 밝혔다. 따라서 KTX 승무원들은 기획재정부가 지정한 ‘기타 공공기관’인 코레일관광개발 소속 정규직으로 간주돼 직접고용에서 제외됐다. 이는 물론 코레일테크 등 다른 자회사 정규직에도 해당한다.

한편 코레일 측은 가이드라인의 모호성을 근거로 정규직 전환을 최소화고자 한다. 지난 10월 15일 코레일이 공개한 ‘철도공사 용역근로자 정규직 전환 추진 방향’에 따르면, 코레일은 자회사 포함 전체 용역 노동자 9,187명 중 1,337명만(15%) 무기계약직으로 직접고용하기로 결정했다. 자회사 정규직 2,500여명은 고용노동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전환예외 사유’로 간주했다. 나머지 5,400여 명에 달하는 민간 외주 위탁 업체의 노동자들도 전환 대상에서 배제했는데, 이들의 업무가 생명·안전업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가이드라인을 통해 기관이 “국민의 생명․안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업무는 직접고용 원칙”을 지키도록 권고한다. 그러나 “생명·안전과 밀접한”이라는 부분은 자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다. 실제로 가이드라인은 예외 조항으로 “생명‧안전 업무의 판단기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으로 생명․안전업무의 구체적 범위는 기관별 노사 및 전문가 협의, 다른 기관의 사례, 업무 특성 등을 참조하여 기관에서 결정”한다고 말하고 있다. 코레일은 이 조항을 근거삼아 생명·안전업무를 차량 정비, 선로 보수, 전기 보수,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소방설비 유지보수 등 5개로 한정했다. 한편, 구내입환·운전, 건널목관리, 승무업무 등은 생명·안전업무에서 아예 제외했다.

지난 10월 20일 대전 코레일 본사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이러한 문제들을 지적하고 나섰다. 더민주 민홍철 의원은 “코레일이 ‘생명안전업무 직접고용’,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의 정부 방침을 거부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코레일이 철도안전법상 생명과 안전업무를 지킬 승무원을 열차안내원으로 왜곡 표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의당 윤영일 의원과 더민주 안호영 의원은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다 해고된 직원 98명의 복직과 KTX 해고 여승무원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기도 했다. 국민의당 정동영 의원은 “코레일이 4조 6천억 원에 공항철도 지분을 매각하며 성과급으로 임원 연봉을 6천만 원 올렸다”며 재정 문제를 핑계로 해고 직원의 복직 문제를 회피해온 코레일에 일침을 놓았다.

현재 코레일 사장직은 90일 넘게 공석이다. 2016년 5월 선임된 홍순만 전 사장은 재직 당시 성과연봉제를 노조와 합의 없이 강행하다가 파업을 초래하는 등 노동자들과 마찰을 빚고, 적폐 기관장이란 오명을 쓴 채 지난 7월 사장직에서 물러났다. 앞으로의 코레일 자회사 및 용역 업체 소속 직원들의 노동조건 개선과 실질적인 권리회복을 위해서, 공석인 사장직에 누가 부임하는지 귀추가 주목된다. 노동문제에 전향적인 사장의 부임과 고용노동부의 가이드라인 구체화, 정부의 원활환 교통정리 등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 김유동 기자 kkndyut1212@hanmail.net